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84화. >
아가씨들이 달콤한 디저트와 수다에 빠져있는 사이.
“루시, 잠시만.”
“응 허니~ 다녀와.”
호석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에서 마련된 발코니로 향했다. 식사를 했으니 시가를 태우는게 아니라 호석에게 들어야 할 보고가 있기에 움직인 것이었다. 굉장히 짧은 시가를 입에 물며 호석에게 물었다.
“아까 그 두 놈, 확인 됐습니까?”
호석이 고개를 저었다.
풋 하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정확히 놈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호석이 아직 놈들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 부터 평범하지 않은 놈들이란 뜻이었으니까.
“과연, 이번에는 어디에서 붙었나 궁금하네요, 정돈되지 않은 기운이던데··· 공무원은 아닐겁니다.”
이탈리아든 혹은 다른 나라든.
그들의 정보국 요원들은 아니라는 얘기었다.
“예, 마피아일 가능성을 염두 하고 있습니다.”
“마피아라···”
“카모라나 은드랑게타쪽이 의심됩니다. 시칠리아 놈들의 영향력이 큰 만큼, 놈들의 부탁이나 명령을 받았을지도 모르고요.”
카모라와 은드랑게타. 그리고 시칠리아의 마피아까지. 하여간 더러운일을 일삼는 놈들이었다. 현재 시칠리아 마피아 놈들은 미국진출을 달성한 상태이기에 대충 배후에 누가 있을지는 알 것 같았다.
“경호 좀 늘려서 루시와 우희 먼저 숙소로 보내죠, 대비 할아버지에게 언질을 넣어두라는 얘기 잊지 마시고요.”
“예, 회장님.”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대원들 얼마나 있죠?”
“음, 마피아를 걱정하십니까?”
시가연기를 길게 내뿜고는 말했다.
“돈 가진 놈들은 참 더럽죠, 그리고 그 더러운 놈들에게 기생하는 돈벌레들이 마피아와 같은 것들입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미친짓을 할 거란 얘기군요.”
“아직은 이탈리아 정부도 어쩌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2005년 이후부터는 조금 사정이 달라진다는 말은 아꼈다. 확실히 미래에 시칠리아 마피아 놈들은 미국 자본가들과의 마찰을 시작으로 빠르게 세상에서 정리되어 가니까. 아직 이탈리아와 미국의 범죄조직 패권은 확실히 시칠리아 마피아 놈들이 쥐고 있을 시기였다.
“로스차일드가 지시한 일 일까요?”
“거의 99퍼센트?”
확신이 담겨 있는 내 말에 호석피 픽 하고 웃으며 말했다.
“놈도 어지간히 약이 올랐나 봅니다. 얌전한 고양이인 줄 알았더니, 부뚜막에 올라가다니.”
“늙은 토끼겠죠, 고양이는 무슨.”
“하하하, 음··· 백부님의 근접경호 하는 대원들을 좀 불러야겠습니다.”
한국에 있는 할아버지의 경호원들.
그들 역시 우리 SKY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대원들이었다. 내 얼굴에서 걱정을 읽었을까?
“백부님의 경호는 1급 직원들에게 맡기겠습니다.”
“할아버지가 서운하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호석은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올리고는 고개를 젓다 말했다.
“한국에서 감히 백부님을 노릴 간 큰 한국인은 없습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호석.
어느정도 동감하는 부분이었다.
1급 직원들은 SKY PMC의 대원들이 아닌 SKY시큐리티의 전속 경비, 경호원들을 일컫는다. 가장 고등교육을 받은 직원들로서 고용비가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원래 할아버지의 지하세계 시절부터 함께 해오던 그룹이라면 설명이 더 쉬웠다.
“흠, 그렇게 하죠.”
“예, 회장님 바로 준비시키겠습니다.”
“무기도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확실하게 처리해 놓겠습니다.”
대충 다 태운 시가를 비벼 끄고는 다시 식당 내부로 들어갔다. 내가 오기를 기다렸는지 루시와 우희는 이미 식당을 떠날 채비가 끝난 상태.
