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06화. >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앉은 벌레를 바라보며 호석에게 한국말로 물었다.
"아직 때가 덜 빠졌으니까, 깨끗하게 빨래질 해서 보내야겠죠?"
"예, 제대로 각인 시켜 놓겠습니다."
"저놈 말고 알카에다 잔당들 좀 잡아와야지 싶은데요."
어째서 그렇냐는 듯 날 바라보는 호석.
"암약 하기에는 한 놈만 아는게 좋긴 한데, 워낙 또라이 같은 놈들이잖아요?"
"몇 놈을 더 굴려서 서로서로 감시하는 체재를 구축하자는 말씀이시군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왕이며 연좌제 같은 느낌이면 더 좋을 것 같네요, 그래야 헛짓거리 하면 부랴부랴 제놈들 살겠다고 난리를 칠 테니."
잠시 고민하던 호석이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놈들에게 우리에게 닿을 보고체계를 구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호석이 걱정하는 부분을 단숨에 눈치 챌 수 있었다.
"놈들과 연관된 우리에게 불똥이 튈 수 있는걸 염두해라?"
"예, 빅보스."
나도 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은게 아니다.
"그래서 벌레들을 확실하게 교육시켜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저 놈들이 믿는 종교처럼 절대적으로."
"감히 배신이나 헛짓은 꿈꾸지 못하게 아예 정신을 개조 시키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짧게 보지 말고 길게 봅시다. 교육기간을."
"얼마나 생각하시는지요?"
"하는 걸 봐야겠지만 못해도 1년?"
"흠... 굉장히 길게 잡으셨군요."
"특수부대나 정보기관도 정신교육을 3개월 코스로 진행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맞습니다."
"애초에 애국심이 있거나 하는 사람들을 뽑아놓고 3개월을 가르치는건데, 저 놈들은 나에 대한 뭔가가 없을 거 아닙니까?"
"그래서 길게 잡으신 겁니까?"
"예."
고개를 돌려 빈라덴을 불렀다.
"이봐."
"예썰!"
아주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일테다. 몸이 떨어져 있으면 마음도 떨어진다는 격언 처럼, 공포 역시 주변에서 멀어지면 희미하고 옅어지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당연한 이치라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것을 달성할 때까지, 최대한 놈들에게 '나'라는 공포가 각인되어 있기를 바랐다.
"놈들한테 심어줄 세뇌는 몇 가지가 되겠죠."
"절대복종이 아닌 몇 가지 입니까?"
호석이 의아한 모습을 보인다.
"놈들과 주기적으로 연락할 생각은 없습니다. 방생하는 순간 '연'은 끊어야 옳습니다."
"음... 굉장히 어려운 작업처럼 느껴지는군요."
"미친놈들이라 쉬울지도 모르죠."
"그렇습니까?"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놈들에게 바라는 것은 놈들의 주특기니까 알아서 해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의외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호석.
"왜요?"
"음, 빅보스가 '안 되면 말고'식의 표현은 처음인 것 같아 신선해서 그렇습니다."
"아, 또라이를 인간의 잣대로 평가하면 되겠습니까? 놈들은 그저 도구일뿐입니다. 조금 더 편안하게 도움을 줄, 원할한 피스톤 운동을 위한 오일같은 느낌?"
"이해했습니다."
"놈들에게 세뇌시켜야 할 첫번째는 '공포'겠죠, 임무를 달성하지 않으면 '죽음'이 아닌 '고통'이 찾아온다는 공포."
한 눈에봐도 내 말을 경청하고 있는 호석에게 계속 말을 이었다.
"두번째는 '중화사상'에 대한 반발심. 나아가 그들을 '악의 축'으로 보는 마음가짐이면 좋겠군요."
"중국놈들과는 철천지 원수로 만들라는 말씀이군요."
"예, 무슨 이유가 되었던, 중국인들을 보면 미쳐 날뛰게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확인했습니다."
"심플하게, 이거 두개로 가죠, 여차하면 이 작전은 백지화 시키는 걸로."
"놈들을 훈련, 교육 시키다 보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미국의 감시에 걸리게 될 겁니다."
맞는 말이었다.
현재 중동 지역을 위성으로 샅샅이 훑고 있을 미국이었다. 물론 알 카에다와 탈레반의 잔존 세력 때문에라도 아프간을 들여다 보고 있을터.
