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91화 (191/458)

< 제 191화. >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상황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계획했던 그대로, 예상했던 그대로 윌리엄이란 늙은 토끼놈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예금 해지는 밀물처럼 쏟아졌고, 평판은 땅에 떨어졌으며 이탈리아 정부와 사이가 틀어졌고, 미 정부와도 대외적으로는 사이가 틀어졌다고 봐야 옳았다.

어쨌든 경제인이 마피아와 어울렸다는 것이 드러났으니 늙은 토끼를 비호하던 세력들도 그와 거리를 벌릴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SKY그룹의 보안 및 용병업체 세계적인 마피아를 처리하다!]

[국제범죄조직의 테러에도 끄떡없는 SKY PMC]

[테러범 243명 사살, 피해는 전무. SKY PMC 그곳은 어떤 곳인가.]

언론은 로스차일드와 마피아놈들의 유착관계도 조명했지만, 마피아의 공격을 가뿐하게 방어해낸 SKY PMC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SKY PMC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으니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CIA도 FBI도 ‘피해’가 두려워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던 범죄조직의 수뇌부들을 일거에 처리했다고 알려졌으니 그 파급력은 더욱 컸다.

정호석 대표의 전화가 바쁘게 울리는 것만 봐도 세계적으로 SKY 가드&시큐리티와 PMC의 위상이 수직상승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웃기게도 상황이 이렇게 변하니 의도치 않게 CIA와 FBI는 감사를 시작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은 뉴욕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사설경호업체, 사설용병대가 소탕할 수 있는 범죄조직을 공권력이 여태껏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언론과 여론의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로스차일드, 그러니까 늙은 토끼와 연관관계가 조금이라도 나타난다면 옷을 벗어야 할 지경까지 치달았다.

-크하하하, 미스터 천, 정말 큰 일을 해주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것의 결과로 부쉬가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아프간 때문에 바쁜 국가 정상의 일정을 소화하는 그가 내게 친히 전화를 할 정도로 말이다.

“다, 살자고 하는 짓이죠.”

-푸핫, 타박상 하나도 입지 않았다죠?

“예, 우리 직원들이 워낙 실력이 좋아서. 사전에 공격 해 올거란 첩보도 있었고요.”

-로스차일드가 더러운 짓거리를 일삼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정도로 과격하게 움직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요.”

-미국에서 로스차일드 뱅크의 이미지는 끝났습니다. 범죄조직과 붙어먹는 은행이 신뢰도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이죠.

“그렇군요.”

-천 덕분에 다른 금융업계 종사자들만 노나게 생겼군요.

부쉬의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럴리가 있겠는가? 감히 내가 깔아 놓은 판때기에 어설픈 타짜 놈들을 앉힐수야 없는 일.

또한 언론이 하도 시끄럽게 SKY에 대해서 떠들고 있으니 우리 그룹의 인지도가 크게 상승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직까지는 ‘전자’로 혁신을 부르는 회사정도로 치부하고 있던 사람들도 도대체 SKY란 회사가 무엇일까를 궁금해 하고 있었으며, 구골에 일간, 주간 검색어 1위에 SKY그룹이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런 시기를 놓칠 내가 아니었다.

마침 부쉬에게 전화도 왔고.

“미스터 프레지던트.”

-말씀하세요, 프랜드.

이제는 부쉬가 내게 ‘친구’라고 호칭하고 있었다.

“민주당 인사들의 모가지가 날아가겠군요.”

-후후후, 말이 필요 없죠.

로스차일드의 뻘짓으로 인해 CIA, FBI를 비롯해 로스차일드뱅크의 뒤를 봐주던 정계 인사들이 미친듯이 썰려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탈리아 정부와의 재판에서 늙은 토끼가 이기게 되더라도 그때쯤이면 이미 그의 팔과 다리는 모두 잘린 상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 SKY가 선물을 좀 받아도 되겠습니다?”

전화기 너머 부쉬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물이라. 뭘 원합니까 마이 프랜드, 마음 같아서는 주라도 하나 내주고 싶군요.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파격적인 발언이었으나, 고작 ‘주’하나 먹자고 헐떡 거릴 만큼, 나의 통은 작지 않았다.

“당분간 금융계가 시끄러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하겠죠, 그간 로스차일드 뱅크가 먹던 파이가 있으니까요, 지금 현재 JB모간, 골드만글러브, 그리고 록펠러가문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죠, 물론 일본쪽과 영국쪽에서도 바쁘게 움직이지만.

“거기에 슬그머니, 대한민국 은행이 끼어들어도 됩니까?”

부쉬가 알겠다는듯 ‘아아’하고는 말을 잇는다.

-분명 프랜드의 가문에도 은행이 있었죠?

“예.”

-대한민국 최고 은행이고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공신력은 충분하니, 자유를 표방하는 미국에서 천가의 은행이 진출하는 것을 막아 낼 명분이 없군요.

허락이었다.

복잡한 절차 따위는 무시해도 좋다는 그런 허락.

-힘을 실어 줄 수는 없습니다. 그 정도는 이해해주길 친구.

편안하게 말하는 부쉬에게 나는 자연스레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편안하게 말했다.

