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13화. >
번쩍.
혼절 해 있다 눈을 뜬 오사마 빈 라덴.
그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익숙한 복장의 SKY PMC의 대원이었다. 항상 같은 복장 같은 색의 복면을 쓰고 있기에 얼굴을 알지 못하는 대원들, 매번 다른 대원들이 자신의 앞에 서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너의 주적은."
"중국."
입버릇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말.
그들이 하는 질문은 정해져 있었고 대답 역시 정해져 있었다. 신장위구르 지역의 무슬림 동포들을 핍박하는 중국이야 말로 희대의 악적이며 숙적이어야 했다.
대원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빈 라덴에게 손가락으로 따라오라 하고는 나름 '욕실'이라 정해진 곳으로 움직였다.
"쪼그려 뛰기 준비."
매번, 매일 매순간.
욕지거리가 튀어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새로운 고문법들이 등장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서서히 안구에 차오르는 습기를 느꼈다.
"제발... 이제 제발 그만..."
"그런 썩어빠진 정신 머리로 중공군을 상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할 수 있습니다!"
고개를 젓는 PMC 대원.
"뛰어."
우습게도 한 때 무슬림, 그것도 극진수니파라 불리는 자들의 수장 노릇을 하던 오사마 빈 라덴은 명령에 순종하는 사냥개 처럼 열심히 제 자리에서 쪼그려 뛰기를 시작했다.
10분, 20분, 30분.
"헉, 헉, 헉, 헉."
한 눈에 보아도 몹시 숨이 차 보이는 모습이지만 대원의 입에서는 '멈춰!'하는 명령이 나오지 않았다.
이내 풀썩 자리에 쓰러진 오사마 빈 라덴.
퍽, 퍽, 퍽.
여지 없이 그의 몸뚱이 위로 몽둥이가 날아 들었다.
신기하게도 더이상 뛸 힘이 없어 보였던 빈 라덴은 몽둥이 찜질에 못 이겨 다시 쪼그려 뛰기를 시작했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 그리고 몽둥이에 두드려 맞아 흐르는 코피까지.
몸이 흘릴 수 있는 채액의 대다수를 흘리면서도 제자리 뛰기를 멈추지 않는다.
"헉, 헉, 헉, 헉."
"주적은?"
"중국."
"지금부터 호흡은 중국으로 한다."
"중허국, 중흐어 국, 중 후우 국."
***
중국의 총당회의.
당 지도부의 고위층 인사들이 모두 참석한 자리에 장저민은 밝은 얼굴로 좌중을 훑어 보았다.
"자~ 내가 이번에 제법 좋은 성과를 거둔 것 같으니 보고나 같이 들어 봅시다."
그에게 우호적인 지도부 인사들은 긍정적인 표정으로 앞다투어 떠들었다.
"역시 주석께서 선구안이 있으십니다."
"오오, 과연 어떤 성과인지 이 모용모는 궁금할 따름입니다."
이미 장저민은 저물어 가는 해였던 상황, 당연히 그의 다음 대 주석으로 거의 확실시 대던 인물인 후진다오의 편에 선 지도부 인사들은 노골적이지는 않으나 불쾌하다는 듯 빈정거렸다.
"아직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데 선구안이라."
"우선 보고부터 들어보는게 맞지 않겠소?"
지도부 내에서 알력다툼으로 유치한 설전을 벌일 때, 후진다오는 물끄러미 장저민을 바라보았다.
장저민 역시 후진다오의 눈을 피하지 않고 비릿하게 입꼬리를 들어올린 표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마치 '제법 놀랄걸?'하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웅성거리는 장내에 후진다오의 음성이 덮여지자 쥐죽은 듯 조용하게 변했다.
"우선, 보고부터 보겠습니다. 주석."
"그러지."
장저민의 손짓에 지도부 인사들에게 서류가 전달 되고, 커다란 스크린에도 서류와 같은 화면이 떠오른다.
"자랑스러운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주석께서 남조선의 SKY그룹의 공장을 우리 공화국의 땅 위에 설립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 주셨습니다."
눈썹을 꿈틀 거리는 후진다오 쪽 지도부 인사들.
그도 그럴것이 당장 SKY그룹이 창출해낸 경제력이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게 중에서도 SKY그룹의 주축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SKY 전자, SKY LINE, SKY 건설등이 설립 및 운영 될 것이며, SKY전자가 설립될 공화국의 땅은 시안, SKY LINE 설립될 땅은 북경, SKY 건설이 설립될 땅은 상하이로 선정되었습니다."
짝, 짝, 짝.
장저민이 먼저 손뼉을 치며 자화자찬 하자 모든 지도부 인사들이 엉겁결에 박수를 쳤다.