“루시, 우희야.”
“응? 우진?”
“왜 오빠?”
“먼저 갈래? 난 저기 로스차일드의 가주와 나눌 얘기가 생겨서.”
루시와 우희가 서로 마주보다 다시 내게 시선을 옮겨 동시에 대답했다.
“너무 늦지마~”
“조심해서 와.”
“그래, 오래 걸릴 일은 아니라 금방 갈거야.”
호석에게 시선을 옮겨 말했다.
“대비 할아버지에게도 언질을 주라 하세요.”
“예, 회장님.”
호석이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사를 하고 있는 로스차일드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식당임에도 넓은 식탁에 고고하게 홀로 앉아 뒤쪽에는 직원들을 세워 놓고 나이프질을 하는 꼬락서니를 보자니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앉겠다는 물음도. 앉으라는 허락도. 피차 정답게 말을 섞고 예의를 차리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모든 것을 생략하고 자리에 앉았다.
“똥줄이 탔던 모양이야?”
툭 던저낸 질문에 아주 작게 스테이크를 썰며 대답하는 윌리엄.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지 뭐, 미국의 자본가들과 마피아 놈들이 작당모의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로스차일드가 거기에 한 손 보태고 있을 줄은 몰랐군.”
피식 웃으며 레드 와인을 한 모금 마신 윌리엄이 와인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벌겋게 변색된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고리 뜯던 놈들에게 주먹이 없을리 없잖은가?”
“과연, 설득력 있군.”
포크를 조금 격하게 놀려 스테이크를 찌르며 내게 묻는 윌리엄.
“록펠러의 영감탱이에게 듣기로는 우리 아들놈이 살아 생전에 네 놈을 제법 귀찮게 했다지?”
“하루살이 주제에 겁이 없더군.”
“어떻게 네놈이 우리 저장고를 털 수 있었을까 많은 고민을 해봤지. 정보를 취합하고 취합하다 보니 그런 결론에 도달하더군.”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결론인지라 크리스탈 와인잔을 들어올려 손가락으로 통통 두들겨 보는 날 이글이글 타오를 것 같은 번들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묻는 윌리엄.
“혹, 내 아들의 죽음과 네가 연관 되어 있을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마피아랑 붙어 먹는것을 보니 그 숨도 오늘, 내일 할 것 같은데. 직접 지옥에 가서 물어보지 그래? 그편이 더 빠르지 않겠나?”
스테이크를 썰던 윌리엄의 손이 삐끗 거린다.
세팅 되어 있던 나이프를 들어 올려 목 언저리에서 휙휙 그으며 말했다.
“그 알량한 숨이 오래가고 싶다면, 헛짓거리는 삼가하라고 얘기 해주고 싶군.”
“감히···”
온 몸이 와인으로 만들기 적당한 포도처럼 익어버린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윌리엄을 무시한 채.
콱!
들고 있던 나이프를 테이블에 박아 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존심으로 먹고 사는 벌레는 결국 사고를 치기 마련이다. 경고를 해준다고 듣는 벌레는 없을테니까. 분명히 뭔가를 시도하겠지만 윌리엄은 그것을 알아야 했다. 아직까지 제 놈의 목이 몸통과 붙어 있는 이유를 말이다.
할아버지와 우희에게 총탄을 들이 밀었던 일에 윌리엄이 가담했었다면, 그의 목은 이미 몸통과 분리되어 있었을 테다.
“대화는 끝나셨습니까?”
호석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곧 몸뚱아리랑 모가지가 따로 놀 상이네요.”
내 말에 피식 웃은 호석이 농을 던진다.
“이제 관상도 보십니까?”
“다 보이는 법이죠.”
***
천우진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윌리엄.
“가주님, 괜찮으십니까?”
세바스찬의 부름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윌리엄이 다 식어버린 스테이크를 내려다 보더니 말했다.
