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99화 (199/458)

< 제 199화. >

삭스와 체이스의 기분이 좋을 순 없었다. 명분은 내게 있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큰 이익을 양보하는 것이 되어버렸으니 당연한 일.

덕분에 밤새 두 노인네들을 상대하느라 간이 썩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루시의 따가운 눈총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만 했다.

"허니, 우희와 친구들을 만나고 오려고."

"그래?"

"응, 저택에 있을거야?"

"어, 아무래도 쉬어야겠어."

"에휴~ 속 쓰리다고 굶지 말고."

"알았어~ 재미있게 놀다 와?"

예정된 약속이 있었는지 밖으로 외출한 루시와 우희. 덕분에 너른 저택에는 사용인 몇과 나 홀로 남게 되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내리쬐는 햇빛을 즐기다. 호석을 불렀다.

"정 대표님."

"예, 회장님."

"처리할 서류들 있죠?"

씨익 웃으며 어느새 다른 직원 하나가 나타나더니 양 손 가득 서류를 들고 나타났다.

모두 내가 해야 할 결재 서류들이었다.

눈과 손은 서류를 읽고, 정리하느라 바쁘다면 입은 호석과 대화하느라 바빴다.

"아프간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습니까?"

"탈레반 정부에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면, 산발적인 게릴라, 테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 삶의 양상과 똑같았다.

"우리 대원들의 피해는?"

"이제 파견 된지 겨우 3일차라 이렇다 할 피해는 없습니다."

"성과는요?"

"투입된 게릴라전 모두 완전 소탕입니다."

제법 대단하다는 식으로 보고를 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미군들이 투입되었어도 당연하게 소탕했을테다.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모두가 '전투병'인 것은 아닌 법이다. 어렸을때부터 무기와 친숙하게 지내는 탈레반, 알 카에다 놈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옥같은 훈련을 견딘 '강병'혹은 '특수부대'의 인간들보다 전문적이지는 못하다.

아프간은 항상 내전에 시달리던 국가였다.

탈레반이 정권을 잡으면서 잠시나마 소란이 진정되는 듯 했으나 북부동맹인지 지랄인지 하는 것들이 다시 탄생하며 이곳 저곳에서 게릴라전이 빈번하게 발생하던 상황.

미군은 탈레반정부에 반목하는 북부동맹에 무기와 특수부대를 지원해주며 탈레반 정부를 빠르게 몰아치며 주둔지를 마련할 계획을 수립했고, 10월 7일 공중폭격을 시작으로 공식적인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상황이었다.

"미국은 역시 알 카에다와 '빈 라덴'추적에 열을 올리고 있겠죠?"

"예, 그렇습니다."

"11월 중순쯤에 수도를 완전히 장악할겁니다."

"예, 현재 우리 PMC의 정보부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놓쳐버린 빈 라덴의 행적은 묘연하고요?"

"예, 그렇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다 서류 하나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여기 강기태 본부장에게 존슨앤존슨 제약회사 인수절차 진행하라고 하세요, 찰리박과 함께."

"아, 제약회사도 담으시려고 하십니까?"

"삼현이 가지고 있던 제약회사가 놀고 있잖습니까? 몇 푼 안되는 사업이긴 합니다만, 이왕 가지고 있다면 규모를 좀 늘릴 필요가 있죠."

"예, 알겠습니다."

"꼭 존슨앤 존슨이 아니더라도, 인수할 수 있는 미국 상위 15개 제약사 중 몇개를 담아보라고 하세요, 미국 시장을 뚫지 못하면 제약사는 존재가치가 없으니까."

"예, 이해했습니다."

빠르게, 빠르게 화제가 전환되고 있었지만 호석은 막힘없이 대답을 해 나갔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나는 정 대표를 신뢰한다.

모든 서류의 결재가 끝나고 등 받이에 등을 기대자 호석이 '수고하셨습니다'란 말과 함께 시원한 피나콜라다를 건넨다.

"이야, 남미도 아니고."

