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89화. >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건물 안.
마사지 베스 위에 나체 상태로 누워있는 두 명의 덩어리는 파벌과 비지니였다.
마사지를 받는 그들도 나체였지만, 그런 그들의 위에서 연신 손과 발을 놀리는 여인들도 나체 상태였다.
똑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룸 안으로 베이지색 정장을 입은 사내가 들어왔다. 사내가 들어왔음에도 여인들은 전혀 수치스러워하지 않았다. 마사지를 받고 있는 파벌과 비지니도 마찬가지.
“뭐야?”
비지니의 물음에 사내가 빠르게 다가가 대답했다.
“원숭이가 새로 렌탈한 별장의 위치와 구조도를 가져왔습니다.”
마사지 베드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파벌이 고개를 들어 올리자 그의 위에서 마사지를 하던 여인이 자연스럽게 내려와 가운을 입고는 룸 밖으로 향했다. 덩달아 비지니를 마사지 하던 여인도 마찬가지.
“가져와.”
파벌의 말에 공손하게 서류를 전달하는 사내.
“빨리가져왔군.”
“딱히 놈들도 비밀리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구하기 수월했습니다.”
“흐음, 겁이 없는건가?”
비지니의 읊조림에 파벌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리 동지들이 제 놈을 노리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모양이지.”
“그런가?”
비지니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분명 자신의 부하들이 천우진을 미행하다 걸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로스차일드의 입을 통해 직접 전해들었던 사실이니 현재 천우진이 움직이는 대범함이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분명, 우리 식구 둘이 걸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비지니의 물음에 정장사내가 ‘예 맞습니다.’하고 대답했다. 파벌이 몰랐다는 듯 비지니를 바라보았다.
“그런일이 있었어?”
“그래, 그 때문에 늙은여우에게 한 소리 들었지··· 그런데 너무 대놓고 움직인다라,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은데?”
비지니의 촉은 제법 잘 맞는 축에 속했다.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감각’이 도왔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
“흐음, 자네가 그렇게 얘기하면 나도 한 번 다시 생각해봐야겠는데?”
“마치 ‘어서오세요’하는 것 같지 않은가?”
정장 사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설마, 옐로우몽키가 감히 우리 시칠리아와 카모라에게 정면승부를 걸어온다는 말씀이십니까?”
비지니와 파벌이 팍 인상을 찌푸렸다.
듣기에 따라 천우진이 자신들을 무시한다는 뉘앙스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감히.”
“아시안 주제에 여기 로마에서?”
파벌이 고개를 돌려 비지니에게 말했다.
“어떤가, 아직도 감각이 발동하나?”
“아니? 당장이라도 놈을 찢어죽이라고 외치고 있군.”
“이건 뭐, 위치를 고려했을 때, 작전이고 뭐고 할 게 없군, 전방위를 포위하고 난사를 하며 접근하면 벌집으로 만들 수 있을게야. 뭣하면 수류탄을 던져도 좋겠군.”
“rpg라도 준비를 할까?”
“음, 그건 정부쪽에서 좀 위험부담이 있을지 모르겠어.”
흥분해 떠들던 비지니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음, 확실히 너무 요란해서는 안되겠지.”
“그래도 글로벌 기업의 오너가 아닌가? 공격당했다는 기사가 실리기라도 하면 정부 입장에서도 나설테고, rpg정도를 사용하면, 저번 미국 테러와 연관지을 수도 있으니···”
“하긴, 법이라는 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세상이니까.”
“소총 정도로 만족하자고 동지.”
“그러지.”
나체의 파벌이 자리에서 일어나 친절히 비지니의 마사지 베드까지 움직이고는 천우진이 빌렸다는 구조도를 내밀며 말했다.
“여기 지하실 쪽에 놈이 쥐새끼처럼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
“호오, 그럼 놈의 숨통은 걱정 할 필요 없이 마음껏 갈겨버리면 되겠군.”
파발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내 말이 바로 그 의미였어.”
“좋아, 오랜만에 화끈하게 일하겠군.”
“윌리엄 그 늙은여우에게 말하자고, 오늘 밤 늙은 여우의 사료가 도착할 예정이라고 말이야.”
