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18화 (218/458)

< 제 218화. >

평양시 중구역 인근의 김일정의 26호 저택.

이곳은 김일정이 평시 기거하는 장소로 제법 유명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저택으로 제법 윤택이 흐르는 군용 지프차 한 대가 주차되었다.

"오셨습네까 대장 동지."

"최고사령관 동지께서는 어디계시네?"

"내부에서 약주를 마시고 있습네다."

북한의 국가보위부 부장이자, 대장의 계급을 가지고 있는 현해철은 바쁘게 걸음으 옮겨 김일정이 술을 마시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를 힐끗 발견한 김일정이 턱짓으로 자신의 왼편 의자를 가리키자, 현해철은 발윽 '탁'하고 구르며 절도 있게 경례를 올리고는 그곳에 앉았다.

"내레 오늘은 조용히 있고 싶다고 않캈어?"

"죄송합네다 최고사령관 동지."

"뭐네?"

"남조선에서 오전에 있었던 교전상황 때문에 바쁘게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전보입네다."

"아, 보고는 들었디. 남조선 아 새끼들 많이 상했다면서?"

"그렇습네다. 남조선의 철배 한척이 그대로 수장되었고, 약 서른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습네다."

"우리쪽 피해는 어떻네?"

"인명피해는 없고, 배만 조금 수리하면 끄떡 없습네다."

김일정은 만족스럽다는 듯 히죽 웃으며 술을 들이켜고, 뱀이 들어 있는 술병을 기울여 현해철의 술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남조선 아새기들 대책 회의가 하루 이틀일도 아니고, 굳이 부장씩이나 되는 현해철 동무가 이기까지 올 필요가 있간?"

"고저, 첩보에 의하믄은 이번 회의는 다르다는 부분이 있어서 한달음에 달려왔습네다."

"뭐이가? 다른 거이."

현해철이 조심스러운 얼굴로 김일정의 심기를 살핀뒤 말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경쟁이 시작됐습네다."

"알고 있으니 짧게 말하라우."

"그 대선 후보자 놈들 중에, 천혁수라는 인물이 있습네다."

김일정이 '아아'하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래기래, 그 천우진인가 하는 애송이의 할애비 말이디?"

"맞습네다. 그 치가 유력 대선 후보자고, 그의 입김이 지금 남조선의 정치에도 제법 관여를 하고 있는 모양입네다."

"기래서?"

"그 치가 말하기를 '강경대응', '보복공격', '기선제압'따위의 단어를 입에 담고 있어, 이번 대책회의의 결과는 다를 것이라는 보위부의 판단입네다."

김일정이 푸학 하고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보니까, 우리 현해철 동무가 이 나를 웃겨주고 싶어서 왔구만 기래."

"아닙네다."

한참을 웃던 김일정이 다시 고개를 숙였을때는 그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현해철 동무."

"말씀하시라요, 최고사령관 동지."

"내레 지금 기딴 소리나 듣자고 오늘 쉬고 싶다고 했간?"

"하지만..."

"하지만이고 지랄이고! 듣기 싫다 않간?"

짧게 망설이던 현해철이 고개를 푹 숙이며 '죄스러움'을 표현하며 말했다.

"국가보위부의 부장으로서 반드시 최고사령관 동지에게 보고해야 했습네다."

고개를 숙이자 김일정이 한숨과 함께 한결 너그러워진 얼굴로 말했다.

"현해철 동무 잘 들으라우."

"말씀 받잡겠습네다."

"남조선의 대통령이 개대가리 아이디?"

"최고 사령관 동지에 비할바는 아니디만, 그래도 한 국가의 최고이니까니, 개 대가리는 아일것 같습네다."

"그런데, 그런 놈이 우리한테 쌀을 주고, 옥수수를 주고, 감제를 주디."

"맞습네다."

"그 놈들이 두려워 하는 것은 '전쟁'이야! 그런데 뭐? 보복공격, 강경대응, 기선제압? 그 치들이 '빨갱이'소리를 들으며 욕을 먹어도 그딴 짓은 절대로 못해, 그러니까 걱뎡하지 말라."

"알겠습네다. 다른 변동사항이 있으면......"

더 할 말이 남은 것 같으나 현해철은 김일정이 보내는 뜨거운 눈길에 이내 입을 닫았다.

"닥치고 발이나 닦고 잠이나 자라우."

"... 알겠습네다."

현해철이 자신의 술잔에 따라져 있던 술을 비우고는 각 잡힌 경례를 올리고는 뒤돌아 걸을 때, 김일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족조 두명 올려보내라우, 귀를 씻어야겠어."

