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07화. >
눈치를 살살 살피며 말하는 하미드 카르자이.
"확실히 탈레반 잔존세력들의 잦은 테러로 무기 보급량을 늘려야지 싶긴 했습니다만... 미국에서 별다른 지원이 없어 애를 먹는 중이었습니다."
왜 미국이 이 자를 아프간의 머리로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눈치도 빠르고 처세도 제법이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인물. 아마 미국인들에게 넙죽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해!'하고 지시하면 '예히~'하면서 움직일 사람이었다.
"말이 잘 통해서 다행이네요. 우리 무기를 미국이 구입해서 북무동맹군에게 지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일테니까 눈치껏 부탁드립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SKY 항공 우주기술의 무기야 품질이 우수하지 않습니까?"
"그래요?"
"그럼요, 현재도 SKY의 무기가 북부동맹군의 주 무기가 되어 있습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하미드 카르자이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그런데 미군이 굳이 SKY의 무기를 구입하겠습니까?"
나는 딱 잘라 말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합니다."
"아, 예... 그러시군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저 우리 무기가 좋더라 정도의 평가만 해주셔도 충분합니다."
"예,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SKY 항공우주기술 무기 사업부에서는 아직까지 자체제작 총기나 탄약보다는 미국 군수업체들과의 OEM을 체결해 생산중에 있기 때문이다. 생산자 이름에는 SKY항공우주기술이 적혀 있지만 기술 원천은 아직 미국 군수업체가 가지고 있단 뜻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흡수하고 있고, 한국에서 사용하는 K-1, K-2, K-3와 같은 총기류 역시 생산중에 있지만 아직까지는 자체생산 총기류가 없었다.
탄약 역시, 기술 그대로를 받아와 생산하는 것이지 자체개발된 특수탄 역시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준비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 무기의 품질은 뛰어납니까?"
"예, 같은 종류여도 SKY가 생산한 무기는 총기고장이 없는 편입니다."
칭찬인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니 그런줄 알 뿐이었다.
"다행이네요, 얘기가 쉽게 끝났으니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커피가 식기도 전에 승낙을 받아 냈다.
내가 이곳에 얼굴을 들이미는 순간 '승낙'은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그래도 쉽긴 쉬웠다.
"아, 바로 가십니까?"
아쉬워 보이는 얼굴.
뭔가를 기대했었나 보다.
"예, 아프간 주둔지의 사령관을 만나야 해서요."
"아, 그렇다면 바로 가셔야죠."
미국을 들먹이니 가는길에 레드카펫이라도 깔아줄 기세였다. 어째서 이 자가 오랫동안 저 자리에 앉아 있지 못했는지를 알 것도 같았다.
꼭 저 자의 능력이 아니더라도, 아프간은 오랜 침략의 역사로 '외세'자체를 싫어했다.
미국과 붙어먹은 하미드 카르자이가 오랜시간 정권을 쥐락펴락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뜻.
그러니 이 자와 굳이 '친분'을 만들 필요도 없다는 얘기다.
"그럼 또 좋은날 뵙죠."
"예, 조심히 가십시오."
***
역사바로알기재단의 일본지부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고키부리는 아침부터 썩 기분좋지 않은 신문기사를 펼쳐들었다.
"제기랄..."
신문의 내용인 즉슨, 대한민국의 16대 대선 후보자들에 관련된 극우 신문인 아사히 신문의 기사 내용이었다.
[대한민국 전 복지부장관이자 16대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후보자 천혁수, 그는 전 고키부리 총리와의......]
이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런 꼬리표가 되어버린 천혁수라는 인물.
그가 사라지고 그나마 편할 줄 알았건만, 지지부진 느리다는 이유로 그가 먼저 말했던 '금'역시도 조금씩 회수해가고 있었다.
얼마전 소더비 경매에 천혁수와 천우진이 자신에게 세탁을 맡겼던 것과 같은 '금화'가 예쁘게 디스플레이 되어 팔려나가는 것을 목격한 찰나였다.
힐끗 고개를 돌리니 식탁의 맞은편에는 천혁수가 남기고 간 김장원이라는 인물이 고등어를 맛나게도 처먹고 있었다.
별거 아니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는 일본의 내로라 하는 야쿠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여전히 감시가 붙어 있고, 고키부리는 자신이 천혁수의 감시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후우... 첩첩산중이군."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쩝쩝'거리며 고등어를 씹고 있던 김장원이 피식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거 아침 밥상부터 대가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립니다?"
"크음, 오해요 김상."
"할 일만 합시다 할 일만, 우리 어르신이 이번에 대통령 될거라는 건 알고 있죠?"
"크음, 확실히 우익 언론도 '유력한 후보'로 꼽고 있으니 그렇겠지요."
"그러니까, 콩고물이라도 제대로 받아먹고 싶으면 전 총리께서 열심히 움직여야지 않겠습니까?"
"크흠..."
'알겠다'라는 대답이 튀어나오지 않자 김장원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내가 말이야 전 총리님?"
