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90화 (190/458)

< 제 190화. >

한가로워 보이는 유럽의 마을.

해발고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인 이탈리아에서 흔치 않게 그나마 높은 언덕지대에 자리한 저택 주위에 얼굴에 복면을 쓴 사내들이 저마다 소총을 하나씩 들고는 천천히 거리를 좁혀왔다.

저택 반경 약 6km주위에서부터 천천히 도보로 이동하는 사내들 그들끼리의 거리가 처음에는 수십미터에서 수백미터에 달하더니 어느새 20미터 내외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만큼 저택에 가까워졌다는 뜻.

언뜻 언뜻 점처럼 보이는 존재들이 똑같이 반대편에서 점점 커져가는 것으로 보아 저택 주위를 둥그렇게 포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반경 3km지점에 도착했을때.

복면인 중 한명이 긴장감이 올라왔을까 어깨를 양 옆으로 털며 다시 소총을 쥔 손을 점검한다.

찰나.

멀쩡하던 땅바닦이 부르르 떨리더니 흙이 튀어오른다.

“헙.”

놀라서 뒷걸음치는 복면인은 어느새 땅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크윽.

아주 작은 신음 소리와 함께 정적이 찾아오고, 가장가까운 동료가 그와 약 20미터정도 거리가 있기 때문인지 복면인의 변고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잠시 후.

다시 한번 땅이 부르르 떨리더니 아까의 복면인처럼 보이는 사내가 아무렇지 않게 땅에서 불쑥 솟아나더니 소총을 쥐고 주변의 동료들과 걸음을 맞춰 포위망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묘하게 그의 덩치가 조금 더 커진 것 같았다.

저택 반경 1.5km지점.

이제 복면인들의 간격은 약 12미터 내외였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거야?”

이탈리아 언어로 불만을 토해내는 데 옆에 선 동료는 말이 없었다.

“이봐 샤를레? 왜 대답···”

시끄럽게 주둥이를 나불대던 사내가 풀썩 뒤로 넘어간다. 모가지가 부러질듯 뒤로 바짝 당겨지고 뒤통수에서는 두피가 터져나가며 피가 흐른다.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지고 잠시 후.

투웅.

묵직한 소음이 귓가를 어지럽혔다.

“제기랄! 저격이다! 뛰어!”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저택에서 몇 발의 소음이 더 울린다.

투웅, 투웅, 투웅, 투웅.

천천히 저택을 바라보며 포위망을 좁히던 복면인들이 빠르게 저택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저택의 주변은 뻥 뚫린 초원이었다. 약간의 턱이 존재하는 오르막길.

저택에서 이곳을 내려다보는 지형이었기에 조금만 달려도 금방 숨이 차오르는 구조였다.

투웅, 투웅, 투웅.

바쁘게 달리는 복면인들 사이, 여유롭게 걸으며 소총을 들어 올려 조준하는 인물들이 있었다.

탕! 탕! 탕!

그들의 총구는 놀랍게도 같은 복면인들을 향해 있었다. 어느새 복면따위는 거추장스러웠는지 벗어던진 그들의 얼굴은 이탈리아 서양인이라고 보기 어려웠으며, 어깨와 발뚝 부분에는 선명하게 빛나는 태극마크가 달려 있었다.

***

투웅, 투웅.

낮게 깔리듯 무거운 소리가 들리는 저격총 소음.

360도를 살펴볼 수 있는 망루가 있다더니, 저 위에서 저격을 하고 있나보다.

탕! 탕! 탕!

소총소리가 지근에서 들리기 시작하는게 마피아놈들이 이곳 주변까지 깊숙하게 도달한 모양.

“시칠리아의 머리와 카모라의 머리는 마킹이 붙어 있습니까?”

“예, 곧 제압 당할 겁니다.”

바깥에서는 대원들이 피가 낭자한 학살을 벌이고 있을 상황, 나는 한가롭게 잉글랜드 블랙퍼스트 블랙티를 마시며 한가롭게 책을 읽고 있었다.

내게 총알 파편도 닿지 않으리라 확신을 하는 대원들을 믿는 행위였다.

“몇 명이나 된다고요?”

“243명입니다.”

“쯧. 경찰에 연락은요?”

“했습니다만 역시나.”

고개를 주억거렸다. 윌리엄놈이 이미 무슨 수를 써 놓은 모양,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한지 벌써 10분이 지나고 있는데 경찰차를 구경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예측할 수 있었다.

“모두 제압하는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슬쩍 손목을 들어올려 작전용 전자시계를 확인하는 정호석.

