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09화 (209/458)

< 제 209화. >

말이 며칠을 쉬는 것이었지 사막 한가운데 에어컨도 없는 막사에서 쉬기란 요원 한 일이었다. 대충 한 숨 때리고 에어컨이 필요해 얼른 신장위구르의 최대 도시로 이동했다. 제법 좋은 호텔에서 하루를 푹 쉬니 혈색이 돌아오고 뒤집혔던 속이 다시 제자리를 잡는 것 같았다.

"회장님, 컨디션은 괜찮으십니까?"

호석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속풀이에 좋다는 도라지 차를 음미했다.

"장저민이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래요?"

"예, 이쪽 신장위구르의 공안대장으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비행기라도 준비 했답니까?"

호석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쯧, 가야겠네요."

"예, 이동 준비 하겠습니다."

약 1시간의 준비과정 후, 바깥으로 나가니 후끈한 열기가 불쾌하게 다가왔다.

바깥에는 공안들이 제법 각 잡힌 모습으로 도열해 있었다. 그중 계급장이 가장 높은 인물이 내게 다가와 절도 있는 모습으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공안대장 왕자현입니다."

"음? 비서관 왕지언과 같은 가문사람 입니까?"

내 말에 잠시 눈을 크게 떴던 그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아,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제가 왕지언 비서관의 육촌 동생 됩니다."

"그렇군요."

"사막의 베이스캠프는 만족스럽게 꾸려졌습니까? 아쉽게도 사막 내부에서는 우리 공안의 비호가 어려워 죄송할 따름입니다."

사전에 어떤 언질이 있었는지 매우 친절한 모습이었다. 중국놈들은 높은자리에 오르면 기고만장한 것이 기본 베이스인데, 이 사람은 적어도 내게 윗 사람 대우를 받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누가 윗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고있는 모양.

"직원들이 공안대장의 칭찬이 자자하더군요, 내가 꼭 잊지 않고 주석께 좋은 얘기를 전하겠습니다."

제대로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었는지 헤벌쭉 웃으며 왕자현이 마치 왕이라도 모시듯 양 손으로 제 놈들이 준비한 차량을 가리킨다.

"오르시지요, 공항까지 편안하게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호석이 스윽, 그의 앞을 가로 막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회장님께서는 우리가 직접 준비한 차량만 탑승하십니다. 양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중국인들은 자신의 친절을 무시 받는 걸 죽도록 싫어했다. 이상한 문화인데 자신의 프라이드가 '상한다'여기기 때문이었다.

일순간 불쾌한 표정을 짓던 왕자현.

"문화가 다르니 그럴 수 있지요, 그럼 호위만큼은 우리가 하겠습니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공안대장은 노발대발 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사업'은 꿈도 꾸기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무려 '주석'의 손님인 나를 고작 한 지역의 공안대장이 홀대할 순 없는 일.

"호오, 공안대장께서 이리 타 문화에 대한 식견이 넓으니 신장위구르 지역의 발전이 눈부실 것 같습니다."

또 다시 내 입 밖으로 나온 칭찬에 공안대장의 입이 헤벌쭉 벌어진다.

"크하하, 과찬이십니다."

"아닙니다. 반드시 주석께 공안대장의 넓은 식견을 얘기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SKY그룹도 공안대장의 많은 도움을 받지 않겠습니까?"

"이 왕모가, 반드시 SKY그룹의 발전에 이바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디 무협지에서라도 나올 법한 비장한 다짐에 흡족하게 웃으며 차량에 올랐다.

놈이 하는 꼬라지를 보건데 이 놈이 신장위구르의 공안대장을 맞고 있는 한,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신경은 꺼도 되겠다 싶었다. 구워 삶기 너무 편안한 인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왕형, 같이 타시겠소?"

차량의 문이 닫히기 전에 그에게 물었더니 깜짝 놀란 모습을 보인다.

"왕형이라 하셨소?"

"이리 사내 다우니 왕형이라 부르기 부족함이 없지 않소?"

"크하하하, 좋소. 이 왕모도 함께 가리다."

호석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왕자현이 차량에 탑승하고 나서야 차량의 문을 닫았다.

부드럽게 차량이 움직이고, 차량 내부에 준비된 냉장고에서 고급 위스키를 꺼내 왕자현에게 따라주었다.

"이쪽에서 우리 사업, 나는 왕형만 믿겠소."

"하하하, 비록 나이는 내가 많다 하나, 그래도 커다란 그룹의 수장인 천형에게 '아우'대접을 할 수야 있겠소, 서로 '형'이라 생각하고 '친우'처럼 지냅시다."

나는 웃으며 그와 잔을 부딪혔다.

한 잔 더 하자는 식으로 술병을 들어 올리는 왕자현.

말 없이 그에게 잔을 내밀며 독한 위스키를 온더락 잔 가득 받았다.

"아쉽게도 술은 여기까지만 하겠소 왕형, 장저민 주석이 워낙 주당이라 나도 버틸 제간이 필요하니..."

"크하하, 이해하오 천형,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취하는 것은 이 왕모만 하겠소."

