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22화. >
청와대의 전화기가 불이 난 것 처럼.
내 전화기 역시 불이 날 것 같았다.
“오 체이스 오랜만입니다.”
-하하, 우진 쌍둥이라지?
“벌써 소문이 거기까지 낫습니까?”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다음에 꼭, 좋은 선물을 가지고 워싱턴으로 가지.
“마음만으로도 충분 한데요?”
-아니지, 아니야.
진심이 느껴졌으니까 난 피식 웃으며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약간의 침묵이 이어지고, 나는 그 침묵을 깨며 말했다.
“왜요, 궁금한거 있으십니까?”
요점을 찔렸을까? JB모간의 체이스가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흠흠, 그··· 한국의 정세가 시끄러워서 말이지··· 우진의 조언을 얻어볼까 하여 연락해 봤네.
“전쟁이 나느냐 안 나느냐?”
-그렇지, 한국 대통령의 첫번째 성명문 이후에도 주식시작이 출렁거렸지, 두번째 성명문 역시 마찬가지고. 이제 대통령이 말한 시간이 약 36시간 정도 남은 것 같은데, 정말 공격이 이루어진다면···
체이스가 우려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오르냐, 내리냐. 그걸 묻는 것이다.
“체이스, 기본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군요.”
-기본?
“주식이란 본래의 가치에 따라 움직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욕망을 고스란히 담아 움직이기도 한다는 기본 말이죠.”
-으음, 그렇지··· 무슨 뜻인지 알겠네, 욕망에 움직여라.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전쟁 역시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니까요, 당신이 김일정이라면, 전쟁을 일으키겠습니까?”
-절대, 어떻게 쥔 권력인데 그걸 버릴까? 협박질이나 하면서 시간이나 질질 끌겠지.
“그럼 해결 됐네요?”
-풋, 그렇구만··· 고맙네.
“예, 삭스가 어쩐지 내게 전화를 하고 있을것 같으니 두분이서 대화를 나누시는게 좋을 것 같군요, 아까부터 전화가 계속 밀려 있어서 말입니다.”
-하하하, 그럼세. 그럼 좋은 날 보자고.
“예, 그러죠.”
전화를 끊으니 옆통수가 따갑다.
언제 잠에서 깨어났는지 루시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전화기가 다시 몸을 떨며 간절하게 나를 찾지만, 나는 무시하고 루시에게 다가갔다.
“잘 잤어?”
“누구 목소리가 너무 달콤해서 깨어버렸지 뭐야?”
“큽, 그랬어?”
“전화 불 나겠다. 또 진동 오는거 아냐?”
“그러게, 한국이 시끄러운건데 왜 자꾸 나한테 전화하나 몰라.”
루시가 입술을 삐쭉 내밀고는 말했다.
“나가서 통화하고 와, 허니가 좋아하는 시가도 한 대 태우고.”
“음?”
“며칠째 하나도 안 태웠잖아? 아직 태양이 별이 보러 갈 시간 멀었으니까 태우고 와도 돼, 나는 한숨 더 자고 있을게.”
“그럴래?”
“응.”
옆으로 누워 큰 눈을 깜빡이는 루시의 입술을 훔치고는 귀여운 엉덩이를 툭툭 두들기고는 병실을 빠져 나왔다.
“휴가 안 가셨어요?”
호석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가족을 불렀습니다.”
“오!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미국 여행이라고 하니, 좋아하던데요?”
“하하하, 잘 됐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늦둥이······”
호석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로스차일드는 처리 됐나요?”
“크음··· 현지시각으로 어젯밤 마무리 되었습니다. 아마 지금쯤 포도밭의 거름이 되고 있지 않을까 싶군요.”
“좋네요.”
어느새 정원에 도착한 나는 자연스럽게 벤치에 앉았다. 옆자리에 앉으며 입을 여는 호석.
“그래서 늦둥이는 아무래도 재고······”
“시가 한 대 주시겠어요?”
“크음.”
그에게 시가를 건네 받고는 뻐끔뻐끔 불을 붙였다.
부재중 전화가 온 곳의 연락처를 살피니, 화이트 하우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말씀드렸지만 제 와이프 나이가 올해 42살로 이제와서 또 출산은 몸에 상당한 무리가 갈 수···”
“백악관이네요.”
때마침 다시 걸려온 전화를 흔들며 나는 귓가로 전화기를 가져갔다.
결국 말을 끝내지 못한 정호석은 뾰루퉁한 표정으로 점잔게 시가를 태우기 시작했다.
“예, 전화받았습니다.”
-천, 잘 지냈습니까?
“대통령께서 걱정해주신 덕분에, 잘 지냈네요.”
