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01화 (201/458)

< 제 201화. >

일교차가 크게 느껴지는 황량한 아프가니스탄의 밤.

10년 묵은 체증이라도 내려가듯 활짝 웃음꽃이 핀 사내가 자신에게 보고하는 사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정말이야?"

얼굴이 밝게 상기된 사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예! 정말 미군들과 북부동맹군이 포위를 풀고 전선을 옮겼습니다. 아무래도 미군과 이라크 사이에서 전쟁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기회군! 기회야!"

"우선 파키스탄쪽 베이스로 옮기시죠!"

"좋아! 바로 움직이자고!"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하는 사내들.

그들은 모두 빈 라덴을 필두로 한 알 카에다의 일원들이었다. 작은 규모의 마을에서 최대한 인기척을 죽인 채 조용히 떠날 채비를 하는 그들.

바깥으로 나온 알 카에다 수장 빈 라덴이 주변을 훑어보며 작게 물었다.

"뭐야? 걸어가자고?"

"죄송합니다. 아직 미군이 주변에 있을지 몰라, 안전을 위해서는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몰라 말은 몇 마리 준비 했습니다."

"제기랄... 체력도 전과 같지 않은데."

언제나 상전처럼 모셔지던 신의 전사인 오사마 빈 라덴은 저도 모르게 까드득, 미국놈들을 향해 이를 갈았다. 필요할 땐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것 처럼 굴던 놈들이 이제는 완전한 적이 되어 자신을 이모양 이꼴로 만들었다.

그러게 조금더 도와주고, 조금 더 지원해줬으면 좋지 않았겠나 싶었다.

얼핏 보기에도 말은 20여 마리가 전부였다.

그러나 남은 알 카에다의 잔당은 수백을 헤아리는 중이었다.

"턱 없이 모자른데?"

"되는데로 짐을 싣기 위해 소들도 준비 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지만, 더 왈가왈부 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생각한 그는 혀를 차며 자신의 몫으로 떨어진 말 위에 올라탔다.

"가자!"

"예!"

야음을 틈타 마을을 벗어나 고요한 사막위를 걷기 시작하는 말들과 소, 그리고 사람들.

그들의 손에는 제각각 무기들이 들려 있었는데 미군과 북부동맹군에 의해 몰릴데로 몰려서인지 눈빛은 죽은 사람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막 마을의 1km지점을 벗어 났을 때.

털썩.

털썩.

털썩.

말 10마리의 머리에서 무엇인가 터져 나오더니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 이내.

투웅~

여러개의 총 소리가 마치 하나처럼 들려왔다.

소리보다 탄이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거리가 있다는 뜻.

"저격이..."

저격의 존재를 알리려 입을 벌린 사내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발 밑에서 솓아오른 칼날이 목젖을 갈랐기 때문이었다.

타다다다당!

이내 땅에서 솟구쳐 오른 존재들이 여기저기 총을 발포하며 알 카에다의 긴 행렬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털썩.

투웅!

털썩.

투웅!

곳곳에서 저격은 계속 이어지고 삽시간에 300명이 훌쩍 넘는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바닥에 피웅덩이를 만들며 쓰러져갔다.

이내 시끄러운 비명소리, 피가래가 끓는 소리등이 모두 멈추고 조용해진 사막.

딸깍.

버튼이 눌러지는 소리와 함께 백을 헤아리는 플래시가 점등되었다.

"숨이 붙어 있는 놈들을 확인하고, 수장 빈라덴을 확인하라."

한국말로 내려진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흩어지는 존재들. 그들의 어깨 견장에는 현 대한민국의 최고 기업이자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SKY그룹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

놀란 토끼눈을 하고 계신 할아버지와 대비 할아버지에게 나는 끝내 대답은 해주지 않고 여유롭게 차를 홀짝였다.

"정말 빈 라덴을 잡았다고?"

"죽였나?"

"제가 언제 그렇게 얘기했어요? 아무 대답도 안 하고 있는데."

"네 놈은 무언이 긍정 아니더냐?"