피식 웃은 호석이 말했다.

"좋은 코코넛이 있길래 특별히 저택의 셰프에게 부탁했습니다. 해장에 코코넛 만 한 것이 없죠."

"좋네요."

쪼로록, 빨대로 피나콜라다를 몇 모금 들이켜고는 물었다.

"부쉬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죠?"

"일단은 여론은 부쉬의 편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테러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아직 911의 여파는 꺼지지 않았으니까요, 몇몇 시민단체에서는 전쟁 반대를 울부짖기는 합니다만, 거의 공공의 적 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곧 미군은 이상한 짓거리를 할 겁니다."

호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짓 말씀이십니까?"

"아프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미군은 다른 곳에 눈을 돌릴겁니다. 꼭두각시를 세우면 끝이라고 생각할테니까."

"으음..."

"아프간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거든요, 다른 곳을 먹어야 매력적이지."

"지하자원 말씀이시군요."

"예. 욕심에 눈이 멀어 이상한 짓거리를 하게 될겁니다."

눈을 빛내는 호석이 내게 물었다.

"회장님은 그때를 노리실 모양이십니다."

"부쉬는 매번 힘든 대선을 치룰 운명이거든요."

"돗자리 펼까요?"

호석의 농담에 피식 웃으며 남아 있던 피나콜라다를 마저 들이켰다.

"대원들에게 확실한 공포만 각인 시키고 있으라고 하세요, 피해는 당연히 최소화 합니다. 인권탄압이니 뭐니 우리 PMC에 대하여 시끄럽게 떠드는 언론이 있을수도 있습니다만, 무시하세요. 대원들에게도 확실히 전달하시고, 책임은 나 '빅보스'가 진다고."

"예, 회장님."

***

12월 7일.

북부동맹과 미군, 다국적 연합지원군에게 밀리고 밀린 탈레반은 칸다하르라는 비교적 방어하기 수월한 곳에 집결 해 있었다.

쫓기고 쫓기는 탈레반 세력의 몰골이 보기 좋을리는 없었다. 굶었고 힘든 여정을 버텨내야만 하는 그들의 눈에는 언뜻 광기마저 비치는 것 같았다.

많은 여인들이 아리를 품에 안고는 제발 아이들이 울지 않기를 신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광기 어린 수니파의 미친놈들이 언제든 자신들을 유린할 수 있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쿠웅!

쿠웅!

땅이 흔들리고 귀청을 때리는 커다란 폭음에 겨우겨우 잠들었던 아이들이 하나 같이 커다란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아앙!"

"응애! 응애!"

구식 소총을 무장하고 있던 탈레반 세력은 쌍욕을 뱉어내며 바깥을 살핀다. 시끄러운 모터 소리와 함께 연속되는 폭발음.

미군의 대대적인 공습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폭격이 진행되는 와중에 공터에 모습을 드러낸 인물. 현 탈레반의 수장이자 아프간의 정권을 장악했었던 무하마드 오마르였다.

칸다하르 출신이었던 그는 무너지는 자신의 고향을 비통에 잠긴 얼굴로 바라보며 곳곳에서 이뤄지는 폭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양팔을 쫙 벌리며 외쳤다.

"신의 전사들이여! 간악한 이단을 저지하라! 나 오마르! 오늘 죽을때까지 싸워 신의 품에 안기는 영광을 쟁취 하리라! 무기를 들어라! 싸워라! 우리의 신념을 무참히 짖밟는 저 승냥이 떼에게 신의 무서움을 보여주어라!"

곳곳에 숨어 있던 탈레반의 잔존 세력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광기 어린 두 눈을 번들거린다.

오마르의 연설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 집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히는 폭격에도 그들은 자신의 무기를 높이 들어올리며 '와아아아아!'하는 함성이나 '싸우자!', '신에게 영광을!'따위를 외치는 광신도 집단다운 면모를 보였다.

오마르에 눈에 고개를 조아리지 않고, 함성을 내지르지 않는 여인들과 공포에 젖어 울음을 내 뱉는 아이들이 보였다.

