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08화. >
입꼬리를 빙그레 올린 호석이 말했다.
"미국의 돈으로 우리는 이득만 취하게 되겠군요."
고개를 주억거렸다.
"거기에 더해 '무기 운반'역시 자유로워 질겁니다. SKY물류가 활발히 움직이기 편안한 이유가 되겠죠."
"확실히 미국의 감시가 소홀해지겠군요."
"북부동맹군의 무기 창고 따위를 '터는'행위도 가능해지겠죠."
호석이 감탄에 마지않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정말 그림을 어디까지 그리시는지, 뭐 하나 허투루 하시는 것이 없군요."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는데, 호석의 리액션이 좋으니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든다.
"겨우 그 정도가 끝인 것 같습니까?"
조금은 우쭐거려도 되지 않나 싶어 꺼낸 말에 대원들까지 흥미를 보이며 나에게 주목했다.
또 어떤 것이 있나 호석은 날 바라본다.
"알 카에다는 이제 중국에서 활동하겠죠?"
"예, 빅보스의 뜻이 그러니까요."
"그럼 그 놈들이 SKY의 무기를 사용하겠죠?"
"아무래도 우리가 지원하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공교롭게 타클라마칸 사막이 주 무대가 되겠죠, 정확히는 신장위구르 지역이."
"아아!"
대원들도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날 바라본다.
"맙소사..."
게 중 한명의 감탄에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젔는다.
"빅보스께서는 거기까지... 정말 치밀하시군요."
호석의 말에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알 카에다 놈들이 배때기에 철갑을 두른 것도 아니고 중공군에 의해서 많이 희생될 겁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무기도 잃겠죠? 그러니까 안정적인 무기 수급원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걸 우리가 직접 보급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놈들이 중국 입장에서 SKY를 의심할 여지를 두어선 안 되겠죠."
"제대로 된 핑계를 만들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정말이지 감탄이 터져나오는 작전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잠시 고민하던 호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달라하신 이유도 연장선에 있습니까?"
"아뇨, 꼭 그런 건 아니고, 이 신장위구르 지역이 중국에게 제법 의미 있는 곳이거든요, 절대로 잃어서는 안 되는."
어째서냐는 듯 날 바라보는 호석.
다른 대원들도 내심 궁금한 눈치였다.
"하나의 중국을 모토로 삼고 외치고 있습니다만 중국이라는 커다란 국가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죠, 애초에 해당 땅에 살았던 인류의 역사가 하나가 아니듯 말이죠."
"흐음."
아직까지는 와닿지 않는 모양이다.
"앞으로 중국은 여기 저기에서, 러시아 처럼 '독립'을 부르짖는 경우가 흔해질겁니다. 세계가 지금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정보화 시대'가 된 것도 영향이 있겠죠."
"무지하던 자들이 지식을 갖는 것이 시작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볼 수 있죠, 세상과 차단되어 있던 삶이 빠르게 '디지털'로 인해 공유되기 시작할테니까요, 특히나 수도와 대도시와 동떨어진 곳에서는 감시의 눈을 피하기 쉬운 법일테니까요."
"그러면서 '중국'이라는 지금의 한족들이 지배하는 국가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생긴다?"
"그겁니다. 중국은 '한족'이라는 민족이 지배하는 체재죠, 결국 상대적으로 핍박받는 민족들이 생길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신장 위구르 쪽에는 '무슬림'들이 많이 살고 있으니까요."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호석.
"그러니까, 알 카에다가 넘어가서 '무슬림'들을 '수니파'로 만드는것도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중국이 골치를 썩겠군요."
"장저민은 전형적인 군부라고 보면 됩니다."
"예, 그렇죠."
"이게 테러나 소규모 전투라는게 한방울 두방울 알게 모르게 돈이 많이 든단 말이죠, 한마디로 '국방비'라는 건 보이지 않지만 밑빠진 독에 물을 붙는 것 처럼 느껴진단 말입니다. 대한민국이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국방'을 위해 돈을 쓰고 있는 것 처럼요."
"으음... 부대에 있을때 투자된 국방비에 비해 장비들이 허접했던 이유가 있군요."
어깨를 으쓱였다. 어떻게 꼭 그 이유만 있다고 말 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의 국방 비리야 역사가 장황한 것을.
그러나, 타국의 국방 비리도 비일비재한 것과 비교하자면야, 꼭 그것만이 보급이 형편 없는 것의 이유가 될 순 없었다. 기타 여러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일 것이고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인접한 '적국'의 존재일것이다. 알게 모르게 소규모 전투도 많고 말이다.
'훈련'조차 돈 지랄이니까 말 다 했다.
"정보부가 움직이는 하나하나도 다 돈이니까요."