"그건 수의 말이 맞지."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어린아이와 같은 표정으로 두분이 날 바라보신다. 어서 '썰'을 풀어보거라! 하는 느낌이었다.

"그냥 운이 좋아서 잡았어요."

아주 짧게 얘기했더니 만족스럽지 않은 듯 두분이 동시에 혀를 '쯧'하고 찬다.

"흐음, 부쉬에게 얘기해줘야 하지 않겠더냐? 추후에 알게 된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음이다."

"비호했다는 식으로요?"

"그래."

"몰랐다고 얘기하면 될 일이죠, 멀쩡히 숨을 붙여놓고 있으면 되겠죠."

"너무 태만한 반응이 아닌가 싶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미군들 바쁘다니까요?"

"확신하느냐?"

"예, 당장 알 카에다와 탈레반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는 상황에서 다른 전쟁에 눈이 팔려 포위를 풀어버린 놈들입니다. 다 된 밥을 포기 할 정도로 지금의 이라크가 맛있어 보이는 모양이에요."

"흐음..."

"이라크를 건드리는 명분은?"

대비 할아버지의 질문에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무기개발."

"무기개발? 핵이라도 만든다더냐?"

"아뇨, 생화학 무기를 개발중이라는 헛 소리에 미군이 옳다구나 하고 명분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을겁니다. 중동쪽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모양이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얘기겠군."

"예, 그쪽 관련해서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면 조심하라고 직원들에게 말씀하시는게 좋을 겁니다. 유가부터 시작해서 많은 부분이 휘청휘청거릴테니까요."

"확실히..."

대비 할아버지가 생각에 잠겨 차를 마시는 사이, 할아버지가 물었다.

"아프간과의 전쟁도 고작 두어달이 걸렸다. 이라크라고 오래 버티겠더냐?"

아프간과는 상황이 달랐다.

확실한 명분과 확실하지 않은 명분이라는 것이 그랬다. 국제 정세도 그렇고, 다른 나라의 견제 때문에 미국이 자유롭게 움직이기는 어려웠다. 또한 이라크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터.

또, 전 삶 분명 몇 달만에 전쟁이 끝나는 듯 했으나, 시아파와 수니파의 내전으로 진정되지 않는 전쟁의 서막에 빠져나오지 못한 미국은 큰 손해를 보게 되었었다.

"신의 전사라는 놈들은 생각보다 미친놈들이거든요, 컨트롤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할아버지.

"철웅이에게 듣기로는 그 광신도 놈들이 SKY PMC대원들게는 껌뻑 죽는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미군과 다르거든요."

"어떻게?"

"자비가 없습니다."

"자비가 없다?"

"무기를 들고 있다면 무조건 적인 사살이 제 1 원칙입니다."

대비 할아버지도 우리 할아버지도 주변을 살핀다.

"흐음, 바깥에서 할 소리는 아니구나, 다른 곳에서는 말을 아끼거라."

"그래 우진, 우리는 몰라도 바깥에서는 위험한 발언이야."

두분의 조언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굳이 두분이 아니라면 이런 얘길 꺼낼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간을 보고 있는 대륙이 있죠, 인구는 대충 10억 정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할아버지.

그러나 대비 할아버지는 눈치를 챘는지 단밖에 대답했다.

"아프리카?"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프리카를 제대로 먹고 싶거든요."

"으음, 확실히 그렇게만 된다면야... 내전도 내전이고 치안도 치안이고... 확실히 무력단체가 필요하긴 하겠어."

"국가와 사기업의 차이점이라면 자유도겠죠. 물론 병력과 '힘'의 차이는 있겠지만."

할아버지가 눈을 빛내며 묻는다.

"굳이 방산을 시작한 이유도 그것까지 내다 본 것이더냐?"

"아니라고 하긴 어렵네요."

"대항해시대가 끝난지 오래다. 자칫 강대국들에게 둘러 싸여 '아사'하는 수가 있어."

"요령껏 해 봐야죠."

"쯧, 어쨌든 하루이틀 걸릴 일은 아니겠구나."

"예, 오래 걸릴겁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고."

