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14화. >
다가오는 월드컵과 함께 한일 양측의 원할한 교류라는 명목하에 이뤄진 정상회담.
취지가 그렇다 보니 양측 회담 착석자들은 모두 제법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었다. 국제 정세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만큼은 주목하는 이상한 회담이었다.
파라락, 파라락.
기자들이 쏟아내는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악수를 하고는 카메라 앞에서 웃는 각국의 정상들.
으레 그렇듯 평화로운 분위기를 보이지만 현 일본의 총리 입장에서 대한민국이 곱게 보일리 없었다. 자민당의 꼭대기에 앉아 있던 고키부리가 당의 이미지는 물론 극우파가 잔뜩 싫어할만한 똥을 푸짐하게 싸 놓고 물러났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하하, 요즘 일본에서 역사바로알기 운동이 대단하다지요?"
먼저 선빵을 날린 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다.
고키부리의 다음을 이어 받은 젊은 총리는 눈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을 욕하지만 겉으로는 인자한 모습으로 말했다.
"역사를 알아야 나라가 바로서지 않겠습니까."
"아직 교과서에 독도 표기가 잘못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현 총리의 눈이 자연스럽게 저 멀리 앉아있는 고키부리에게 향했다.
눈빛이 어찌나 매서운지 당장이라도 찢어죽일 것 같은 눈이었다.
파라락, 파라락.
바쁘게 터져나오는 셔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젊은 총리에게 대통령이 잽에 이은 훅을 날린다.
"독도 문제야 차차 해결해줄것이라 믿고, 오늘 회담의 주요 주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실한 사과 및 적절한 보상에 대한 의논이 어떨까 싶습니다."
눈썹을 꿈틀 거리는 현 총리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하하, 월드컵 동시 개최라는 밝은 주제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조율이 필요할지를 의논하는 것이 세계평화에 이바지 하는 행사에 주요한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피파에서 해줄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회담이 된 마당에 주요한 문제를 털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국측 회담 참석자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총리에게 집중하자, 시작하자마자 구렛나루와 이마에 땀이 맺힌 총리가 힐끗힐끗 일본의 회담 참석자들을 살핀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모두가 총리의 눈을 피해 슬그머니 테이블이나 회담이 마련된 자리의 인테리어를 살피는 등 회피하는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천혁수가 말했다.
"저기 앉아계신 고키부리 전 총리께서 사과는 하셨으나 이렇다 할 보상은 지지부진한 단계에 머물러 있으니, 급한 것은 이쪽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양국이 우호를 다지고 과오를 털어내는 일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월드컵이라는 축제 역시, 우리나라와 일본이 동시 개최를 하는 특별한 때이니 더더욱, 양국간의 지난 앙금은 털어냄이 옳지 않겠습니까?"
천혁수의 제법 긴 말에 한국 정치인들은 물론, 일본의 정치인들까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럼, 그럼'하는 반응을 보이니 현 일본 총리의 구렛나루에서는 땀이 주륵 하고 흘러 내렸다.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으며 눈치를 살피는 총리는 몹시 난감해 보였고, 그 모습은 고스란히 전파를 통해 한국과 일본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 부분은 전 총리께서 이렇다할 해결책 없이 말한 부분이 있어 다소 시간이 필요한 일로 생각합니다."
총리 놈의 변명에 천혁수가 눈썹을 꿈틀 거리며 물었다.
"그 말은, 다시 번복할 의사도 있다 그런 뜻입니까?"
난처한지 총리는 말을 고르느라 입술을 달싹였고, 천혁수가 먼저 말을 이었다.
"총리께서는 전 총리, 그러니까 한 국가의 정상이 헛소리를 뱉어냈다 그렇게 말씀하고 싶은 겁니까? 이거 큰일이군요, 한 국가의 정상이 뱉은 말에 신뢰가 떨어지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국민들이 과연 국가를 신뢰할 수 있는지도 문제가 될 것이고... 허허, 확실히 현재 일본이 바빠 보상문제가 지지부진 했던 것 역시 이해는 되는군요."
돌려까기를 장인 수준에 도달한 언변에 총리놈은 시야가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불쑥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고키부리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총리!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현 국민들 전부가 총리시절 나의 발언에 대하여 공부하고 있고, 이제는 이해하고 있는것을 이제와 번복이라니요?"
한국의 정치인은 물론 일본의 정치인들 마저 총리에게 집중했다. 고키부리는 신났는지 말을 이었다.
