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21화. >
프랑스 보르도의 로스차일드의 포도밭.
약 1년 사이에 급격하게 늙어버린 윌리엄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집사라는 존재가 사라져버려 모든 것을 홀로 해야했다.
“개 같은 놈들···”
요즘 부쩍 욕설을 달고 사는 로스차일드.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미국에서 떵떵 거리며 성공했던 그에게 달라 붙었던 가문의 일원들과 돈을 주고 부리던 사용인들은 그를 매정하게 버렸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지만 그게 본인에게도 통용되는 말인지는 몰랐었다.
달그락, 달그락.
열심히 수저를 놀려 보지만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다. 최고의 요리사들이 정성을 들여 음식을 대접하던 삶과 달리 가스 불 한번 켜 보지 않던 본인이 만든 것이니 오죽할까.
쨍그랑.
테이블 위에 있던 식기들을 팔로 쓸어 바닥에 모조리 내팽게친 윌리엄이 짧은 분노 뒤로 긴 후회의 시간을 맞이 했다.
“제기랄···”
바닥에 깨지고 바스러진 식기들과 여기저기 흩날린 정체불명의 요리들.
모든것을 그가 스스로 치워야 했다.
부자는 망해도 3대가 간다고 하더니, 아쉽게도 윌리엄에게는 해당하는 것이 없었다.
SKY는, 그리고 천우진은 잔인하게도 그의 모든것을 빼앗아 갔다. 단 한 푼의 돈도 용납하지 않았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현재 거주하고 있는 저택과 땅이 전부였다.
“포도를··· 그래, 포도만 제대로 키운다면.”
그래도 와인제조 공장과 포도밭은 그대로였다.
현재 그가 이렇게 어렵게 사는 이유, 그것은 포도밭과 와인제조 공장에 모든것을 갈아 넣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음식을 사먹을 돈이나, 사용인 한 둘을 고용할 돈은 있었을 터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뚜벅뚜벅 거실로 향했다. 능숙하게 노트북을 연결하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고는 SKY SHOP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딸깍, 딸깍.
몇 번의 클릭으로 다양한 즉석식품들을 장바구니에 담은 윌리엄. 아이러니 하게도 현재 그에게 아주아주 유용한 편의를 제공해주는 SKY였다.
운전을 할 줄 모르는 그에게 SKY가 만든 인터넷 쇼핑이란 것은 가히 혁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심지어 이곳 보르도 지방까지도 늦어도 3일 안에는 배달이 오니 금상첨화.
“라면··· 그래 라면이지.”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던 윌리엄이 흠칫 몸을 떨었다. 자신이 도대체 언제부터 이딴 것에 만족하며 살았는지 현타가 왔기 때문이었다.
거의 다 타다 못해 뿌리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몽땅한 시가를 집게로 고정하고는 불을 붙인다.
맨 손으로 잡기에는 너무 뜨겁기 때문이었다.
입술로 잘못 빨아들였다가는 데이기 십상이니 천천히 조심해서 연기를 빨아들인다.
“이런 궁상도 이제 두달이면 끝이야!”
희망찬 음성을 뱉어보지만 저택에서 그에게 대답할 사람은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쉽겠군.”
흠칫 몸을 떠는 윌리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아야 함이 옳지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어둠속에서 검은색 일색의 복장을 한 사내들 여섯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냐!”
처음 말을 뱉었던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복면에 가려 입은 보이지 않으나 미세하게 턱쪽이 움직이는 기괴한 모습.
“안타깝게도 네게 두달이란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 그게무슨!”
“빅 보스께서 네 놈의 목을 원하신다.”
“처, 천우··· 큽!”
윌리엄은 끝까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복면인의 대검이 순식간에 성대를 갈랐기 때문이었다.
“네 놈은 입에 담지 말아야 할 이름이다.”
목을 부여잡고 두눈 가득 억울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윌리엄.
“빅보스께서 전달하라 하셨다. ‘먼저 가 있어 지옥에, 난 좀 늦으니까 너무 기다리지 말고.’라고.”
