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94화. >
‘오우야’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대원들의 시가전 근접박투술 훈련은 정말 실전을 방불케 하며 여기저기 피가 터지고 있었다.
날이 뭉특한 가검을 사용해 펼치는 대검술이지만 얼핏 보기에도 그 고통이 이곳까지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이를 악물고 훈련에 임하고 있음이었다.
절로, 본래의 계획보다 1주이상 빠른 것이 이해될 정도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천 회장님.”
국방부 장관이 내게 저 자세로 인사를 해 온다.
원래 저런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고개를 숙이는 꼴을 보자니 내게 원하는 것이 적잖은 모양.
“오셨습니까?”
“하하, 얼굴이 더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예의상 던진 말이겠지만 글쎄.
얼마전에 마피아에게 테러를 당했다는 기사가 전 세계에 뿌려졌을텐데 저런 인사치례라니.
“날파리들이 끌어서 피곤한데, 괜찮아 보이는 모양이군요.”
“기사는 확인했습니다. 회장님 얼굴을 뵈니 기사가 사실이었구나 싶군요.”
“마피아들이야 뭐.”
“하하, 저기 훈련하는 대원들 중 일부가 막아낸 것이죠?”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이니 부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우리 특전사에 자문을 해줄 교관들을 보내주신다고요?”
“예, 적절한 비용만 부담 하신다면야. 이왕이면 특전사들이 이곳 양성소로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비용이라··· 특전사 한 명당 1억원 어떻습니까?”
제법 크게 부르는 국방부 장관.
“몇명이나 파견 하시려고요?”
“그래도 중대 정도 규모는 되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의 주 임무는 아마도 ‘경호, 호송’이 될 것 같습니다.”
얼추 계산했을때 약 200억 규모를 말하고 있었다.
국방부 예산에 비하면야 조족지혈이겠지만 워낙 돈을 안쓰는 놈들이기에 큰 돈을 쓰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 할 테다.
“그 얘기 때문에 오신 겁니까?”
국방부 장관이 내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하하, 얼마전에 위성 발사에 대해서 협의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에서는 SKY 항공우주기술에 허가를 내 주었고요.”
“그렇죠?”
“미국의 GPS기술을 가져오고, 그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역시··· 위성이 필요한 것이겠죠?”
뭔가를 빙빙 돌려서 얘기하고 있는 그.
“예, 맞습니다.”
“대통령께 들은 바로는··· 국가가 해당 위성을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별다른 협의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호오.”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뜨리고는 국방부 장관을 바라보았다.
분명 대통령은 ‘당연히’ 대한민국이 사용할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를 취했지만, SKY와 협의한 부분은 없었다.
허가는 이미 받아 냈으니 지나간 일이고, 앞으로 대한민국이 SKY의 위성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추가적인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 부분을 캐치한 국방부 장관의 의외성이 놀라웠다.
그가 일을 잘하거나, 아니면 주변에 일을 잘하는 보좌진이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만류귀종이라는 말 처럼 결국은 그의 능력으로 인한 것이라는 뜻이 된다.
“군부가 해당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도와달라?”
국방부 장관이 헤벌쭉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역시, 회장님께서는 이해가 빠르십니다.”
“설마 무료봉사 따위를 얘기하러 오신 것은 아니겠죠?”
“하하하, 사람이 염치가 있지 그렇겠습니까?”
“그래요? 그럼 우리 국방부 장관님이 준비해오신 조건을 들어 볼까요?”
국방부 장관이 슬쩍 손을 들자 그의 보좌진 중 한 명이 서류를 내게 내밀었다.
서류의 내용은 제법 흥미로웠다. 국방부 장관 자리를 고스톱 쳐서 딴 것은 아닌지 제대로 준비해왔구나 싶었다.
“전차 기술을 넘기고, 우리가 생산한 전차를 들여놓겠다?”
“이미 SKY그룹에는 국내 최대의 자동차 회사를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연기술의 기술력이야 현 대현과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까?”
“나머지 기술들이야 연구소와 제휴를 맺으면 자연스럽게 교류가 될테고, 우리 국방부 입장에서도 성능 좋은 전차를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게다가 그게 내수라면 더욱.”
“흐음.”
“현재 SKY항공우주기술의 기술투자비가 천문학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장 이곳 SKY시큐리티 인재양성소에도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입을 열 때 마다 내가 기분이 좋아지는 소리만 골라서 하고 있었다.