미국이 아니더라도 아프간의 현 정권을 쥐고 있을 아프간 정부에서도 반드시 탈레반의 잔존세력과 알 카에다를 뿌리뽑고 싶을 터였다.
그렇지 않으면 제 놈들의 목이 위태로울 테니까 말이다.
"그 부분은 따로 처리하겠습니다. 부쉬와 얘기를 나누죠, 아프간 쪽에 우리 PMC를 약간 주둔시키며 '훈련소'처럼 운용하겠다고."
"음, 확실히 그런 위장이라면 1년 정도는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현 아프간 정부에게 연락 좀 넣어 보시겠습니까?"
"미팅이 필요하십니까?"
"예, 몇가지 필요한 것들이 있을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
울퉁불퉁 꿀렁이는 도로아닌 도로를 달리는 짚차.
북부동맹군의 수뇌부들을 불러도 되었겠지만 굳이 오사마 빈라덴의 인근에 놈들을 데려오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라 생각하기에 부득이하게 직접 방문을 해야했다.
마음 같아서는 '헬기'라도 하나 가져오고 싶지만 문제는 아직 미군과 원활한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
또, 곳곳에 남아있는 탈레반 잔존세력의 로켓포에 헬기가 격추되는 위험한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는 호석의 조언에 따라 짚차와 함께 앞 뒤로 험머 2대가 호위하듯 따라오고 있었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경우 로켓포에 안전하냐면은 그것은 아니었지만, 미리 선발대로 출발한 PMC대원들이 정찰을 하며 지나가고 있기에 나는 안심하고 있었다. 물론 나만 그런것이고, 다른 대원들은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한 채 주변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후우."
심호흡을 쉬며 불편한 속을 진정시키고는 위성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전화 받았습니다 미스터 천.
비서실에서 이미 내가 전화했음을 들었는지 반갑게 인사하는 부쉬.
"잘 지내고 계십니까 미스터 프레지던트."
-조금 바쁘긴 한데, 아프간이 대충 정리되는 것 같아 내심 만족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안하시다니 다행이군요."
-다 SKY덕분 아니겠습니까? 아프간 내부, 특히 탈레반과 알 카에다 같은 수니파 놈들에게 SKY의 하늘부대는 공포 그 자체였다고 들었습니다.
"대원들이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해서겠죠."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약속한 의뢰비 역시 조속하게 처리 될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 돈 때문에 전화드린게 아닙니다."
-그래요?
"그거 몇푼에 대통령께 독촉을 하겠습니까?"
-음, 본의 아니게 내가 천을 속 좁은 사람으로 만들었군요 사과하겠습니다.
"아닙니다. 다 생각해주느라 그러신 것을요."
호석의 지시였을까?
부쉬와 통화 하는 사이 묘하게 차량의 속도가 줄어들고 꿀렁임이 약해진 것 같았다.
덕분에 조금 더 진정된 속을 애써 무시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통화 품질이 좋지 않아 본론만 하겠습니다."
-그러시죠, 피차 바쁘지 않습니까?
"아프간의 작은 마을에서 우리 PMC대원들의 훈련소를 만들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한국땅에서는 무기술 훈련에 제약이 있으니까요."
-아아, 행여나 우리 군이 무장단체로 오인할까 말씀하시는 모양이군요.
"예, 맞습니다."
-규모는 어떻게 됩니까?
"하늘부대 전원이고, 신규 대원들이 입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최대규모 1천명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그정도면 넉넉할 것 같군요."
-중부사령부가 아프간에 주둔하고 있으니, 그 사령관에게 따로 언질을 해 놓겠습니다. 아마 하늘부대가 주둔한다 하며 두 손들고 환영 할 겁니다.
"그렇다면야 다행이군요."
-중화기 사용은 어느정도까지 예상하십니까?
전쟁광으로도 불리던 인물답게, 제법 디테일한 질문을 해 오는 부쉬.
"중화기는 RPG-7정도가 다 일것 같군요."
-경로켓, 확인했습니다. 유탄도 역시 사용하겠죠?
"예."
-알겠습니다. 따로 통보는 하겠지만 그래도 편의상 사령관에게 얼굴은 비춰 주시기를 부탁하고 싶군요.
"그 정도야."
-해당 좌표는 사령관에데 통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용건이 끝났으니 전화를 끊으려는데 부쉬가 날 불렀다.
-아, 천.
"예."
-혹, 이라크 전에도 '용병'으로 참전할 의사가 있습니까?
"우리 PMC를요?"