“좋아.”
***
비지니와 파벌이 떠나고도 한참 같은 자리를 지키던 윌리엄이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자 세바스찬이 쪼르르 그에게 다가갔다.
“가주, 식사를 준비할까요?”
“음···”
힐끗 시계를 바라보는데 이미 오후 7시를 지나고 있었다.
“이 놈들은 뭘 하는 거지? 분명 오늘까지 계획을 보고하라 말했던 것 같은데?”
세바스찬이 살짝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말했다.
“제가 놈들에게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마피아라는 놈들이 겁이 너무 많아, 특급호텔이라 해서 경계하는 것인가?”
“확인해보겠습니다.”
세바스찬이 뒤 돌아 막 품에서 전화기를 꺼내는 때.
지이잉, 지이잉.
그의 전화기가 몸을 떨며 전화가 걸려왔음을 알렸다.
“전화받았습니다.”
-비지니요.
“아, 예.”
-바꿔주시겠습니까?
세바스찬이 다시 뒤돌아 윌리엄에게 전화를 내밀며 말했다.
“시칠리아의 비지니 보스입니다.”
거칠게 손에서 전화기를 빼앗아간 윌리엄이 차갑게 말했다.
“감히, 날 기다리게 하는가?”
-음, 연락이 늦어 죄송합니다. 변수가 생겨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변수?”
-원숭이가 울타리를 바꿔서 말이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원숭이가 특급호텔을 버리고 외곽의 별장을 렌탈했습니다. 덕분에 기껏 마련한 작전이 물거품이 되었고, 다시 세팅해야 했습니다.
팍 인상을 찌푸리는 윌리엄.
“더 늦어진다는 얘기인가? 말했지만, 한국과 미국에서 놈을 어떻게 한다는 건 어려워, 네 놈들의 숨통 역시 장담 할 수 없고.”
-아아, 그런 일은 없을겁니다. 공교롭게도 놈이 우리가 마음편히 접근할 수 있는 위치로 옮겼으니까.
다시 표정이 일변하는 윌리엄.
“그럼 오늘 놈의 비명을 들을 수 있나?”
-전 방위를 포위하고 갈겨댈 생각입니다. 미스터 로스차일드가에서 나서, 정부를 잠시만 만류해줄 수 있다면 반드시.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는 윌리엄이 말했다.
“확실해?”
-시칠리아와 카모라의 로마와 로마 인근의 전 인원이 달려들겁니다.
자신감 넘치는 비지니의 목소리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린 윌리엄이 말했다.
“정부라··· 얼마나 딜레이 시키면 되지?”
-0시부터 03시까지 부탁드립니다.
“좋아, 확실하게 처리해. 딜레이 시켰던 경찰인력이 네 놈들의 안방에 찾아가지 않게 말이야.”
-명심하죠.
전화를 끊은 윌리엄이 세바스찬에게 말했다.
“로마 경찰 주요 관계자, 정치인, 모두 초대해 9시까지 한 잔 하자는 취지로.”
“예, 가주.”
“급하게 초대하는 만큼 최대한 예를 갖춰, 기대할만한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좋겠지.”
“예!”
***
해질녘에 도착한 저택은 제법 운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적지가 살아 숨쉬는 로마라서 그럴까, 저택은 정말 고풍스럽게 낡았다.
이런 것을 엔틱한 느낌이라고 할까? 아니면 빈티지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오, 좋은데요?”
뭔가 소피아의 ‘낭만적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그런 풍광, 어쩐지 저 곳 잔디밭 테이블에서 시가를 입에 물면 향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석의 말에 자연스럽게 집중했다.
“어떤 점이요?”
“지대가 낮은 이탈리아에서 비교적 높은 지대에 만들어진 건물입니다. 19세기에 만들어졌고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했는지 망루 역시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하, 망루라··· 고전적이라 해야하나?”
“망루에는 360도를 경계할 수 있는 작은 구멍이 있고 원래는 서치라이트 용도가 아니지만 저 저택을 ‘파티장’으로 만드는 부호들 때문에 서치라이트가 달려 있더군요.”