“물론이지 친구, 나는 그저 일이 없어 심심해 하고 계실 할아버지를 위해, 할 일을 만들어 드릴 뿐이야.”

-그렇다면야.

부쉬의 말은 다른 은행 혹은, 금융사들과의 경쟁은 부쉬가 힘을 실어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직접 부딪히고 이겨내 ‘파이’를 가져가란 뜻이었다. 정계의 압박은 없을 거라는 확신만 있다면야, 다른 금융계의 파이를 빼앗아 오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잠자는 돈 귀신이 지금 한국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계시니까 말이다.

“조만간 봅시다 친구, 우리에게 아직 아프간 출정이 남아있으니.”

-그러지, 곧 주둔지가 완벽하게 완성된다고, 미친놈들의 테러가 끊이질 않고 있지만.

“그곳에서도 시칠리아와 카모라 마피아놈들에게 보여줬던 것 처럼, 탈레반과 알 카에다 놈들에게 ‘공포’가 무엇인지 우리 SKY가 보여주지.”

-말만 들어도 든든하구만, 그럼 이만.

전화를 끊고 만족감에 헤벌쭉 웃어버렸다.

오랜만에 정말 만족감이 올라왔다.

1+1 = 2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1+1 = 10이 되어 돌아왔으니 만족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늙은 토끼를 처리하는 일이 부쉬에게 큰 도움이 되어 다시 그 도움은 우리 가문으로 돌아왔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회장님.”

어느새 바쁘게 전화를 주고받던 정호석이 곁에 와 있었다.

“예, 술술 풀리네요 일이.”

호석이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SKY 가드&시큐리티와 PMC에 인력을 보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의뢰가 쏟아지나보죠?”

“예.”

겨우겨우 적자만 면하고 있던 계열사였다.

투자대비 아웃풋이 매우 구렸다는 얘기다. 그나마 대한금고와 SKY그룹의 계열사들이 보안업체로 SKY 가드&시큐리티와 PMC를 고용하지 않았다면 놀라울 정도의 적자를 감당했을테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호석의 입꼬리가 들어올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

“고급화 전략으로 갑시다.”

내 말에 호석이 ‘예’하고 크게 대답한다.

내 말을 제대로 이해했나 싶어 물었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피식 웃은 호석이 주변을 살피다 작게 말한다.

“바가지 왕창 씌우겠습니다.”

완벽하게 이해한게 맞았다.

빙그레 웃으며 엄지를 척 들어올려주고는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열심히 카메라 렌즈를 향해 억지웃음을 짓고 있을 할아버지에게 오랜만에 손자가 효도를 할까 싶어서였다.

지이이잉, 지이잉.

막 전화를 하려는 찰나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

번호를 확인하니 미국이고, 미국에서 내게 전화할 사람은 많지 않으니 대충 누군지 예측할 수 있었다.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고 밝게 전화를 받았다.

“루시!”

-우진! 이 망할 남편놈이!

거친 언사에 순간 벙찐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무슨?”

-무슨? 무슨이라고? 이탈리아에 남아서 할 일이 그렇게 위험한 일인줄 알았으며 우리 태양이와 별이가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을거야!

쩌렁쩌렁 울리는 루시의 목소리에 호석이 슬금슬금 뒷걸음질로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보였다.

스피커폰 기능이 없는 휴대폰인데도 스피커폰 기능이 있는 것처럼 주변에 있는 PMC대원들의 귀에도 들릴만큼 수화음이 컸다.

“아니, 그건 마피아 놈들이 미쳐가지고···”

-됐어! 어쩐지 나를 급하게 보내더라니! 이렇게 어마어마한 짓을 저질러!

태어나 처음 겪는 ‘와이프의 잔소리’라는 상황에 난처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경험자가 필요한 상황 뒷걸음질 치는 호석을 바라보니 그의 눈에는 ‘죄송합니다. 그저 고개를 숙이는게 최선입니다.’하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어떤 예쁜말을 골라야 할지 그 어떤 순간부다 바쁘게 움직이는 뉴런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루시야, 그리고 루시의 뱃속의 태양이와 별이도 너무나 소중한 존재지. 아마 루시와 태양이 별이가 없다면 난 삶의 의미를 잃을지 몰라, 그런데 어쩌면 위험할수도 있는 상황에서 루시를 먼저 보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잖아?”

-그러니까! 우진도 같이 왔어야지! 뭐하러 위험하게 이탈리아에 남았어!

“나는 자신있었어 절대로 다치지 않을 자신. 실제로 기사는 모두 사실이고, 우리 PMC대원들도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았다니까?”

-운이 좋은거야! 다음에도 그럴 수 있으리란 보장이 있어?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것을 못 봤냐고!

멀리서 호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이 보였다.

‘회장님, 그냥 닥치고 미안하다고 하십시오.’하는 것만 같았다.

“미안해 루시, 다음부터는 위험한 일이 있으면 피할게.”

-미안하다면다야?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태양이랑 별이가 어떻게 될지는 생각해보지··· 앞으로··· 그래서··· 계속해서··· 어? 그러면··· 그래서··· 그렇게··· 어?