"해서, SKY그룹의 공장들의 설립으로 인한 고용창출, 경제적 효과를 산술적으로..."
계속 보고를 이어가야 하건만, 후진다오가 손을 들어 보고자를 제지하고는 말했다.
"벌써 우리 공화국의 시장을 개방하다니, 너무 빠른 처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장저민은 콧방귀를 뀌듯 말 했다.
"아직도 굶어 죽는 인민들이 도처에 널려 있어, 돈이 있어야 인민들을 배불리 먹일 게 아닌가."
말도 안되는 헛 소리라는 것을 알지만 장저민의 입에서 대의명분 따위를 지껄이고 있으니 기가차는 후진다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급박하게 시장 개방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장저민이 싸늘한 눈초리로 말했다.
"자네가 늘 하던 얘기가 아닌가? 시장 개방, 경제 개혁, 배불리 먹는 인민."
"이런 방식은 결코 아니었습니다만."
"쯧쯧쯧, 우리 공화국이 아무리 문을 걸어잠그고 있다고 하지만, 대국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SKY그룹의 잠재력은 앞으로도 유의미 하지, 그러니 더 성장하기 전에, 다른 곳에서 더 덩치를 키우기전에 우리 대국의 품으로 품는 것이 맞지 않은가?"
장저민은 자신의 말에 동의를 얻고 싶었는지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지', '옳소'를 읊조리는 인물들 모두가 장저민의 사람들이었다. 후진다오의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맞장구 처주지 않는 상황.
당장 이 장면만 보더라도 장저민이 중국 내에서 처해있는 상황이 어떤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였다.
"결국은 우리 시장에서 미제 승냥이 같은 것들이 '이득'을 취해 나갈 것입니다."
"쯧쯧, 그러니 대국적인 관심으로 잘 관리 해야지."
"그 관리라는 것을 듣고 싶습니다만."
장저민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테이블을 탕! 하고 내려치고는 말했다.
"내가 언제부터 네 놈의 허락을 맡아가며 일을 해야 했지?"
"......"
"게다가 이 사안은 우리 공화국의 앞으로 20년을 기대해야 할 사업인 만큼 극 비리에 진행 할테니, 다들 관심은 끄라고, 만약 이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갖거나 궁금해 허튼짓을 벌이는 자는 내가 반드시 우리 인민들의 심판대에 앉혀 주겠어."
서슬퍼런 경고에 후진다오를 밀고 있던 당내 중진들은 황급히 표정 관리를 하며 장저민의 눈을 피한다.
"후진다오!"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질러 후진다오를 부른 장저민, 그는 후진다오의 눈을 똑바로 부라리며 말했다.
"네가 부르짖던 경제를 살렸는데 딴지를 걸어? 진정으로 인민들을 생각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운데, 내 생각이 틀렸나?"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인민'이라는 대의명분을 가져다 붙이는 장저민.
후진다오는 파르르 떨리는 볼을 애써 감추며 고개를 푹 숙였다가 들어올리며 말했다.
"주석께서 이리도 확고 하니 인민들을 위해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진다오의 말이 끝나고 나서야 장내에 제대로 된 박수가 터져나왔다. 장저민 역시 파르르 떨리는 눈썹을 감추지 못했다.
후진다오가 나서자 정리되는 상황이 아니꼬왔기 때문.
"여기까지 하지."
불쾌함을 숨기지 못하고 장저민은 회의실을 벗어났다. 그의 뒷 모습은 안중에도 없는지 후진다오는 주석이 앉아 있다 일어난 상석을 뜨겁게 바라볼 뿐이었다.
***
아무나 출입 할 수 없는 곳.
수원 인근의 SKY전자 연구실이 그랬다. 허가받은 인원이 아니라면 절대 출입을 엄금하는 곳이었다.
물론, 나를 비롯한 나의 수행원은 당연히라고 해도 좋을만큼 프리패스다.
"이겁니까?"
내 질문에 자신있다는 듯 휴대폰을 내미는 연구원.
어디 그가 얼마나 자신있기에 당당히 내미는 것인지 너무나 궁금하기에 서둘러 전원을 켰다.
"작동법을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역시 회장님이십니다."
연구원의 아부는 들리지도 않았다.
투명한 액정 가득 흑백이 아닌 컬러로 된 SKY의 로고가 떠 오르고, 혁신이라는 슬로건이 짧게 스쳐간다. 프레임이 낮을 테니 조금은 아쉬운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 시대에서는 제법 훌륭한 디스플레이다.
톡, 톡톡, 톡톡톡.
손가락이 액정을 누빌때마다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기분 좋은 터치음. 사전에 개통서비스까지 끝냈는지 문자 메시지를 완성해 전송하니 품 속에 있는 내 휴대폰이 몸을 떨었다.