“새로 하나 시키지. 오늘따라 식욕이 돋는 군.”
“예.”
세바스찬이 슬쩍 손을 들어올리니 웨이트리스가 빠르게 다가왔다. 가주의 취향을 익히 잘 알고 있던 세바스찬은 능숙하게 주문을 하고는 가주의 눈치를 살폈다. 다 식은 스테이크에는 관심이 없는지 접시를 슬쩍 밀어 놓은 윌리엄은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가주의 질문에 세바스찬은 잠시 고민했다.
무엇을 묻는지, 어떤 생각을 묻는지부터 시작해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까지.
복잡하게 머리를 움직이던 세바스찬은 이내 대답을 골랐는지 짧은 침묵을 깨고 말했다.
“역시, 저자가 연관되어 있다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역시 그렇지? 과연··· 내 아들놈을 죽인 놈이라.”
사실과 진실은 지금 윌리엄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분풀이가 필요할 뿐이었다. 이미 가주의 심기를 어지럽히기 시작한 SKY와 록펠러는 그의 눈에 남겨둘 수 없었다.
지우거나, 지워지거나.
여태껏 많은 자본가들이 그랬듯, 그들의 싸움 끝에 반드시 적이든, 자신이든 사라져야 했다.
세바스찬의 뇌리속에 가주의 앞에서 감히 로스차일드의 ‘숨통’을 끊어놓겠다 엄포를 놓는 천우진의 흔들림 없는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
과연 록펠러가 어째서 그를 손녀사위로 선택했는지. 또, 어째서 SKY그룹이 떠오르는 글로벌 기업인지 알 수 있었다. 로스차일드 뱅크의 인재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올리는 보고서를 통해서도, 그리고 실제로 직접 만난 천우진을 보고서.
어쩐지 이번 전쟁에서 지워지는 것은 로스차일드가 아닐까 하는, 그런 불안감이 온 몸에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세바스찬.”
“예, 가주.”
“놈이 그러더군, 언론사가 떠들거라고.”
세바스찬이 인상을 찌푸렸다.
돈을 받아 처먹을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삐딱선을 타겠다는 언론사가 어디인지 궁금했다.
“뉴욕 타임즈를 언급하던데? 확인 해 봐. 예금자 이탈까지 이뤄진다면 다급한 건 역시 우리니까.”
“조치하겠습니다.”
“빠르게 움직여.”
“예.”
식사를 이어서 하는 가주를 뒤로 하고 발코니로 나간 세바스찬은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아이고, 미스터 세바스찬 어쩐일로 전화를 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하하, 아직 이른시간이라.
“그렇군요, 국장님.”
-예.
“안 좋은 소식이 들리더군요? 기분탓일까요?”
-크흠···
“뉴욕타임즈와 우리는 좋은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해에 광고비로 사용하는 돈이 얼마인데요?”
-그렇습니까.
“신문에는 팩트만 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 타임즈가 팩트가 아닌 기사를 싣는다 말씀하시는 겁니까?
수화기 너머 잔뜩 불쾌함을 내비치는 국장 놈의 목소리에 세바스찬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럴리가요, 단지 그 기사가 사실이 아니란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로스차일드 뱅크는 전혀 위기가 없습니다.”
-흠, 실제로 많은 자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업 이익도 크게 줄었고요.
“911의 여파가 어디 로스차일드 뱅크만 있겠습니까?”
-특히 모기지론 대출 사업에 큰 차질이 있었다는 것은 팩트 아닙니까?
“하하하, 고작 그거 몇푼에 로스차일드 뱅크가 흔들리겠습니까? 억측입니다. 억측.”
-흐음···
“기사는 언제 나갑니까?”
-글쎄요.
대충 대답을 뭉개는 타임즈의 국장놈 때문에 세바스찬이 눈썹을 꿈틀 거렸다.
