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24화. >
천혁수의 집에서 음식을 담당하는 아산댁.
간단한 가사까지 직원들과 함께 움직이는 그녀는 여느날과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오전 6시에 기상해 천혁수가 먹을 아침밥을 차리고 전날 움직였을 직원들의 청소상태를 점검하는게 그녀의 첫 일과였다.
철컥.
천혁수가 출근길에 나서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체력단련실로 향해 운동을 시작했다.
미래에느 크로스핏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고강도 운동을 쉬지 않고 반복하는 그녀.
어느새 그녀가 입고 있는 브라탑은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시간이 지나고. 그림자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지원 하나가 그녀에게 다가와 타월을 건넨다.
"언니 11시에요."
"어머, 벌써 그렇게 됐니?"
"네."
"얼른 나가야겠다."
"준비하고 있을게요~"
"그래~"
아산댁은 밝게 웃으며 개운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나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의 몸매는 가히 완벽하다 말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온전한 나이를 아는 것은 천혁수가 유일하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을 천혁수가 보게 된다면 '너는 늙지도 않는구나.'하고 칭찬을 할 것만 같은 그런 몸매였다.
언제와 같이 펑퍼짐한 옷으로 몸매를 가린 그녀는 평범한 미중년의 아줌마가 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익숙한지 거실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은 별말 없이 벌떡 일어서며 그녀를 따라 바깥으로 외출하기 시작했다.
"오늘 1시에 정육 들어오는 거 아시죠 언니?"
"그럼, 그래서 일찍 가잖니. 거기 실장한테 미리가서 약 좀 치자구."
"네~ 거기 부 실장이 노총각이라는데, 언니 어때요?"
아산댁이 팔꿈치로 직원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한다.
"나는 결혼 생각 없다니까."
"왜요~ 그 고운 얼굴 너무 아깝다니까... 벗으면 또 몸은 얼마나 굉장하고."
직원 둘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강하게 긍정하였다. 그녀들의 칭찬이 내심 싫지는 않은지 피식 웃은 아산댁이 말을 이었다.
"어르신에게 은혜를 갚아야지."
직원 중 하나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어르신도 언니가 시집간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실걸요?"
"그럼 누가 어르신 진지 차려드리니?"
"왜, 어르신 새 손녀 며느리 얻으셨잖아요?"
"어머머, 그 어린 아가씨가 손 맛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하긴, 우리 언니 음식을 누가 따라해."
양쪽에서 거의 엉겨 붙듯이 붙어 있든 두 명의 직원들을 힐끗 바라본 아산댁이 말했다.
"그러는 네 들이나 시집 가."
둘 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왜 네들은 안 가고?"
"통, 눈에 들어오는 남자가 없네요."
"저두요."
아산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에휴, 어르신이랑 같이 있는 사내들이 하나같이 멋있으니... 쯧."
직원둘은 격하게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내 웃음꽃이 피고, 그녀들은 마트를 헤집으며 약 2시간 가량 쇼핑을 즐겼다.
물론, 그녀들이 구입한 물품들은 모두 식료품과 생필품이었지만, 꼼꼼하게 비교하고 품질을 따져 구입한 것들이었다.
양손가득 무겁게 집으로 돌아온 그녀들.
"......"
아산댁이 입구에서 잠시 멈춰 서서는 문 앞에 떨어져 있는 솔잎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언니?"
인자하던 아산댁의 얼굴에 균열이 생기고.
"오늘 어르신 스케줄이 뭐였지?"
"오전에 재단에 들르셨다가 점심 후, 청와대에서 회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퇴근하셨을리는 없단 얘기네."
고개를 주억거리며 작게 말을 잇는 직원.
"퇴근하셨다면 백 대표님이나 다른 수행원에게 연락이 왔을거예요."
"그렇지?"
"네."
"벽에 바짝 붙으렴."
직원들이 화들짝 놀라다 이내 빠르게 벽쪽에 달라 붙고는 소리 없이 장바구니를 내려 놓는다.
"침입자라. 오랜만이네."
말을 끝낸 아산댁의 얼굴은 어느새 표독스러운 흑표범을 닮아 있었다.
그녀가 원피스의 치맛자락 속으로 손을 집어 넣고는 군용대검을 꺼내 들자. 직원들 역시 자신들의 치마 속에서 군용대검을 꺼내 든다.
"만만한 아이들이 아닐 것 같으니, 조심하고. 혜원이는 교대할 아이들에게 연락 돌리겠니? 오늘 출근은 좀 빨라야겠다고."
