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77화 (177/458)

< 제 177화. >

타다당, 타다당.

총성은 쉬지 않고 울렸고, 어느새 대연회장을 포위한 위장복을 입은 괴한들이 우리를 조준한다.

나는 분명히 연설하며 말했다.

언제 어느순간 어떤 방식으로 나탈나지 모르는 놈들이라고.

“지금 당황한 대원들이 있다면, 그 대원들은 죽은겁니다.”

무거운 침묵이 연회장에 자리 잡는다.

자신감 넘쳐 보이던 대원들도 흠칫 놀라더니 이내 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여기 앉아있는 개개인의 대원들에게 투자한 돈이 수십억이다. 그런만큼 어쩌면 대원들도 엘리트 의식에 절어있을지 모른다.

가오가 몸뚱이를 지배하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여러분이 파견되는 그 순간, 당신이 믿을 수 있는 것은 당신과, 옆에있는 우리 대원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훈련 시작.”

내 시작 싸인과 함께 총을 발포하던 교관들이 외친다.

“전 대원 연병장으로 집합.”

썰물처럼 대원들이 빠져나가고 호석이 내게 다가왔다.

“고생하셨습니다 빅보스.”

수련원이라 그런지 굳이 코드네임을 부르는 그.

“훈련은 내 계획을 투영해서 만들었죠?”

“예, 빅보스.”

호석이 내미는 훈련계획서를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몇가지 보충해야 할 부분들이 눈에 보였다. 이 정도로는 ‘당황스러운’상황이라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전 삶.

외국에서도 사고를 치고 다니는 이재현 놈 덕분에, 삼현의 보안실에서는 이라크와 아프간에 파병을 다녀온 부사관들을 대거 모집한 적 있었다. 그들의 목격담과 실화를 들을 때 마다 보안실은 물론 비서실 사람들도 고개를 젓거나 믿지 않을 만큼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정말 많았다.

‘수니파’라면 이를 가는 종자들이었다.

그러니 우리 대원들도 그렇게 되어야 했다. 그래야 그 어떤 군인 집단보다 우리 PMC가 ‘대단하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테다.

“환복명령 하고, 책임 교관들 몇몇은 회의실로 부르세요, 훈련과정에 대해서 토론좀 합시다.”

“예, 빅보스.”

***

고키부리와 마주 앉은 천혁수.

“자네에게 일본에서 일을 맡기고 싶군.”

고키부리가 놀란 모습을 보인다.

그가 생각했을 때 천혁수는 일본을 손에 쥐고 싶어한다고 느꼈었는데 아니었나 싶었다.

“역사바로알기 운동에 전력을 다해주게.”

꼭 정치인처럼 말하는 천혁수 때문에 고키부리의 머리는 복잡했다. 여태껏 그가 하는 일은 ‘돈’을 위해 움직이는 것 처럼 보였었다. 그런데 이제와 애국적 정치인 같은 모습을 보이니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예, 어르신! 믿어주십시오.”

고키부리의 대답에 짐짓 만족스럽다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린 천혁수.

“이제 한국에 돌아가서 따로 할 일이 있으니, 자주는 보지 못하더라도 여기 이 사람들을 통해 연락하지.”

슬쩍 고개를 돌리니 김장원과 이재형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쪽 경호일에는 스페셜리스트니 안심해도 좋아.”

“예.”

말이 경호지 ‘감시’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 고키부리, 그러나 이미 자신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였다. 이제와서 천혁수의 반대편에 선다? 그것은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현 자민당의 입장에서도 아주 좋아할 일이었다. 쉽게 제거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고키부리는 살고 싶다면 절대 천혁수와 사이가 멀어져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천혁수에게 약속받은 천억엔이란 자금을 손에 쥐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 돈만 있어도 정치따위는 때려치고 다른 나라로 도피할 생각이 가득한 고키부리였다.

천혁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키부리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들겨 주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고키부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제대로 된 식사를 즐기기 시작했다.

천혁수가 공항으로 향하는 차량에 오르자마자 김장원을 불렀다.

“김 감사.”

“예, 어르신.”

“잘 컨트롤 해.”

고키부리를 얘기한 다는 것을 깨달은 김장원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예, 확실허게 하겄습니다.”

“개새끼가 딴 마음을 품으면, 보고도 필요 없어.”

천혁수의 말 뜻을 완벽하게 이해한 김장원은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릴 뿐이었다.

“확실허게, 처리하겄습니다.”

“어울리는 놈들 신상 가져오고, 우리 대원들은 해외 파견 임무가 있어서 불가피 하게 빼야 할 것 같으니, 야쿠자 놈들을 좀 구슬려 보도록.”