“해서, 조건이 이러니 무료로 위성을 쓰겠다?”
내 질문에 국방부 장관이 과하게 손사레를 친다.
“설마 그러겠습니까? 적절한 사용료를 지불해야지요. 가능하다면··· 우리 국방부에서도 위성을 가지고 있고 싶긴 합니다만.”
아마도 마지막 저 말이 그들이 원하는 것일 터.
그러나 나는 양보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 부분은 어렵겠군요, 위성을 판매하는 것은.”
“하하, 그러니 사용료를 지불하고 사용하겠다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국방부 장관도 바보는 아니었다.
위성 기술, 우주 관련해서는 얼마든 국가가 SKY그룹을 향해 제재를 가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물론 제재를 가한다고 한다면야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테니 어쩔 수 없이 제재를 가하지 않겠지만, 마음먹고 미친놈 처럼 달려든다면야 나라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제3국으로 회사를 뿌리째 옮겨야 할지도 몰랐다.
또, 곧 대한민국의 정권은 SKY의 손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암암리에 정치인 대다수는 알고 있을테다. 이미 암약하고 있는 천가키즈의 인재들도 움직이고 있을테지만, 알게 모르게 많은 권력이 ‘천가’의 가주인 천혁수. 바로 우리 할아버지에게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 대선 후보, 이어서 당선자에 가장 가까운 존재가 천혁수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는 상황.
그러니 SKY항공우주기술의 위성발사는 아주 순탄하게 흘러갈 수 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국방부 장관이 입에 개거품을 물고 말리더라도 시기만 늦춰질뿐, 위성 발사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입장에서도 SKY항공우주기술이 위성 발사 하는것을 반대할 명분도 필요도 없습니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 ICBM기술을 대한민국이 보유하고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국가전력에 보탬이 되니까요.”
이것 역시 SKY항공우주기술에 대한민국 국방부가 제재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국방력 상승을 국방부가 막는다? 국민들이 과연 현 장관과 정권을 가만히 둘 수 있겠는가?
“사용료 부분에 대해서는 우선 발사에 성공하고나서 다시 의견을 나누시죠?”
긍정적인 말에 만족스러웠는지 국방부 장관이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예, 그 정도 대답이면 만족하겠습니다. 염치없지만 한가지 더 부탁이 있습니다.”
“뭐죠?”
“이왕이면··· 제 임기 기간내에 협의를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피식 웃음이 흘러 나왔다.
“우릴 너무 양아치로 보시는군요?”
돌려 말하지 않고 다이렉트로 묻는 말에 그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다음 정권에 협의가 이뤄지면 SKY가 많은 이득을 취할거라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현 정권 내에서 협의가 되길 바라는 것이고요.”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물끄러미 국방부장관을 바라보았다.
“내년이 되었든, 다음 정권이 되었든, 결국 우리 SKY는 그리고 나는, 원하는 것을 가져갈겁니다.”
“으음··· 예.”
보기보다 낭만적인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와중에 ‘애국심’을 보이다니. 그에대한 평가가 조금 달라지는 느낌.
“특전사 파견은 서두르시는게 좋을 겁니다. 곧, 우리 대원들의 훈련이 마무리 될 것 같으니.”
“모레까지 바로 파견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죠.”
***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손녀 천우희와, 손자 며느리 루시와 잠시 일별하고, 백철웅에게 건네받은 서류를 살피는 천혁수.
“음···”
“회장님께서 백부님께 드리는 선물이라 들었습니다.”
“쯧쯧, 이 놈이 미국을 먹으라고 날 보내더니, 이미 먹어 놓았구나.”
“하하, 일이 쉽지 않습니까?”
“쯧쯧, 일 하는 재미라도 있어야지 이 나이에?”
“그렇습니까 백부님, 편안하게 휴가라고 생각하고 즐기시지요?”
천혁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수야 있더냐? 할애비가 되어서 손자놈 보다 못하단 소리를 들을 순 없지.”
백철웅은 흠칫 몸을 굳혔다.
지금 천혁수가 보여주는 표정은 과거 사채시장을 일통하던 얼굴과 몹시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천혁수가 매우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 놈이, 등따숩고 배부르니 옛날을 잊었더냐?”
그것을 파악했을까 천혁수의 날카로운 혀가 백철웅의 심장을 후벼팠다.
“··· 죄송합니다.”