“작전 개시 11분 03초가 지나고 있으니, 9분내로 종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가리들은요?”

“역시, 5분내로 무전이 올겁니다.”

“좋네요.”

***

탕! 탕! 탕!

퉁! 퉁! 퉁!

“시작 됐나 보군.”

파벌의 말에 비지니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놈들이 도망갈 구멍은 없어, 윌리엄 그 늙은여우에게 보고를 해도 좋겠군.”

파벌이 태우던 시가를 비벼끄고는 전화기를 만지고 있는 비지니에게 말했다.

“슬슬 우리도 저택으로 가야하지 않겠나?”

“음, 확실히 완전히 끝난 뒤 하는 보고가 더 좋겠지.”

파벌이 태우던 시가를 끄니, 눈치껏 그들의 부하가 승합차의 문을 열었다. 비지니와 파벌은 자연스럽게 승합차에 올라타고, 승합차는 천천히 저택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저택의 지근거리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부하들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시작한 비지니와 파벌.

“멈춰.”

파벌의 명령에 멈추어선 차.

아직 저택까지 1km가 남은 지점. 초원위에 쓰러져 있는 부하들이 보였다.

“······”

비지니도, 파벌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쨍그랑.

차량의 앞 유리가 깨지며 운전석에 앉아있던 사내의 뒤통수에서 핏물이 튀고, 뒷자리에 앉아있던 파벌의 정강이에 총탄이 박힌다.

“크악.”

“이런 미친!”

1km거리에서 저격이라니, 비지니는 매우 놀란 모습을 보였다. 엄청난 훈련을 받은 저격수나 가능한 거리기 때문이었다.

“도대체가.”

드르륵.

승합차의 문을 열고 자세를 낮춘 뒤 서둘러 파벌을 끄집어낸 비지니가 승합차의 뒤쪽으로 거의 포복하듯 움직였다.

“후우, 후우.”

대단한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급박한 상황이기에 호흡이 가빠진 비지니.

“괜찮나?”

“크윽, 괘, 괜찮네.”

고개를 빼꼼 내밀어 주변 상황을 살피는 비지니.

마침 자신의 곁으로 복면을 뒤집어쓰고 소총으로 무장한 부하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빨리 와! 파벌이 총에 맞았다!”

부하들은 대답도 없이 파벌과 비지니를 둘러싼다.

“제기랄, 진통제 뭐 없어?”

다급한 비지니의 음성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철컥.

비지니의 뒤통수에 닿는 후끈한 총구의 열기.

“무, 무슨.”

천천히 뒤 돌아선 비지니의 두 눈에, 자신의 부하인줄 알았던 복면인들의 얼굴이 들어왔다. 모두가 한 눈에 보아도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

비지니와 파벌은 그 순간 깨달았다.

이미 자신들의 공격을 예견하고 있었다고.

***

마당에서 한가롭게 앉아 있을 때.

승합차 한대가 잔디밭을 가르며 진입했다.

“회장님, 시칠리아와 카모라의 보스를 생포했습니다.”

“얼굴 좀 볼까요?”

승합차에서 내린 비지니와 파벌이 패배자의 얼굴이 되어 시가를 태우는 내 앞에 무릎꿇려진다.

“배후는?”

많은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시칠리아 마피아 놈들이 미국에서도 활동하고 있으니 당연히 영어도 알아 들을 터.

“······”

“······”

의리일까? 입을 꾹 닫은 두놈을 보자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쉽게 죽는 것과 어렵게 죽는 것, 무엇을 선택할래?”

고민하는 놈들은 관심에 두지 않고 호석에게 물었다.

“우리쪽 대원들의 피해는요?”

“전무합니다.”

“타박상도 없습니까?”

“예.”

다시 고개를 돌려 놈들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는 군.”

파벌이라는 놈이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나?”

“그래.”

“··· 이 곳을 렌탈한 것도 작전인가?”

“그래.”

“애초에 져 있던 게임이었군.”

“그래서 배후는? 입을 열 마음이 생겼나?”

파벌이 후우, 하는 한숨과 패색이 짙은 얼굴로 말했다.

“이미 알고 있잖은가?”

나는 웃으며 녹음기를 들이밀고는 말했다.

“확실한게 좋아서.”

비지니가 삶을 포기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윌리엄 마이어 로스차일드. 그가 미국과 이탈리아 정부쪽에 압력을 넣겠다 협박해 어쩔 수 없이 벌인 일이다.”

“네 놈은 누구지?”

“시칠리아의 보스 비지니.”

