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85화 (185/458)

< 제 185화. >

기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역대급 경매라 불리는 사건 때문에 윌리엄에게 집중했다. 일반인들은 절대 꿈도 꾸지 못하는 사건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금액을 고작 목걸이라는 사치품에 투자한 로스차일드.

당연히 전 세계 토픽란에 올라도 모자람이 없는 기사.

아이러니 하게도 로스차일드가의 가주인 윌리엄과 경매 막바지까지 경쟁자적 위치에 있던 사람이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SKY그룹의 오너란 것도 영향력 있었겠지만, 그가 동양인이라는 것에 더욱 이슈화 되었다. 아직까지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떨치는 동양인은 몇 없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타이밍 적절하네요.”

기사를 보던 나의 말에 대비 할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놈들이 언론사에 버터칠을 한 모양이더구나.”

“예상하던 것이니까요.”

“글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었나 싶구나.”

레스토랑에서 있던 일을 전달 받은 대비 할아버지의 잔소리였다. 굳이 식당에서 윌리엄에게 ‘너 이제 큰일났어.’라고 알려줄 이유가 없었다는 얘기.

“글쎄요, 오히려 좋게 작용할 것 같은데요?”

어째서냐는 듯 날 바라보는 대비 할아버지.

“인간은 ‘질투’라는 걸 하는 동물이죠, 내가 갖지 못한걸 남도 갖지 못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어요.”

피식 웃는 대비 할아버지.

“그러니까, 은행이 휘청거리는 상황에서도 수억 달러를 사치품이나 사고 자빠진 경영주 때문에 고객들이 질투하며 열받아서 예금을 끊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될 겁니다.”

“설득력은 있다만 글쎄,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니 확답하긴 어렵구나.”

나는 체스 말의 폰을 앞으로 한칸 옮기면서 말했다.

“내기 하셔도 좋습니다.”

대비 할아버지가 두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내기는 거절하지, 수가 말하길 네 놈과는 절대 내기를 하지 말라고 그랬거든.”

우리 할아버지가 도움이 안 되는 순간이었다.

뭐 사실 대비 할아버지에게 내기로 얻어낼 것도 없었다. 자산이면 자산, 재산이면 재산. 그 어느것 하나 대비 할아버지에게 받아내고 싶은 것들이 없으니까.

“언론들에게 영향력좀 보여주세요 할아버지.”

“오냐, 아침 신문에는 반드시 로스차일드의 기사가 나갈게다.”

이미 약을 치고 있으셨는지 확답을 하는 대비 할아버지. 체스판의 퀸을 다른 쪽으로 피하며 말한다.

“그나저나, 이쪽 마피아놈들과 로스차일드가 어울린다고?”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80퍼센트 이상, 윌리엄 그 늙은 토끼가 마피아를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차하면 더러운 술수를 쓰겠다는 거구나.”

“예, 그런 의미에서 할아버지와 루시, 우희는 먼저 움직이는 편이 어떨까 싶은데요.”

대비 할아버지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져 수영장에서 아름다운 몸매를 뽐내고 있는 루시와 우희를 바라보신다.

“흐음···”

“이탈리아 정부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집단입니다. 시칠리아 놈들의 대가리가 너무 컸어요.”

“자네는 어쩌려고?”

“경호를 늘린 상태입니다 우선은, 대비 할아버지와 루시, 우희가 먼저 떠난다면 저도 몸을 뺄 생각입니다. 똥개도 제 집에서는 삼할을 먹고 시작한다는데, 굳이 이곳에서 설칠 필요는 없겠죠.”

다시 고개를 옮긴 할아버지가 체스판에 집중하며 말했다.

“시칠리아 놈들이 미국에서도 활개를 치고 다니지.”

“뉴욕에서나 그렇지 워싱턴에서 감히요.”

“로스차일드와 놈들의 연관관계를 확정할 요소는 없겠지?”

“증명하기는 어려울겁니다. 증명이 필요할까 싶기도 하고요.”

“쯧, 당분간 뉴욕은 일정에서 배제하는 것이 좋겠군.”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비 할아버지의 말이 정론이고 안전한 길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윌리엄 그 친구, 아무래도 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군, 자리에 오르면 오를 수록 멀리 해야할 것들과 어울리다니.”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놈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을지도 모르죠.”

