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95화 (195/458)

< 제 195화. >

자신만만한 장저민의 음성을 보니 과연, 내가 혹할만한 조건들을 준비했겠거니 싶었다.

“역시 중국 내에서 봐야겠죠?”

-그대가 원한다면 내가 한국을 방문할 의향도 있소.

먼저 고개를 숙이고 나온다니 의아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중화사상에 찌든 중국인은 ‘대국의 자존심’이라는 이상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쉽게 깰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게다가 장저민이라는 인물은 현 중국의 주석이 아니던가. 그런 그가 친히 한국으로 움직이겠다 말하고 있었다.

대답을 해야하니 생각은 짧았다.

그만큼 지금 그가 후진다오라는 인물에게 밀리고 있음이라 느껴졌다. 그게 아니었다면 굳이, 이렇게 손을 내밀 필요는 없을테니까.

“음, 그렇다면야 내 위신이 올라가는 일이니 거부하기 어렵군요.”

놈이 중국의 주석이라 해서 주도권을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어쩌면 주도권을 양보해주며 더 큰 것을 가져올 수 있는 처세가 될지 모르지만 굳이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다. 이미 저번 만남에서도 역시, 내가 먼저 조건을 내 걸만큼 양보하지 않는 성격을 보여줬으니 그도 이해하고 있을터.

-푸핫, 역시 그대는 내 주변의 인물들과는 달라, 그 호연지기가 보기 좋네.

“감사합니다. 주석의 방문은 성대하게 이뤄질겁니다.”

-하하, 그래주면야 고맙겠지만, 아쉽게도 비밀리에 움직이고 싶군.

“언론에 노출을 피하고 싶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좋습니다. 그럼 조용하게 맞이하죠.”

-내일 오전 10시에 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호석을 바라보았다.

“내일 오전에 장저민이 방문할 것 같으니 공항으로 마중을 가야겠습니다.”

“예, 회장님 준비해놓겠습니다.”

“예.”

***

철웅의 부름에 의해 천혁수를 만나러간 데이비드 록펠러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천혁수를 바라보고는 평범한 대화가 오가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 굳은 얼굴을 보니 두렵구만 그래, 부디 좋은 일이길 바라네.”

록펠러의 말에 피식 웃은 천혁수가 말했다.

“자네와 내게는 좋은 일이지 않을까?”

록펠러가 흥미롭다는 얼굴로 계속 해보라는 듯 천혁수를 빤히 바라본다. 천혁수는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천우진이 보낸 서류를 록펠러에게 내밀었다.

“이런.”

놀라움을 금치 못한 록펠러가 자신이 살펴본 서류가 진짜냐는 듯 천혁수를 바라보았다.

“우진이 그 놈이 할일이 없는게 아니라면, 서류에 거짓은 없을테지.”

록펠러가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생각해도 천우진이 제 할아버지 천혁수와 자신을 놀리고자 이런 서류를 건네지는 않았을 테니까.

“정말 윌리엄 그 어린놈이 이런 계약을 했다고?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군.”

천혁수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해도 한 가문의 또한 한 금융사의 수장이라는 놈이 그것도 미국이라는 큰 물에서 놀던 놈이 한 순간에 ‘포기’라는 것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으니까.

물론 천우진이 물어본다고 순순히 대답해줄 손자놈이 아니라는 것도 알기에 굳이 묻지는 않았다.

“음, 이 서류의 내용으로 봤을때 로스차일드 뱅크의 모든 지점의 부동산을 매입했다고 봐야겠군, 휘유.”

록펠러가 놀랍다는 듯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돈 꽤나 들었겠군, 수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은 뭐지?”

천혁수가 서류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로스차일드 뱅크의 간판이 달라질걸세, 물론 로스차일드 뱅크를 인수하는 것은 아니지, 단순히 빈 지점에 새로운 은행이 들어차는 일이니까.”

록펠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자네가 운영했었다는 대한금고가 들어오겠다는 말인가?”

천혁수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록펠러의 얼굴은 삽시간에 굳었다.

“음, 내게 좋은 소식은 아닌 것 같은데?”

친구는 친구고, 사돈은 사돈이며, 사업은 사업이라고 생각하는 둘. 그렇기에 천혁수는 현재 록펠러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진이 녀석이 자네 손녀 사위가 아닌가?”

“손녀 사위는 손녀 사위일 뿐이지, 알면서 물어보는가?”

천혁수가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손자는 손자일 뿐이지.”

“음, 그럼 이건 자네에게 양보를 해주라는 얘기로 이해하면 되겠나?”