“네 놈은?”

“카모라의 보스 파벌.”

녹음기를 껐다.

“네놈들은 가족까지 죽인다지?”

파벌과 비지니가 눈을 부릅뜬다.

“설마, 넌 마피아도 아니잖은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지옥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어, 네 놈들의 가족이 지옥에 올 때, 물어 보던가. 누가 죽였냐고.”

“이런 개.”

퓩, 퓩.

두 발의 총성.

두 구의 시체가 생성되었다.

“예쁘게 포장해서 윌리엄에게 보내세요.”

“예, 회장님.”

녹음기를 톡 건드리며 마저 말을 이었다.

“이건 언론쪽에 뿌리시고.”

“예, 회장님.”

“그럼 빠르게 정리 하죠, 곧 경찰들이 올테니.”

“예.”

***

전화를 기다린다고 밤을 꼬박 세운 윌리엄.

기다리던 전화는 울리지 않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에게 전화를 받은 그.

-미스터 로스차일드.

“수사국 지도자께서 어쩐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윌리엄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로마 외곽으로 경찰 병력을 움직이기 어렵게 만든 이유가 이것이었습니까?

“무엇을 말이오?”

전화기 너머 익숙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윌리엄 마이어 로스차일드. 그가 미국과 이탈리아 정부쪽에 압력을 넣겠다 협박해 어쩔 수 없이 벌인 일이다.

분명 비지니의 목소리였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윌리엄은 일이 이상하게 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쎄? 무슨 말인지 난 잘 모르겠군.”

-미스터 로스차일드, 아쉽게도 출국이 금지 되었음을 통보합니다. 감히 로마에서··· 까드득.

대마피아수사국 지도자가 이를 짓씹는 소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만큼 현재 윌리엄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는 뜻.

“억울하군.”

-소환장에나 성실하게 응하라고, 돈이 많으니 변호사를 사던가.

“그 부분은 알아서 하도록 하지.”

-반드시 증거를 찾아내 자네를 우리 이탈리아 교도소에 집어 넣겠어.

“재주껏 해보시게.”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지도자.

윌리엄은 휴대폰을 던져버리곤 세바스찬을 불렀다.

“세바스찬!”

마침 세바스찬이 다급한 걸음으로 윌리엄에게 다가오던 중이었다.

“가주님!”

“뭐야 또?”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윌리엄이 세바스찬의 안내를 따라 바깥으로 나갔다. 반쯤 뚜겅이 열린 아이스박스를 가리키는 세바스찬.

“화, 확인해 보셔야겠습니다.”

뚜벅뚜벅 당당하게 뚜겅을 열어젖힌 윌리엄.

“으음.”

두 눈을 부릅뜬 파벌과 비지니의 머리통과 눈을 마주친 그가 주춤, 뒤로 두어걸음 물러났다.

“제기랄···”

천우진에게 제대로 당했음을 깨닫는 윌리엄.

멍한 머릿속을 빠르게 정리하려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쓸어넘기던 윌리엄의 생각을 방해하는 소음이 바깥에서부터 점점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흉신악살 저리가라 할 표정을 지은 윌리엄이 고개를 들어올리는데 듣기 싫은 셔터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파라라락, 파라라락.

기자들이 전투적으로 달려들며 녹음기를 내민다.

“미스터 로스차일드, 테러를 지시했다는게 사실입니까?”

“시칠리아의 보스 비지니와 모종의 관계를 유지하고 계셨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시칠리아 마피아의 미국 진출을 도왔다는 게 사실입니까? 한 말씀 해주십시오!”

기자들의 질문은 윌리엄의 고막에 닿지도 않았다. 아이스 박스의 사진이 기자들의 카메라 담기는 순간, ‘테러 지시’는 사실이 될 게 불보듯 뻔한 일.

“빨리 치워! 세바스찬!”

“예!”

세바스찬이 얼른 아이스박스의 뚜껑을 닫고 번쩍 들어 올리려는 찰나.

얼음이 가득찬 아이스 박스 안, 두 개의 머리통이 너무 무거웠을까? 아니면 죽음이라는 무게가 너무 무거웠을까?

급하게 들어올리던 세바스찬이 ‘윽’하며 허리를 부여잡고 자연스럽게 아이스박스가 바닥에 툭 떨어지며 엎어진다.

데구르르.

비지니의 머리통이 바닥을 굴러 기자들의 발치에 닿는다.

“으허억.”

“저, 저게 뭐야!”

당황한 기자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들은 빠르게 셔터를 눌렀다.

< 제 190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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