"듣고 있소."
"이 '일식'도 질리고 있거든? 가능하다면 나도 '한식'을 먹으면서 살고 싶어,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거든."
"......"
"그러니까 내 말은, 여차하면..."
김장원이 손으로 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말을 잇는다.
"그쪽을 이렇게 하고 한국으로 가고 싶단 말이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무서운 말을 서슴치 않고 내뱉는 김장원, 고키부리는 짐짓 불편한 표정을 하고는 신경질적으로 신문을 내려 놓았다.
"어차피 그쪽도 어르신 아니면 뎅강 하고 모가지가 날라갈 처지잖아? 할복인지 지랄인지 이번에는 무조건 시킬 것 같은데?"
이어진 김장원의 말을 그는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원래도 예정된 할복이었다. '어르신'이라 불린 천혁수의 비호가 없다면 그는 당장에라도 극우파 혹은 자민당 세력들에게 끌려가 강제 '할복'을 당할 터였다. 대일본제국의 명예에 누를 끼쳤다는 핑계로 말이다.
"내년에 당신도 한 자리 해 먹을려면 줄을 잘 서자, 그런 말이라고."
"크음... 알고 있소, 마침 어떻게 하면 역사바로알기 재단을 일본에 획기적으로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참이요."
피식 코웃음을 친 김장원이 다시 미소국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 알량한 머리통 좋은데 쓰자고, 헛짓거리 하지 말고."
"명심하리다."
"조만간 날 잡아서 한국에나 한번 다녀오자고 같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고키부리.
"역시 한국인들인 일본인들이 고개숙이는 거에 환장하는 법이거든 정서상 말이야."
"크흠..."
"게다가 그게 전 총리라니, 얼마나 정치적으로 입김을 크게 내뱉을 수 있겠어? 안 그래?"
"어르신을 뵙자는 말씀이오?"
"그래, 역사바로알기재단의 일본지부장이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어르신의 뜻이오?"
"아랫 사람은 알아서 아랫사람답게 행동해야지 안 그래?"
"후우..."
이제는 완전한 아랫사람이 되어버린 고키부리.
"알겠소."
"겸사겸사 한식도 좀 진득하니 먹고 오자고, 염병할 일식은 너무 달고 짜."
"맛만 좋구만..."
"뭐라고?"
"아니오, 드시오."
***
아프가니스탄 미군 주둔지.
그들에게는 지프차와 험머따위는 익숙한지 별다른 특별한 모습 없이 우리를 맞이했다. 저들의 입장에서 우리가 그렇게 특별한 일 없는 존재니 어쩌면 당연한 일.
파월 사령관은 여타 군인들과는 생각이 달랐는지 아주 밝은 얼굴로 날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천."
"예, 사령관. 나도 반갑습니다."
"하하, 안으로 들어가시죠."
북부동맹군의 수장 하미드 카르자이와 마찬가지로 뜨거운 커피와 가벼운 다과상을 내온 그.
다른 점이 있다면 제법 향 좋은 시가도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를 아는 자인 것 같았다.
하긴, 미국이라는 넓은 땅과 많은 인재가 숨쉬는 곳에서 제법 높은 자리에 올라갈 정도의 인물이라면 이정도 기본 비즈니스는 탑재를 해야 할 테다.
친절하게 성냥에 불을 붙이며 시가를 권한다. 자연스레 시가를 받아 입에 물고는 연기를 후우 뱉어내고는 말했다.
"대통령께 얘기는 들었습니까?"
"예, 훈련소를 만드신다고요? 하늘부대의."
"그렇습니다."
"수니파 놈들을 때려 잡는데 하늘부대의 활약이 대단했죠, 그것도 그렇고 한국의 특성상 용병들이 훈련한다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우방의 훈련소를 거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승낙한다는 말을 길게도 한다 싶었다.
미국 상류층 놈들의 특유의 화법이기도 하니 어색할 것은 아니었다. 가끔 부쉬도 쉽고 직설적인 표현을 애둘러 표현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물론, 대비 할아버지도 마찬가지고.
나는 사전에 준비 해온 좌표를 넘겼다.
"음, 북부에 있는 곳이군요."
"정확히는 동북이겠죠."
"맞습니다. 이 곳에서의 군사작전은 우리 사령부가 왈가왈부 하지 않겠습니다."
내 목적은 고작 이정도가 전부일리 없었다.
사전에 준비해온 서류도 스윽 건넸다.
"음?"
"우리 훈련소 역시 '보안'을 생명으로 하고 있습니다. 위성추적 역시 거부하고 싶군요."
파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런 내용은 전달받은 것이 없습니다만."
"지금 사령관의 말씀은 우리를 '의심'한다라고 이해해도 좋습니까?"
"억측입니다."
"허면, 우리를 감시하지 말아달란 얘기에 거부감을 표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곳 아프가니스탄은 아직 탈레반과 알 카에다가 숨쉬고 있습니다. '수니파'역시 존재하죠, 언제든 탈레반 잔존 세력과 알 카에다 잔존세력이 그들을 흡수해 덩치를 키울 수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정확한 정세를 꿰뚫는 말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 저 말은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장황한 핑계군요."
