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15화. >
[ 고키부리 전 총리! 일본 총리는 꾸짖고, 천혁수 후보자에게는 고개 숙이다! ]
[ 천혁수, 회담장에서 일본인을 꾸짖다? 월권 행위 아니냐! ]
[ 고키부리 전 총리, 한국의 대통령은 잘 모르겠고, 천혁수 후보자는 잘 알고 있다. 그는 존경 받아 마땅해. ]
자극적인 내용의 정치부 기사에 인터넷 커뮤니티들도 뜨겁게 불타 올랐다.
ㄴ일본 총리 입에 꿀 발랐냐? 땀만 흘리고 말을 안 하네.
ㄴ오우야, 천혁수 할배가 총리 혼내는데 왤케 기분이 좋냐 ㅋㅋㅋ
ㄴ고키부리 전 총리는 어떻고? 나는 저 놈이 저렇게 호감가는 캐릭터인지 이제 알았다. 대놓고 대한민국 빨아주는데 오우얔ㅋㅋㅋ
ㄴ고키부리 인사 할때 봤음? 다른 정치인들한테는 하는둥 마는둥 하다가 천혁수 앞에서는 거의 신이라도 만난 표정으로 인사함 ㅋㅋㅋ 개웃기네, 누가 보면 일왕이라도 알현 한 줄.
ㄴ윗놈 일본 잘 모르네, 일왕 권위가 땅에 떨어진지가 언제인데, 그냥 허수아비임.
ㄴ말이 그렇다는거지.
ㄴ닥치고 기호 7번 천혁수 가즈아!
ㄴ이미 천혁수가 대통령 되는건 기정 사실 아니냐? 우리나라에 일본 총리한테 저렇게 화낼 수 있는 정치인 천혁수 말고 없음.
ㄴ이거 맞음, 대놓고 노발대발 처음봤음 크크큭.
ㄴ천혁수님 복지부장관 하실때 못 봤음? 대통령도 입 닫고 있는데 자기가 나서서 일본 졸라 패던거? 그러다 빡쳤는지 장관 때려치고 일본으로 넘어가서 고키부리 전 총리랑 역사바로알기 재단 운동 제대로 설파하고 돌아댕김, 진짜 대단한 사람임.
ㄴ드디어 우리 나라에도 저런 강한 대통령이 나오는 건가? 선진국 가즈아!
“쯧.”
KS그룹 최태수 회장이 인터넷 기사를 살펴보다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여론이 계속해서 천혁수 쪽으로 움직이고 있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무슨놈에 비리가 그리 많은지 심심하면 비리 기사가 쏟아져 나오니 이놈이나 저놈이나 믿을놈이 없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달력을 바라보는데 어느새 3월 중순이 다가와 있었다.
이제는 진짜 선택을 해야 할 시기가 되었음이다.
“후우···”
한숨을 깊게 내쉬고는 인터폰의 버튼을 누르는 최태수 회장.
“장 실장 들어오라고 해.”
-네, 회장님.
인터폰으로 호출을 하고 몇분 지나지 않아 회장실 내부로 들어온 비서실장.
“전경련 노인네들 모이라고 해.”
“예, 회장님.”
“빠짐없이 모이라고 해, 대현이랑 GL은 굳이 연락할 필요 없고.”
“명 받잡겠습니다.”
***
타클라마칸 사막.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말을 타고 질주하는 이들의 몸뚱이에는 저마다의 무기가 들려 있었다.
“여깁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쓰는 파슈토어로 얘기하는 사내들, 그것만 봐도 그들은 아프간에서 넘어온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기존 아프가니스탄의 집권 세력이던 탈레반들이 일상복 위에 무장을 한 것과는 다르게, 방탄조끼까지 챙겨 입은 그들, 물론 그들을 겉으로 보기에는 방탄조끼가 잘 보이지는 않았다. 사막의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흰색 천으로 온 몸을 휘감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입가 까지 가리고 있는 터번에서 이어진 흰색 천을 내린 인물.
그는 미국이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는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
“여기가 확실해?”
“예!”
그는 품에서 SKY PMC의 대원들이 전해준 좌표와 지도를 꺼내 교차 검증을 하고는 고개를 주억거린다.
“확인해 봐.”
그의 명령에 그와 같은 복장을 한 조직원들이 야삽을 꺼내더니 열심히 모래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척, 척, 퉁.
약 10분여간의 삽질 끝에 뭔가 단단한 것이 삽 끝에 걸리고.
“찾았습니다.”
그들이 모래 밑에서 꺼낸 나무 상자를 열어 젖혔다.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는 무기들.
