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93화 (193/458)

< 제 193화. >

윌리엄이 떨리는 동공을 숨기지 못하고 날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여유롭게 턱짓으로 어서 사인하라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고는 말했다.

“언론에는 서비스좀 해 드리지, 당신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

윌리엄이 또르르 눈알을 굴려 다시 서류를 바라보았다. 서류의 내용은 로스차일드 뱅크가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에 관련된 서류였다. 한 마디로 로스차일드 뱅크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 대한금고의 점포가 입점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로스차일드 뱅크가 가지고 있을 부채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새로운 인프라가 조금 성가시겠지만 세상에 돈으로 안되는 인프라는 없는 법이니까.

“체이스와 삭스가 가만히 두고 볼까?”

분에 넘치는 간섭에 픽 웃으며 말했다.

“당신 모가지나 걱정해 오늘 떨어질지 내일 떨어질지. 살고 싶은지, 아닌지 그것만 결정하면 될 일이야, 여차하면 부채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체이스와 삭스, 그리고 대비 할아버지까지 함께해서 로스차일드 뱅크를 갈라먹으면 될 뿐이고.”

완벽한 외통수였다.

이미 신뢰를 잃은 은행을 삼키는 일 쯤이야 식은 죽 먹기나 다름 없었다. 또한 로스차일드 뱅크를 비호하는 정치인듯이 하루가 다르게 물갈이 되는 과정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늙은 토끼가 발버둥 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천천히, 천천히.

나는 놈의 손과 발을 옥죄었고 잘라내었다.

그런 과정의 말로가 지금이었고 현재였다. 현재 윌리엄이 처한 상황이 말이다.

애초부터 지금을 염두하고 설계한 판때기였다. 911테러에서 커다란 이득을 보기는 어려웠다. 도덕적 윤리적 비판도 문제지만, 자칫 그것으로 커다란 이득을 가져온다면 미국의 눈총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상황에 불쑥 튀어나온 로이드라는 놈이 찢어죽이고 싶게 예뻤다. 적절하다고 판단했으니 말이다. 상황 자체는 열받았지만 SKY그리고 천가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로스차일드 뱅크라는 거대 금융기업을 삼킴으로서 한 순간에 미국진출이 가능해 지는 것이니까.

체이스와 삭스, 그리고 내 친정이 되어버린 록펠러가문까지. 그들과의 교류와 인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면 힘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그것들 모두 차근차근 준비되어 왔다고 보는게 옳았다.

내말을 이해했는지 윌리엄은 기운 빠진 모습으로 손을 뻗어 만년필을 집고는 서류에 서명하기 시작했다.

“좋은 결정이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한국의 말이 있지.”

“크음···”

“보르도에서 와인이나 마시면서 편하게 살라고, 현 시세에 맡게 한푼도 빠짐없이 지급 해 줄테니.”

“부동산 가치도 네놈이 내려놓지 않았던가?”

아직도 프라이드가 남아있는지 기세등등하다.

윌리엄의 말처럼 미국의 부동산 가치 역시 내가 폭락시켰다. 부쉬를 꾀어서 말이다.

나는 인심이라도 쓴다는 듯 윌리엄에게 말했다.

“조금 더 쳐주지, 폭락 이전의 시세는 불가능 하더라도.”

“그것 참 고맙군.”

한껏 비꼬는 윌리엄의 꼬라지에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얼마전에 지하에서 금화를 주워서 말이야, 마침 다음 소더비에 금화를 처분할 생각인데, 그 정도 자금이면 네 놈의 부동산을 사주고도 남을 것 같아서.”

“··· 내가 아는 금화를 말하는 건가?”

“오? 알고 있었던가?”

“네 놈은 도대체···”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었어야지 윌리엄 마이어 로스차일드. 자식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후계자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 삶을 통해 깨달았다면 부디, 다음 삶에는 제대로 하도록.”

할 말을 끝내고 고개를 돌려 호석을 바라보았다.

호석이 나의 눈짓에 테이블위에 올려진 윌리엄이 서명한 서류를 품에 잘 갈무리 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쪼록 다시 볼 일 없었으면 좋겠군.”

짜증난다는 듯 손짓하는 윌리엄을 뒤로 하고 망설임 없이 바깥으로 나왔다.

내가 나오자 마자 경찰들의 가드를 뚫고 달려드는 취재진.

예상했던 것이기에 나는 당당히 걸음을 옮겨 카메라 앞에 섰다. 밝게 빛나는 플래시에 최대한 인상을 찌푸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쏟아지는 질문에 답했다.