조용히 손짓해 수뇌부를 부른 오마르가 말했다.

"폭탄 설치하고, 전사들이 싸우는 틈을 타, 빠져 나간다."

광기에 젖은 눈으로 돌격을 감행하고 수성을 준비하는 일반인들과 달리 정상적인 눈깔로 살길을 찾는 그. 수뇌부는 몇몇 친위대에게 직접 명령을 하달해 여인들에게는 폭탄조끼를 입히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폭탄 기저귀를 입혔다.

하늘이 조용해지고 곳곳에서 터지는 폭발음이 조용해지자 멀리서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북부동맹군과 연합군, 미군이 다가오는게 보였다.

폭풍전야.

아이의 울음소리가 작게 들리는 것을 빼고는 칸다하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풀썩.

옥상에 엎드려 저격을 준비하고 있던 탈레반 무장세력 사내가 머리에 구멍이 뚫리며 운명을 달리한다.

투웅.

이내 저기 어딘가 멀리에서 총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보다 먼저 총알이 닿을 만큼 먼 거리에서 이루어진 저격이라는 방증.

"브, 블랙헤드!"

"검은머리라고?"

공중폭격에도 아랑곳 하지 않던 자칭 신의 전사라는 놈들의 광기 어린 두 눈에 '공포'라는 감정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검은 머... 읍!"

"닥쳐! 전사들이 동요한다 알리지 마!"

"하, 하지만!"

"닥쳐! 어차피 죽기를 각오했다. 하늘부대 그 놈들도 어차피 인간이다! 신의 전사인 우리가 더 뛰어나!"

"......"

"대답 안 해!"

"아, 알겠습니다."

어물쩍 거리며 다시 경계 태세를 취하는 사내.

투웅, 투웅.

멀리서 저격총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자신의 주변에 빠르게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전사들을 바라보던 지휘관 역시 온 몸에 공포가 잠식해 오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자신의 옆에서 모든 전사들에게 SKY PMC의 등장을 알리려 했던 사내의 사타구니에서 졸졸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은 느낀 지휘관.

"이봐 아마르."

"예? 예."

"조용히 철수 하지?"

"예에?"

"제기랄... 저 검은머리 놈들과 대적해서 살아남은 신의 전사가 없다며?"

"그, 그렇습니다."

"이미 오마르께서도 대피하셨다."

"예? 결사항전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제기랄 시간이나 벌려는 개수작이지."

"그럼 빨리 알려야!"

"쯧. 일단 전방 경계 해!"

"예, 예!"

다시 전방을 살피는 아마르.

지휘관은 이내 품에서 권총을 꺼내 아마르의 뒤통수에 방아쇠를 당긴다.

탕!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총 소리에 화들짝 놀란 탈레반의 병사들.

"죽을 각오로 싸운다! 두려움에 신을 팔아넘기려는 아마르는 내가 처단했다! 또 신을 팔아넘기려는 놈들은 누구인가!"

장내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싸워라! 신의 곁으로 가는 영광을 쟁취하라!"

"와아아아아아아!"

병사들이 다시 광기에 물들 때.

지휘관은 조용히 아마르의 시체를 치우는 척, 칸다하르를 빠져 나갔다.

***

"5! 4! 3! 2! 1! 해피 뉴 이얼~"

어느새 배가 봉긋하게 나온 루시가 부드럽게 안겨온다.

2001년이 지나가고 2002년 새해가 밝았음이었다.

요즘 부쩍 집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대비 할아버지와 우리 할아버지, 그리고 장인, 장모님, 우희였다.

상대적으로 나와 루시만 집안에서 빈둥거리며 하릴 없이 시간을 보냈다.

"우진, 약속 지켰네?"

루시가 배시시 웃는다.

그녀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많은 인내를 해야 했다. 당장에라도 이득을 볼 사업이 지천에 널렸으나 2001년이 끝날 때 까지는 자신에게 집중해달라는 약속에 덜컥 수락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약속이니까."