"술은 내가 따라드리리다."

"사내군, 사내야!"

공항으로 움직이는 그 짧은 사이.

신장위구르 일대를 주름잡는 공안대장을 완전히 구워 삶았다. 놈 역시 내게 바라는게 있을테다. 자리의 보전은 물론 중앙정계 혹은 중앙 군부로 자리를 옮기고 싶을 터.

주석의 손님인 나와 친분을 다져 손해볼게 없는 장사일테니, 그로서도 아주 좋은 방향으로 일이 흘러간다 생각할테다.

앞으로 1년 내에 아주 골치아픈 자리가 될 것이라는 건 꿈에도 모른채 말이다.

"아프간에서 넘어오는 길에서 보니, 이쪽 타클라마칸 사막 뿐 아니라 신장위구르 전체에 '무슬림'이 자리잡고 있더이다."

"그렇소, 이 무슬림 놈들은 아무리 씨를 말리려 해도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

"아프간에서 핍박 받는 수니파 놈들이 넘어오기 딱 좋은 구역이 아닌가 싶어 고민이 큽니다."

왕자현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한다.

"천형의 사막내 사업에는 지장이 없도록, 각별히 병력운용에 힘쓸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단언하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왕형도 건강에 유의 하시오, 수니파 놈들 그러니까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 놈들은 더러운 수법을 쓰니까."

"알고 있소, 우리 공안부 역시 무슬림들을 상대하는데 이골이 난 편이오, 대국의 병폐는 내가 반드시 도려내리다. 우리 한 족이 이 땅을 지배하는 한, 절대 그들이 기지개를 켜는 일은 없을테요."

아주 혁명군 납셨다.

이러니 미래의 신장위구르 지역이 '독립'하겠다 난리를 피우는 것이다. 그들의 역사를 짓 밟고, 중화사상을 강요하니 무슬림들 입장에서 오죽하겠는가.

그리고 그 부분이 '알 카에다', 그러니까 오사마 빈라덴의 잔존세력들이 중국으로 넘어오는 명분이 되줄터였다.

대충 '신의 전사들의 해방 운동'쯤이 되시겠다.

그런 것은 꿈에도 모르고 아주 자신만만한 얼굴의 왕자현.

"하하, 앞으로 이쪽으로 움직이는 물류나 인력에 대해서는 내가 따로 왕형에게 연락해도 되겠소?"

"물론이지, 천형의 사람들이라면 언제든 이곳에서는 막힘이 없게 해드리겠소."

"믿겠습니다."

"걱정 붙들어 매도 좋소."

단무지 같은 놈이 출세에 눈이 멀어 덜컥덜컥 주제도 모르고 약속을 남발하고 있었다. 꼭 그만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중국의 정부 인사놈들이 다 그렇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착각들 하며 살고 있으니.

***

새벽부터 일어나 신문을 보고 있는 천혁수에게 백철웅이 조용히 다가섰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르신."

"그래."

평소처럼 무뚝뚝한 대답에 철웅은 개의치 않고, 지난밤에 있던 일을 보고했다.

"전경련의 회동이 있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이구나, 내가 출마를 선언해서."

"예, 밥그릇에 위험을 느낀 모양입니다."

"놈들이 무언가 준비하는 게 있을진데..."

"호석이에게 전달받기로는 회장님께서는 그냥 두어라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천혁수가 피식 웃어버렸다.

"할애비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뜻이겠구나."

철웅이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정확히 놈들이 뭘 하려는지부터 알아야겠구나, 감시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게다."

"예, 어르신."

"놈들이 할법한 짓들이야 한정되어 있겠지, 제법 좋은 대의명분으로 합심하여 달려들테지만, 졋을때 안고 갈 리스크 정도는 먼저 알려주어도 될 테다."

철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굳이 놈들이 완벽하게 합심하게 만들 구실을 던져줄 필요가 있습니까?"

천혁수가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는 말했다.

"글쎄, 과연 그것이 놈들이 합심하게 만드는 구실이 될 수 있을까?"

"음... 어르신은 오히려 우리의 경고가 놈들을 분열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하시는군요."

"경고는 때론, 잊었던 공포를 되새김질 시키는 법이지. 놈들은 잊은 모양이야, 이 천혁수가 누구인지를."

천혁수가 읽고 있던 신문을 가만히 내려 놓고는 말했다.

"재계서열 상위 100위 안에 들어가는 모든 기업들에게 '기부 의사'를 물어 보거라."

히죽 입꼬리를 들어 올린 철웅이 재미있다는 듯 물었다.

"알아서 길 놈들은 기라는 말씀이군요."

"그래, 허면 답이 올게다. 몇 놈이나 공포를 기억하는지."

"예, 어르신."

"그래도 감시의 끈은 놓지 말거라,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하는데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이니."

"명심하겠습니다."

고개를 돌린 천혁수가 시계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슬슬, 시간이 되었구나."

"예, 어르신."

"가자, 이제 또 정치인의 가면을 써야지."