“무슨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어째서 이곳에 찾아오셨습니까?”

“마피아의 테러에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중구난방 쏟아지는 질문들을 호석이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질문은 한 분씩 받겠습니다.”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들어올린 아름다운 여 기자가 질문했다.

“오늘 이곳에 방문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윌리엄 마이어 로스차일드와 꼭 나눠야 할 대화가 있었습니다.”

“그 대화가 무엇인지 답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업적인 부분은 제외하고, 그에게 사과를 받고 싶었습니다.”

‘사과’라는 단어에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마피아에게 의뢰한 것에 대한 사과입니까?”

“그렇습니다. 비지니스 맨으로서 넘어선 안될 선을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로스차일드와 어떤 비지니스가 엮였기에 그가 그런 방법을 사용했습니까?”

“그 부분은 답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럼 사과는 받으신 겁니까?”

“그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으며 시칠리아의 보스 비지니와 카모라의 보스 파벌이 그가 흘리듯 한 얘기를 귀담아 듣고 잘 보이기 위해 실행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에 거짓은 없어 보였기에, 나는 그의 말을 믿기로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웅성거리는 기자들.

내 말은 해석하기에 따라 윌리엄이 ‘무죄’라는 듯이 들리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구, 그러니까 제 3자가 하는 말도 아니고,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암살 혹은 테러의 대상이었던 피해자가 직접 하는 말이니 그들의 표정이 애매하게 변한 것이었다.

“그 말씀은, 현 로스차일드가의 가주가 죄가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부분은 법정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천우진씨는 로스차일드가를 용서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용서하고 말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진심어린 사과를 들었으니 그걸로 만족합니다. 실제로 별 피해도 없었고 말입니다. 여기 우리 SKY시큐리티의 대표께서 직원들의 훈련을 관장하는 이상, 그 누구도 감히 나를 헤하지 못할 거라 확신합니다.”

전 세계에 악명을 떨치는 이탈리아의 마피아들.

그런 마피아들의 총공세를 버텨낸 SKY PMC.

자연스럽게 기자들의 질문은 호석에게 닿았다.

“SKY 시큐리티, 거기에서도 PMC부문의 직원들이 모두 ‘특수부대’출신이라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PMC직원 뿐만 아니라, SKY 가드, 보안, 경호, 경비 모든 부문에 다양한 특수부대 출신 직원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듣기로는 따로 인재양성소를 만들고 그곳에서 훈련을 진행한다 들었습니다.”

“의뢰인의 안전, 의뢰소의 안전을 위해 만전을 기하는 만큼 훈련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마피아의 공격에도 피해가 전무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찰과상을 입은 대원들도 없었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마피아의 공격 전날까지, PMC의 대원들이 로마로 도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전에 마피아의 공격에 대하여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 부분은 보안상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이탈리아 정보부도 마피아들의 동향을 세세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 사설 기업, 사설 업체의 정보력이 이탈리아의 정보부를 앞선다라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는 질문이기에 대답을 하지 않은 호석.

“SKY시큐리티의 대인경호 의뢰비가 세계최고 수준이라는데 사실입니까?”

“세계 최고 수준의 인력을 사용하는 일에, 세계 최고 수준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우리 SKY에는 최고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음을 말씀드립니다.”

호석의 말주변에 나는 ‘호오’하고 감탄하며 대원이 열어준 차량에 올랐다. 그제야 호석도 쏟아지는 질문들을 무시하고 차량에 따라 탑승한다.

“이야, 카메라 마사지 조금만 받으시면 정치인 해도 되겠던데요?”

내 농담에 호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바닥을 내민다.

“보이십니까? 땀 났습니다. 회장님과 하는 아침훈련을 제외하면, 오랜만에 땀을 흘렸습니다.”

“큽, 왜요? 체질인 것 같은데?”

“기분탓입니다. 기분탓.”

“가시죠, 윌리엄이 넘긴 서류는 바로 할아버지에게 전달 해 주시고요.”

“예, 회장님. 백부님이 좋아하시겠습니다. 로스차일드 뱅크를 삼키다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는 할아버지라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할테다.

‘이 놈이, 할애비를 허수아비로 세우는구나’하고 말이다. 본인이 직접 발로 뛰며 쟁취하는 것을 즐기는 할아버지의 입맛에는 어울리지 않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물론 ‘기뻐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돈 귀신이 돈을 싫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니까.

“해당 자금은 대한금고에서 지급하라고 해 주세요.”

호석이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본다.

