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81화 (181/458)

< 제 181화. >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ICBM이라는 자극적인 단어 때문일테다. 그가 진심으로 부정적이라면 그의 몸뚱이에서는 붉은색 기운이 넘실대야 함이 옳다. 그러나 지금 그의 몸에서 풍기는 연기는 한 없이 기분좋아 보이는 초록빛이었다.

내게 아주 우호적인 상태라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렇기에 나는 부드럽게 입꼬리를 들어올리고는 자신감 있게 말했다.

“맞습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이 정도는 우리의 영원한 우방인 미 연방이 충분히 인정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요?”

내게서 시선을 떼고 대통령을 바라본 부쉬가 말했다.

“대통령께서는 현재 미스터 천이 얘기한 사항에 대해서 동의하십니까?”

“후우··· 핵 무장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우나, 당장 대한민국의 전력이 상승할 기회가 있다는 것은 찬성해야겠지요.”

다시 날 바라보는 부쉬.

“미스터 천, 만약 우리 미국이 용인하고 허가해준다면, 인공위성 발사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현재 정부의 허가만 받는다면 내년 4월, 6월, 8월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부쉬가 잠시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SKY가 벌써 그렇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우리 그룹을 좋게 봐준 대한민국 정부가 좋은 땅을 많이 내줬습니다. 덕분에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빠르군요··· 정말 빨라···”

“북한 입장에서도 대한민국이 언제든 핵을 무장한 ICBM을 날릴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면, 움츠러들지 않겠습니까? 뻑하면 군사도발을 감행하는 놈들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을 것 같군요.”

“확실히···”

대통령은 부쉬가 흔들리는 이때를 놓칠세라 적절한 시기에 입을 열었다.

“부쉬 대통령님, 우리 대한민국은 미국의 영원한 우방, 동맹국으로서 이번 아프간 전쟁에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10월 7일날 있었던, 미군의 대대적인 폭격에 대해 비판여론이 상당한 상황이었다. ‘기름’에 눈이 먼 미국이 민간인들의 피해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짧은 시간의 예고와 함께 공습을 감행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로 희생된 민간인의 수도 적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이런 상황에서 욕하기 바쁜 아프간 전쟁에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히는 한국이 부쉬 입장에서는 예뻐보일 수 밖에 없을터.

부쉬가 ‘후우~’하고 ‘정말 어쩔수 없군.’하며 양보의 제스쳐를 취하며 말했다.

“인공위성 문제없이 발사 될 겁니다. 노벨평화상을 받을 대한민국의 대통령께서 이렇게 부탁을 하니, 거절하기가 어렵군요.”

부쉬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하는 내 왼쪽 뺨이 뜨겁게 느껴졌다.

‘성공했습니다!’하고 눈으로만 격하게 흥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보내는 눈빛 때문이었다.

“자, 나머지 세세한 것들은 실무진들이 해결하게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회포는 저녁에 한 잔 하면서 풀기로 하죠?”

내 말에 부쉬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부쉬와 중요한 얘기는 끝낸 것 같으니, 남은 얘기는 저녁에 술자리에서 하기로 하고, 나 역시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게 꽃다발 보다 훨씬 기분좋게 만드는 돈다발을 싸 들고 기다리는 중일 장저민과의 만남을 위해서.

***

예정보다 일찍 끝나서일까.

호텔의 로비에서 만났던 한국말을 하던 공안은 자신의 이름을 ‘왕충현’이라 밝히며 잠시 기다려 줄 것을 부탁했다. 휴식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기꺼이 그들이 마련해 둔 방으로 올라가 편히 시가를 태우고 있었다.

진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전화를 들어 올렸다.

“예, 할아버지.”

-손녀 사위.

“하하하, 예 대비 할아버지.”

-루시는 잘 있네.

“그럼요, 오전에도 통화 했습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는 법이지.

대비 할아버지의 말은 최대한 자주 얼굴을 비추라는 뜻이었다. 나와 루시가 이런 짧은 시간으로 그렇게 서로를 향한 마음이 식을 사이가 아니라고 자신하기에 웃으며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로스차일드 놈이 다녀 갔어.

시계를 보니 지금 워싱턴은 한참 새벽일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요?”