록펠러의 말에 천혁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렵겠는데? 새로운 대항마가 떠오른다면 내가 아니더라도 체이스와 삭스, 그 밖에 금융계의 큰손들이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걸세.”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느꼈는지 철웅이 록펠러가의 집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뒤로 물러납시다.’

‘그러죠.’

순순히 뒤로 물러난 철웅과 록펠러 가문의 집사.

애초에 그들은 천혁수와 데이비드 록펠러의 신경을 건드리는 존재들이 아니었기에 개의치 않는 듯 계속 말을 잇는 천혁수.

“글쎄 그들의 견제야 내가 감당해야 할 문제고, 문제는 자네지, 나는 자네와 감정적으로 다투고 싶지는 않거든.”

“하하, 수. 자네는 친구를 못 믿나?”

“그럴리가 누구보다 믿고 소중하기에 얘기하는 것이네, 요즘 자네만큼 내 마음을 잘 헤아리는 존재가 없거든.”

“나도 마찬가지일세 수.”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천혁수.

록펠러가의 집사가 흠칫 앞으로 튀어나갈 자세를 취하자 철웅은 가만히 집사의 어깨위에 손을 올렸다.

“자중하시죠.”

집사가 눈썹을 꿈틀 거리며 철웅에게 말했다.

“손 치우시죠.”

“두분은 친구이자 사돈지간입니다. 당신이 우려하는 일은 없을거라 장담하죠.”

“어쨌든 현재는 가주께 위험이 되는 상황, 가만히 보고 있을 순 없습니다.”

“록펠러씨도 만만하지 않은 분 아닙니까? 모시는 분을 믿으셔야죠.”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났던 천혁수가 척,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어서 록펠러 역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오른손을 내밀어 천혁수의 손을 맞잡는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지.”

“당연하지 수, 이 일로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고.”

“물론이야, 싸우는 것은 우리 둘이지만, 우리 손자와 자네의 손녀는 가족이 아니던가?”

“누가 이기든, 결국 우리 핏줄에는 이득이란 얘기군.”

천혁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했잖은가? 자네가 들으면 좋아할 소식이 있다고.”

“확실히 이해했네.”

“오랜만에 좋은 적수를 만났어.”

천혁수가 자신의 가슴 어림을 왼손으로 콕콕 찌르며 말했다.

“여기가 저릿저릿한게 자네, 만만치 않은 사람이구만.”

록펠러도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일세 로스차일드 놈도 날 이렇게 떨게 하지는 못했거든.”

꽈악.

둘이 맞잡은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전완근이 꿈틀거리고 손목으로 이어지는 힘줄이 불끈 튀어나올 정도로 큰 힘을 준 둘.

그러나 둘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

조용히 방문하겠다고 한 인간이 무슨 수행원을 저렇게 많이 데려왔을까 싶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SKY그룹 소유의 호텔 최상층을 통째로 빌려놨는데, 머릿수로 찍어누르는 중국인들 답게 최상층 전체가 북적거리는 느낌이었다.

“또 보니 좋군.”

장저민스러운 인사에 피식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니야, 먼 나라도 아니고 바로 곁에 있는 나라인데 고생까지야. 그나저나, 이 호텔도 그대의 소유라지?”

“그렇습니다.”

내가 편해졌는지 이제는 완전한 하대를 하고 있었다.

“부럽군, 역시 나도 사업을 해야 했을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그의 인사치례는 무시하고 소파를 권하며 먼저 자리에 앉았다. 윗 사람을 대하는 예의에 맞는 행동이 아닌지라 장저민의 보좌관이 불쾌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그 시선을 장저민 역시 느꼈는지 자신의 보좌관을 째려보며 말했다.

“천 회장은 내 아랫사람이 아니다. 그에게 불손한 눈을 보내지 말도록.”

“예!”

이내 보좌관이 정수리가 보이도록 고개를 숙이고는 내게 사과를 전했다. 나는 왼 손을 슬쩍 들어 올리며 괜찮다는 제스쳐를 취하고는 장저민의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오, 향이 좋군.”

“산삼 차 입니다. 자연산 삼으로 우려낸 놈이죠.”

“오호, 융숭한 대접에 황송할 따름이군.”

“조부께서 차를 즐기시니 좋은 차들이 꽤 있더군요.”

“흠, 그러고보니 자네의 조부도 한번 뵙고 싶군, 호연지기 넘치는 손자를 키워낸 분이실테니.”

“내후년에 정상회담을 한번 하시죠, 아마도 대한민국의 정상이 되실 분이니.”