"예, 그렇죠... 이해했습니다."
"실제로 우리 SKY도 정보부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잖습니까? SKY 보안과 시큐리티 PMC도 마찬가지고요."
조금은 뻘쭘했을까? 대원 하나가 머쓱하게 대답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빅보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대원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10조도 아깝지 않으니 신경쓰지 마세요."
대원들의 얼굴에 뿌듯함이 내비친다.
그렇게 훈훈해진 지프는, 내부의 훈훈함과 달리 거친 비포장 길을 내달렸고, 덕분에 난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선 도로라도 깔고 싶을 정도로.
***
호랑이가 없는 산 중에, 여우가 호랑이 노릇을 한다고 하던가.
현 대한민국이 그랬다. SKY그룹의 수장 천우진은 하루가 멀다하고 대한민국 보다 외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전경련의 사람들은 그가 없는 자리에 익숙해졌다.
그가 없는 시간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망각의 동물인 인간답게 공포를 잊어간 것인지 그들은 2002년 새해부터 쭉, 천우진이 없는 앞으로를 얘기하고 있었다.
"이번 대선에서 천혁수가 당선된다면 우리는 정말 끝장이 아니겠습니까?"
재계 서열 30위쯤에 머물고 있는 조양그룹의 조양호의 말에 다들 말은 뱉지 않지만 고개를 슬쩍 주억거리며 동의를 표하고 있었다.
"항공 사업때문에 조 회장께서 뿔이 나신 모양입니다."
GL그룹 구회장의 말에 조양호가 팍 인상을 찌푸린다.
"꼭 그것 때문이겠습니까? 막 말로, SKY의 그 어린놈의 할애비가 대통령이 되면, 이 나라 꼴이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어지간한 국책사업은 죄다 SKY가 할게 아니오?"
딱히 틀렸다고 보기 어려운 논리에 모두가 반대 의견을 내진 못했다.
"그리고, SKY가 가지고 있는 사업중에 여기 계신 회장님들과 연관되지 않은 사업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이건 뭐, 나라를 통으로 SKY 그룹의 아가리에 집어 넣겠다는 것도 아니고 에잉!"
실로 그랬다.
SKY의 사업 영역이 너무나도 방대하기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IMF여파로 어려워진 기업들을 싸그리 긁어 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장 규모가 큰 사업체부터 규모가 작은 사업체까지, 그 전에 대한민국의 재벌가에 뿌리 내려 있던 '문어발 식 확장'이라는 놈이 SKY를 지금의 덩치로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삼현을 먹고, 타타다우를 먹은 SKY.
재계 서열 3위 정도를 달리던 두 개를 먹고 지금은 항공과 물류, 유통까지 운영하고 있으니 가히 간섭하고 있지 않은 사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오?"
대현의 정상영이 불쑥 물었다.
가장 덩치가 크다고 볼 수 있는 대현과 GL은 비교적 SKY와 우호적인 관계로 알고 있었던 다른 기업의 회장들이 의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정상영이 말을 이었다.
"어쨌든 공공의 적이라면 공공의 적이 아니오? 나도 천혁수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떻게 변할지는 잘 알고 있소... 우리는 말라 죽겠지."
조양호가 자조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여객 사업은 우리가 점유율 1등이지만 그것도 언제 고꾸라질지 모르겠지요... KS의 통신이 그랬고, 대현의 자동차가 그랬던 것 처럼 말입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재계 서열 50위권 내의 모두의 표정이 불편하게 변했다. 모두가 SKY때문에 점유율 순위에서 한단계씩 아래로 떨어졌음을 부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견제는 필요한 일 아니겠습니까?"
조양호의 말이 답답했는지 KS그룹의 최태수 회장이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도대체 어떻게 견제를 하겠다는 얘기냐 이 말 아닙니까? 왜 자꾸 말을 돌리십니까?"
조양호가 진정하라는 듯 양손을 슬쩍 들어 올리고는 말했다.
"이제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천혁수가 대통령 자리에 앉지 못하게, 적어도 친 SKY적인 정권이 들어서는 것 만큼은 방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태수는 여전히 찌푸린 인상을 펴지 않았다.
"그걸 몰라서 물었겠습니까?"
"그러니 대항마를 만들자 이 말입니다."
조양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지금 선거 양상을 보면, 천혁수, 진보, 보수. 이렇게 세 갈래로 갈릴 것 아닙니까?"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진보와 보수를 통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거 말 같지도 않는 헛소리를 진중하게 들었구만."
GL그룹의 구 회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젔는다.
많은 회장들이 구 회장의 의견에 동조하며 고개를 저었다. 대한민국에서 진보와 보수가 합쳐진다니 어불성설 개소리였다.