"이놈, 또 눈이 요사스럽게 빛나는구나, 하여간 의뭉은 한번을 속 시원히 얘기 해 주질 않아."

"빈 라덴 그 놈을 어떻게 한 번 좋게, 이용해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대비 할아버지도 우리 할아버지도 놀란 얼굴을 금치 못한다. 오히려 아까전 빈라덴을 내가 사로잡았다는 것 보다 더 놀란 표정이다.

"테러리스트를 이용해 먹는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이냐?"

"지금의 알 카에다를 키운게 미국이라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대비 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나는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미국이 빈 라덴에게 무기랑 돈을 쥐여 줘서 키웠는데 저라고 못할 거 있습니까?"

할아버지가 대비 할아버지를 바라본다.

"대비, 봤지?"

"그래, 수... 아까 자네가 한 얘기가 정확하구만, 칼날 위를 걷고 있다는 그 말."

"조금만 삐끗하면 천길 낭떠러지... 이러니 내가 안심 할 수가 없네."

"세상 천지 테러리스트를 이용해 먹겠다니... 이게 도대체가."

고개를 젓는 두 할아버지들.

누누이 말씀드렸는데도 아직 날 잘 모르시는구나 싶었다. 할아버지가 내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그래서, 그 테러리스트 놈들을 어떻게 이용해 먹을 생각이더냐?"

"놈들이 제 뜻에 따라준다면... 우리땅의 오랜 염원을 이룰수도 있겠죠?"

팍 인상을 찌푸린 할아버지가 말했다.

"이 놈이 어디서 또, 이상한 대의명분을 가져오는구나."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우리 땅'이 보기에 따라서는 '내 땅'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결국엔 네놈의 욕심이다?"

"말씀 드렸잖아요? 세상을 씹어먹을 거라고."

"오냐, 그 놈의 철혈의 제국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어깨를 으쓱이며 두분께 물었다.

"그런 분들이 뭘 테러리스트 놈들 이용해먹는다고 놀라고 그러세요? 과거에는 저보다 더하셨을 분들이."

대비 할아버지도 우리 할아버지도 피식 웃어버렸다.

대비 할아버지의 가문은 유전사업으로 덩치를 키웠다. 미국의 서부 시대에 '악의 축'이었다는 얘기다.

우리 할아버지 역시 항상 '악'으로 불리는 사채업으로 덩치를 키운 사람이다. 그들의 몸속에도 나와 같은 강철의 피, '철혈'이 흐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치 본 것 처럼 얘기하는구나?"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지."

두분의 변명과도 같은 말에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에이, 사람 사는 모양이 다 거기서 거기죠."

"쯧."

"흠."

맞는 말이라 생각했는지 아니면 마땅한 변명이 없는지 뭐라 대꾸하지 못하는 두분.

"이 놈이 또 화제를 전환시키는구나, 그래서 도대체 빈 라덴 그 놈을 이용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이더냐?"

할아버지의 질문에 대비 할아버지도 내게 집중했다.

"놈이 제 뜻에 제대로 따르지 않아 줄 경우, 그러니까 최악의 경우 그냥 부쉬에게 넘기고 콩고물이나 받아 먹는 거고."

"최선의 경우는?"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대한민국의 염원일지 모르는 북벌?"

할아버지가 입을 떡 벌렸다.

대비 할아버지 역시 비슷한 표정이었다.

"미친."

서양분이라 그러신지 리액션이 찰지다.

"이봐 수, 저 북벌이라는 말이 말일세, 내가 아는 단어가 맞는가?"

"이 놈의 꼬라지를 봤을 때, 맞는 것 같네."

"자네 손자 한 번, 제대로 키웠구만. 남자야, 남자."

"칼날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줄 알았는데 이건 뭐, 칼날 위에서 춤을 추고 앉아있었구만..."

두 분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러나 이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부럽군."

"그 젊음이."

두 분의 눈에서 열망이 보였다.

미국도 어쩌지 못하는 커다란 덩어리를 씹어먹고자 하는 의지가.

< 제 201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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