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96화 (196/458)

< 제 196화. >

골이 울린다는 말.

그 말이 적절하게 느껴지는 아침을 맞이했다.

독주를 물 마시듯 비워내는 장저민의 음주를 맞춰 주다보니 이 지경이 되었다. 놀랍게도 장저민은 그런 폭음을 하고도 저녁 비행기에 올라 타 중국으로 떠났다.

취한 모습을 감추고 싶어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머릿속을 정리하는 중에 나타난 호석이 커다란 텀블러를 내게 내밀었다.

“로열젤리가 섞인 꿀물입니다.”

“아, 좋네요.”

달달한 액체가 식도를 넘어 위장에 도달하니 조금은 술이 깨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어제 술자리 중, 말씀하셨던 지역에 조사단을 파견했습니다.”

“아, 벌써요?”

“예, 모레 정도면 회장님이 원하시는 지반에 대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단단한 지반을 찾기 어려울수도 있습니다. 하루 이틀로는 시간이 촉박할 수 있으니까, 최대한 자세히, 그리고 오랫동안 조사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래야 정확하게 받아 낼 땅을 선별할 수 있을테니까.”

“예, 회장님 SKY에너지 대표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과연 사막에서 내가 무엇을 할지, 호석은 궁금한 눈치를 감추지 않으면서 차마 묻지는 않는다.

“궁금하세요?”

호석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아무리 봐도 쓸모 없는 땅인데··· 석유라도 매장되어 있을까요?”

SKY에너지에게 업무를 맡긴 만큼, ‘석유’라는 결과를 도출해낸 모양이지만 아쉽게도 그건 틀렸다. 실제로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뇨.”

“그럼 어떤 일로?”

“지금 아프간이 왜 저 모양이 난 것이라고 보십니까?”

“석유아닙니까? 정확히는 지하자원이겠죠.”

“맞습니다. 그럼 지하자원 확보에 목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자라기 때문 아닐까요? 200년안에 고갈될 거라는 얘기가 있었으니까.”

“맞습니다.”

호석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분명 회장님께서는 지하자원 때문이 아니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헌데 왜?”

“지하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에 가치가 변동되죠.”

“예, 그렇죠.”

“그럼 이 지구에서 무한한 에너지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구에서 무한한 에너지원이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젓는 호석.

“그럼 우주로 시야를 넓히면요?”

알겠다는 듯, ‘아!’하며 호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묻는다.

“설마?”

나는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지금 호석이 생각하는 그것이 맞으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제법 신규 에너지원으로 각광받을 사업, 미래에는 더 진보한 기술로 놀라워지는 그 놈.

그리고 그 기술을 선도할 회사가 SKY에너지와 SKY화학이 될 것이다.

본래 미래에서는 중국도 제법, 그쪽 분야에서는 주름을 잡던 놈들이었다. 넓은 땅덩이와 저렴한 인건비. 그것이 주는 메리트는 자유롭지 않은 중국땅에서도 제법 진보된 기술을 보유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때요? 제법 좋은 땅이죠?”

호석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확실히, 그거라면··· 금싸라기 같은 땅이 되겠군요.”

“규모가 규모니까요.”

“그렇죠.”

“아직은 아닙니다. SKY에너지와 SKY화학의 기술력이 조금 부족해요, 조금 더 진보된 기술이 완성되었을 때 도전할 과제입니다.”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SKY에너지와 SKY화학의 대표들과 연구진들의 보안을 조금 더 철저하게 진행하겠습니다.”

제대로 알아 들은 것 같으니 되었다.

“중국 공장 부지 설립에 대해서도 각 계열사 대표들에게 얘기하세요, 우한, 시안, 상하이를 중점으로.”

“예, 회장님.”

“장저민의 말로는 우리 공장, 또 사막에서 받을 내 땅에서는 대한민국 법을 우선한다 얘기해줬지만 뒤로 무슨 짓거리를 할 지 모르니 SKY시큐리티 쪽에도 중국 문화, 언어, 군인 혹은 정보부 출신들에 대해서 교육을 시키세요.”

“예, 회장님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다시 골이 아파 관자놀이를 만지는데 호석이 말했다.

“스케줄 이동 하시죠 회장님.”

“스케줄이 있어요?”

금시초문이라 나도 모르게 놀라버렸다.

“테라피 예약 해 두었습니다. 숙취에 좋다고 하더군요.”