장저민이 놀란 표정이 되었다가 이내 부드럽게 웃었다. 내 말의 진위를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크하하, 이러니 내가 자네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구만, 지금 내 고민을 깔끔하게 별것 아니라 치부해버리니···”

내 후년에도 장저민이 한 국가의 ‘정상’의 위치에 있어야만 정상회담에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내 말은 내 후년에도 장저민이 중국의 ‘주석일 것이다’라는 표현을 돌려 말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것은 지금 입지가 흔들리는 장저민의 입장에서는 듣기 좋은 말이었을 테고.

밝은 얼굴로 뒤로 손짓한 장저민, 나에게 사과를 건넸던 보좌관이 중국어로 가득한 서류를 내밀었다.

“자네가 말했던 조건을 후하게 받아들였다 장담하지!”

장저민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흥미롭게 서류를 살피기 시작했다.

시안, 상하이, 우한 등.

제법 중요한 도시라고 볼 수 있는 곳들의 넓직한 부지를 확실히 양보하겠다고 적혀 있는 서류, 각각의 부지에 SKY그룹의 공장이 들어서기에 적합한 모습이기는 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공장부지가 아니었다.

“중국에 사막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너무 뜬금없는 얘기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장저민.

“사막? 그 필요 없는 땅 말인가?”

“넓은 중국에 아쉽게도 넓은 사막들이 곳곳에 분포해 있죠.”

“부정할 수 없는 얘기군.”

“그 사막들을 좀 받고 싶습니다만.”

장저민이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누군가에게 주기에는 분명 어마어마하게 넓은 규모였기 때문이었다.

“전부 내놓으란 얘긴가? 그것은 자네가 생각해도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은가?”

“설마 전부를 달라 하겠습니다. 일부만 떼어 주어도 좋지요.”

“정확히는 어느지역을 말하나?”

중화사상을 널리 전파하고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기를 좋아하는 현 중국에 골칫거리 땅덩이가 있었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는 그런 땅.

“신장 위구르지역의 사막들은 어떻습니까?”

“으음.”

장저민이 힐끗 내 눈치를 살피다 고민에 잠겼다.

“도대체 그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당장은 아니지만 한 5년 안에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뭐, 그런 생각?”

피식 웃는 장저민.

“내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모양이야.”

“장담컨데, 중국의 입장에서 나쁘지 않은 제안이 될 겁니다.”

“완전히 SKY의 사유지로 주어야 하나?”

“내게 준 땅 안에서 만큼은 확실하게 대한민국 법을 우선 적용시켜야 합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주권을 넘기라는 말과 다르지 않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 사막 전부를 그렇게 해달라 하겠습니까? 그중 일부 지역만 얘기 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해보시게, 자네가 원하는 땅의 이름, 넓이 등을.”

“우선, 신장위구르지역의 타클라마칸 사막, 구얼반통구터 사막, 이 두군데로 하죠.”

“그 죽음의 땅을?”

“죽음 위에 새 생명이 태어난다면 SKY의 위상은 수직으로 상승하겠죠.”

“사막을 개발하겠다?”

“사막에 어울리는 방법이 필요 할 겁니다.”

“두바이의 기적이라도 재현하고 싶은겐가?”

“글쎄요?”

장저민의 입장에서 해당 지역들은 정말 쓸모가 없었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오지를 개발하기위해 투자할 바에는 중국의 넓은 땅떵이중 훨씬 개발이 쉬운 지역들이 도처에 널려 있으니, 굳이 사막까지 개발하고 싶지는 않을 터였다.

“이건 뭐, 거부하기 어렵군.”

내 조건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얘기.

“저번에 약속했던대로, SKY의 모든 공장에서도 역시, 대한민국의 법이 우선적용 되어야 합니다.”

“그 부분도 그 서류에 명시해 두었네.”

“그럼 사막 지역들을 살펴보고 정확히 어떤 범위를 받아야 할지 서류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장저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역시 일처리가 화통하군, 좋아 그렇게 하지. 우리 입장에서 쓸모 없는 땅, SKY가 거금을 들여 개발해준다면야, 우리로서 나쁠 게 없겠지.”

내가 내민 손을 맞잡은 장저민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한다.

“아, 이렇게 하는게 어떻겠나?”

“어떤 것을요?”

“아예 SKY그룹이 해당 사막들을 ‘구매’하는 것일세, 그 범위 만큼, SKY의 자치권을 어느정도 인정해줄테니.”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역 제안이었다.

거절 할 필요가 전혀 없는.

나로서는 선물과 같이 느껴졌다.

물론,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분명 내게 ‘준다’라고 말했던 장저민의 말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싸게 사오는 게 이득일테니까.

모래사막을 아무리 뒤져도 1원짜리 한장 찾기 힘들테니까 당연한 일.

“하하, 저렴하게 내줄테니 너무 서운해 하시지 마시게.”

나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내리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럼 조율을 해 보지요.”

< 제 195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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