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25화 (225/458)

< 제 225화. >

천혁수의 손속에 자비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내가 더듬거리며 무엇이든 말하겠다 외치자 다른 사내가 의자에 묶인 채로 발광을 하며 외쳤다.

"이 변절자 새끼! 입만 벌려 보라, 그 주둥이를 확 찢어줄테니."

천혁수의 맞은편에 서 있던 백철웅이 순식간에 놈에게 쇄도해 일말의 망설임 없이 놈의 목 울대에 주먹을 꽂아 넣는다.

"커헉!"

꽈당.

의자에 묶인채로 뒤로 넘어간 사내가 부들부들 몸을 떨며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천혁수는 그쪽은 신경쓰지 않고 공포심에 몸을 떨고 있는 놈에게 묻는다.

"말해 봐, 네가 아는 것 전부."

"예, 예."

피슉.

"큽."

왼쪽 목이 베인 사내가 어째서냐는 듯 천혁수를 바라본다.

"대답 말고, 할 말만 빠르고 쉽게."

완벽히 천혁수의 뜻을 이해했는지 그가 속사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는 북조선 인민공화국 전사들입네다."

"간첩?"

"남조선에서는 그렇게 부릅네다."

"계속 해."

"어젯밤 지령을 받았고, 그 지령에 따라 이 집에 침입했습니다. 당연히 목표는 당신입네다."

"실패했고?"

"공화국에서 넘겨준 정보로는, 당신이 사채업자 출신이고 주먹패들과 가까우니 주의하라 했디만, 집안 내부에 그런 대단한 실력을 가진 여자들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네다."

천혁수가 고개를 주억거리다 물었다.

"이유는, 날 죽이려는 이유."

"공화국에서 말하기를, 당신은 우리 공화국을 무너뜨리려는 미제 세력과 한 패라고 했습네다. 그 이상은 모릅네다."

천혁수가 고개를 돌려 이미 명을 달리한 간첩들과 현재 의자에 묶여있는 간첩들을 쓱 둘러보고는 말했다.

"얼추 열 셋 정도 되어보이는데, 네 놈들은 이게 다인가?"

고개를 흔드는 사내.

"아닙네다. 우리는 공화국의 이등 전사들이고, 일등 전사들은 따로 있습네다. 아마 우리가 임무에 실패했으니까니, 다른 전사들이 투입 될 겝니다."

"네 놈들이 간첩이라는 증거는?"

고개를 도리질 치는 그.

"내레 남조선에 들어온디, 벌써 11년이 됐이야요, 어디에도 간첩이란 증거는 없습네다."

"조선족 신분인가?"

"이제는 남조선 사람입네다."

"아직도 북한 말이 남아 있는데?"

"고것이... 입에 밴 습관이라는게 좀처럼 지워지지가 않에서... 공화국 일등 전사들은 아마, 누가 봐도 남조선 아 새끼들과 똑같을 겝니다."

천혁수가 잠시 무언가 생각에 잠기고.

한껏 떠들었던 간첩 사내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는 천혁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어느새 다시 천혁수의 곁으로 다가온 백철웅.

"어떻게 처리할까요 백부님."

잠깐 손을 들어 올린 천혁수가 백철웅을 기다리게 하고는 간첩 사내에게 물었다.

"그 일등전사라는 놈들은 어디에서 모이지?"

"지령을 받는 위치는 인민무력부장이 결정합네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랑은 다르디 싶습네다."

"아는게 없다는 소리로 들리는 군."

간첩 사내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머릿속에 위험신호가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급한 마음에 아는 정보를 모두 토해내기 시작한다.

"그, 우리 전사들은 평시에는 인민들을 위해 달러 수급에 목을 매고 있습네다. 이등 전사들인 우리들이야 엘리트 교육을 받디 못해 막일이나 하며 돈을 벌디만은, 일등 전사들은 고렇지 않습네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전문직'에도 많이 종사하고 있을 겝니다! 그쪽으로 파보시믄, 뭐가 나와도 나오디 않갔습네까?"

피식 웃은 천혁수가 말했다.

"네 놈은 대한민국에 변호사가 몇명 있는지 알고 있느냐."

"모, 모릅네다."

"그럼 게 중에 고졸 출신 변호사는? 대입을 하지 않고 바로 사법고시를 패스해 변호사가 된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는 알고?"