씨익,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터치감이 좋네요."
"예, 회장님이 알려주신 정전식 터치 방식을 적용하고 싶었으나... 기술적인 한계가 있어 아직은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연구원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 밖에 없었다.
확실히 내가 살던 시대의 스마트폰과는 비교 하기도 미안할 품질이었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서는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다른 경쟁 전자 회사들은 이제 막 흑백으로 표시되던 디스플레이를 '컬러'로 표시되게끔 만들어내는 정도의 기술만 보유한 상태였다. 당연히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SKY는 그들보다 한발더 진보된 형태의 기술이었다.
충격식이라는 투박한 터치지만, 어쨌든 휴대폰에 '키패드'가 탑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커다란 메리트가 될 수 있었다.
"좋습니다. 계속 고생해주세요."
"예, 회장님."
뿌듯한 얼굴의 연구원의 어깨를 두들기며 그의 공로를 치하하고는 밝은 얼굴로 연구실을 벗어나 SKY 전자의 대표실로 향했다.
사전에 미리 대표에게 연구실로 따라오지 말라 지시했기에 오매불망 나를 기다리고 있던 전자의 대표는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만족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표님."
"아닙니다. 회장님이 제대로 핸들링 해 주시니 이룰 수 있던 성과가 아니겠습니까?"
"양산은 문제가 없죠?"
"예, 완벽한 성능 테스트를 끝냈습니다. 언제라도 바로 출시 가능한 상태입니다."
"좋습니다. 초도물량 충분히 확보 할 수 있게 생산라인 가동 준비 하시고, 내일부터 바로 예약구매를 진행하겠습니다. SKY SHOP에서."
"예, 회장님."
"아마 본격적인 신제품 발표회가 끝나고 나서겠네요."
아무때나 상관없다는 듯, 맡겨만 달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대표.
"예상 판매 대수는 얼마나 됩니까?"
"약 6천만대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배포가 너무 작았다.
확실히 지금의 휴대폰 시장은 경쟁이 치열하다지만 무려 '최초'라는 타이틀이 걸려있는 휴대폰이었다. 투박하고 아직은 오작동을 일으킬 확률이 높은 터치 방식의 휴대폰이지만, 그래도 최초가 아니던가?
또, SKY가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선도한다고 얘기하는 상황에 6천만대라는 숫자는 '세계시장'이란 단어에 비하면 초라한 느낌이다.
"아마 더 잘 될겁니다. 어쩌면 1억대가 넘을지도 모르겠군요."
"으음... 출고가가 높게 책정된 휴대폰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터치 폰'이라는 혁신을 이뤘다고 하더라도... 확실히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키패드가 더 편리할 것입니다."
일견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뭐, 몇대가 팔리건, 우리 SKY가 세계 기술을 선도한다는 이미지가 중요한겁니다. 이미 충격식 터치 방식의 PDA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대표는 자신있는 얼굴로 말했다.
"그들의 흑백 디스플레이와 우리의 컬러 디스플레이는 차원이 다르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
"좋습니다. 장점을 최대한 부각하는 발표를 하죠."
"예! 회장님."
"SKY SHOP과 연계해서 지금 바로, 준비된 홍보영상 업로드 하세요."
"예! 회장님."
"짧게 플래시 느낌으로 준비 했겠죠?"
"물론입니다. 긴 버전의 동영상 역시 준비해 놓았습니다."
"완벽하네요, 그간 고생했을 전자 임직원들, 올 연말에는 성과금을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하하하, 직원들에게 꼭 전달하겠습니다."
***
다시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아프간의 사막.
오사마 빈 라덴이 잘 훈련된 군인처럼 각을 잡고 차려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주적은?"
"중국입니다!"
양 3개월에 걸친 정신 교육의 종지부를 찍을 날이 되었다 판단한 PMC의 대원들.
"확실한가?"
"그들에게 반드시 신의 철퇴를!"
"너는 누구를 따르지?"
"지하드!"
복면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대원의 눈은 분명 웃고 있었다. 철저하게 교육하되, 그것은 빈 라덴이 믿는 신의 뜻이어야만 했다.
툭.
대원 중 하나가 들고 있던 군장을 빈 라덴의 발치에 던졌다.
"가라, 주적을 처단하고, 신의 뜻을 받들어라."
군장을 들어올리는 빈 라덴의 두 눈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물이 차 오른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 중국을 처단하고 우리의 동지들을 구해내겠습니다!"
어느새 그는 말 잘 듣는 미친개가 되어 있었다.
'중국'이라는 단어에 광기가 번들거리는 그의 눈은 어떤 두려움에도, 어떤 위기 상황속에서도 중국을 물어 뜯고, 할퀴는데 최선을 다할 것만 같았다.
< 제 21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