-아니, 오후에.

“아아. 뭐라던가요?”

-뭐 쓸데없는 자존심 세우기였지.

대충 알만했다.

우리집안도, 대비 할아버지의 집안도 그리고 윌리엄 마이어 로스차일드 그놈의 가문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들이니 현재의 상황이 탐탁치 않았을 터, 입닫고 고개를 조아려야 하지만 놈이 그런 선택을 했을리 없었다.

나라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테니까.

차라리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혹은 적대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이 더 쉽다고 느끼는 부류의 인간들이 보통 그렇다.

“뭐라고 하셨나요?”

-우리 손녀사위가 좋아할 말을 했지.

대비 할아버지의 입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나오니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미국인들은 잘 쓰지 않는 단어였다. 보통은 ‘나’ 혹은 ‘나의’정도를 사용하는데 어느새 한국 문화나 나와 할아버지의 말투에 익숙해지셨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인데요?”

-전부가 아니면 필요 없어 할 거라고, 모가지를 준비하라고 했지.

“푸핫, 잘 하셨네요.”

금융계의 거두와 대립인데도 대비 할아버지는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더더욱 우리가 유리하다. 유연한 사고가 가능할테니까.

-북경에 일이 끝나고 소더비에 오지 않겠나?

“아아, 가야죠 마침 맡길 물건도 있거든요?”

-맡길 물건?

“지하에서 꺼낸 금덩이들이 좀 있어서요,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물건이니까 아마도 더 높은 값을 보장받지 않을까 싶네요?”

-음? 로스차일드의 금화들 말인가?

“예.”

-크하하하, 윌리엄 그 놈의 똥 씹은 얼굴을 한번 더 볼 수 있겠군.

“유럽의 많은 로스차일드들도 같은 표정을 짓겠죠.”

-크큭, 볼만하겠군. 루시와 우희도 함께 가겠네.

“넵, 할아버지 그럼 소더비에서 뵙죠.”

-그래, 내일까지 고생하라고.

“예.”

전화를 끊는데 호석이 흐뭇하게 웃으며 날 바라본다.

“왜 웃으세요?”

“루시 아가씨를 뵙는 모양입니다.”

“예, 마침 소더비라는 좋은 핑계도 있고요.”

“자주 만나고, 많은 시간을 보내주시죠 회장님. 한창 예민할 시기니까.”

“예, 정 대표님의 충고 깊이 새기겠습니다.”

***

외관에서부터 ‘중국! 중국!’하고 외치고 있을법한 중국식 전통 건축물 내부로 안내를 따라 들어서니, 내부는 아주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만들어진 인테리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돈을 처발랐구나 싶은 건물.

“최고지도자 각하의 별장입네다.”

“그렇군요.”

흐뭇한 얼굴을 하고 있는 왕충현을 보자니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질 것 같은것을 억지로 참았다.

북한보다야 형편이 낫겠지만, 아직도 중국엔 굶어죽는 사람이 많다는 걸 이 놈은 모르는 것일까 싶었다.

21세기에 접어들어서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지만 이딴 사치스러운 건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정치인의 수하라니 개탄스러울 뿐이었다.

도대체 별장이라는 건물이 이렇게 클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짧게 생각해보니 대충 이해는 간다. 주석궁이 바로 보이는 거리에 으리으리한 중국식 저택.

아마도 정치인의 은퇴자금을 세탁하는 방법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결국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인간들의 욕심이야 매 한가지가 아니던가. 더 나은 삶, 더 큰 탐욕의 만족.

양 옆으로 도열한 미녀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기다란 식탁이 기다리는 방 안에 들어갔다.

24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식탁의 가장 상석에 잔뜩 거만하게 자리잡고 있는 주석 장저민이 보였다. TV나 언론매체에서 보여지는 것 보다는 제법 후덕한 인상이었다. 안경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눈매는 날카롭기 그지 없다.

“반갑습니다. SKY그룹의 천우진입니다.”

내 입에서 유창한 중국어가 나올 것은 예상 못했을까? 잠시 놀란 얼굴을 한 장저민이 이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내가 내민 손을 맞잡는다.

“한족이라 해도 믿겠습니다.”

