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02화 (202/458)

< 제 202화. >

북벌.

대한민국 땅에 많은 국가들이 꿈꾸던 염원 같은 것이었다. 기술과 정신력은 때로는 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인구가 주는 한계, 그리고 지리가 주는 한계 덕분에 언제나 강세를 누리긴 어려웠다.

한반도의 역사는 참 스펙타클하다고 표현하는게 알맞을까? 어쨌든, 현 중국 역시 지금은 아니지만 곧, 세계 2강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커지게 된다. 그것이 모두 커다란 땅덩어리와 한반도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인프라 덕분이다.

인해전술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니까.

해서, 그 중국을 견제하고 컨트롤 하는 것은 내가 나아가는 길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필요한 일이었다. 아지 세계 최고의 미국을 삼키기는 어렵다. 서서히 스며들듯 계획이 진행중이니 우선 타깃을 살짝 옮겨 볼까 싶었다.

"지반이 튼튼한 곳을 찾았다고요?"

"예, 회장님."

"SKY건설과 중공업 쪽에 지반 검사 제대로 실시하라고 전달 하세요, 그리고 베이스 캠프 설치하라고 얘기 전달하고, 유통망도 당연히 있어야겠죠? SKY LINE과 잘 연결을 해 보라고도 전달해주세요."

"예."

"장저민과는 내가 직접 얘기를 나눌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호석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벌레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프간의 외곽에 잘 숨겨두었습니다."

"미군의 첩보에 걸릴 일은?"

"우리 PMC가 주둔하는 곳에 미군의 관심은 없습니다."

"앞으로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철저하게 교육시키세요, 미국 정보부에서 언제 도청을 할지 모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코드네임 벌레 제대로 전달하겠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품에서 전화기를 꺼내다. 도로 집어 넣었다. 저 멀리 루시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우진, 정말 내일 가는거야?"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응, 가야지..."

"아쉽다."

의외로 루시는 날 쉽게 보내준다 싶었다.

봉긋하게 나온 루시의 배를 어루만져주며 말했다.

"만삭 때는 오래 같이 있자."

"세 달이나 시간 내줘서 고맙다고 그래야 되나?"

루시의 농담에 피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어느새 2001년이가고 2002년 1월이 다가왔다.

놀랍도록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SKY그룹은 이제 한국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그 성장세에 경악을 금치 못할 만큼, 글로벌 세계 영향력 13위에 오를 만큼 영향력있는 기업이 되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유럽과 미국시장을 제대로 뚫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안 비밀.

"조금만 참자, 루시도 장모님과 있는게 더 편하잖아."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녀.

표독스럽고 날카로웠던 그녀는 임신 안정기에 접어들자 어느새 본래의 성격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쩌면 몇 개월 내내 나와 얼굴을 맞대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몸이 멀면 마음도 멀어진다 하더니, 그래서 그랬느지도 모르겠다.

"위험한 짓 하고 다니면 알지?"

짐짓 도끼눈을 뜨고 위협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루시가 날 혼내기 전에, 할아버지가 날 죽일지도 몰라 그런짓을 했다가는."

"젠틀 천이라면 믿을 수 있지."

나는 임신한 루시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고는 호석에게 말했다.

"일 얘기는 내일 하죠."

"예, 회장님. 편안한 밤 되십시오."

"예."

***

중국의 주석궁.

장저민이 중국의 10대 명차중 한가지인 '대홍포'의 향을 즐기며 보좌관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후릅, 계속 해 봐."

"예, SKY그룹이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적절한 지반을 찾은 모양입니다. 곧, 우리에게 요구할 땅의 크기에 대해서 언질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어코 사막의 기적을 일으키려 한다라... 후르릅."

보좌관은 장저민이 고민에 잠긴 사이, 지금 그의 입으로 들어가는 대홍포의 가격이 얼마일까를 계산하고 있었다.

품질에 따라 kg당 가격이 천차만별인 대홍포, 아무리 싸도 kg에 보통 한국돈 100만원을 훌쩍 넘어가는 놈이기에 어마어마한 사치라고 말 해도 할 말이 없는 그런 고급 차였다.

바깥에는 소탈하게 포장을 하지만 목구멍에 들어가는 것은 죄다 고급이 아닌게 없는 중국의 주석.

인민들이 굶어 죽어가도 핵무기를 개발하던 것들이 어지간 하겠는가.