소총과 탄약, 수류탄 같은 기본무기들이었다.
“분배하고 남는 것은 챙긴다.”
“예!”
바쁘게 움직이며 무기들을 갈무리한 알 카에다.
오사마 빈라덴은 지도 한 곳을 가리키며 자신의 곁에 붙은 보좌관에게 말한다.
“여기, 우리 동포들은 얼마나 살지?”
“대략 300여명의 동포들이 머무는 마을입니다.”
“좋아, 이동해! 그들을 구출하고, 신의 전사들을 더 모집한다!”
“예!”
한참을 달리는데 저 멀리 앞에서 먼저 달리던 척후병이 멈추어 서며 흰색 깃발을 꺼내 흔든다.
흰색 깃발은 앞에 무엇인가 있다는 뜻이었고, 경계를 올리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었다.
“확인해.”
“예!”
오사마 빈 라덴의 명령에 빠르게 척후병과 거리를 좁히는 보좌관, 이내 척후병과 함께 돌아온 그가 보고를 이었다.
“저 앞에,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마을?”
“예.”
오사마 빈 라덴은 우선 직접 확인하겠다는 듯 모래 위를 달려 높다란 둔턱에 도착했다.
확실히 멀리에서 보기에도 마을 비슷한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서둘러 그의 곁으로 다가온 보좌관이 쌍안경을 건냈다.
쌍안경을 받아들고 마을을 살피던 오사마 빈 라덴이 흠칫 놀라더니 손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왜, 왜 그러십니까?”
당황스러운 보좌관의 음성에 빈 라덴이 쌍안경을 내리며 말했다.
“우회해서 지나간다.”
“예?”
원래의 오사마 빈 라덴이라면 절대 그럴리 없었다. 적들의 무장을 파악하고, 그들이 우세하더라도 신의 뜻이라며 돌격 명령을 내렸어야 옳았다.
“저곳은 우회한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오사마 빈 라덴이 팍 인상을 찌푸리며 품에서 글록 권총을 꺼내고는 보좌관을 째려보았다.
“항명인가?”
“아, 아닙니다··· 현재 우리 전사들의 식량 확보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약탈을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여···”
“우회한다.”
“··· 알겠습니다.”
총까지 꺼내들었으니 보좌관은 오사마 빈 라덴이 강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더는 그의 행보에 조언을 건낼 수 없었다.
“왜 여기에···”
보좌관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본대로 복귀하는 사이, 천천히 기수를 돌리는 오사마 빈 라덴이 홀로 읊조렸다.
“왜 이곳에 SKY가···”
쌍안경 가득, 흐드러지게 펄럭이는 SKY로고가 새겨진 깃발이 그의 머릿속에 떠나가지 않았다.
뭐가 되었든, 오사마 빈 라덴은 SKY그룹의 근처에는 얼씬거리고 싶지 않았다.
***
발코니에서 시가를 태우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불쑥 찾아와 테이블 위에 신문을 ‘툭’하니 던지셨다.
“이게 대선 후보자들의 뉴스보다 더 이슈가 될 거란 그 기사더냐?”
힐끗 아래를 내려 신문을 바라보았다.
[ 혁신을 말하는 SKY, 알쏭달쏭한 신제품? ]
헤드라인만 보고도 피식 하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예, 맞습니다.”
“흐음··· 확실히 1면을 차지하는 것을 보니 일견 설득력 있구나.”
“진짜 그렇게 될 걸요?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그건 지나봐야 알고, 오늘이 신제품 발표라고?”
“예.”
잠시 뭔가를 고민하는 듯 하던 할아버지가 테이블 위에 있던 다른 시가를 꺼내 적당하게 손질 하며 말했다.
“그, 흠··· 초대장을 받아야만 발표회장에 참석 할 수 있다지?”
어쩐지 뜸을 들인다 했더니 원하던 것이 있으셨던 모양.
“자리좀 내 드려요?”
“크흠, 손자놈이 신제품 발표한다는데, 할애비가 되어서 참여해야지 않겠더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굳이요?”
“크흠, 됐고 몇시에 하느냐.”
기사를 보셨으면 아실텐데고 굳이 물으신다.
“오전 11시입니다.”
“흠, 오냐 고키부리놈이랑 참석 할테니 그리 알거라.”
어깨를 으쓱이다 말했다.
“참석하시는 건 좋은데 고키부리랑 참석하는 건 생각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래?”
“예, 아무래도 일본인들이랑 가까이 지내는 정치인들은 이미지가 좋지 않거든요.”
“흠, 그것도 그렇구나.”