이번엔 뭔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현해철은, 뒤에서 기쁨조나 찾고 있는 김일정에게 한 소리 하고 싶으나, 그의 목숨 역시 하나 이기에 차마 입을 열 순 없었다.

***

해군과 육군이 사용하는 대한민국 국방부의 정식 지도. 그곳에 백령도와 연평면을 동그라미 치며 말하는 참모총장.

"이곳, 백령도와 연평면이 북한군을 타격하기 가장 가까운 곳이며, 이 밖에 이곳,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 북부에 걸치는 군사분계선 이남 2km내에 위치한 다양한 GP들에서 북한을 직접 타격 가능한 위치입니다."

천혁수가 불쑥 물었다.

"지금 얘기하는 군사작전 지역들은 사거리 때문에 북한과 근접한 곳들만 선별한 겁니까?"

"그렇습니다."

"사거리가 긴 무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참모총장이 난감하단 표정으로 대통령을 살핀다.

대통령 역시 난감한 표정을 짓고는 천혁수에게 말했다.

"천혁수 후보자, 그렇게 된다면 북한도 같은 사거리를 가진 무기를 사용할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북한은 더 긴 사거리를 가진 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르죠, 그렇게 된다면 우리 서울도 안전한 위치는 아닙니다."

천혁수가 혀를 한 번 차고는 말했다.

"쯧, 그러니까 대통령님과 참모총장의 말은 '전쟁'의 위험에서는 최대한 벗어난 곳을 '경고'차원에서 타격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참모총장과 대통령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완전한 초토화, 가능합니까?"

한숨을 내쉰 참모총장이 설명을 이었다.

"또, 민간인이 살고 있는 곳을 직접 타격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민간인들을 자극하면 김일정은 무슨 명분이든 꺼내 들어야 할 겁니다. 전쟁을 위해서."

"군인들에게만 타격을 해야 한다?"

"예, 그게 현명한 방법으로 생각됩니다. UN이나 미국, 또 다른 국제 문제로 이 사건이 커질 것 역시 감안한 방법입니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작게 끝낼 수 있을까는 고민하고 있었다.

"역시 GP에서 분대화기로 적 GP를 타격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고 차원에서 거리는 약 1km내외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니죠, GP는 군사작전이 불가능한 지역 아닙니까? 공식적으로는 말입니다. 그곳에 우리 군이 무기를 사용해 북한의 땅을 공격한다? UN이 거품을 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GP에서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다는 걸 UN역시 결코 모르지 않습니다만?"

"어디까지나 형식적으로는 '민정경찰'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습니까? 물론 북한 놈들이야 미친놈들 처럼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으니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럼 역시, 백령도나 연평면 주변에서 함대나, 포를 사용해 가까원 사리원시 남부를 타격하는게 옳겠습니다."

"그건 사거리가 너무 길지 않습니까? 최소한 20km내외일텐데, 그 정도 타격이면 북한이 입에 개거품을 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가까운 곳을 타격해야겠지요, 여기 이곳 어떻습니까? 지도상으로는 거리가 12km정도로 나오는데."

"그것도 길지 않을까 싶은데..."

국방부 장관, 대통령, 참모총장, 합참의장이 입을 모아 토론하는 내용을 듣고 있자니 천혁수는 점점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지금 애들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뭐하는 겁니까?"

결국 참다 못해 천혁수가 입을 열었다.

그에게 이목이 쏠리고.

"공격의 뜻을 모릅니까? 보복이라는 뜻을 몰라요? 잴거 다 재고, 뺄거 다 빼면 도대체 무슨 공격을 하겠다는 거며, 무슨 보복을 하겠다는 겁니까? 하늘에 총질이라도 할 생각입니까? 제대로 타격을 줘야 할 것 아닙니까 제대로!"

국방부 장관은 제집 안방마냥 행동하는 천혁수가 못마땅한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그 방법을 위해서 회의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니까, 그 방법이 사거리 2km내이고 민간인은 없는 군사요충지란 말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딴 곳이 있기냐 하냔 말입니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면, 도대체 언제 타격을 하고 언제 공격을 하고 언제 보복을 합니까? 다시는 우리군을 얕잡아 보지 못하게, 다시는 우리 군에게 총질을 못하게 그렇게 만들어야 할 거 아닙니까!"

"진짜 전쟁이라도 불사르겠단 말입니까? 도대체 생각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되려 성을 내는 국방부 장관.

그에게서 고개를 돌린 천혁수가 대통령을 째려보며 힐난했다.