***
다시 한 번 대한민국 대통령의 성명문이 발표되었다.
[ 우리 대한민국은 10월 26일 오전 10시경에 발생한 연평도 인근의 해상에서 발생한 북한군의 공격에 대하여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경고 차원에서 해주시, 사라원시를 직접 타격할 예정이며 앞으로 48시간 안에 해주시 부근과 사라원시 부근의 민간인과 군인들이 대피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타격위치는 북한의 군사시설로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한··· ]
“오우야···”
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저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봤다. 전 삶에서도 현 삶에서도 말이다.
어쩐지 대통령이 분노를 토해내는 TV속에 나의 할아버지가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고 계신 모습이 비치는 것 같았다.
“백부님 경호 단계를 올리겠습니다.”
호석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고도의 경호가 필요할 법 싶었기 때문이었다.
“예, 그렇게 하시고···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고요?”
“예, 회장님.”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입꼬리가 자꾸만 저절로 위로 길게 찢어진다.
크게 예견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외국에서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당장 현재 대통령의 전화기와 청와대의 전화기는 불이 나고 있을테였다.
각국의 정상들이, 연합체의 수장들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못살게 굴고 있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UN평화유지군에 가입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직접 선제공격을 하는 것 처럼 보이는 상황이니, 북한과 대한민국의 전쟁이 발발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들과 ‘공산국가’와 ‘민주주의’국가의 대립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
그것은 곧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가 되어 그것들이 고스란히 ‘주식’시장에 반영되고 있었다.
역시 주식이란 것은 실제가치 보다는 사람들의 심리적 가치에 더 큰 영향을 받는 모양이다.
“강기태 본부장 연결 하세요.”
“예, 회장님.”
호석이 건네는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와, 회장님 오랜만에 전화를 주셨습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피식 웃음을 흘리게 만들어주는 강기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생각했던 인재답게 요즘 일을 너무 잘해주고 있었다.
“본부장이 일을 워낙 잘해주시니, 따로 전화할게 있어야죠.”
-에이, 투자로 버는 수익이 미적지근해서 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신 것은 아니고요?
“SKY의 시작은 인베스트먼트가 아닙니까? 설마 그럴리가.”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주가가 많이 요동치고 있죠?
-예, 그렇지 않아도 잠시 관망중에 있었습니다.
“우리 자사주를 잔뜩 매입합시다.”
-지분 확보가 목적입니까?
“예, 인수절차에서 어쩔 수 없이 개미들이나 타 기관에 들어가 있던 주식들, 이제 다시 가져올때가 된 것 같군요.”
-북한 덕분에 SKY가 더 튼튼해지겠군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그게 과연 북한 덕분일까요?”
-으음!
강기태가 놀란 탄성을 애써 감춘다.
-혹, 이번일에도 회장님이?
“그나저나 월드컵 4강 진출하고 한국이 4위를 했네요, 분명히 우리 내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씀하신 일들, 확실히 처리해놓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당연한거고, 내기의 보상이 뭐였죠?”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하여간 조만간 한국에 가면 봅시다.”
-살려주십시오.
고개를 돌려 호석을 바라보니 호석 역시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는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그 역시 대한민국 월드컵 4강은 말도 안된다며 술자리 내내 툴툴 거렸던 인물이었다.
오직 나만이 월드컵 본선 진출은 물론 최종 4위는 할 거라며 큰 소리를 냈던 기억이 선명하다.
“여러분들이 이기면 두달 휴가였나요?”
-··· 예, 맞습니다.
“그럼 깔끔하게 두달 야근으로 갑시다.”
-크윽··· 회장님··· 이번에 아들과 딸을 동시에 순산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저도 이제 아이를 가져야 할 나이가 됐습니다···
“에이, 연애도 안 하시면서 무슨.”
-시간을 주셔야 연애를 할 거 아닙니까!
“시간 있어도 주식 차트랑 연애하시는 분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요.”
-살려주십시오!
나는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오케이, 이렇게 합시다.”
-어떻게···
“찰리 박 대표도 그렇고, 강기태 본부장도 그렇고. 연애는 모르고 일만 하는 워커홀릭들이니까, 두달 안에 결혼상대 만들어 오세요.”