피식 웃음이 흘러나온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런 스케줄이라면야.”

***

록펠러 저택에서 이뤄지는 저녁식사 자리.

천혁수와 록펠러, 루시의 부모와 우희까지.

제법 북적이는 식탁 위에서 데이비드 록펠러가 천혁수를 불렀다.

“이보게 수.”

막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가져간 천혁수가 눈짓으로 왜 불렀냐는 듯 데이비드 록펠러를 바라본다.

“우진은 언제 온다는 기약이 없던가?”

어느새 스테이크를 씹어 삼킨 천혁수가 루시를 바라보며 묻는다.

“그건 나보다 루시가 더 잘 알지 않겠나?”

천혁수의 말에 루시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며칠 안 남았어요 할아버지, PMC파견이 끝나면 바로 미국으로 오기로 했거든요.”

“그러니?”

잠시 ‘흐음’하고 와인을 홀짝이던 데이비드 록펠러가 말했다.

“수, JB모간의 체이스, 골드만글러브의 삭스와 자리를 한 번 마련하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천혁수가 와인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 일 때문인가?”

“아무래도, 얘기는 해주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는가? 어쨌든 우리와 같은 편에 서 있던 이들 아닌가?”

“욕심 많은 늙은이 둘을 더 상대하라?”

“하하하, 자신 없는가 수?”

“그럴리가? 재미있겠구만, 진행하지.”

“좋아, 조만간 자리를 만들겠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서둘러주면 좋겠네 대비.”

“그래야지, 내년이면 다시 정치인의 탈을 써야 할테니.”

천혁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에휴, 손주놈 잘 못 둬서 무슨 고생인지.”

“푸핫, 얼굴은 좋아 보이는데? 엄살이 심해 수.”

록펠러의 말에 우희가 놀란 얼굴을 하고는 묻는다.

“할아버지 다시 정치 하세요?”

“네 오라비가 나보고 대통령을 하라고 부추기는구나.”

‘대통령’이라는 단어에 루시도, 루시의 부모들도, 그리고 우희까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의 대통령을 할아버지가요?”

“그래.”

“와아.”

진심으로 감탄하는 듯한 손녀의 반응에 천혁수가 뿌듯함을 감추지 못한다.

“이것이 양지의 참 맛이던가···”

“네?”

“아니다 먹자, 식사시간에 일 얘기는 그만 하자고 대비.”

“그러지.”

***

PMC대원들의 훈련은 진즉에 완성되었지만, 당초 예정되었던 파병 일까지는 아직 시일이 남은 상태였다. 그 동안 PMC대원들은 파병갈 대한민국 특수부대원들의 훈련에 주력했다.

‘대 테러 방어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이리구르고 저리 구르던 대한민국의 특수부대원들이 어떻게 변할지는 나도 궁금했다.

궁금 한 것은 궁금 한 것이고, 나는 남는 시간을 쪼개서 써야 하는 바쁜 일정으로 매일 업무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SKY LINE 여객 사업, 어떻게 준비되고 있습니까?”

“현재 인원보충은 끝낸 상황입니다. IMF이후 실직지가 된 경력자들 위주로 중요 요직에 앉혔고, 이번 파병으로 출범식을 진행하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원래는 물류만 움직이던 SKY LINE이 SKY air와 SKY ship의 출범은 새로운 사업의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사실을 물길과 하늘길 모두를 SKY가 직접 컨트롤 하고 싶기에 만드는 것이었다. 수익성과 사업성이 좋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적자’를 감당해야 할 정도는 아닐테였다.

여차하면 대한한공을 인수해버리며 ‘독점’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좋습니다.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는 서면보고 위주로 올리세요, 일 단위 보고서와 주 단위, 월 단위로 나눠서 크로스 체크 하는 것 잊지 마시고.”

“예, 회장님.”

고개를 돌려 SKY 전자의 대표를 바라보았다.

“새 휴대폰 개발은 어떻습니까?”

“다양한 디자이너들과 콜라보를 제안하고 해당 디자인에 걸맞는 실용적인 기술 최적화를 위해 힘 쓰고 있습니다.”

‘디자인’이라는 것의 무서움을 모르던 회사원들은 SKY그룹에 입사하고 가장 놀라는 것이 바로 ‘디자인’에 투자하는 비용이었다. ‘실속’, ‘성능’, ‘품질’을 최우선으로 두는 경우가 많은 한국에서 ‘디자인’을 최상단에 위치시키는 나의 경영철학은 이해하기 어려웠을테다.