"대통령님, 이런 방식이니 현 여당과 대통령님께서 빨갱이 소리를 듣는 것 아닙니까! 도대체가, 우리가 북한의 아래입니까? 우리가 북한에게 조공이라도 바쳐야 하는 겁니까?"

여당의 대선 후보자가 긴 침묵을 깨고는 말했다.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천혁수 후보자."

"후보자님 생각은 나와 다릅니까? 이래서 봐주고 저래서 봐주고, 국민들 혈세로 쌀 사주고 감자 사주고 옥수수 사줍니다. 그런데 이제는 군인들 피까지 할려줘야 합니까? 헌혈도 아니고 죽을때까지. 이게 말이나 되는 행동입니까?"

대통령이 붉어진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천혁수 후보자께서는 어쩌고 싶단 말입니까?"

"선전포고 합시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터져나온 천혁수의 말에 순간 장내에는 황당함과 놀람,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공존하고 있었다.

***

아침부터 면회를 온 대비 할아버지와 장인, 장모님.

자연스럽게 부스스한 얼굴로 그들을 맞이해야 했다. 몇시인가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30분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면회를 매일 오세요?"

"이제 이틀째야."

어제 출산을 했으니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기세로 볼 때는 나의 2세들이 퇴원하기 전에는 매일같이 얼굴을 비추실 것 같았다.

산모였던 루시의 취향과 '영양'에 맞춘 특식이, 우리의 인워수에 맞게 병실로 도착하고, 모두가 한데 둘러 앉아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그나저나, 수가 참 바쁘겠어. 안됐구만."

무슨 말씀인가 싶어 대비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음? 아아, 우진은 우리가 왔을때 잠에서 깼으니 모를법도 하구나."

"무슨 일 있었어요?"

"어제 북한과 한국의 NLL근처에서 전투가 있었다지?"

"아, 예."

"한국군이 많은 피해를 입었더군, 그래서 이번에는 한국 정부가 북한을 공격할 모양이더라고, 지금 그것 때문에 화이트 하우스도 제법 바쁠걸?"

"어떻게 아셨어요?"

순전히 궁금해 묻는 말이었다.

"음? 어떻게 알고 말고 할 게 있나, 한국의 9시 뉴스에서 대서특필 하던 사건을, 게다가 대통령이 직접 마이크에 대고 얘기했어."

"예?"

"나는 한국 대통령이 '선전포고'라도 하는 줄 알고 심장이 털컥 내려 앉을 뻔 했지, SKY때문에 한국 시장에 투자한 돈이 제법이라 말이야."

나는 고개를 돌려 호석을 찾았다.

내가 일어나면 주려고 했는지 호석의 손에는 '신문'이 들려 있었다. 아마 대비 할아버지와 장인, 장모가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저 신문을 읽고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한국 신문인가요?"

고개를 젓는 호석.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즈입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식사가 한참 진행중인 가족들에게 고개를 숙여 양해를 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시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종의 허락을 해주니 편안하게 침대에 앉아 서둘러 신문을 펼쳤다.

[ 전쟁 비상 대한민국? ]

[ 한국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북한과 충돌!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다음 전쟁은 한국이 될까? ]

자극적인 기사 내용들.

[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북한에게 정식으로 경고장을 날렸다. 내용인 즉슨, 북한의 한 도시를 직접 타격할 것이니 민간인들과 군인들 모두 대피 하라는... ]

"미친."

한국말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호석이 묻는다.

"백부님을 피신 시키는게 옳지 않겠습니까?"

내 욕의 의미를 잘 못 이해한 것 같았다.

나는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뇨, 너무 일 잘하고 계시는데 굳이 그럴필요가."

호석이 화등잔만해진 눈으로 물었다.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에이, 김일정이 대가리에 총 맞아도 전쟁 못해요, 아시면서."

"으음..."

"북한한테 제대로 경고하자는 제 의견을 듬뿍 담아주셨네요 할아버지가. 아, 워싱턴으로 올 수 없는 분노까지 곱빼기로 담으셨나?"

"예?"

"아닙니다. 쉬세요."

나는 다시 웃으며 식탁에 앉았고, 그런 나를 대비 할아버지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심각한 상황이 아니야?"

"예, 걱정하지 마세요."

"흐음, 듣기에 따라서는 분명 선전포고인데... 언어적 이해의 차이인가?"

고개를 갸우뚱 하는 대비 할아버지의 궁금증을 굳이, 풀어줄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분명 보기에 따라 우리나라의 대통령의 '경고'는 선전포고가 맞았으니까.

< 제 218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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