-예?
“못 만들어 오면, 1년 야근 하는걸로.”
-······
“참한 여자들로 만들어 오시리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평생 안생기던 여자가 갑자기 생길까요?
“그건 재주껏 하셔야죠.”
-··· 차라리 투자금을 10배의 수익으로 회수해라 같은 것이라면 가능하겠으나···
“하실 수 있습니다.”
-크윽··· 예, 일단 내기는 내기니까.
휙 고개를 돌려 호석을 바라보았다.
멀뚱멀뚱 날 바라보고 있는 호석.
-그런데 정 대표님은 이미 결혼을 하셨잖습니까?
마침 내가 고민하고 있던 것을 강기태가 물어본다.
“그렇죠?”
-그럼 정 대표님은 어떻게 하죠?
나는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셋째 임신으로 갑시다.”
-예에?
호석이 화들짝 놀란 모습으로 날 바라본다.
“회장님! 제 와이프가 올해 마흔 둘입니다!”
“늦둥이 좋잖아요?”
입을 떡 벌린 호석.
“자, 오늘부터 휴가, 30일 뒤에 뵙죠.”
“맙소사···”
나는 웃으며 호석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어차피 당분간 병원 아니면 대비 할아버지 저택에 있을테니까 정 대표님 경호는 필요 없을 것 같네요. 모쪼록 밤마다 파이팅입니다.”
“마, 마누라가 절 죽이려고 들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저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얼른 루시가 잠들어 있는 침대로 몸을 눕혔다.
병실 문 바깥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그림자 하나가 느껴지기에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집어 삼켰다.
어쩐지 그 그림자에서 중년의 고된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것만 같기에.
***
쾅!
테이블을 내려친 장저민.
중국의 모든 고위층이 모여있는 자리. 자연스럽게 그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공안으로 그 미친놈들을 어찌 방어 하겠소? 지금이라도 당장 군대를 출동시켜야 할 거 아니오!”
후진다오를 날카롭게 쏘아보는 장저민.
“그대가 군대를 자꾸 약화시키더니, 결국 나라꼴이 이렇게 된 거 아니겠소!”
“군대보다는 경제에 더 집중해야 굶어 죽는 인민들이 없을게 아닙니까!”
“굶어 죽기도 전에 저 미친 테러집단의 총탄과 폭탄에 죽게 생겼어!”
“공안 병력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막기는 무슨! 사막부터 계속해서 밀리더니 이제는 도시 하나를 통째로 넘겼어! 곧 있으면 내륙으로 내려올 기세라고!”
후진다오가 어금니를 짓 씹었다.
알 카에다 잔존 세력의 반항이 거세다고 하지만 압도적인 숫자를 자랑하는 공안들이 이렇게 쉽게 뚫리는 것 역시 말이 되지 않았다.
장저민을 째려보는 후진다오.
“공안이 의무를 소홀이 한 게 아닙니까?”
돌려서 말했지만, 후진다오의 말은 장저민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내가 제대로 지시 하지 않았다고 하고 싶은건가? 자네들도 보지 않았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지시 했는데? 그때 모두가 동의하지 않았소! 나는 군부를 보내자고 했는데, 그걸 말린건 후진다오 자네라는걸 명심하게.”
“······”
“지금이라도 바로 54사령관!”
“예! 주석각하!”
“준비해.”
“예!”
더 이상 군대의 개입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후진다오.
이를 짓씹던 그가 고개를 돌려 자신과 뜻을 함께하고있는 고위부를 바라본다.
후진다오의 눈빛에 사내는 눈치를 챘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눈으로 답했다.
‘연락 하겠습니다.’
‘그래, 오늘내로 통화 할 수 있게.’
‘예.’
후진다오가 바쁘게 눈으로 대화를 하는 사이, 장저민은 겉으로는 티를 내려 하지 않지만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까지 막을 순 없었다.
이제 당 지도부 내에서 후진다오의 입지는 바닥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늘 회의는 마치지!”
< 제 221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