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19화 >
국가보위부 현해철이 잔뜩 인상을 지푸리고는 중구역 인근 26호 주택을 바라봤다.
"뭣 같이 됐구만 기래."
보고를 안 할수가 없는 내용이었다.
슬쩍 보고서를 들어 올리는데, 그곳에는 대한민국의 대통령 사진과 대통령의 성명문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해상 교전이 별 일 아닌것처럼 생각하는 김일정.
그러나 이번에 대한민국에서는 현해철이 생각 한 것 처럼 반응이 뭣 같았다.
"후우... 지금쯤 애미나이들이랑 몸뚱이를 섞고 있을텐데..."
매우 민감한 사항이지만 점심때쯤 보고를 올릴 때 한 소리 들은 것을 생각하는 현해철.
김일정의 독불장군식 성격상 분명 이번에도 얼굴을 비춘다면 무엇인가가 날아올터였다. 만약 한창 몸을 섞는 도중이었다면 진짜 난리가 날테다.
잔뜩 똥을 씹고는 26호 저택의 입구에 도착한 현해철.
"최고사령관 동지는 뭐하고 계시네?"
"지금 만족조가 들어갔습네다."
"얼마나 되었네?"
손목 시계를 보고는 대답하는 경비.
"이제 막 세 시간이 지나갑네다."
"후우... 안쪽에 다른 동무는 없나?"
"만족조장이 와 있습네다."
"기래? 만족조장 불러오라."
"알갔습네다."
경비병이 빠르게 안으로 들어가고 한참 뒤, 여유 있는 걸음으로 나타나는 여인.
잔뜩 인상을 찌푸린 현해철이 쏘는 목소리로 말했다.
"동무는 시간이 아깝지 않네?"
"어쩐일로 부르셨습네까?"
사과 한 마디 없이 개개는 만족조장의 뺨따구를 올려부치고 싶지만, 지금은 그녀가 필요한 상황이라 마음을 추스린 현해철이 물었다.
"최고사령관 동지, 동침에 들었나?"
"동침은 끝났고, 지금 잠에 빠졌습네다."
"그럼 안내 하라우, 최고사령관 동지 기침시키고."
여인이 잔뜩 인상을 찌푸린다.
"지금 누구 모가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잡습네까?"
"동무가 이 나라의 명줄을 쥐고 있디, 더 큰 난리 나기 싫으면은, 날래 움직이라!"
현해철이 강하게 나오니 인상은 찌푸리지만 무슨일인가 싶어 현해철의 손에 들린 보고서쪽을 힐끗 거리는 그녀.
"호기심을 못 참으면, 눈까리가 빠져나오디."
날선 현해철의 음성에 결국 입술을 한 번 질끈 깨문 만족조장이 뒤 돌며 말했다.
"수령동지께서 한 소리 하시거든, 도와주셔야 됩네다."
"걱뎡하디 말라, 내레 동무는 아무 잘못 없다 설명할테니."
"약속 지키시라요."
"발이나 움딕이라."
바쁘게 발을 옮기는 그녀의 뒷통수에 현해철이 작게 속삭였다.
"이런 시기에 계딥딜이 뭐이가? 계딥딜이... 쯧쯧."
잠시후.
응접실에 앉아 있던 현해철에게 만족조장이 찾아와 말했다.
"날래 오시라요."
"최고사령관 동지께서는 기침 하셨네?"
"별 일 아니면은, 우리 둘 모가지가 날아가게 생겼습네다. 부디 내 모가디는 지켜주시야요."
"걱뎡말래도."
만족조장을 앞질러 걷는 현해철.
그만큼 현재 그의 마음이 급하다는 방증이었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 온 몸 가득, 불쾌함을 표현하고 있는 김일정에게 각 잡힌 경례를 올리는 현해철.
"대충하고 앉으라."
"예!"
빠르게 그의 곁으로간 현해철이 두손으로 보고서를 내밀며 고개를 90도 숙였다. 최대한 김일정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발악이었다.
"동무."
서류는 받지도 않고 현해철을 부르는 김일정.
"말씀하십시오, 최고 사령관 동지."
힐끗 눈치를 살피는 현해철.