대비 할아버지가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소문은 많았는데, 그게 거의 사실처럼 느껴지는 구만, 사교계에 정보를 슬쩍 흘리는 것도 좋겠어.”

“루시와 우희의 보호를 최우선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걱정하지 말게, 내 숨보다 귀하게 여길테니.”

“예, 따로 직원들을 파견하겠으니 대우도 잘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대비 할아버지.

“윌리엄 그 놈이나 그 아들 놈이나··· 역시 핏줄은 속이기 어려운 모양이야.”

확실히 이해되는 말이었다. 그 놈의 아들, 이제는 지옥으로 사라져버린 로이드란 놈도 분명, 우리 할아버지와 우희를 노렸으니까, 허접한 용병들을 고용하면서까지.

일반인의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에는 아마 제 아비의 교육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꺼리낌 없는 행동은 많은 것을 보고 자랐다는 방증일지도 모르니까.

“내일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일정을 잡기로 하지.”

대비 할아버지의 말에 옆에서 조용히 체스를 관전하던 호석과 록펠러가의 집사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거리를 벌린다. 서로 일정을 조율하기 위함일 터.

슬쩍 시선을 옮겨 집사와 호석이 자리를 이탈하니 조용히 묻는 할아버지.

“PMC직원들이 늘어나는 것 같더구나.”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할아버지. 단순히 경호인력 충원을 위한 것이 아니란걸 아는 모양이다.

확실히 PMC직원들의 주특기는 ‘경호, 보호’임무보다는 ‘공격적’인 성향을 띄고 있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늙은 토끼가 제 물건을 찾아갈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 자존심 강한 놈이 남에게 제 물건 빼앗기는 걸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하겠지. 아마 가문내에서도 욕을 먹을테고.”

“예, 경매에서 자신의 물건을 다시 사들이면서 건재함을 과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계속 얘기 하라는 듯 차를 홀짝이는 할아버지.

“그놈의 그 강한 프라이드, 자존심을 꺾어보려고 합니다. 마피아 놈들과 손을 잡을 정도로 이성이 마비된 놈의 프라이드를 꺾는다면 과연 놈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토끼가 아니라 하이에나로 변할지도 모를테지.”

“빈틈이 많아지면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할아버지.

그러다 이내 피식 웃으며 말한다.

“철저하구나.”

“센 놈이 이기는 것도 맞지만, 이기는 놈이 센 놈인 것도 맞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쟁에서 리스크를 줄이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지.”

역시 대비 할아버지도 제법 나와 잘 맞는다.

“혹, 마피아와 전쟁을 염두해 두고 있나 싶어 걱정되어 한 물음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신경쓰지 말거라.”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아꼈다.

대비 할아버지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쩌면 ‘전쟁’까지 염두해두고 있었다. 현재 윌리엄이 가저간 천사의 눈물이라는 무려 6억달러를 상회하는 목걸이. 그 목걸이를 지키고 있을 놈들은 마피아 놈들밖에 없을테니까 말이다.

물론 겉보기로는 로스차일드 가문에 고용된 가드나 경호원처럼 보일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터.

“천사의 눈물을 가져오면서 제가 달성할 수 있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두가지? 한가지가 아니라?”

눈을 빛내며 두눈 가득 궁금함을 품는 할아버지.

“첫째는 당연히 윌리엄 그 놈의 프라이드를 뭉개는 일이겠죠.”

“두번째는?”

“경고입니다.”

“경고?”

“마피아건 뭐건, 언제는 네 놈의 모가지를 가져갈 수 있으니 경거망동 하지 말라는, 감히 이빨을 들이밀지 말라는 그런 경고.”

놀란 눈을 하고 있던 대비 할아버지가 이내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만족스럽게 웃는다.

“과연.”

***

그다지 좋은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소에 비해 한결 풀어진 얼굴의 윌리엄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캐비어가 곁들여진 파스타에 제법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한결 풀어진 이유는 어제 있었던 경매에서 로스차일드의 건재함을 세상에 알렸다 생각하고 있기 때문.

그리고 멀리서 그를 지켜보던 세바스찬은 아랫입술을 깨물 수 밖에 없었다.