"네, 언니."
혜원이라 불린 직원이 빠르게 휴대폰을 조작하고.
"미진아, 우리 애기들 출근할려면 얼마나 걸릴까?"
"연락을 받았다는 가정하에 5분이요 언니."
"3분 후에 진입하자."
"네!"
굉장히 살벌한 말들을 내뱉고 있지만 그녀들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약간의 긴장 역시 공존하고 있지만 그것은 몸을 데워 근육이 원만하게 움직이게 하기 위함이었지, 결코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관절이 움직여 줄까 모르겠구나."
말투는 여전히 인자하고 부드럽지만, 표정만은 그렇지 않은 아산댁.
그녀의 말에 미진이라 불린 직원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오랜만에 흑표범 교관의 움직임 보겠네요."
아산댁이 피식 웃어버린다.
"미친년 아니고?"
"어머, 그 별명도 알고 계셨어요?"
"그럼, 미진이 네가 그렇게 씹었다면서?"
미진이란 여인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혜원이란 여인을 째려본다.
"난 억울해."
"혜원이는 연락 다 했니?"
"네, 언니."
"그래, 관절 풀고 있으렴. 3분뒤에 바로 진입할거야."
"네!"
그녀들이 벽에 기대어 조금씩 조금씩 팔과 어깨 무릎과 고관절을 움직이며 몸을 푸는 사이, 아산댁은 눈을감고 조용히 오른손을 가슴께에 올려 심장의 박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시계가 없기에 맥박으로 시간을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일반인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 평소 자신의 맥박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이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감고 있던 두 눈을 번쩍 뜬 아산댁.
그 눈은 흡사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와 같았다.
"3분 지났다. 준비 됐니?"
"네!"
"네!"
"죽지말고."
아산댁의 말에 피식 웃어버리는 미진과 혜원.
그녀들에게서는 강한 자신감이 보였다.
흔들리지 않는 그녀들의 눈을 확인한 아산댁이 작게 외쳤다.
"진입."
""진입!""
***
끼이이익.
마감 처리가 잘 되어있던 현관문이지만 어쩐지 경첩이 소리를 내는 것같은 착각과 함께 내부로 진입한 백철웅과 천혁수.
그들이 맞이 한 것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실내의 전경이었다.
좀처럼 집 안에서는 보기 힘든 가사도우미들 전부가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꺄아악! 그냥 들어오면 되지 왜 창문들은 부수고 그래요!"
게 중에 아산댁의 꼴이 정말 가관이었다.
흰색 가디건 위로 피칠갑을 하고는 창문을 부수고 진입한 천혁수의 경호원들에게 목에 핏대를 세우고 혼구녕을 내고 있는 모습.
한참 바닥에 지도를 그리고 있는 피를 마른 걸래로 걷어내고 있던 가사도우미 하나가 천혁수를 발견하고는 쪼르륵 아산댁에게 다가가 옆구리를 쿡 찌른다.
"넌 또 왜!"
화가난 듯 휙 고개를 돌린 아산댁.
그녀의 눈에 천혁수가 들어오고,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상냥한 얼굴을 하고서는 종종 걸음으로 다가와 특유의 품위를 보이며 인사하는 아산댁.
"퇴근하셨어요, 어르신."
천혁수는 어느새 부드러운 얼굴이 되어 손을 뻗어 아산댁의 어깨춤을 두들기며 말했다.
"그래, 다친 곳은 없더냐."
"괜찮습니다 어르신, 며칠이면 나을 상처에요."
눈썹을 꿈틀거리며 천천히 아산댁의 전신을 살피는 천혁수.
아산댁의 왼쪽 목 언저리와 오른쪽 허리, 왼쪽 허벅지 부근은 날카로운 칼붙이에 베인 상처가 보였다. 옷이 갈라지고 그 사이로 그녀의 뽀얀 살결이 내비치니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쯧, 여인의 몸에 안타까운 흉이 지겠구나."
"괜찮아요."
"심하게 다친 아이들은 없더냐?"
"네, 다행히 적들이 방심을 하여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다행이고."
살포시 아산댁을 끌어당기는 천혁수.
아산댁이 양 손을 뻗어 천혁수를 만류한다.
"피 묻어요, 어르신."
"괜찮다. 네가 별탈 없으니 마음이 한결 놓이는구나."
이내 천혁수의 품에 안긴 아산댁.