-출산 소식은 들었습니다. 쌍둥이라죠?
“하하, 오늘 전화하는 사람들마다 너무 같은 레퍼토리인데요?”
-푸핫, 그랬습니까? 다들 미안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군요, 용건만 말하기에는 천과 다진 친분이 있으니까.
“미스터 프레지던트께서도 그러신 모양이고요.”
-부정은 못하겠습니다.
더이상 전화한 의도를 숨길 필요가 없어졌음일까? 부시는 속 시원하게 물었다.
-주한 미군 사령관에게 들으니, 현재 북한에 대한 공격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인물이 천의 할아버지라 들었소.
“예, 맞습니다.”
-그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것을 아는데··· 그의 성향이 걱정되서 묻고 싶은게 생겼지.
“대통령께서 걱정하시는 만큼, 전쟁광이 아니라고 그 부분은 확언드릴 수 있습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지난 과거, 대한민국은 북한에게 정말 많은 무력도발을 당해 왔습니다. 그 속에 사라져간 군인들은 물론 민간인 피해 역시 상당했죠.”
-흐음···
“이제 북한 놈들은 그런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참는다’이거죠.”
-그래서 이제는 참지 않음을 보여주려 한다는 얘깁니까?
“예, 내 생각도 나의 할아버님의 생각도 그겁니다.”
부시가 말을 고르는 듯 약간의 망설임 후, 물어왔다.
-만약 이번 공격에 의해 북한이 추가적인 공격을 감행한다면 어쩔 생각입니까?
“역시나 보복타격이 있어야겠죠.”
-그런식의 진행이라면 진정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생각이 되는데. 그걸 원하는 것은 아닐거 아닙니까.
“김일정은 절대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겁니다.”
-그가 일으키고 싶지 않다 해서 전쟁이란게 일어나지 않는게 아닙니다.
“48시간이라는 시간의 여유를 주었습니다. 얼마든 민간인들과 군사시설에 대피령이 내려질 수 있죠.”
-우리가 아는 김일정이라는 인물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건, 그대도 잘 알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대북방송도 함께 진행하고 있을겁니다.”
-천의 생각은 확고 하군요.
“당연한 요구를 하는 것 뿐입니다.”
-허, 논리로서 반박할 여지가 없군. 우리가 테러리스트들에게 화가 난 것과 같은 상황이니까.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태우던 시가를 스윽 바라보았다. 고작 며칠을 참았을 뿐인데 이렇게 그리울 수 있을까 싶은 맛이었다.
“추후의 상황은 지켜보며 얘기하시죠, 우리가 왈가왈부 한다고해서 한국 정부의 발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북한쪽에서도 분명 움직임이 있지 않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다만, 나는 이번 사건이 정말 음모론자들이 외치는 3차 대전으로 번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을 부술때도, 그리고 이라크를 부수려 하는 지금도. 이것이 3차 대전의 전조가 된다고 떠드는 사람들 아닙니까?”
-푸하하하, 그렇지.
“걱정하지 마시죠, 북한의 그 돼지가 계속해서 정권을 지려고 발악을 할 테니, 전쟁은 없습니다.”
-부디 그러길 바랍니다.
***
대한민국 대통령의 두번째 성명문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던 평양의 주석궁 대 회의실.
쾅, 쾅, 쾅. 콰지직.
김일정이 자신의 앞에 있던 마이크를 바닥에 찍어 부숴버렸다. 덕분에 삐이이익 하는 듣기 싫은 소리에 절로 인상을 찌푸리는 지도부 인사들.
“보위부장!”
현해철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며 각잡힌 모습으로 대답했다.
“예! 최고 사령관 동지!”
“천혁수 그 개 대가리 새끼 모가지는 어찌 되었네?”
“우리 공화국 전사들이, 속속들이 모이고 있습네다.”
“아직도 멀었다는 소리간?”
“최고 사령관 동지의 명령을 듣고, 아직 10시간 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라, 미흡한 점 면목 없습네다.”
“날래, 날래 진행하라.”
“예!”
고개를 휙 하고 돌린 김일정.
“인민무력부장!”
현해철이 스타트를 자리에서 일어나 각 잡힌 모습으로 대답했기에, 인민무력부장 리형구 역시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씀하시라요 최고 사령관 동지!”
“남조선 아새끼들이 말하는 군사시설에 대해서 읊어 보라.”
어물쩍 거리는 인민무력부장.
그 이유는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성명문이었기에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 하고 있네?”
“죄, 죄송합네다 최고 사령관 동지! 날래 준비해 보고 하갔습네다.”
부서져 있던 마이크의 잔해가 인민무력부장의 볼을 스쳐 뒤 쪽에 있던 부관의 머리에 부딪힌다.