그 족속들과 나를 비교하다니 기분이 좋진 않지만 쓰게 웃으며 그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삼현의 비서실, 전략기획실에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못하는 인물은 없었다. 모두가 기본은 할 줄 알며 입사 3년차가 넘어간다면 업무적인 회화도 가능한 실력으로 성장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가지를 장담할 수 없는 약육강식의 세계였으니까.

가진게 없던 난 더욱 부던히 노력해야 했고 말이다.

“이런 날이 있을 줄 알고 공부를 했던 모양입니다.”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내 언사가 마음에 들었을까? 호탕하게 웃는 장저민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좋습니다. 오히려 대화가 원활하게 이뤄질 것 같으니 반가운 일이지요. 한 잔 하시겠소?”

중국인들이 권하는 술은 거절하기가 어렵다.

그들의 문화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고압적으로 느껴지고 거부감이 들수도 있는 개떡같은 문화지만 어쨌든 주는 술을 마다하지 않는 편이니 편안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검지와 중지로 식탁을 툭툭 두들겼다.

중국식 주도까지 알고 있으니 흡족한지 장저민이 부드럽게 웃으며 식탁위에 올려진 내 술잔을 채워준다.

“우리 문화에도 익숙하시구려.”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를 알 필요가 있는데, 그중 내가 관심가는 것을 먼저 배우다보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곡주를 즐긴다 하니 다행입니다. 좋은 술은 좋은 벗과 기울일 때 더 빛을 발하는 법이지요.”

보통 중국에서는 윗사람과 술을 마실때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피해 마신다. 그러나 나는 잔을 들어올리는 장저민을 똑바로 바라보고 술잔을 비웠다.

식탁의 끝에 벌서듯 서 있는 왕충현이 배알이 꼴린 표정을 짓지만 난 내 행동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나는 이곳에 동등한 비즈니스 관계로 왔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굳이, 아랫사람의 위치에 설 생각은 없었다.

“요즘 보기드문 호연지기를 가졌소, 천우진 회장.”

“과찬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안주 한 점 먹지 않고 연거푸 계속 술을 들이켰다. 술 주전자가 세 번 바뀌었을때.

“정말, 오랜만에 기분이 좋군.”

아주 흡족한 웃음을 짓는 장저민.

별로 한 것이 없는데 홀로 북을 치고, 장구를 쳤다.

“우리 공화국에도 천우진 회장같은 사내들이 많아야 할텐데 요즘은 아쉽구려.”

“이 넓은 땅, 수 많은 사람 중, 그런 사람이 없겠습니까?”

“하하, 겸양은 되었소 충분히 그대가 대단한 인물임을 알았으니.”

어느새 장저민이 내뿜고 있던 연기가 붉은색에서 주황색으로 옅어져가고 있었다.

“그럼 이제 본론을 꺼내 볼까요?”

내 말에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커다란 웃음을 토해내던 장저민이 내 두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공화국에 그대의 공장이 세워졌으면 좋겠소.”

대충 예상 했던 말이었다.

확실히 삼현은 중국에 휴대폰 생산공정을 만들었던 때가 있었으니까. 갈수록 높아지는 대한민국의 인건비 때문이었으며, 중국시장 진출을 꿰하기 위함이었다. 그때와 지금 다른점이 있다면 현재의 나는 요청을 받는 것이고, 그때의 삼현은 먼저 요청 했다는 점이다.

“어떤 공장을 세우길 바랍니까?”

“세계를 선도하는 SKY 전자가 아니겠소. SKY 일렉트로닉과 SKY 자동차도 좋소.”

늙은이가 욕심이 많았다.

SKY의 미래 핵심 제조업들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룹 안에도 장저민이 심어 놓은 산업 스파이 놈들이 있겠구나 싶었다. 미친듯이 찍어내고 있는 위안화를 뿌리면서 헐 값에 내 기술을 빼먹으려는 의도가 빤히 보이는 상황.

겉으로는 서로 win-win하는 방향, 하지만 나도, 그리고 장저민도 이왕이면 혼자 win하는 방향이라면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도 나도 동상이몽을 꾸고 있겠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내겐 나 혼자 WIN할 방법과 지식이 있고, 그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솔깃할 제안은 가져오셨습니까?”

< 제 181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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