"고생했어, 워커홀릭 우진이 얼마나 심심했을까?"

물론 루시 몰래 뒤로 많은 일처리를 했지만, 몰래라기 보다는 루시도 눈을 감아줬다는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음... 우진 나는 좀 피곤하네~ 새해의 하늘을 봤으니까 먼저 쉴게, 할아버지들 좀 어떻게 해줘봐 우진."

"왜?"

"요즘 통 대화도 없고, 젠틀 천이 이겼다며?"

피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확실히 로스차일드 뱅크의 잔재를 흡수하는 싸움에서 우리 할아버지가 거의 압승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려 한국의 '한국은행'에서 자금을 융통해온 할아버지.

해당 자금으로 빠르게 로스차일드 뱅크의 잔재를 흡수했고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본래 로스차일드 뱅크가 가지고 있던 예금자 점유율을 빠르게 회복시켰다.

"휴우, 알았어."

"우진만 믿을게?"

"OK."

어쨌든 덕분에 대비 할아버지는 잔뜩 뿔이 났다. 자존심 센 양반이 정정당당한 게임에서 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애초에 게임 자체가 정정당당하지 않았다. 로스차일드 뱅크의 기반을 대한금고가 그대로 흡수하는 형태의 계약서를 내가 직접 우리 할아버지에게 쥐어주었으니 말이다.

물론 대비 할아버지의 방심이 패배의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도 있을테다.

한국의 금융과 미국의 금융은 오버를 조금 보태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날테니까.

루시가 먼저 방으로 돌아가고 나는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는 발코니로 향했다. 막 발코니로 발을 옮기려는 때, 할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봐 대비."

"왜 부르나 수."

"자네에게 나는 섭섭하네."

"크음, 글쎄 내가 섭섭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네만."

"우리 분명,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로 받아들이기로 하지 않았는가?"

"그랬지."

"헌데 요즘 부쩍 말 수가 줄었어 대비."

본능적으로 지금 저 안으로 발을 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저 조용히 인기척을 숨길 뿐이었다.

"자네에게 졌다고 말 수가 줄어든 것이 아닐세 수."

"허면 무엇 때문인가?"

"자네를 얕본 나 스스로에게 실망했을 뿐이네."

"어려운 말이군."

"나는 분명 자네를 친구라 생각했어, 하지만... 얕잡아보고 있었던 모양이야 결국 내가 졌는데, 원래는 이겼어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아."

"아아,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군.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그런 나 스스로가 너무나 수치스럽네, 차마 자네의 앞에 얼굴을 들이밀 뻔뻔함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달빛에 비친 그림자로 우리 할아버지가 대비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오히려 고맙구만, 나를 얕잡아 본것에 본인이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은 이제는 진정으로 날 인정했다는 얘기가 아닌가?"

"후우, 미안하네 수... 자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어, 나도 고집과 아집에 사로잡힌 영감탱이였던 게야."

"아닐세, 나도 자네가 결국 비즈니스에 감정을 닮는 하수라며 기분나빠 했던 순간이 있으니... 하, 역시 우리 나이쯤이 되면 우리가 진리라는 자만을 품게되는 모양이야, 앞으로 서로가 서로에 자만을 경계하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돼 보자고, 그런게 친구 아니겠나?"

"나를 그런 좀생이로 봤단 말인가 수?"

"푸핫, 미안하네 내가 확실히 실수했어."

"제기랄 어쩐지 또 손해를 본것 같군."

단어에는 노기가 서렸지만 부드러운 음성에 노기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자, 이것은 내가 대비 자네에게 주는 새해 선물이자, 우리 손자녀석 잘 봐달라는 뇌물일세."

달빛에 비친 그림자에는 할아버지가 서류철을 건네는 것이 보였다.

"합병제안서?"

그리고 이어진 대비 할아버지의 음성에 놀란 나는, 어쩔 수 없이 발코니로 발을 내딛을 수 밖에 없었다. 합병제안서라니!

< 제 19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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