"우리 일본은 과오를 인정했고,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을, 진심어린 사과를! 또 자라나는 일본의 희망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칠 것을 약속했고, 이행할 수 있는 참 국가임을 말씀드립니다. 아직 준비중인 상황이라 현 총리께서 마땅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 점은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마치, 제 놈이 총리, 혹은 일본을 대표하기라도 하는 양 하는말이었으나, 당황한 총리 놈은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고, 한국의 정치인들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고키부리는 고개를 숙인 채 비릿하게 입꼬리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이 회담을 보고 있을 일본의 국민들이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머릿속에 각인할 것이라는 생각에, 곧 다시 정계에 나설 수 있을것이란 장밋빛 희망 때문에 말이다.
***
많은 관심사가 한일 회담에 집중되어 있는 때.
SKY 전자의 홈페이지에는 새로운 이미지의 신제품 탭이 생겨났다.
평소에도 높은 트레픽을 자랑하는 SKY 전자의 홈페이지, 물론 SKY SHOP에 비해서는 한참이나 모자란 트레픽 양이지만, 그래도 전 세계적 글로벌 기업답게 방문자가 많은 사이트였다.
그리고 그 방문자들 사이에는 회담 따위는 별로 안중에 없는 사회부, 경제부 기자들역시 얼씬거리고 있었다.
SKY의 신제품 소식은 언제나 핫 했다.
발표를 하고 나면 SKY SHOP의 홈페이지가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상황도 발생 할 만큼 전 세계에 뻗어 있는 SKY전자 제품의 팬들이 구입의사를 밝히기 때문. 작년에 출시되었던 SKY 슬라이드만 해도 전 세계 6천만대가 판매되었고, 지금도 꾸준히 판매되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게 뭐야?"
키패드라고는 전혀 볼수 없는 휴대폰의 이미지가 떡 하니 올라와 있는 신제품 이미지 때문에 경제부 기자 신민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핸드폰이라고?"
"뭐야? 뭔데?"
중얼거리는 소리가 컸을까 주변의 다른 기자들이 신민아에게 관심을 보였다.
"아냐아냐, 잠깐 뭣 좀 보려고."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내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말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킁킁, 특종의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아니라고 새끼야."
"보자, 우리 신기자가 기웃거릴 사이트라면 SKY 전자? SKY LINE? SKY SHOP?"
까득 어금니를 씹은 신민아가 외쳤다.
"내 기사 쎄빌 생각 하지마라, 고자로 만들어 버릴테니까."
"크큭, 거봐 하여간... 오 뭐야? 이게 핸드폰이래?"
이제는 완전히 그 둘의 주변에 기자들이 몰려왔다.
"뭐야? 키패드가 없네, 슬라이드 폰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옆 면에 선같은게 없는데?"
"그러네?"
"디스플레이도 엄청 크네."
"확실히 그렇다."
그들이 한참 신제품 이미지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때, 한 직원이 소리를 질렀다.
"익일 오전 11시! SKY 전자 신제품 발표회 예정되었습니다! 금일 밤 00시, SKY SHOP 홈페이지에서 사전예약 주문 받는답니다!"
빙 둘러 뭉처 있던 기자들이 눈을 반짝였다.
신민아 기자가 벼락처럼 외쳤다.
"내꺼야! 시발 내꺼라고!"
뭉쳐있던 기자들이 빠르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키보드를 두들기거나 전화기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예, 거기 SKY 전자죠?"
"야 창식아, 네 친구가 SKY 전자 다닌다고 하지 않았냐? 다른게 아니라 내가 중요하게 물어볼게..."
"안녕하세요 김박사님, 이번 신제품..."
신민아 기자는 제 입을 찰싹찰싹 때리며 읊조렸다.
"망할 주둥이..."
***
후진다오를 엿 먹였다는 생각에 싱글벙글 기분이 좋아보이는 장저민이 보좌관 왕지언에게 말했다.
"오늘은 날이 좋으니, 그곳으로 가야겠구나."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좋지 않아서.
매일 핑계도 여러가지다 싶은 왕지언.
그러나 그것을 입밖으로 꺼낼 만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인물은 아니었다.
"특별한 아이들로 준비 하겠습니다."
"역시, 내가 사람은 참 잘 뽑았어."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당 지도부들도 좀 초대를 하라고, 분 냄새에 환장하는 놈들 있잖아?"
"예, 각하!"
막 왕지언이 주석실을 벗어나려는 때, 먼저 문이 열리며 그의 부하직원이 빼꼼히 머리를 들이민다.
"뭐야?"