대산의 산군과 같은 표정의 천혁수가 어느새 푸근한 얼굴로 손자 손녀를 기다리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의 얼굴은 마치 모든 국민들을 보듬어 줄 수 있을것만 같았다.

***

몇시간을 날고, 달려 도착한 곳은 북경 근처의 장저민의 '안가'였다.

입구부터 미인들이 도열해 있는 꼬라지를 보자니 심히 거북스러웠다. 독재의 민낯을 고스란히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여인들의 얼굴에 '영혼'이 없는 모습이었다면 오히려 고개를 주억거렸을지 모르겠으나, 그녀들의 얼굴에는 어떻게든 장저민 놈, 혹은 그의 아랫사람들에게 눈에 띄어 '팔자'를 고쳐보고 싶어 하는 '열의'가 느껴지기에 더욱 거북했다.

이런 문화를, 이런 상황을 완전하게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있다는 것이 거북하단 뜻이었다.

비서관 왕지언의 안내를 따라 '접객당'이라 불리는 손님을 맞이 하는 방안으로 들어가니 넓다락 식탁에 갖가지 음식들이 가득하고, 마치 왕처럼 자리에 앉아 여인들의 수발을 받고 있는 장저민이 보였다.

얼마전, 그러니까 장저민을 처음 만났을때의 얼굴과는 다르게 매우 기름진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가 고민하던 것들이 해결되었음을 난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주석."

"하하, 얼굴이 좋아지셨소이다."

"그럴리가요, 아프간에서 개 고생을 했는데."

"푸핫, 얘기는 들었소... 그 거친 사막을 달려왔다지요?"

"예, 덕분에 비포장도로가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껄껄껄."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며 반라의 상태로 내 자리까지 다가와 술을 따라준다.

"어떻게 입구에서부터 마음에 드는 여인은 없으셨소?"

"아, 그래서 분내나는 여인들이 날 맞이한 거였습니까?"

"좋은 술 자리에 여인이 빠져서야 되겠소?"

하여간 있는 놈들, 권력에 찌든 놈들은 어디서나 같은 모양이다.

"아쉽게도 뱃속의 쌍둥이들을 생각해 오늘은 주석과 조용히 담소나 나누고 싶군요."

"흐음..."

아쉽다는 듯, 제 자리에 앉아 있는 여인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비서관에게 고갯짓을 한다.

비서관이 손짓 하자 여인들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로 방을 벗어났다.

장저민이 이유 없이 날 이곳으로 불렀을리 없었다. 또, 그의 방식으로 날 접대하려는 이유는 분명 얻고자 하는 것이 있을 터.

"주석."

그를 부르며 그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피차 어려운 사이가 아니니 말은 편히 하시지요."

바라는게 있으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말이었다. 장저민이 호탕하게 웃으며 술을 목구멍으로 넘기고는 말했다.

"내가 이래서 천가를 좋아하지! 사내답고, 거침이 없거든."

빨리 본론이나 꺼내라는 듯 나는 그저 입꼬리만 들어올렸다.

"이제 슬슬, 우리 중국땅에 그대의 SKY가 자리잡는 것을 공표해도 되지 않나 싶소만."

그러니까 만천하에 제 놈의 위상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싶다는 얘기였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장저민과 후진다오를 저울질 하고 있으니, 아직까지 장저민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건재한지를 과시하겠다는 의도.

"외신에도 풀고 싶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역시 척하면 척이라 일이 편해. 이 대국에 SKY가 진출하는 것 역시, 세계적인 시각으로 SKY그룹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으리라 보고 있소."

바른 말이었다.

분명 파이가 큰 시장중 하나가 중국이었다. 서구의 대기업들도 쉽게 진출하지 못하는 중국시장에 SKY가 들어선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영향이었다.

지금도 각종 기업들은 어떻게든 젖과 꿀이 흐르는 중국땅에 진출하기를 희망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장저민이 하자는대로 조용히 흘러가기만 해서는 안된다. 욕심을 보이고 꿍꿍이를 털어놔야 했다. 그게 놈이 품고있을 의심에서 벗어나는 일이기도 했다.

"어차피 예견된 일이라 조금 일찍 언론에 오픈되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그걸 대신해서 마련된 선물이 뭔지를 일단 보고 싶군요?"

"으음? 크하하, 대 놓고 내놓으라 하니 이거 당황스럽소."

비서관 왕지언의 표정 역시 놀라워하는 듯 보였다.

사전에 준비 한 것이 있는지 장저민이 손짓하자 왕지언이 서류 하나를 내민다.

어지간 하면 번역을 해서 올 법도 하지만 자존심에 뇌를 절여버린 중국놈들이라 통 한문이다.

"고비를 주시겠다?"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였다.

단순히 언론에 먼저 공개하는 것으로 얻어내기에는 제법 덩치가 큰 보너스 말이다.

"맞소, 고비 사막."

과연, 장저민의 꿍꿍이가 무엇일까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언론의 보도 역시 놈이 원했다면 벌써 해도 상관이 없었다. 어째서 SKY를 특별대우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흐음..."

< 제 20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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