확실히 어떤 면에서 훌륭하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외벽 역시 튼튼한 회반죽을 사용해 만들었기에 총탄에 뚫리지 않습니다.”
“회반죽이요? 그 원시적 콘크리트?”
“예, 로마의 건축 기술에 요령이 더해저 발전해왔을 겁니다.”
“뭐, 그쪽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요새화 되어 있다는 얘기네요?”
“예. 창문을 통해 날아오는 총탄만 경계한다면, 큰 무리 없이 마피아 따위는 쉽게 제거 할 수 있을겁니다.”
정말 짧은시간안에 완벽한 곳을 알아냈구나 싶었다.
“미리 염두하던 곳인가보죠?”
호석이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소피아를 통해 MI6쪽과 정보를 교류했습니다.”
“아 그래요?”
“예, 우리 PMC의 정보부에서도 시칠리아와 카모라에 대한 정보를 인계했습니다.”
“거래였나보군요.”
“실적에 목을 메는 공무원은 대한민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피식 웃으며 테이블에 앉아 시가를 물었다.
향이 더 좋게 느껴질 줄 알았는데 시가에서도 피비릿내가 진동하는 느낌이다. 웃긴건, 어째서인지 그 냄새가 좋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인상을 찌푸리며 바로 시가를 내려 놓았다.
피에 물든, 피에 중독된 절대자들이 어떻게 고꾸라져 갔는지 역사를 통해 익히 교육받아 왔으니까. 실패한 절대자들 따위와 동일 선상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대원들은 어떻습니까?”
“하하, 오후에 회장님께서 차량에서 하신 말씀이 소문이 퍼져서 사기가 대한민국까지 닿았을 겁니다.”
여유가 생겼는지, 아니면 자신만만하기 때문인지 호석이 여유롭게 농을 던진다.
“놈들의 움직임 마킹하고 있죠?”
“예, 총원 240명 정도가 움직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오우, 많네요?”
“무장 수준은 소총과 수류탄 정도가 한계인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무기는 쓰지 않나요? 무자비하다는 시칠리아 놈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겠죠, 현재 이탈리아 경찰의 눈에도 분명 집결하고 있는 카모라와 시칠리아의 마피아들이 걸려 들었을겁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윌리엄 마이어 로스차일드.
놈의 영향력은 미국에서도 막강하지만 유럽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의 경우에는 더욱 큰 영향력을 휘두르겠지만 이탈리아라고 영향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럽 이곳 저곳으로 가지를 뻗어나간 로스차일드 가문은 당연히 이탈리아 내에서도 제법 높은 권력을 가진 놈들과 짝짜꿍을 하고 있을 터.
경찰 병력이 우리의 예상대로 움직일거란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는게 옳았다.
“윌리엄이 뒤에서 수작을 부릴테니, 경찰을 기대하는 것은 무립니다.”
“예, 이번 작전에서 경찰은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240명이든, 2400명이든. 수류탄을 던질 수 있는 지근거리까지 접근하기 전에 대원들의 피해는 전무 할 거라 장담합니다.”
자신감이 만땅 차오른 호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작전 내용이 너무 궁금한데요?”
굳이 이곳까지 와서 수고로움을 감수 하려는 이유.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프간에 용병으로 참전할 PMC의 대원들을 위해서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느냐 말 할 수 있지만, 의외로 ‘남자! 남자!’하고 외치는 종족들에게는 제법 큰 영향력으로 둔갑하는 ‘무모함’ 혹은 ‘터프함’
대원들 역시 ‘실 작전 투입’경험이 있다면 높은 호봉과 대우를 받고 있으니 진짜 사나이들의 세계에서는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 세계 범죄집단은 많지만, 그중 이탈리아의 마피아 놈들도 열 손가락에 꼽아주는 편이었다. 그런 놈들의 전면공격에서 아무런 피해없이 전멸시켰다는 기사는 우리 대원들에게 ‘훈장’과도 같은 효과를 주게 될 것이었다.
아프간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공포’이기에 오늘 일은 꼭 필요하다 말할 수 있었다.
“언론에 뿌릴 자료들부터 해서, 오늘 공포를 보여줄 우리 대원들의 작전을 들어볼까요?”
< 제 189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