작게 묻는 왕지언의 말에 직원이 뭐라 속삭이자 잔뜩 인상을 찌푸리는 그.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장저민은 잔뜩 올라간 인자한 입꼬리로 물었다.
"하하, 무슨 일인데 또 인상을 찌푸려?"
왕지언이 난감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자 슬금슬금, 장저민의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갔다.
"신장위구르 쪽에서 무장단체가 출현했다는 소식입니다."
"뭐?"
장저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무장단체?"
"복장으로 보건데 무슬림 놈들이 틀림없다는 보고입니다."
소파에 등을 파 묻은 장저민이 슬슬 불이 피어오를 듯한 눈으로 왕지언을 째려본다.
"놈들을 제대로 단속하고 있다 하지 않았던가?"
"국경을 넘어온 것으로 파악된다 합니다."
"국경을 넘어왔다? 어디서?"
"파키스탄이나 아프간쪽으로 보고있습니다. 정보부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나 추측컨데 아프간의 탈레반이거나 알 카에다일 확률이 높다 합니다."
장저민이 작은 한 숨을 내뱉고는 말했다.
"이 미친놈들이... 미국에게 쳐 맞고 우리에게 달려든다?"
"예...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쯧, 골치 아프군, 놈들의 규모는?"
"아직 정확한 파악이 불가하다고 합니다."
쾅!
문 앞에 재떨이가 날아 들었고, 왕지언은 평안한 모습이지만 그의 부하 직원은 잔뜩 긴장해 몸을 떨고 있었다.
"보고를 하기 전에 파악부터 해야 할 것 아냐!"
왕지언이 푹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전투', '전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급히 보고하느라 준비가 미흡한 모양입니다. 바로 지시하겠습니다."
"에잉! 이러니 하루라도 그곳에 안갈 날이 없지."
과연 그것때문일까 싶지만 왕지언은 머리속 잡념을 털어내고는 물었다.
"해당 지역의 탄압받던 무슬립 놈들까지 합세한다면 제법 큰 규모의 무장단체로 번질 우려가 있습니다."
눈썹을 꿈틀거리는 장저민.
"이 개새끼들이 반역을 꿈꾸겠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는게 급 선무라 파악됩니다."
"그래서?"
"마침 당 지도부가 북경에 모인 이때, 빠르게 병력을 파견함이 옳지 않겠습니까?"
고개를 주억거리는 장저민.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야... 좋아, 그곳으로 군부 놈들 다 모이라고 해."
"예!"
"오늘내로 담당자 뽑아 줄테니... 아니지."
빠르게 일을 진행 할 것만 같던 장저민이 입꼬리를 비릿하게 들어올렸다.
"요즘 점점, 군부의 세가 줄었지?"
"그렇습니다만..."
"그건 군부가 점점 필요 없어서가 아닌가?"
"아!"
왕지언이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인다.
장저민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후진다오 놈들에게 붙어먹는 것들 중, 군부가 없군."
"아무래도... 반란의 위험에 따라 군부의 세를 줄이다보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후진다오에게 군부가 넘어가지 않던 이유가 그것이잖은가? 군부를 더 조지려 했으니까."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 군부가 부상한다? 크하하하! 후진다오 이놈 골머리 좀 썩겠군."
왕지언이 조심스럽게 입을 벌렸다.
"하지만 놈들을 소탕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상한 짓거리를 벌인다면... 인민들의 민심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후진다오 역시 그 부분을 파고 들 것입니다."
"그렇겠지, 그러니 그쪽 공안대장에게 방어선만 확실하게 구축해 놓으라고 그래, 그리고 그 쪽의 무슬림들이 합세하는 것 까진 말리지 마. 해봐야 몇 놈이나 된다고."
"으음..."
"인민들에게 선절 할 대로 선전 한 뒤에, 싸그리 밀어버리면 돼, 그럼 우리의 입지가 더 공고하게 다져지겠지."
자만 일 수 있었다.
왕지언은 그 부분이 탐탁치 않았다.
주석의 눈치를 보느라 입에는 담지 못했지만, 미국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탈레반과 알 카에다였다.
그런데 그런 놈들을 가만히 성장하게 놔둔다는 것이 자꾸만 신경쓰였다.
"멍청한 미국놈들은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병신짓거리를 했지만, 우리 중화는 다르지 깡그리 밀어버릴테니 염려하지 마라."
"예, 각하."
"원래대로 그곳에 준비해, 군부 노인네들까지."
"예, 각하."
< 제 21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