"모, 모릅네다."

천혁수의 칼이 놈의 오른쪽 복부를 찔렀다. 정확히 아산댁이 칼침을 맞은 자리였다.

"크읍."

"네 놈이 뱉은 정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사, 살려주시라요 동무! 공화국에 토끼 같은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시야요!"

"어차피 변절자 소리 들으며 형장의 이슬이 될 운명이 아니더냐."

"아닙네다! 그 동안 열시미 꽁쳐둔 달라를 애미나이에게 보냈습네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은, 반드시 남 조선으로 망명할..."

사내가 살고자 발악을 하는 사이, 어느새 지하실로 내려온 아산댁이 천혁수에게 말했다.

"어르신, 정리 끝났습니다."

천혁수가 인자한 얼굴로 아산댁을 바라보다 이내 그녀의 몸에 난 상처들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다시 고개를 돌린 천혁수.

"우리 손자 놈은 그런 말을 하더군."

얼굴 가득 의문을 품고 천혁수를 바라보는 간첩 사내.

"무슨..."

"천가에 자비는 없다."

어느새 역수로 쥐어진 사시미가 놈의 왼족 허벅지 대동맥을 그대로 찔러들어갔다.

"끄아악."

이내 칼을 비틀어 혈관을 헤집어 놓고는 그대로 뽑아내는 천혁수. 순식간에 쇼크가 와 온 몸을 부들부들 떠는 간첩 사내를 무시하고는 백철웅을 바라보는 그.

"안기부가 아니라, 뭐라고 했지?"

"국가정보원입니다. 백부님."

"그래, 거기 아이들 중에 제법 영향력 있는 놈, 집으로 불러."

"예."

어느새 아산댁의 곁으로 다가간 천혁수가 싸늘한 눈을 하고는 장내를 쓱 훑어보고는 말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지."

"명심하겠습니다. 백부님."

어떤 경우에도 오늘의 일이 세어나가지 않게 하라는 천혁수의 완고한 표현.

찰떡같이 알아들은 백철웅과 천혁수의 수행원들은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를 건네고, 아직 살아 있는 간첩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피어오른다.

***

평소와 다름 없이 병원을 방문한 대비 할아버지와 장인 장모. 그리고 우희.

가족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는 이제는 제법 회복했다고 보여지는 루시와 함께 아이들과 짧은 면회를 가졌다.

쌍둥이라는 특색이, 아쉽게도 아직은 아이들을 의학의 품에서 조금 더 안전하게 자라길 기다려야 하는 시점.

그래도 이렇게 하루에 5번씩, 모유를 줘야 하기 때문에 짧게나마 아이들과 면회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막 면회가 끝나고 아쉬움을 잔뜩 품고는 투명한 강화유리 너머 아이들이 자신의 침대에 눕는것을 확인하는 찰나.

조금 떨어진 곳에 호석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피식 웃으며 다가가 물었다.

"왜요, 숙모님 도착하셨습니까?"

눈썹을 꿈틀 거린 호석이 말했다.

"도착이야 진즉에 했습니다. 회장님."

"그럼 왜 표정이 안 좋으신데요?"

슬쩍 대비 할아버지와 우희의 눈치를 보다 작게 속삭인다.

"백부님께 암살 시도가 있었습니다."

덜컥 얼굴이 굳었다.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네요."

"정원으로 가시겠습니까."

"그러죠."

나는 굳어 있던 표정을 풀기 위해 입을 벌려 좌로 우로 움직이다 호석에게 물었다.

"어때요, 평상시와 같습니까?"

"눈에 힘만 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최대한 밝은 생각을 하며 뒤돌아 루시에게 향했다.

"먼저 병실에 올라가 있을래?"

루시가 입술을 삐쭉 내밀고 말했다.

"또 시가?"

"하하, 냄새만 맡다 올게 냄새만."

루시가 슬쩍 왼쪽 손목을 들어올려 작은 시계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면회시간 4시간 남았으니까 태우고 와, 깨끗하게 손 씻고."

"정말?"

"으이구! 좋아 하긴!"

나는 피식 웃으며 루시의 엉덩이를 툭 두들기고는 대비 할아버지에게 눈인사를 하며 다시 뒤돌아섰다.

호석의 곁에 서 있던 수행원이 바짝 얼어서 긴장하는게 느껴진다.

