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80화 (180/458)

< 제 180화. >

10월 12일.

미국의 부쉬 대통령과 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갖는 날. 어제 미리 출국한 대통령과 따로 움직이는 나는 그렇게 반갑지 않은 중국땅을 밟았다.

부쉬와 우리나라 대통령이 주고 받을 대화따위와 회담 내용은 사실 크게 관심이 없었다.

물론 로켓 발사 시설을 짓는 것은 내게도 중요한 일이지만 굳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없는 자리에서도 충분히 미국의 허락을 구할 수 있었다. 다만 우리 대통령에게 입발린 소리로 ICBM얘기를 꺼냈을 뿐이었다. 물론, 나도 대한민국이 ICBM을 미국에게 허락받으면 환영이다.

결국 대한민국의 군수사업은 내가 틀어쥐고 있으니까.

공항을 나오니 내 경호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나를 인도한다.

“몇시죠?”

“오전 11시 23분입니다.”

“회담은 점심부터죠?”

“예, 회장님.”

“서둘러야겠네요.”

“이미 도로가 정리되어 있다는 공안의 통보를 받았습니다.”

“귀빈 대접이네요.”

“SKY의 기술이 탐나지 않겠습니까?”

호석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성장의 발판을 깔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전 세계에 혁신을 말하는 SKY의 기술력이 탐날 터. 지금 시기라면 전 세계 이곳저곳으로 중화사상에 찌든 인물들을 보내 기술을 훔치고 있을 시기니까 호석의 말은 신빙성 있는 주장이었다.

회담이 진행되는 호텔까지는 순식간이었다. 중국이라는 땅덩이가 넓은 나라에서 이렇게 쉽게, 그것도 어마어마한 인구가 살고 있다는 북경에서 이렇게 빠르게 올 줄은 몰랐다.

“겨우 20분만에 도착했네요?”

피식 웃으면서 차량에 내리는데 경례를 올리는 중국 공안. 예의상 고개를 살짝 숙이며 화답하니, 대뜸 손을 내밀며 어색한 한국말로 말했다.

“반갑습니다. 천우진 동무.”

“한국말 배우셨네요?”

“조선족과 북조선 사람들에게 조금 배웠습니다.”

“아아, 예. 반갑습니다.”

“정찬장까지는 제가 안내하갔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를 따라 호텔 로비를 걸어 엘리베이터에 도착한 우리. 엘리베이터 안에는 한국말을 했던 공안과 다른 공안 한명, 나와 내 경호원 둘, 호석이 탑승했다.

“천우진 동무.”

“예.”

“오늘 남조선 대통령과 미국의 대통령의 만남이 끝나믄 시간을 내주시갔습니까?”

그와 잠시 눈을 마주쳤다.

“주석께서 보자던가요?”

조심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

“어디서요?”

“자리가 끝나면, 제가 모시갔습니다.”

나는 내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인원이 많아서.”

“일 없습네다.”

주석이 내게 무슨말을 할지 모르지만 그를 만난다고 해서 손해 볼 게 없었다. 아무리 중국이 미친놈들이라고 해도 나를 어떻게 할 순 없을테니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감사합네다.”

“별 말씀을.”

마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백인 둘과 딱 봐도 대한민국 대통령의 경호원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우리를 주시한다. 한국 경호원들이 날 알아보고 고개를 살짝 숙인다.

“오셨습니까. 여기서부터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러시죠.”

내 경호원들은 제지당하고, 호석만이 나를 따라 식당 내부로 들어왔다. 이미 한바탕 기자들과 카메라는 휩쓸고 지나갔는지 내부는 조용하기 그지 없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한국의 입장에서도 굳이 두 국가의 정상이 만나는데 기업인이 함께 하는 장면은 옳바르지 않았다.

내가 피해를 볼 일은 전혀 없고, 정치를 하는 둘은 피해 볼 게 제법 많았으니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

프라이빗 룸으로 들어가자마자 부쉬와 우리나라 대통령이 날 반갑게 맞이한다.

“오, 미스터 천.”