천혁수는 툭툭 등을 두들기고 쓰다듬어 준 뒤 본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와서는 물었다.
"그래, 놈들은 어디 있더냐."
"지하실에 던져 놓았습니다."
천혁수가 고개를 움직여 백철웅을 바라보았다.
"예! 백부님."
빠르게 집 안쪽을 걸어 어디론가로 사라진 백철웅.
천혁수는 품에 안긴 아산댁을 떼어 내고는 가사도우미들 한명 한명에게 다친곳은 없는지 안부를 묻고 나서야 철웅을 따라 지하실로 향했다.
"아이! 피 묻은 양말은 벗고! 마른걸레로 발 바닥 닦고 움직이라니까! 너 신참이니?"
아산댁의 성난 목소리는 그녀가 건재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지하실로 향하는 천혁수는 피식 웃어버렸다. 이내 지하실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어느새 다시 사채시장의 산군이 된 천혁수는 뚜벅뚜벅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오자마자 의자에 묶여 있는 여덟명의 사내들을 보며 양복 상의를 벗어 수행원에게 건넨 뒤, 셔츠의 소맷자락을 말아 올린 천혁수가 사내 중 하나의 머리를 잡아 들어 올리고는 물었다.
"어디서 온 놈들이냐."
"......"
대답이 없자 천혁수가 머리를 잡고 있지 않은 손을 뒤로 뻗었다. 수행원은 얼른 그에게 날이 잘 벼려저 있는 도축 칼을 건넨다.
"여기 였던가."
퓩.
왼쪽 목 언저리를 베고 지나간 칼날.
정확히 경동맥은 피해서 고통만 불러 일으키는 위치였다. 사내의 목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하고 짧은 침음성을 흘린다.
"그리고 여기."
오른쪽 허리춤을 푹 찌른 천혁수, 복막과 장기에는 문제가 없는 부분이었다.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고통까지 없을리는 없었다.
"끄읍..."
이를 앙다물고 고통을 참는 사내.
"마지막으로 여기였지?"
천혁수가 복부에 박힌 칼을 뽑아 역수로 쥐고는 사내의 왼쪽 허벅지를 망설임 없이 찔러버렸다.
"끄아악!"
고통에 비명지르는 사내 덕분에, 그의 입가에 묻어 있던 피가 천혁수의 얼굴에 튀었다. 공교롭게도 사내가 천혁수에게 공격당한 위치는 아산댁이 칼로 베인 상처가 있는 부위와 같은 위치.
"정확히 핏줄을 관통했어, 칼을 비틀거나 뽑으면 40분내로 네 놈은 죽는다."
"......"
놈이 내지른 고통의 비명도 잠시.
체념한 듯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 사내.
천혁수는 망설임 없이 칼을 비틀어 뽑았다.
꿀렁, 꿀렁.
사내의 허벅지에서 피가 펌프질 하듯 세어나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안색이 파리해져 가는 사내를 무시하고 천혁수는 놈의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내의 목과 허리, 그리고 마지막 허벅지에 똑같이 칼을 박아 넣었다.
"아직 살아있는 주둥이는 일곱이나 있다."
질문을 하진 않았다.
그저 사실을 전할 뿐이었다.
사내 역시 체념한 듯 아무런 말도 뱉지 않자 천혁수가 힐끗 고개를 돌려 다른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곧 여섯이 되겠구나."
천혁수와 눈을 마주친 사내의 가랑이가 젖어들기 시작했다. 이내 악취와 함께 '똑, 똑.'하는 소리가 들리며 사내의 바짓단에서 노란 액체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쯧쯧."
천혁수는 혀를 차며 허벅지에 박혀 있는 칼을 비틀어 뽑아 오줌을 지려버린 사내에게 다가가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 말 하갔습네다!"
급히 말 하겠다 말하는 사내.
그러나 천혁수의 칼에는 자비가 없었다.
목, 허리. 그리고 마지막 허벅지.
"늦었다. 오줌 냄새가 불쾌해. 이제 다섯 남았군."
잔뜩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악다구니를 쓰려 하는 오줌 사내. 감히 천혁수에게 쌍욕을 뱉을지 모르는 그의 입을 가만히 보고 있을 철웅이 아니었다.
빠르게 손을 놀려 놈의 턱주가리를 잡아 채고는 피를 닦던 걸레를 입안 가득 물려 넣는다.
천혁수는 다음 사내에게 움직이며 말했다.
"천천히 말해도 돼, 밤은 기니까."
< 제 22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