그만큼, 현재 내 표정이 좋지 못하다는 방증이리라.

정원에 도착하니 호석이 평소와는 달리 각잡힌 모습으로 시가를 건네고 불을 붙여준다.

"보고 해 보세요."

"예, 회장님. 대한민국 시각으로 16시경, 아산댁 이하 사용인들이 외부 침입을 발견, 이후 제압 및 저지. 17시 30분경 퇴근하신 백부님이 이를 발견, 심문 결과 북한의 간첩으로 판명났으며, 2차, 3차 암살자 투입 가능성까지 고려하고 있습니다."

짧고 간결한 보고였지만 확실히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일단 1차는 간만 봤다?"

"간만 보았거나 혹은, 그 정도로 충분하리라 생각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확실한 것은 놈들이 백부님의 동선은 꿰뚫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 대한민국 공직자들 중에 북한 놈들의 쁘락치가 있다?"

"그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렇게 추측한 이유는?"

"고위 공직자가 아니면 알기 힘든 백부님의 동선 역시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후우."

시가 연기를 길게 뿜어내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피해 상황은요?"

"집안 집기의 피해와 아산댁을 포함한 사용인들의 부상이 있었습니다."

"사망자는 없고요?"

"예, 약간의 타박상이 전부라는 보고입니다."

"타박상이라..."

힐끗 호석의 눈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아산댁 아주머니 손이라도 다치신 건 아니겠죠?"

호석이 격하게 고개를 흔들고는 말했다.

"예, 목과 허벅지에 창상, 복부에 자상이 있는 것으로 보고 받았습니다."

"그 정도면 심하게 다친 것 아닙니까?"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고, 약간의 시술로 치료가 가능한 부분이라고 합니다."

"급소는 피해서 맞으셨다?"

"그렇습니다."

"하기사... 아산댁 아주머니인데..."

작게 튀어나온 혼잣말에 호석 역시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표한다.

가끔 아산댁 아주머니와 대련을 했던 적도 있으니, 그녀의 실력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특히나 그녀의 단검술은 가히 귀신같은 칼 솜씨라는게 호석과 철웅의 평가였다.

물론, 그 귀신같은 칼 솜씨를 다행히 음식에 쏟아내고 있었지만 말이다.

"특수부대는 특수부대인가봐요?"

"독거미부대는 제법 명성을 날리고 있습니다. 해당 부대의 훈련교관까지 초청받았던 적이 있으니, 그녀의 실력이야 보장된 것이죠."

항상 펑퍼짐한 원피스 따위로 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나와 대련을 할때는 브라탑과 숏팬츠를 입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온 몸엔, 여기 저기 창상과 자상의 흉터가 가득했었다. 그녀의 삶이 순탄하지 않았음이었다.

"그나저나... 김일정이 이 돼지새끼가 제법 기분이 상한 모양이네요, 무리수까지 두고."

"덕분에 백부님의 경호 단계를 최고 단계까지 올렸습니다."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특수 훈련을 받은 암살자들이 대기 하고 있다고하니 결코 과하다고 볼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간첩 놈들을 심문하던 도중 알게 되신 정보를 이용하고자, 국정원 대북관련 차장급 인사와 면담을 진행중이십니다."

고개를 끄덕이다 말했다.

"국정원쪽에 연락해서 총기사용 허가 받아오세요, 못 받아도 상관은 없습니다. 나는 허락할테니 총기사용 하세요, 대원들의 안전과 할아버지의 안전이 우선입니다."

호석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저격까지 염두하고 계신겁니까?"

슬쩍 시계를 들어 올려보고는 말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신해주? 하여간 백령도 부근에서 포격할 시간까지 14시간정도 남았네요, 아마 실제 포격이 이뤄지면 놈들의 반응이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을테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시가를 몇 모금 태우다 그에게 물었다.

"아직 언론에는 알리지 않을 생각인가 보죠?"

"아직은 차장급 인사와 면담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파악이 어렵습니다."

"그건 따로 알아보죠. 우리 병원이랑 루시, 우희에 대한 경호도 한단계 격상시키세요."

"예, 회장님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피식 웃다 말했다.

"그래도 삼촌은 퇴근 하시고요, 밤마다 바쁘셔야죠?"

호석의 눈썹이 격하게 꿈틀거렸다.

< 제 225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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