“오셨습니까 천 회장.”

둘 다 알아들을 수 있게 영어로 얘기했다.

“좋은 얘기 많이 나누고 계셨습니까?”

내 질문에 부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통역이 없었다면 더 수월했을 것 같군요.”

약간의 딜레이 후, 대통령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나는 대통령의 곁에 앉아있는 통역사들에게 말했다.

“자리 좀 비워주시죠.”

내 말에 그들은 각국의 대통령을 바라보지만, 대통령들도 내 뜻에 동의하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통역사들이 사라지자 두 대통령은 마치 합의된 것 마냥 편안한 모습으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는 삐딱하게 의자에 앉는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눠 보실까요?”

두 대통령이 흡족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

마오찌둥, 당사오핑을 이어 중국의 3세대 지도자로 거론되는 장저민. 양저우에서 태어나 난징대학살을 직접 보고자랐다는 그는 쉽게쉽게 현재의 자리에 오른 인물은 아니었다. 나름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온 그에게 요즘 고민이 있다면 점점 후진타오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쉽게 얘기하면, 아직은 자리 욕심이 있는데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니 버겁다는 얘기였다.

1989년 11월부터 장기집권을 이어오던 그. 중화인민공화국 최고 지도자라는 그 자리를 아직은 누구에게 양보하기 싫은 그였다. 97년부터 매년 8퍼센트 이상의 국내총생산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 아직은 그가 자리를 지키게 만드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었다.

“후우···”

그러나 그는 자리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매년 8퍼센트의 국내총생산 또한, 결국 베이스가 없는, 그러니까 기초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중국의 상황에서 바깥의 것을 조금씩 받아 들이고 훔쳐오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것이었다.

과거 러시아가 루스 제국이던 시절 산업혁명의 노 베이스에서 빠르게 성장한 것 처럼 말이다.

그러나 당장 다가오는 2002년부터, 당장 올해 2001년이 끝나가는 시점도. 앞으로의 고도 성장을 계속 이어나가리라 장담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요가 넘쳤고 공급이 적은 상황에서 공급만 해주면 되는 일이니 쉽게쉽게 채워지던 실적들은 이제 한계치에 다다랐다. 더이상의 국내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최고지도자 각하, SKY그룹의 경영자 천우진이 지금 정찬장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내 뜻은 전했나?”

“예, 천우진 회장도 흔쾌히 만남을 승낙했다고 합니다.”

“다행이군.”

“감히 최고지도자 각하께서 부르는데 뉘에 있어 따르지 않고 버티겠습니까?”

피식 웃은 장저민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작게 읊조렸다.

“주변에 달달한 것들 밖에 없으니··· 세상이 보이지 않아.”

오래 자리를 유지한만큼, 주변에 남아있는 총명하던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장저민.

어딜가도 달콤한 이야기들로 귀를 어지럽히니 대세를 읽기가 참 어려웠다.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최고지도자 각하.”

제대로 들리지 않으니 잔뜩 죄송하다는 표정을 짓는 비서관.

“중요한 게 아니니 됐고, SKY그룹에 침투했던 역군들은 어떻게 됐지?”

“SKY그룹의 기술 보안이 철통같아, 아직 힘에 붙여 하고 있습니다.”

“뭐가 문제야? 비용? 아니면 인력?”

“미제 놈들보다 더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상을 찌푸리는 장저민.

“앞으로 5년. 그 시간이면 SKY는 전세계를 쩌렁쩌렁하게 울릴거야, 지금도 가파르게 전자시장을 비롯해 자동차, 건설, 중공업, 심지어 유통까지 빠르게 장악하고 있어··· 스며들 듯 마치, 세상에 원래부터 있었다는 듯 소리소문 없이 조용하게.”

“······”

“더 두고 보다가는 우리의 자리가 없을거야, 우리도 하루빨리 바깥으로 나가야지.”

“노력하겠습니다.”

장저민이 무감정한 얼굴로 천하를 오시하듯 오만한 눈빛을 쏘아내며 말했다.

“노력은 필요 없다. 실력으로 보답해.”