"크음, 그 만큼 하늘부대의 주둔지 역시, 알 카에다와 탈레반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원이 필요하면 우리가 먼저 도움을 요청하겠죠, 그 부분은 전혀 우려할 부분이 아닙니다만?"
"한순간 제압 당할 상황도 가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파월의 정면이 아닌 위쪽에 연기를 내뿜고는 말했다.
"진심입니까?"
그와 정면으로 눈빛을 부딪혔다.
잠시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전쟁에서 보여줬던 하늘부대의 저력이라면... 탈레반과 알 카에다 무리에게 흔들리지는 않겠죠."
"내가 우리 PMC대원들을 아프간에 파견하면서 그들에게 지시했던 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모릅니다."
"공포. 적에게 자비가 없는 모습으로 뼈에 사무치는 공포를 심어주라는 지시를 했습니다."
놀랐는지 말을 잇지 못하는 파월.
"그리고 우리 대원들은 그 지시를 충실하고 성실하게 이행했다고 들었습니다. 작전에 투입된 미군의 특전부대들 역시 감히 우리 대원들에게 '시비'를 걸지 않는다지요. 또, 뒤를 믿고 맡길 수 있다며 '신뢰'한다 들었습니다."
"크음."
"부정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내가 받은 보고가 사실인 것 같은데, 감히. 허접한 무장단체의 공격에서 우리를 돕기 위해 '감시'를 하겠다 말씀 하십니까?"
잠시 짧은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민망한 얼굴을 한 파월이 말했다.
"쯧, 실수를 인정하겠습니다. 아프간 전역을 활발히 감시해 오사마 빈 라덴을 잡아야 할 이유가 내게는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 PMC가 주둔하는 곳에 그 놈은 없을 것 같은데요."
"후우... 인정합니다. 전체 사진에서 배제한다 약속할 수 없지만, '감시'는 없으리라 약속드리죠."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프간 전역에 걸쳐 특별한 '무기'실험이 있는지 없는지를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PMC가 있는 곳만 '배제'하라는 것은 역시 무리가 큰 요구였다.
"그정도면 됐습니다. 사령관을 믿겠습니다."
'후우'하고는 시가연기를 뱉은 파월이 조금은 편안한 얼굴로 한탄했다.
"도대체가 국방부도 그렇고, 화이트 하우스도 그렇고, 알 카에다와 탈레반 잔존세력에 대한 경계가 매우 허술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내정도 제대로 수습하지 않고 벌써 다른 전쟁에 눈을 돌리다니, 나참 정말이지..."
"중동의 요충지 이라크에 제법 꿀이 떨어지고 있나 보지요."
"쯧."
나는 그를 위로 하듯 얘기하며 운을 뗐다.
"그래서 말입니다. 파월 사령관."
"예, 말씀하시죠."
"이곳저곳 산발적으로 잔존세력들의 저항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북부동맹군의 무기 지원을 끊은 것 같던데, 추가 지원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부분 역시, 국방부에 요청하고 있으니 쯧, 현장을 모르는 책상물림 놈들은 도무지가 말이 통하지가 않습니다."
"아하, 그 부분이 가능하다면 지원할 생각은 있으신 모양입니다."
"그럼요, 우리 군인이 피 흘리기 보다 북부동맹군이 피를 흘리는게 우리에겐 더 이롭지 않습니까?"
잔인하고 무서운 얘기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얘기였다. 그리고 내 의도에 합치하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럼, 그 부분만 해결하면 당연히 무기 지원을 하시겠군요."
"그럼요, 아쉽게도 아프간에는 무기를 팔긴 어렵습니다. 돈이 없거든요."
"좋습니다. 그 부분 내가 한 번 힘써보죠."
"음? 가능하시겠습니까?"
"가능하게 만들어야죠, 대신."
내 눈을 한번 쳐다본 파월은 눈치를 챘는지 피식 웃으며 말한다.
"무조건 SKY생산제 무기를 지원하겠습니다."
역시 비즈니스를 아는 놈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 역시 만족스러운 대화였는지 히죽 웃으며 맞잡은 손에 힘을 준다.
바깥으로 나와 다시 차량에 오르니 호석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넨다.
"굳이 무리하시면서 북부동맹군에 우리 무기를 보내려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없이 움직이는 법이 있던가요?"
"빅보스께서 그런일은 본 적이 없지요."
"근데 왜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총탄, 팔아봐야 빅보스의 표현으로는 푼돈 아닙니까?"
피식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돈을 남겨먹자고 하는 일은 아니었다. 다만 가능하다면 '내돈'들이지 말자는 취지일 뿐.
군비 혹은 국방비라는 것은 가랑비에 옷 젖듯 순식간에 시드를 말라비틀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중국."
딱 두 음절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
센스 좋은 호석은 눈치 챈 모양이다.
< 제 20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