“아무리 고키부리가 할아버지에게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인다 하더라도, 친밀하게 지내는 것은 좋은 마케팅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 허면 나 홀로 참석하는 것으로 하지.”
“예, 해외 언론에도 얼굴 알리고 좋네요.”
시계를 슬쩍 확인하니 어느새 오전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출근 전 시가 타임의 끝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
“백부님도 계셨습니까.”
어느새 나타난 호석.
“오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구나.”
“하하, 별 일은 아닙니다.”
할아버지 앞에서 굳이 업무 보고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편안하게 말을 잇는 호석.
“회장님, KS그룹 최태수 회장이 전경련을 소집했습니다.”
“그래요?”
슬쩍 할아버지를 보니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시가 연기를 뿜어내신다.
“이제야 움직일 마음이 든 모양이구나.”
확실히 어제 회담에서도 그랬지만 현재의 여론은 할아버지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는 상태였다. 여야 양당이 서로 대선 후보들에게 네거티브한 것만 공격하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여당놈으로 할지, 야당 놈으로 할지 결정할 모양이네요.”
“그렇겠지, 뭐 대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제법 있으니 어디 한 번 지켜보자구나, 놈들이 과연 무엇을 무기로 삼을지, 감히 우리에게 돈 지랄을 하진 않을 것이고.”
“예.”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이따가 회사에서 뵙죠.”
“오냐, 일 보거라.”
***
섬세한 디자인 정리까지 끝난 SKY 전자의 신제품을 만지작 거렸다. 확실히 투박해 보이지만, 현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가히 ‘충격’이라 말해도 모자람이 없을테다.
아마 다른 전자회사들, 혹은 휴대폰 회사들이 터치폰을 상용화 하기까지는 최소한 2년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과거 터치폰이 유행하던 시기는 최소한 2007년은 되었어야 했다.
무려 5년을 앞당긴 혁신이었다. 그야말로 혁신을 외치는 SKY 다운 발표라 할 만했다.
“스마트 시장의 전초지.”
이제, 이 제품을 시작으로 확실히 SKY는 전세계 모바일 시장의 점유율 1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 아직까지는 단일 제품 6천만대 판매가 한계였지만, 아마도 이 터치폰은 1억대 이상을 판매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회장님, 시간 되었습니다.”
나는 거울을 한번 슥 보고는 자신감 있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신들 많이 왔습니다?”
“예, 피골이 상접한 몰골입니다만, 많이들 참석했습니다. 아마 어제 오후에 SKY 전자 홈페이지에서 신제품 이미지를 오픈한게 이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척이나 궁금하겠죠, 과연 어떤 제품일지.”
호석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어서 가서 말씀해주시죠, 우리 SKY의 신제품이 얼마나 대단한지.”
무대를 가리고 있던 천이 양쪽으로 열리자 마자, 번쩍이는 플래시가 나를 반겼다.
어느새 장내는 쥐죽은 듯 조용하게 변하고 셔터가 눌리는 소리만 요란할 뿐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무대 위를 종횡무진 하며 기자들을 쭉 둘러 보았다.
“휴대폰을 쓰는 우리들의 과정은 어떻습니까?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고, 폴더를 열거나 디스플레이를 올리고, 통화 버튼을 누르거나 다이얼 버튼을 누르죠.”
사전에 준비되었던 휴대폰 두 개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SKY의 폴더폰과 슬라이드 폰이었다.
“이제는 귀찮게 폴더를 열거나, 슬라이드를 올려 다이얼을 누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뒷 주머니에서 전원이 켜져 있는 터치폰을 꺼냈다.
손바닥보다는 작은 크기의 터치폰.
기자들이 충분히 셔터를 누를 수 있게 기다려 준뒤, 나는 익숙하게 터치폰을 조작했고, 그 모습은 실시간으로 내 등뒤의 스크린을 통해 송출되었다.
“전화가 오면, 누가 전화했는지 직관적인 디스플레이로 확인하고, 받을지 말지 초록색 버튼과 빨간색 버튼을 터치하고. 문자를 쓰고 싶다면 디스플레이 위에 떠오른 키보드를 두들기고.”
웅성웅성.
“맙소사, 정말 키패드가 없는 휴대폰이라고?”
“벌써 저런 기술이 가능해? 이건 뭐, 입으로만 떠들던 기술들을 구현해내는 군!”
“미친 특종이야 특종! 정말 천우진 회장의 말 처럼 해당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면 미친듯이 팔릴거라고!”
아직 자세한 설명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난리였다. 기자들이 열심히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이미 특종은 확실한 모양이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이 터치폰은 고작 시작이라는 것을.
앞으로는 정말 작은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것을.
< 제 215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