"보위부장 자리에 얼마나 있었네?"
"이제 7년차입네다."
"오래 있었구만 기래."
보고서를 들고 있는 현해철의 손이 덜덜 떨렸다.
"최고사령관 동지의 심기가 어지러운 것은 전적으로 이 몸에게 책임이 있습네다. 하디만, 최고 사령관 동지와 우리 인민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 모가지를 걸고 장담하겠습네다."
눈알을 잔뜩 위로 들어올리느라 이마에 주름이 가득 잡힌 현해철의 얼굴을 빤히 보던 김일정이 결국 손을 뻗어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
느릿느릿 보고서를 읽던 김일정의 손이 점점 빨라지며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 이게 참말이네?"
"틀림없는 사실입네다. 남조선 뉴스에서도 제대로 확인했습네다."
"이런 개대가리 같은 놈들이!"
"주석궁에 각 부의 동무들을 모았습네다. 최고 사령관 동지를 기다리고 있습네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얼굴이 된 김일정이 보위부장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날래 움직이자."
"예!"
***
한국과 북한이 한창 바쁜 시각.
중국의 신장위구르 지역에는 마찬가지로 바쁜 인물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름아닌 자칭 신의전사라 일컫는 알카에다 조직원들이었다.
모두가 하나 같이 SKY그룹의 로고가 박혀있는 소총으로 무장하고는 야음에 몸을 숨기고는 작은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멀리서 말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기다렸다는 듯 빈 라덴이 허리를 세우고는 매복지에서 일어났다.
"바로 보고해."
말을 타고 달려온 사내들은 척후병이었고, 도심지에 있는 군 병력의 규모와 방어선을 정찰하고 온 것이었다.
"군인들은 40명이 3교대로 움직이고 있고, 내부에는 얼마나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최소 120명이라는 얘기군."
"맞습니다."
잔뜩 허리를 숙이고 위장막을 덮고 있는 알 카에다 조직원들을 둘러보는 빈 라덴.
알 카에다 조직원들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신장 위구르 지역의 작은 마을들까지 징병을 거듭하며 어느새 400명 이상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척박한 환경에 맞물려 아쉽게도 말은 40마리가 전부.
"기마병은 후방에서 대기하다가, 교전 신호가 울리면 진격한다. 나머지는 도보로 이동하지."
"예, 알겠습니다."
"제일 허술한 부분이 어디야? 교대 시간은 언제고?"
"2시간에 한 번 교대가 이뤄지고,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막 교대가 이뤄졌으니까 대략 1시간 30분 정도 후에 교대시간입니다."
"좋아, 그러면 정확히 1시간 뒤 일시 타격하는 것으로 정하지."
품에서 지도를 꺼낸 사내가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이, 비교적 지대가 낮아 멀리서 도보로 이동하는 우리 전사들을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곳을 일점돌파 하고, 돌파 이후 마을로 산개해 산개 타격을 펼친다."
"예!"
"이후에는 각 지휘관들의 지휘에 맞게 움직이기로 하자고."
"예!"
***
루시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묻는다.
"할아버지 말로는 선전포고 같은 거라는데 별일이 아니라고?"
"어젯밤에 얘기 했잖아 절대 전쟁 날 일 없다고."
"그래도..."
어떻게 설득 시킬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장인어른마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이제 우진도 미국으로 완전히 넘어와도 되지 않나? 부시에게 얘기한다면야 시민권 따위는 다이렉트로 나올 것 같은데."
맞는 말이었다.
부시에게 얘기 할 필요도 없이 투자이민 절차를 밟아도 하루도 안 걸려 시민권이 나올터였다. 내가 이민을 결정한다는 건, SKY그룹 전체가 이민을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
"아뇨, 전 꼭 한국에서 할 일이 있어서요."
장모 록산나 여사가 루시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루시 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 한국은 위험하지 않단다. 오히려 한국은 세계적으로 치안이 잘 되어 있는 국가중 하나야, 오히려 이 미국보다 더."
루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록산나 여사를 바라본다.
"미국보다 더 치안이 좋다고?"
"그래, 심지어 한국은 유치원부터 아이가 혼자 등하교를 하던데?"