루시가 이렇게 말이 많고 잔소리에 재능을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는 걸 오늘 처음 알 수 있었다.

밝기만 했던 내 얼굴은 삽시간에 초췌하게 변하고 있었다.

***

천혁수가 잔뜩 뿔이난 표정으로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백부님, 회장님은 무탈하시다는 기별을 받았습니다.”

“이놈아, 그래도 할애비 마음이 어디 그렇더냐? 손주놈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안심이 되지.”

철웅은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호석이에게 따로 언질을 두겠습니다. 통화가 끝나는 대로 바로 백부님에 연락을 달라고요.”

“후우, 오냐. 도대체 무슨 통화를 이리 오래하는지, 벌써 한시간이 넘지 않았더냐?”

철웅은 무엇이 웃긴지 아랫입술을 꼭 깨문다.

그것을 놓칠 천혁수가 아닌지라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통화상대가 누군지 아는 모양이구나.”

“예, 백부님.”

“누군데?”

“루시 아가씨입니다.”

“아아, 우리 손주며느리.”

“예.”

“무슨 통화가 이리 길더냐?”

이내 피식 웃은 철웅이 말했다.

“듣기로는 단단이 뿔이난 루시 아가씨의 잔소리를 듣고 계시다고···”

천혁수가 ‘푸핫’하고 크게 웃는다.

“크하학, 크음, 크크, 후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천혁수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마누라 잔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법이지.”

철웅은 잔뜩 공감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충 이해는 가는구나, 그 위험한 일을 저질렀으니··· 아마 우진이 녀석은 상상도 못했을 게다.”

“예, 그러신 것 같았습니다.”

“나 대신 루시가 잔소리를 해주는 것 같으니 되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달력을 한 번 바라본 천혁수가 말했다.

“봄부터는 대선으로 바쁠 것 같으니··· 손녀나 보러 미국이나 갈까 싶구나.”

철웅이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준비할까요?”

천혁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에잉, 썩을 놈.”

“예?”

“철웅아, 내가 이 나이에 손주놈 눈치나 보면서 미국에 갈지 말지를 고민해야겠더냐?”

철웅이 이번에도 웃음을 참느라 애썼다.

어느새 천혁수도 천우진의 오더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도무지 이 놈이 너무 뛰어난 제갈량이니 장단에 어울리지 않을수가 없구나.”

철웅은 잠시 말을 고르다 천혁수가 좋아할 만한 얘기를 꺼냈다.

“설마 우진이가 백부님의 휴가 스케쥴까지 조정하려 하겠습니까? 백부님이 쉬고 싶으시다면 쉬시면 됩니다.”

흐뭇하게 웃은 천혁수가 말했다.

“크흠, 그러면 살포시··· 미국행을 준비 해 보거라.”

“예, 백부님.”

“명분이 없는데, 명분이···”

“루시 아가씨의 마음을 달랜다는 명분은 어떨까요?”

“호오, 확실히··· 잔소리에 시달린 우진이 녀석도 좋아 할 것 같구나.”

“하하, 예. 호석이에게 미리 언질 해 두겠습니다.”

“오냐.”

***

전화를 끊자마자 내 입에서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후우.”

제법 거리를 벌렸던 호석이 다시 내게 다가왔다.

“피곤해 보이십니다.”

“진이 다 빠지네요.”

“하하···”

호석을 살피니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

“하실 말씀이 있나봐요?”

“백부님께서 전화를 바라셨습니다.”

“아아, 할아버지도 걱정하셨나보네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쯧.”

쉬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이 전화를 들어올렸다.

“예, 할아버지.”

-오냐, 루시에게 혼구녕이 났다고?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혼구녕이 낫다고 묻는 할아버지의 음색에서 ‘즐거움’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즐거우신 모양이에요?”

-크흠, 그럴리가.

“맞는 것 같은데요?”

-뭐, 루시가 말은 바로 했겠지, 녀석 네가 너무 위험하게 일을 처리하니 그런 것 아니겠느냐?

“글쎄요, 할아버지 과거사를 알면 루시가 기절할지도 모르겠는데요?”

-흠흠, 어쨌거나 호석이에게 들었느냐?

“뭘요?”

-미국으로 휴가나 갈까 싶구나, 우리 루시 마음도 달래줄 겸, 우희도 볼 겸, 겸사겸사.

할아버지의 속셈이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마침 나도 할아버지를 미국으로 인도해야 할 입장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잘 됐네요.”

-으음···

갑작스레 전화기 너머 침묵이 흐른다.

눈치 귀신 할아버지가 뭔가를 느끼신 모양이다.

-갑자기 가기가 싫어지는구나.

“봄까지 크게 할일 없으시죠?”

-크음··· 아플 것 같구나, 요즘 건강이 말이 아니야 너무 바빠서일까?

“에이, 괜찮아요 할아버지 100살 넘게 산다고 제가 부처님한테 들었습니다.”

-기독교 믿는다.

“무교시잖아요.”

-또 무슨일을 시키려고?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들으면 아주 좋을 일?”

-킁킁, 어디서 돈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빙고!”

< 제 191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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