“명심하겠습니다!”

“천우진이라는 그 애송이에게 무엇을 내주어야 수월하게 꼬셔올지, 제대로 보고서 올려 시간은 한··· 세 시간 정도 남았겠군.”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돈귀신들이 환장 할 만한 걸로 가져오라고.”

“예!”

***

동시 통역까지는 아니지만, 부쉬가 말하는 핵심을 명확하고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반대로 우리나라 대통령이 하는 말을 마찬가지로 부쉬에게 전달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지체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자리의 누구 하나 그 점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리라고 해 봐야, 나와 대통령 둘을 포함 셋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

“그러니까 아직 대한민국이 ‘핵’을 보유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부쉬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통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는 대통령이지만 내게는 그의 쓰린 속내가 보이는 듯 했다.

“국제 정세로서도 위험부담이 있습니다. 당장 대한민국이 핵개발을 하겠다고 한다면, 경제 재재를 가하겠다고 엄포를 놓을 국가가 한 둘이 아니에요, 당장 옆나라 일본 역시 가만두고 보지 않을겁니다.”

대통령도 지지않고 조곤조곤 얘기했다.

“옳은 말씀입니다만, 옆나라 일본은 지금 총리 문제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와중이라 미처 국제정세를 제대로 살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또한 우리의 주적인 ‘북한’이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이 결코 모르지 않는다 확신합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우리 대한민국의 영원한 우방 미국역시 전세계 어떤 나라보다 강력한 ‘핵무기’를 무장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영토내에 우리의 부대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꼭 ‘핵’을 고집해야겠습니까?”

둘의 대화를 최대한 고운말로 통역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도돌이표를 맴돌 뿐이었다.

애초부터 미국은 굳이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가 ‘핵무장’을 주장했어도 뜯어 말렸을 터였다. 강력한 우방, 영원한 우방이라는 미사여구를 통해 좋게 말하고 있지만 짧고 간단하게 압축하자면 ‘응, 안 돼.’라는 단호한 대답이었다.

“자자 두분 이렇게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부쉬와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묻는다.

“어떻게 말입니까?”

“궁금하군요, 미스터 천의 생각이.”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직 ‘핵’을 무장하는 것이 미국측에서 부담스럽다 하니, 핵을 뺀 ‘미사일’을 먼저 무장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부쉬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고, 대통령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짐짓 모르는척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사일을 무장한다?”

진의를 파악하고자 하는 부쉬에게 별것 아니라는 듯 쉽게 말했다.

“우리 SKY그룹의 SKY항공우주기술은 벌써 몇해 전부터 인공위성을 쏘기 위한 연구를 진행중이었습니다. 물론 국제법과 미국과 우리가 맺은 조약들을 준수하면서 진행했습니다.”

계속 해보라는 듯 날 빤히 바라보는 부쉬.

“당장의 핵 보유는 우리의 영원한 우방 미연방이 부담스럽다 느끼는 점,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핵’ 보유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우선 대륙간탄도미사일. 즉, ICBM부터 완벽하게 무장하는 것이지요, 추우에 날이 좋을때, 때가 좋을 때, 그때 핵기술마저 완성한다면 단숨에 핵무기 보유국가로 발돋움하지 않겠습니까?”

부쉬도 대통령도 고개를 끄덕인다.

“흐음···”

그러나 부쉬는 이것도 쉽게 허락하기는 어려운 듯, 온 몸으로 ‘불가’라는 뜻을 피력하고 있었다. 다만, 나와의 관계가 우려 되는지 대놓고 얘기하지 못한다.

“어차피 SKY항공우주기술이 미군의 GPS기술을 이관받는 것은 협의가 된 내용이잖습니까 미스터 프레지던트?”

“분명, 약속했던 사안입니다.”

“GPS기술을 극대화하고,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 ‘인공위성’의 존재는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인공위성을 성공리에 쏘아올린다면, 그것은 곧 ICBM무장과 다를바 없을 겁니다.”

부쉬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단 ICBM기술도 만들어만 놓겠다?”

< 제 180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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