"거기서 뭘 하려는 것 같나?"

"음, 죄송합니다. 종종 SKY그룹은 종잡을 수 없는 사업을 진행하는터라, 뭐라 예측하기 어렵다는 결과만 나오고 있습니다."

"흠, 지반을 확인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엇인가를 건설 하려는 것이겠지?"

"예, 그것 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주전자를 높이 들어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하는 장저민.

"확실히 주변 지하자원을 검사 했지? 쓸모 없는 땅이 맞는가?"

"예, 돈이 될 만한 광맥이나 지하자원은 없습니다."

"좋아, 내 줘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어린 아이들을 잘 뽑아 놔, 이왕이면 여아들이 좋겠군."

보좌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디에 쓰려고 하십니까?"

"갖 대학을 졸업하거나, 고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을 선별 해, SKY의 공장이 지어지면, 그 곳에 일할 아이들이 필요할 거 아닌가?"

"아, 예."

장저민은 보좌관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찬다.

"쯧쯧."

그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킨 보좌관은 자신이 행여나 장저민의 심기를 어지럽힌 부분이 무엇일가 고민에 빠졌다.

"왕지언."

"예, 각하."

"네가 그 자리에 오른지 얼마나 되었지?"

"이제 3년이 되었습니다."

"쯧, 더 높은 곳을 바란다면 눈치를 키우는게 좋을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SKY의 공장에서 단순히 일이나 하며 인민들 배나 불리자고 소국의 기업을 들여 놓는다 생각하나?"

보좌관은 '아!'하는 탄성을 내 뱉으며 입을 열었다.

"모든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똑똑한 아이들을 선별하겠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알아 듣는 군."

"천우진이라는 사내, 쉬운 사내가 아니니 각별히 주의 하도록, 여차하면 공장의 셔터를 내릴 정도로 대쪽같은 성품이었어."

"예!"

다시 호로록 차를 마시고는 말을 잇는 장저민.

"경계도 삼엄 할게야, 듣기로는 SKY 보안사가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들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군, 미-아프간 전쟁에서도 그 사실이 입증되었고."

"예, 그렇습니다. 이탈리아의 마피아의 공격에 대한 방어부터, 아프간 전쟁에서의 명성까지, SKY 보안사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쯧쯧, 내가 네놈에게 그 놈들 칭찬이나 하라고 얘기를 꺼냈더냐?"

"으음..."

"그만큼 대단한 놈들일테니 기술을 빼 오는게 쉽지 않을 거란 얘기다. 자만은 독이니 버리라고 전달해, 그리고 철저하게 교육시켜."

보좌관은 또 무슨 교육을 어떻게 철저하게 시키라는지 묻고 싶은 마음에 입술을 달싹였다.

"정말이지 내 주변에는 왜 천우진같은 인재가 없을까, 인복이 없어도 너무 없군."

달그락.

마음에 들지 않는 보좌관의 태도에 신경질적으로 찻잔을 내려놓은 장저민이 심기가 불편하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말했다.

"공포는 효과적인 통치의 수단이며 인간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

"아."

"임무에 실패하는 것들의 가족까지 형장의 이슬로 만들어버려."

"무,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그래, 두려운 것이 있고 절실해야 일률이 올라가는 법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주석실을 벗어나려는 보좌관을 불러세운 장저민.

"왕 보좌관."

"예, 각하."

이내 엄지와 검지를 딱 붙이고는 입술 끝에서 끝으로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하는 장저민.

"예! 제 선에서 나온 얘기로 끝내겠습니다."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어 보좌관을 내보낸 장저민이 주석실 중앙에 걸려 있는 중국 땅의 지도를 바라보며 차를 홀짝였다.

***

누가보면 공항이라도 전세낸 것 처럼.

어마어마한 인파가 나와 할아버지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배웅 나왔다.

물론, 대부분 경호원들과 PMC대원들이었다.

우리 가족이 총출동한 상황, 거기에 장모님과 장인어른까지 우리 할아버지가 떠나는 길이니 배웅을 나왔다.

"허허, 이거 민폐가 따로 없군."

대비 할아버지의 농담반 진담반에 모두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쪽에서는 워싱턴의 공항을 방문하는 세계 유수의 유명인들을 취재하기 위해 몰린 기자들이 무슨일인가 싶어 우리 근처를 기웃거리는 헤프닝까지 이뤄지고 있었다. 물론 우리도 저 기자들의 카메라에 얼굴이 담겨도 이상하지 않을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기는 했으나, 특별한 일 없는 일상이 담기기에는 조금 웃긴 부분이 있었다.