-그렇습니다. 아프간 의뢰에서 제대로 보여주었으니, 의뢰비 역시 조금 높힐 의사가 있습니다.
"얼마든지요. 미스터 프레지던트의 의뢰는 우선순위에 두어야겠죠."
-오, 좋습니다. 조만간 적절한 시기와 금액을 조율해 봅시다.
"알겠습니다.
부쉬는 '조만간'이란 표현을 썼지만 나는 그의 뜻처럼 그렇게 급진적으로 전쟁이 시작될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각종 이권과 국제 정세로 시간이 질질 끌리다 2003년이 되어서야 시작되는 전쟁 아니던가.
부쉬의 아비에게 '암살'을 시도했던 '후세인'에 대한 복수 전쟁이라는 설이 지배적이었기에, 그 명분을 가지고 세계 각국의 정상들, 연합국들이 현재 미국에게 명분을 내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끝내 중동의 석유와 영향력이 아쉬웠는지 전쟁을 강행하고, 손해를 봤던 미국.
같은 역사는 아마도 반복 될 모양이었다.
"북부동맹군 만나고, 잠시 미군 주둔지에 들려야겠습니다."
"예, 빅보스."
"우리가 주둔하고 있는 마을 좌표는 있죠?"
"물론입니다."
"한 숨 자고 싶지만 어렵겠네요."
전화가 끝나자 다시 속도를 내는 짚차는 이렇게까지 흔들려도 되나 싶을정도로 흔들리고 있었다. 엉덩이가 저릿저릿한게, 도대체 이런 승차감이 얼마만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울컥 짜증이라도 치솟을 것 같지만 참아야 했다. 우리 PMC대원들은 이 길을 수십번도 더 돌아다녔을테니 말이다.
내가 싫어하던 놈들과 똑같은 놈이 될 순 없잖은가? 제 놈은 편하게 살고 아랫사람들은 불편을 강요하는 그런 놈들 말이다.
내게 믿음을, 충성을 주는 만큼, 나는 그것에 대한 보답 만큼은 확실하게 해줄 생각이었다. 나의 품, 내 사람이라면 그 어떤 피드백보다 확실한 피드백을. 확실한 아웃풋을.
그것이 SKY. 그리고 천가의 경영철학이 될 것이다. 절대 흔들리지 않을 철혈의 제국에는 누구나가 속하고 싶을 만큼의 소속감이 필요할테니까.
***
연락을 먼저 하고 북부동맹군의 임시정부가 있는 카불에 도착했기 때문일까? 제법 많은 병력이 우리를 환대하고 있었다. 부쉬도 언급했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SKY PMC 즉, 하늘부대가 쌓은 명성이 제법 대단하기에 내가 아닌 하늘부대를 보기 위해 나와 있는 사람들도 많을 터였다.
퍼레이드도 아니건만 많은 사람들이 험머와 지프에 집중한다.
그 틈바구니를 뚫고 북부동맹군이 사용하고있는 카불의 청사 안에 진입했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천. 하미드 카르자이입니다."
중동 특유의 발음으로 된 영어로 날 맞이하는 북부동맹군의 수장 하미드 카르자이.
"반갑습니다. SKY그룹의 천우진입니다.
청사 내부는 제법 틀이 잡혀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수도라 불리는 카불도 난장판인 집들이 있던데 이 곳은 멀쩡하구나 싶었다. 어느 도시, 어떤 빈국을 가더라도 역시나 있는 놈들은 있는 모양이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특유의 쓴 맛이 제법 입에 잘 맞는 것 같았다.
"하늘부대의 명성은 익히 들었..."
사설이 길어 질 것 같아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잘랐다.
"안타깝게도 여유가 많지 않아 용건만 간단히 할까 합니다."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지만 약육강식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모양인지 '크흠'하는 헛기침과 함께 묻는다.
"말씀하시죠."
"무기 필요하지 않습니까?"
고개를 갸웃 거리는 카르자이.
"잘 생각해보세요, 앞으로 많은 무기들이 필요할 거 아닙니까?"
"혹, 지원 해주시겠다는 그런 말씀입니까?"
대가리에 총을 맞아도 그럴리가 있겠는가.
"미국이 열심히 무기를 지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우리 무기가 품질이 아주 좋습니다. 하늘부대도 우리 무기를 쓰고 있지 않습니까?"
"아."
이제 눈치를 챈 듯 묘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카르자이.
< 제 20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