"어허, 왜 안됩니까?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여차하면 심장에도 기웃거리는 게 정치인들의 속성 아닙니까?"
조양호 회장이 계속해서 헛소리를 한다 생각했던 구 회장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여태까지 진보 혹은 보수 정당을 믿고 있던 대중들이 오히려 배신감에 천혁수 쪽으로 달라 붙은 가능성이 크단 얘기요, 저렇게 정치 보는 눈이 없어서야... 쯧쯧."
조양호도 불쾌했는지 눈썹을 꿈틀 거리며 말했다.
"두 정당이 추구하는 건 결국 좋은 대한민국 만들자 이거 아닙니까? 어차피 정치인 놈들이야 '돈'에 붙지 이념에 붙습니까?"
어느새 전경련 내부는 조양호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구 회장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로 양분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틈을 정확하게 파고드는 조양호.
"지금도 보십시오, 둘로 나눠져 있잖습니까? 우리 전경련이, 구 회장님 의견에 동조하시는 분들과 내 의견에 동조하시는 분들로."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우리의 큰 목표가 뭡니까? SKY그룹의 견제 및, 우리가 살아남기 위함 아닙니까?"
다시 한 번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렇게 갈래가 달라도 '대목적'을 위해서는 하나로 합칠 수 있는 것처럼, 진보, 보수도 하나로 합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당장 현 대통령 역시 그런식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르지 않았냐 이 말입니다."
기름이라도 바른듯 매끈하게 흐르는 조양호 회장의 혓바닥에 이제 모든 전경련 인물들이 집중하고 있었다.
"현 보수의 후보든, 진보의 후보든, 정치인들에게 택1 하게 만들고, 그 후보를 우리가 전적으로 밀어주자 이 말입니다. 선거고 지랄이고 결국 돈 지랄아닙니까? 전경련 전체가 한 명의 후보만 죽어라 밀면 뭐라도 되지 않겠습니까?"
일견, 설득력 있는 말에 장내에 침묵이 내려 앉았다. GL그룹 구 회장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머릿속을 정리하기에 바빴다.
"어차피 천혁수 그 노인네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는 말라죽습니다. 그건 기정 사실 같은 것 아닙니까? 개겨보다 뒤지나, 그냥 뒤지나 똑같다는 소립니다."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거친 언사였지만, 그 만큼 적절한 표현은 없었다. 전경련 모두가 조양호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으니까.
***
아프간에서 육로로, 중국으로 향했다.
다시는 같은 일정을 소화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일정이었다. 아프간 내부에서 항공기 이동이 자유롭지 않으니 선택한 결정이지만 평생 구경할 위액을 이번에 다 구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타클라마칸 사막 한 가운데 있는 SKY그룹의 베이스 캠프.
이제 막 공사를 시작했기에 이렇다 할 무엇인가는 없었지만, 벌써부터 조금씩 '터'를 잡고 있다는 느낌 만큼은 확실했다.
아프간에 있던 미군 주둔지와 비슷한 느낌의 천막 안으로 들어가니, 따가운 햇살 만큼은 확실하게 피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한결 서늘해진 느낌.
"어우야, 죽겠네."
천막 안 간이 침대에 몸을 눕혔다. 이미 내가 아프간과 중국간 국경을 넘었다는 소식은 장저민의 귀에 들어갔을 터.
그러거나 말거나 움직일 힘은 없었다.
장저민은 커녕 장저민의 할애비가 바로 와달라고 통 사정을 해도 도저히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짜증스러운 컨디션이었다.
호석이 슬쩍 천막의 입구에서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을 느꼈다.
"왜요? 정 대표."
"아, 아닙니다 회장님."
"아뇨, 보고하세요."
"큰일은 아니라 나중이어도 됩니다."
"그냥 들어볼게요."
별 수 없다는 듯 내부로 들어온 호석이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요즘 부쩍 전경련의 회동이 잦습니다."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확실히 큰 일은 아니군요."
"예, 회장님."
아프간을 벗어나자 마자 '빅보스'에서 다시 '회장'이 되었다.
"박쥐 같은 놈들이 제 놈들 살 길이 어디 있나 쥐구멍이라도 찾는 모양이군요."
"아마도 그럴 것으로 예상됩니다."
잠시 짧게나마 고민이 되었으나 나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우선 두세요."
"예, 회장님."
"제대로 몰아서 한 번에."
"예?"
"아뇨, 쉬겠습니다."
"예... 편히 쉬십시오 회장님."
막 천막을 벗어나려는 호석에게 말했다.
"장저민에게 연락오면 뒤졌다고 하세요, 진짜 며칠은 푹 쉬고 싶으니까."
"파핫,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 제 20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