“니 뭐이네?”
“며, 면목 없습네다!”
“인민무력부장이라는 놈이, 남조선 대통령도 씨부리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는게 말이 되간?”
입술을 앙 다물고 고개를 푹숙인 리형구에게서 고개를 돌린 김일정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누구 아는 놈 없네?”
아무도 김일정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준비가 덜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개 대가리 새끼들아! 기래서 우리 공화국 지킬 수 있갔네?”
잔쯕 성이난 눈으로 주변을 훑던 김일정. 그의 눈에 이마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손을 들고 있는 인민무력부장의 부관이 보였다.
“너는 알고 있네?”
“예! 최고 사령관 동지!”
김일정이 힐끗 인민무력부장을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말했다.
“기라믄 말해 보라.”
“남조선 대통령이 말한 지역에는 곡사포, 고사총등만 무장되어 있는 가장 기본적인 진지들로 구성된 군사시설들이 있는 곳입네다. 주요 군사시설들이라고는 보기 어렵고, 무기들의 무기 역시 별로 무겁디 않기 때문에, 얼마든 옮기려 한다면 옮길 수 있는 그런 시설들입네다.”
김일정이 흡족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기라니까, 건물들은 어쩔 수 없어도, 무기는 지킬 수 있다.”
“그렇습네다.”
“남조선 아새끼들 말만 번지르하게 하고 실속은 없다 이기구만.”
인민무력부장 리형구가 얼른 김일정의 말을 거들었다.
“놈들도 우리 공화국이 무서워 살살 피하는 것이 아니겠습네까?”
한결 표정이 풀린 김일정이 크게 외쳤다.
“당장 우리도 방송 내보내라. 우리를 직접 타격 한다면, 서울을 불 바다로 만들겠다고 강력하게.”
현해철이 크게 놀랐다.
“최고 사령관 동지!”
“왜 부르네?”
“현 상황에서 그런 방송은, 자칫 커다란 갈등을 야기 할 수 있습네다.”
“헛소리 하디 말라, 그럼 우리 공화국이 맞고만 있어야겠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조금 더 고민하신 뒤에···”
“닥치라! 우리 공화국의 자존심이 있디. 그리고, 원래 우리 공화국이 자주 하던 말이라, 어색함이 없어. 우리가 서울을 불 바다로 만들겠다 방송하면, 여태껏 그랬던 것 처럼 물밑작업이 들어오겠디.”
현해철이 아랫입술을 씹었다.
이번에는 그럴리 없다고 몇번이고 강조하며 말했건만 도무지 김일정은 들어 처먹질 않았다.
“최고 사령관 동지, 이번에는 남조선의 움직임이 다르다···”
“보위부장.”
“예, 최고 사령관 동지.”
“이번에는 다르다는 소리 지겹구만 기래.”
“······”
“천혁수인지 뭔지 하는 그 놈 모가지만 따 오면 될 일 아이네? 보위부장이 담당하고 있는 그 임무 완수해 오라. 그러면 아무런 일이 엄서.”
“··· 알겠심미다.”
***
“후우.”
시가연기를 길게 내 뿜고는 남은 시가를 바라보았다. 아직 최소 30분은 더 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충 전화기가 잠잠하다 생각했을까? 호석이 은근슬쩍 운을 뗐다.
“요즘 노산이 참 위험하다고 합니다.”
“그 뉴스 보셨나요? 내기에서 지고 돈 안줬다고 친구 찔러 죽인거?”
“크음, 세상에는 다른 조건이라는게 있지 않습니까?”
“글쎄요, 그다지 와닿지 않아서.”
“······”
“아오, 시가가 왜케 맛이 좋아?”
“이게 아무래도 제 아이들도 다 커서, 이제와서 다시 동생이 생긴다는게 어색하기도 하고, 그··· 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지 않을까 싶은···”
“이야, 이제 대표님 사모님은 편안하시겠네요, 대표님 따님이 늦둥이 봐 줄거 아닙니까?”
“아니 왜 얘기가 그렇게 흐릅니까?”
“거, 이상한 생각 마시고. 얼른 가족들 마중이나 가세요, 여기로 온다면서요.”
“아직 회장님과 단판을···”
아쉽게도 오늘은 호석의 뜻을 이루지 못할 듯 싶었다. 다시금 빛을 발하며 몸을 떠는 나의 휴대폰.
나는 얄밉게 그 모습을 호석에게 보여주며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는 귓가로 전화기를 가져갔다.
“예, 여보세요.”
-안녕하시오, 천가의 우진.
제법 정중한 중국어.
분명 장저민은 아니었다.
-나는 후진다오라 하오.
예상치 못한 인물의 연락이었다.
< 제 222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