뉴욕의 아침을 깨우는 조간 신문에는 윌리엄과 세바스찬이 그토록 바라지 않던 기사가 실려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어제 6억달러짜리 목걸이를 사느라 돈을 쓴 로스차일드를 욕하는 기사들도 제법 많았다.

[위기의 로스차일드, 그러나 가주는 사치 삼매경]

[로스차일드, 마리앙투와네트의 사치 닮아가나?]

[영업이익은 마이너스, 사치는 플러스?]

[흔들리는 로스차일드 뱅크, 6억달러 목걸이 겟?]

세바스찬이 들고 있는 A4용지 가득,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달린 기사들이 적혀있었다. 모두 직원들이 미국에서 신문이 발간되자 마자 옮겨 적은 것을 프린트 한 것이었다.

윌리엄이 부쩍 날카롭기 때문에 세바스찬은 정말 조심스러웠다. 어쨌든 보고를 하지 않을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고하자니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남들은 보스가 뭣 같거나 회사 문화와 맞지 않으면 사직서를 던져버리면 될 일이지만 세바스찬의 입장은 그렇지 않았다. 로스차일드의 더러운 비밀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던 그는 분명 사직서를 제출한다면 목숨을 보장 받을 수 없었다.

당장 윌리엄의 곁에서 그가 식사하는 것을 지키고 서 있는 저 기름진 면상을 가진 작자의 허리춤에는 데저트 이글이라는 삭막한 권총이 꽂아져 있으니 말이다.

긴 심호흡을 하고는 윌리엄에게 다가선 세바스찬.

“식사는 입에 맞으십니까 가주님?”

“뭐, 괜찮군. 이제 다 먹었네. 손에 들린건 뭐지?”

“보고드릴 내용입니다.”

입을 슥슥, 닦아낸 윌리엄이 손을 뻗자 세바스찬이 공손히 서류를 건넨다.

샤락, 샤락.

페이지가 한장씩 넘어갈 때 마다 윌리엄의 얼굴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분명 언론사에 버터칠을 제대로 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그딴 소리 말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분명 기사를 내지 않겠다는 언질을 받았습니다.”

“결과는 그렇지 않고?”

세바스찬은 고개를 푹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결과가 그러니 말이다.

“하, 수천만 달러를 들였는데 고작 이틀 정도 기사를 방어한게 끝이다?”

윌리엄의 자조섞인 웃음에도 세바스찬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건 뭐, 모든게 다 계획적이라고 봐야겠군.”

어금니를 짓씹은 세바스찬이 조용히 ‘예’하고 대답했다.

“영업 시작이 얼마나 남았지?”

“약 1시간 30분 남았습니다.”

“내부 공사든 은행강도든 뭐가 되어도 좋으니 일단은 딜레이 시켜.”

크게 놀란 표정을 짓는 세바스찬.

“가, 가주님!”

“닥쳐! 그 입 벌리지마. 바로 대책회의 소집하고, 예금 빠져나갈 예상치 뽑아와. 30분이상 딜레이 되면 난리가 날테니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1시간 30분이란 걸 명심해.”

세바스찬이 밍기적 거린다고 생각했을까? 버럭 호통치는 윌리엄.

“뭐해! 그 잘난 다리를 잃고 싶지 않으면 움직여.”

“예, 예!”

세바스찬이 빠르게 움직여 자리를 떠나자 포크를 내려놓은 윌리엄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자신의 곁을 지키던 사내에게 묻는다.

“이봐.”

“예.”

“자네 보스 들어오라고 해.”

“전달하겠습니다.”

이탈리아 특유의 억양이 느껴지는 영어.

“네 놈들 전부 소집해야 할 거야, 남은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전달하겠습니다.”

“바로 움직여 네 놈도, 그 잘난 얼굴 지키고 싶다면.”

“예.”

윌리엄은 알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벌어진 이상.

자신의 로스차일드 뱅크를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가지 뿐이란 것을 말이다.

all or not.

천우진이 자주 말한다는 그것 처럼.

이제 윌리엄은 자신도 전부가 아니면 전무할 상황에 처했음을,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오냐, 해보자.”

< 제 185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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