“분명 금화를 처분한 자금으로···”

“아, 그건 늙은 토끼 약 올리려고.”

“그렇군요.”

“할아버지 사업에 제 돈을 쓸 순 없잖아요?”

“그렇습니까?”

“제 돈은 제 돈이고, 할아버지 돈은 제 돈이죠.”

“예?”

“출발.”

“아··· 예.”

금산분리라는 개똥 같은 법 때문에.

대한금고에 잠들어 있는 내 피같은 돈들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물론 명의를 돌리거나 ‘대출’이라는 제도를 이용해서 자금을 융통해도 되겠지만 일단 보는 눈이라는게 있으니 아직은 참고 있는 와중이었다.

곧, 내년 대선이후 할아버지가 대통령이 된다면, 가장 빠르게 없앨 법중 하나가 바로 금산분리였다. 예외를 둔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그거야 입법부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천가 키즈들이 알아서 움직일 테니, 나는 잠시 ‘기다림’만 가지고 있으면 될 일이다.

할아버지가 키를 잡는다면, 대한민국이라는 함선은 SKY를 위해 순조롭게 항해해 나갈 것이니까.

***

한국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것은 마나님께 한 보고··· 하, 유부남의 삶이란.

어쨌든, 그게 아니고 PMC대원들의 훈련성과를 확인 하는 것이었다.

대테러훈련이라는 주제로 시작한 정말 악랄한 훈련, 놀랍게도 그 훈련에서 우리 PMC의 대원들의 훈련성과 달성률은 모두 85퍼센트를 웃돌고 있었다. 아직 훈련 계획이 2주나 남은 상황에서 100퍼센트 이상 달성률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원들 성과가 훌륭하네요.”

“이를 갈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예, 이번 회장님의 ‘테러’사건도 대원들의 사기증진에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의 사기증진인지 모르겠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감히 마피아 놈들이 회장님을 위협한 것도 한 몫을 했지만, 당시 회장님이 하셨던 발언 역시도 한 몫을 거들었습니다.”

“발언이요?”

“대원들을 믿으신다는 그 말씀 말입니다.”

“아아.”

그날 호석을 제외하고도 운전을 하고 있던 대원이나 지근거리에서 경호를 담당하던 대원들이 뜨거운 눈빛을 쏘아내더라 싶었더니, 여기서 이런 아웃풋이 되어 돌아올줄은 몰랐다.

“사실, 지금의 대원들에게 회장님은 은인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우리 대원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한 거라고는 ‘돈’을 넉넉하게 주는 일 뿐이었다. IMF라는 시대상과 맞물려 지천에 돈 없는 사람들이 널린 시절부터 시작한 천가키즈 사업, 그게 이제는 이렇게 돌아오고 있었다.

신뢰와 믿음이란 것으로 말이다.

“복지수준 역시 최고가 아니겠습니까? 레저시설은 물론 숙박시설들 역시 거의 무료에 가깝게 운영하고 계시니 대원들이 더욱 심혈을 기울이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뿐만 아니라 사내 경쟁 역시 빡센 편이다 SKY그룹은.

인사고과 점수 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 처럼 어렵다. 단순하게 사내정치를 잘 한다고 고점을 받지도 않는다. 철저한 성과제를 표방하고 있기에 객관적인 심사가 들어간다. 그것은 PMC대원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투자한 돈이 있는 만큼 ‘해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나친 물의를 일으킨 대원도 없으니와 만약 물의를 빗는다면, 아마 ‘해고’가 아닌 다른 방식의 ‘제거’가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PMC뿐 아니라 SKY시큐리티의 여러 파트에는 ‘주먹패’출신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평생 손가락질 받던 ‘건달’에서 ‘회사원’이 되었으니 좋아하고 충성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건 그렇고, 국방부장관이 보자고 했다죠?”

“예, 회장님.”

“흐음···”

국방부 장관이 나를 찾았다.

물론 제 놈이 이곳으로 발걸음을 해야 날 만날 수 있을테지만, 어쨌든 그도 뭔가 노림수가 있으니 날 만나려는 것일테다.

“뭐 때문일까요?”

“짐작하기로는 파병갈 군인들의 훈련 목적일 것으로 파악됩니다.”

지난번에 협의된 내용이 있으니 굳이 그 목적으로 날 찾아올거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어도 있을 터.

“일단 뭐, 보면 알겠죠.”

“예, 약 10~15분 안에 도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 단상으로 오라고 하세요, 훈련이나 구경하고 있겠습니다.”

“예, 회장님.”

< 제 193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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