“기사가 나가기 전에 팩트체크가 먼저 진행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흠···
계속 대답을 뭉개는 국장놈의 태도에 세바스찬은 대충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록펠러 가에서 얼마를 주더이까?”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드라이하게 대화 하죠, 우리의 요구조건은 기사를 내보내기 전, 우선 우리 로스차일드 뱅크의 자료를 요청하시는게 어떻습니까? 사실 그대로를 보도 해달라는 얘기입니다. 그래도 우리와 관계가 제법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파트너 쉽을 발휘 해 주시지요.”
-그러면 내가 입장이 곤란해지는데···
세바스찬이 품에서 꺼낸 수첩을 읽다가 뭔가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따님이 이번에 하버드에 지원했다죠?”
-크음.
“따님 같은 인재라면 하버드에서 두 손을 들고 환영할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료를 보내주세요.
세바스찬이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감사합니다 올리언 국장님.”
-별 말씀을, 팩트체크는 언론인의 기본이지요.
“따님 입학식 때 뵙죠.”
-좋습니다.
***
소더비 경매가 한창인 박물관 로비.
“오늘의 메인 경매물품! 마리앙투와네트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는 목걸이! 소개합니다 천사의 눈물!”
““오오.””
암전되는 조명과 함께 아름다운 여인이 끌고오는 카트 위 마네킹에 조명은 받아 반짝이는 수백개의 다이아몬드와 진주는 많은 부호들의 탄성을 당연하다는 듯 흡수하고 있었다.
“단순 보석의 가치만 7천만 달러, 오늘 경매의 시작가는 1억달러부터 호가 100만달러 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조명이 들어오고, 여기저기 작은 팻말을 들어올린 인물들이 보였다.
“12번 신사분, 1억 2천 3백만. 뜨겁습니다! 지금부터 호가 500만달러로 하겠습니다. 17번 숙녀분 1억 2천 8백만.”
경매사는 바쁘게 소리쳤고 금액은 계속해서 올라갔다. 애초에 감정사들이 객관적인 가치를 매겼을때 한화 2천억원이 나왔던 물건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어? 팻말이 아니라 손을 들어 올리셨습니다?”
경매사에 질문에 대답하는 사내.
“2억 달러.”
갑자기 가격을 올리는 사내에게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렸다. 나 역시 마찬가지, 듣기 싫은 목소리를 가졌다 싶었더니 로스차일드의 가주 늙은 토끼였다.
눈을 마주쳤다 느꼈는지 그가 비릿하게 입꼬리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귀여운 도발이었다.
나 역시, 손을 들어 올렸다.
“3억 달러.”
일순간 경매장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 앉았다.
윌리엄을 쳐다보야 찡긋 한쪽 눈을 감았다 떴다.
이미 2000억원은 훌쩍 넘어간 금액.
“3억 5천만.”
윌리엄의 말에 경매사가 말을 더듬었다.
이제 장내가 웅성웅성 거리며 나와 로스차일드의 돈지랄 잔치를 구경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나는 겨우 5천만 달러를 올렸냐는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외쳤다.
“5억 달러.”
“맙소사.”
이어진 내 호가에 경매사가 본분을 망각하고 ‘맙소사’란 말을 뱉었다. 뇌수까지 프라이드로 똘똘 뭉친 윌리엄이 붉으락푸르락 한 얼굴로 외쳤다.
“6억달러.”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고개는 내게 쏠린다.
“오우야, 포기합니다.”
나는 히죽 웃으며 포기를 선언했다.
제 놈의 창고에 잠들어 있던 2천억원짜리 목걸이를 대략 8천억원에 근접한 가격에 사갔으니 호구도 저런 호구가 없지 싶었다.
호석과 대비 할아버지가 푸들푸들 떨리는 볼을 진정시키느라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그냥 웃으면 되지 체면을 차린다 싶었다.
“윌리엄 마이어 로스차일드! 명문가 로스차일드가 천사의 눈물을 6억 달러에 가져 갑니다!”
경매사의 외침에 나는 박수를 치며 호석과 대비할아버지와는 다르게 크게 웃었다.
< 제 18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