“우리 같은 돈 벌레들은 평생 쟁취하며 살아야 해, 무슨 말인지 알겠더냐?”
“음, 백부님께서는 내년부터는 제대로 움직이시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할애비가 되어서 판때기는 깔아주어야 하지 않겠더냐? 그래야 손자놈이 미국을 홀라당 먹을 것이 아니더냐?”
천혁수의 그릇에는 무려 ‘미국’이 담겨 있었다.
“하하, 미군들의 전투화를 닦으며 돈을 벌던 내가 이제 미국 놈들에게 고리를 주게 생겼구나.”
어쩐지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은 얼굴이 된 천혁수의 두 눈은 요상하게 번들거렸다.
철웅이 굳게 닫힌 입술을 떼며 말했다.
“그저, 백부님이 가시는 길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린 천혁수가 철웅을 바라보며 말했다.
“허면, 대비를 불러 오거라 대화를 나눠야겠어.”
“예, 백부님.”
자리에서 돌아서 록펠러의 가주를 부르러 가는 철웅의 얼굴도 천혁수의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흥미롭고 재미있다는 얼굴.
“미국이라··· 천가가 정말 하늘이 되려 하는가?”
이내 어깨를 으쓱이고는 백부 천혁수의 명을 받들러 바삐 걸음을 옮겼다.
***
뭐 손만 데었다 하면 다 잘되는 형국이니 눈 앞에 루시가 아른 거렸다.
“휴가라도 가야 되나.”
혼잣말이 들렸을까? 어느새 나타난 호석이 내게 말했다.
“우선, 워싱턴부터 가야하시지 않겠습니까? 루시 아가씨가 눈에 불을 켜고 계실겁니다.”
“아, 그런가요?”
“예.”
‘음’하고 잠시 고민을 하던 내가 읽고 있던 서류 중, 아프간 내에 꾸려진 미군 주둔지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말했다.
“저기에 내가 간다고 하면···”
“안 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절이 날아왔다.
“아니, 루시가···”
“무조건 안 됩니다.”
호석은 단호했다.
“아니 그래도 대원들 사기도 높힐 겸, 미군 놈들 무기도 구경할 겸, 겸사겸사 예?”
“루시 아가씨가 절 죽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게다가 탈레반, 알 카에다와 같은 수니파 놈들의 테러 수법을 교육하신 것은 회장님이셨습니다. 놈들의 수법이 상상을 초월하는데, 그런곳에 회장님이 직접 가신다? 대원들의 피로도가 상당 할 것입니다. 빅보스를 지키는 것이 대원들의 제일의 원칙이니까요.”
“어휴, 이건 뭐, 돌이랑 얘기를 하는 것 같네요.”
하는 수 없이 포기한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호석이 ‘쩝’ 거리며 미안했는지 부드럽게 물어왔다.
“심심하십니까?”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로스차일드도 끝내버리고 나니 삶의 평화가 찾아왔다. 어떻게 골탕 먹일까? 어떻게 조져야 할까? 어떻게 괴롭혀야 잘 괴롭혔다고 소문이 날까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어째서 고통스러운지 모르겠다.
“쩝, 대원들 보내고 나면 바로 미국으로 가야겠죠?”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린 호석이 말했다.
“아아, 그게 싫으셨던 겁니까?”
“어우··· 전화로도 힘든데 직접 얼굴까지 맞대면···”
가까스로 웃음을 참는 것 같은 호석이 무엇인가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장저민에게 이렇다 할 연락이 없군요.”
“그러네요, 급하지가 않은가? 요즘 많이 흔들리고 있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그 놈일텐데.”
때마침.
매우 공교롭게도 품 안에 휴대폰이 몸을 떨었다.
절로 나와 호석이 눈을 마주쳤다.
“양반은 못 되는 모양입니다.”
“그러네요.”
누군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해서 전화를 받자마자 제법 유창한 중국어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전화 받았습니다.”
-나 장저민이오.
“예, 그런것 같았습니다.”
-으음? 예지 같은 것도 하시오?
“뭐 천기를 읽었다고 하죠.”
-푸핫, 그새 농이 더 느셨소?
과연 얼마나 준비를 해 왔을지 넝쿨째 굴러온 황금호박의 속이 얼마나 꽉 찼을지 궁금해졌다.
“회의는 끝난 겁니까?”
-그대가 만족할 만한 조건이라 자부하오.
“호오, 기대 되는데요?”
-언제 오시겠소?
< 제 19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