"이제 가면 또, 한 동안 보기 어렵겠구나."

어깨를 두들기며 말한 대비 할아버지에게 허연 이를 드러내 보이며 말했다.

"한국에는 '설날'이라는 명절이 있어요, 그때는 봬야죠, 명절은 가족과 보내야 하니까."

그렇냐는 듯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대비 할아버지.

"명절에 휴양지나 갈까 대비? 우희도 그렇고 루시도 그렇고 갑갑할 듯 하니."

"그것도 나쁘지 않군, 짧게나마 휴양지에서 며칠은 달콤한법이지."

루시와 우희, 록산나 여사께서 격하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루시의 머리를 쓰다듬다 품에 꼭 안아주고는 이별을 고했다.

"다녀올게."

"응, 일 잘 하고."

"몸이 무거워도 움직이는 거, 알지?"

"알겠어, 잔소리 그만하고 비행기나 타."

퉁명스럽게 얘기하는 루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다 우희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고는 게이트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또 다시, '시집가는 딸내미와의 한 때'라는 영화를 촬영하시느라 바쁘다. 카메라도 없는데, 연기가 일품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백 대표에게 말했다.

"어휴, 얼른 모셔오세요, 하루 종일 저러고 계시겠네."

"하하, 알겠습니다. 회장님."

굳이 할아버지를 모시고 전용기에 오르기보다는 먼저 전용기에 올랐다.

SKY 항공우주기술에서 A부터 Z까지 제작한 나만의 전용기는 탑승하는 것 만으로도 내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SKY AIR의 승무원들이 날 반갑게 맞이해준다. 교양있는 그녀들의 인사에 부드러운 웃음으로 대신해주고는 편안하게 자리에 앉았다.

"이 놈이, 이제 할애비를 챙기지도 않는구나."

"헤어질때마다 신파를 찍으세요 왜?"

"쯧쯧, 내 나이가 되면 하루하루가 금인게야."

"거 참, 할아버지는 100살까지 거뜬하시다니까?"

"흥, 수명은 하늘이 정하는 것인데 네 놈이 어찌 아느냐?"

믿질 않으시니 뭐 어쩔 수 없지 싶었다.

이어서 승무원들이 나와 할아버지의 취향조사를 제대로 했는지, 아니면 정호석이나 백철웅에 의해 지시받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취향에 맞는 음료는 내어왔다.

피나콜라다를 홀짝이고는 조용히 눈을 감으시려는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한국 공항에서는 할아버지만 내리세요."

"음?"

스륵 눈을 뜬 할아버지가 무슨 소리냐는 듯 날 바라보신다.

"아무래도, 벌레를 좀 봐야 할 것 같아서요."

벌레가 무엇인지 모르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아 듣게 설명해 이 놈아."

"아프간 좀 다녀오겠다는 얘깁니다."

눈을 부릅 뜬 할아버지.

"루시가 알면 네 놈 명줄이 왔다갔다 할 터인데?"

"할아버지 입만 무거우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기어코 그 곳에 가야겠더냐?"

"겸사겸사 중국땅도 찍고 넘어올까 싶습니다. 장저민에게 받아낸 땅이 있거든요."

"아프간의 국경에서 바로 중국으로 넘어가겠다?"

"예."

"흐음... 사막이 아니더냐?"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요, 벌레 놈이 말을 잘 들어야 되겠죠."

할아버지는 대충 '벌레'가 누구를 부르는 말인지 깨달으신 모양.

"아아, 북벌인지 지랄인지 때문이구나."

"예, 아마 놈은 거부하지 않을 듯 하거든요."

"흐음, 알았다. 다녀오거라."

"예."

대화가 끊기는 듯 했으나, 문득 궁금한 것이 있어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어느 정당에서 출마하실거에요?"

할아버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무소속."

"예?"

"무소속으로 나간다고."

"굳이요?"

"여당이고 야당이고 다 잡놈들 뿐이라 놈들이 가진 프레임을 뒤집어쓰고 싶지가 않구나."

몹시도, 천혁수 다운 말이라고 생각되었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며 말했다.

"할아버지 다우시네요, 무소속 대통령이라. 신선한데요?"

< 제 202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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