그러나 이제는 숨쉬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직까지 SKY전자의 휴대폰들이 타사의 휴대폰들과 성능적, 기능적으로 커다란 차이가 있는게 아니었다.

유려한 디자인, 콤팩트한 디자인.

그리고 그 디자인을 적용시킨 ‘실용’적인 부분에서의 기능 최적화. 그것이 지금 SKY전자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장점이었다. 원래 있던 회사들을 인수하고 기술을 늘려가며 덩치를 불린 SKY전자지만 압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긴 어려웠다. 현재까지는 그렇게 포장이 되고 있을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내 얼굴은 좋지 못한 표정이 되었을 것 같았다. SKY전자의 대표가 긴장하는 것이 여실히 보일 정도로.

“단순히 ‘디자인’으로만 먹고산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싶지는 않군요.”

“으음···”

“많은 아이디어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슬라이드 폰이 크게 각광받은 만큼, 그것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얘기하고 있는 상황이기는 합니다. 카메라를 돌린다던지, 화면이 돌아간다던지와 같이 말입니다.”

분명 미래에 현재 SKY전자의 대표가 말하는 기술들이 태어났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해당 기술들이 내가 바라는 궁극의 목표에 도달하는 길이라고 보여지진 않았다.

매년, 새로운 휴대폰 라인업을 선보이던 SKY전자였다. 세계 전자 시장을 선도한다는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기술, 압도적인 기술력을 보여주어야 옳았다.

정상의 위치에서 5년, 10년이 넘어가면 뛰어넘을 수 없는 아성이 되기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궁극의 ‘전자’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기술.

슬쩍 고개를 돌려 호석에게 턱짓했다.

호석이 SKY전자 대표에게 다가가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건낸다.

해당 기기를 받아든 그가 날 바라보며 묻는다.

“음··· 처음 보는 제품이군요.”

“컴퓨터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업체에서 만든 터치기술이 접목된 PDA라고 보는게 옳습니다.”

“아, 터치기술.”

“94년도에 태어난 만큼 해당 기술이 정교하다고 보기는 어렵겠죠.”

기능이 작동하도록 수리를 끝내 놓은 상태였기에 SKY전자의 대표는 무리없이 해당 기기를 만지작 거렸다.

“그 곳에 접목된 터치 기술을 나는 ‘충격식’ 터치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의 자리를 고스톱으로 따낸게 아닌 그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새로운 방식의 터치기술을 만들어 보라는 말씀이시군요.”

나는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아직 전 세계의 터치기술이 크게 상용화 단계에 오르지 못한 때였다.

압도적인 기술투자비를 쏟아붓고 있는 SKY가 터치기술을 상용화 단계로 끌어올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게 나의 생각. 또, 미래에 정확도와 ‘터치감’까지 최고 수준이라 평가받던 ‘정전식 터치기술’에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이 간다면.

SKY전자의 궁극의 목표 ‘스마트폰 최초 상용화’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세계 최초의 터치폰, 그게 완성된다면 명실공히 SKY의 이름을 제대로 드높일수 있을 겁니다. 조금 더 고생해주세요.”

“예, 회장님.”

“좋습니다. 그럼 회의는 여기서 끝내죠.”

SKY라는 커다란 배의 캡틴 답게, 길을 제시 했다. 이제 조타수인 SKY전자의 대표는 올바른 방향으로 ‘키’를 잡아야 할테다. 언제나 어제보다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더 성장해 있을 SKY는 오늘도 바쁘게 돌아가리라.

“나도 이제 돌아가야겠네요, 우리 마누라의 품으로.”

차량에 오르며 건넨 농담에 호석이 피식 웃는다.

“예, 더 시간을 끌었다간···”

“거기까지.”

호석의 입을 막으며 몸서리쳤다.

아마 조금이라도 더 늦는다면 다시 한 번 귀에서 피가날 것 같은 잔소리를 들어야 할 테다.

지금도 한계의 한계까지 바깥일을 하는 중이니까.

“결혼은 미친짓이야.”

내 읊조림에 호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태양이와 별이가 태어나면 생각이 달라지실겁니다. 결혼하길 잘 했다고.”

“그래요?”

“예, 물론 그것도 잠깐이겠지만.”

“예?”

“아닙니다.”

< 제 196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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