"맙소사."
그게 사실이냐는 듯 날 바라보는 루시.
난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정말이야, 나도 초등학생 때 부터 홀로 등하교를 했으니까, 부모들이 직접 학생들을 등하교 시키는 일은 거의 없어."
"와우..."
"12시가 넘은 야심한 밤에 여자들이 홀로 걸어도 문제가 거의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은 치안이 안전해, 물론 어린아이역시 그 시간에 홀로 걷고 있어도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그렇구나..."
안심시키기 위해 약간의 과장은 섞었지만 그래도 못내 불안함을 내비치는 루시.
더 이상 설득할 방법은 마땅치 않으니 역시 '위험'이라 느끼는 그것들을 치우는게 옳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한국의 정세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에서 살고자 하는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루시에게 서운하지는 않았다. 아직 몰라서 그렇기 때문일 터.
앞으로 알아간다면 별 문제 없이 한국을 사랑하리라 믿는다. 내 아이들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 어쨌든 나와 우리 천가의 뿌리는 대한민국이니까.
또, 돈 만 있으면 어디든 살기 좋다고는 하나, 한국만 할까 싶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내 아이들은 한국 위에 세워질 나의 제국에서 자라야 했다. 흙수저로, 천애고아로 평생을 살았던 나와는 다르게 배 부르고 등 따숩게, 그렇게 자라길 바랐다.
"내가 괜한 얘기를 꺼냈군."
대비 할아버지의 자조적인 말로 인해 더 이상 한국의 안전에 대해서 얘기하는 일은 없었다.
애매한 상황에서 식사가 끝나고 나는 호석과 함께 건물내 정원에 도착했다. 곳곳에서 담배나 시가를 입에 물고 있는 사람이 있었지만, 나는 호석이 내미는 막대사탕에 만족했다.
"고민이 많아 보이십니다."
호석의 걱정어린 물음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음..."
"이래서 싫다. 저래서 싫다라고 얘기한다고 해도, 나는 루시를 위해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그게 내 아이의 어머니에게 해줘야 할 의무지 싶네요."
흐뭇한 얼굴의 호석이 말한다.
"좋은 아버지가 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되는데, 호랑이 아빠가 될까 걱정스럽네요."
"하하하, 전혀요 제가 아는 회장님이라면 틀림 없이 좋은 아버지가 되실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다행이고요."
별거 아닌 달달함, 아주 불량스러운 달콤함인데 오랜만에 먹어서 그럴까 묘하게 중독되는 맛의 막대사탕을 빨다 호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흐음... PMC대원들 중에 국내에서 임무 수행중인 대원들 있습니까?"
"여유 인력이라면야, 회장님 명령 한 마디면, 바로 꾸릴 수 있습니다."
어쩐지 비장한 표정의 호석.
"워워, 김일정 모가지 따오라는 오더 내릴 생각 없으니까 쓸데없이 비장해지지 맙시다 우리."
"흐음, 아쉽군요."
"아쉽다뇨, 우리 대원들한테 들어간 돈이 얼만데, 그 돈 뽕 뽑을 때 까지는 한 명의 대원도 잃을 수 없으니까 그렇게 알고 정대표님도 꼭 명심하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왜 PMC대원을 물었냐는 듯 날 바라보는 호석.
"루시 말처럼, 우리 아이들은 항상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더라고요?"
"예,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경호 인원을 늘릴까요?"
"아뇨, 그게 아니라 내가 세상을 착하게 살질 않아서 말이죠."
"아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입꼬리를 들어 올리는 호석.
아마도 그 역시 못내 위험요소 제거를 위해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24명의 대원을 프랑스로 보내겠습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니 설명이 필요 없어 편했다.
"예, 나를 세상에서 제일 원망할 그 놈. 김일정 모가지는 아니라도 로스차일드 모가지 정도는 따 놓는게 맞을 것 같네요, 확실한게 좋으니까."
"바로 지시하겠습니다."
"안테나가 있었나봐요?"
"예, 로스차일드 가문은 워낙 방대해서."
"바로 처리 하시고, 보고는 따로 필요 없습니다."
"예, 회장님."
< 제 219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