“예, 여그도 돈이면 부처도 부려붑니다. 전 총리놈도 부리고 있는디 야쿠자라고 별거 있겄습니까?”

천혁수가 고개를 옮겨 이재형에게 말했다.

“입이 가벼운 상사를 항시 보필해야 할게다.”

“예, 어르신.”

김장원은 입술을 삐쭉 내밀지만 천혁수도 이재형도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재형은 백철웅에게 시선을 옮겨 물었다.

“아프간으로 파병을 간다 들었습니다.”

“맞아.”

“제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백철웅은 고개를 저으며 이재형의 말을 잘랐다.

“이제 살 만해진 동생을 생각해야지 우리 대원들로도 충분해.”

“회장님 뜻입니까?”

“그래.”

뭔갈 더 묻고 싶어 보이는 이재형.

백철웅은 손을 뻗어 이재형의 무릎을 툭툭 두들겨 주며 말했다.

“마음이 여린 너는 수니파를 상대하기 어렵다고 하시더군, 그게 다야.”

백철웅의 말에 김장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워따, 세상천지 마피아 용병출신이 마음이 여리다니 설득력이 없는디요?”

백철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여섯살 먹은 어린 여아가 폭탄을 들고 있다면, 넌 쏠 수 있나?”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김장원의 얼굴.

인상을 찌푸린 이재형.

천혁수는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따 암만 미친놈들이어도, 그런 아그들한티 그딴 짓거리를 시켜붑니까?”

백철웅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회장님이 말씀하시길, 갖난아이의 기저귀에도 폭탄을 심어 놓는다는 군.”

김장원이 성난 표정으로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설을 퍼붓고, 이재형은 경멸의 표정을 짓는다.

천혁수 역시 고개를 저으며 쯧쯧하고 혀를 찼다.

철웅은 이재형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네 놈은 사람처럼 살고 싶다며, 동생을 위해서.”

“예···”

“여기 일이나 제대로 처리 해.”

“알겠습니다.”

무거운 분위기가 싫었을까 김장원이 실실 웃으며 천혁수에게 말했다.

“으따 그나저나 어르신, 참말로 출마허십니까?”

천혁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한자리 주랴?”

“아따~ 무식한 제가 그런 자리 얻어봐야 욕만 듣죠잉, 그냥 궁금혀서 여쭸습니다.”

“해야지, 손주놈이 판때기를 깔아줬는데, 어떻게 해도 먹을 수 있는 좋은 판때기를.”

“이야, 내년 부터는 참말로 우리 세상이네요잉.”

천혁수가 픽 웃으멸 말한다.

“원래부터 우리 세상이었다 이놈아.”

***

2001년 10월 7일.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선포와 함께 영국 연합군과 350여기가 넘는 전투기를 배치시키는 등, 강력한 군사조치를 실시하였다.

수많은 전투기와 다양한 첨단 무기들은 아프가니스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남을만큼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나 외세의 침략에 항상 굽히지 않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정부는 아직 미국의 무서움을 모르는 눈치였다.

“전쟁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미국이 전쟁을 하는데 왜 자꾸 나를 부르나 싶었다. 대통령은 참 궁금한게 많은 모양.

“말이 테러와의 전쟁이지 결국은 중동 아랍권에 있는 지하자원이 탐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프간은 시작이고 이후에 어디로 미국의 불똥이 튈지는 알 수 없죠.”

어그로 핑퐁을 얘기하는 이는 외교부 장관이었다.

고스톱으로 저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닌 모양인지 제법 세계 정세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모두가 대충은 예상하고 있는지 고개를 주억거렸고, 대통령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는 적절한 수와 자원을 투입시키고 싶은데, 규모를 특정 할 수 없으니 여쭙습니다. 천 회장.”

“적절한 수준으로 성의만 보이면 될 겁니다. 어차피 대한민국 군은 ‘후방’위주로 담당하게 될테니, 그 쪽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군요.”

“그렇습니까?”

“백인우월주의에 절여진 영국과 미국이 특수부대를 많이 활용하려 들겁니다. 전과와 함께 프라이드를 지키고 싶어서라도 과한 전력을 운용하겠죠, 굳이 우리까지 많은 전투병과를 투입해 그들과 경쟁할 필요가 있습니까? 세계평화를 수호하는 대한민국이 아닌데요.”

드라이한 내 설명에 국방부 장관은 탐탁치 않아 보이나, 나머지 인사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외정치는 실리를 추구해야죠, 그 선을 결정하시면 되겠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리는데 반해, 뾰로통한 모습을 보이는 국방부 장관이 내게 묻는다.

“헌데, 어째서 SKY PMC는 군사훈련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며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까? 천 회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얻어올 실리가 없는 것 같은데요?”

“그건 국가적인 실리고, 개인과 기업이 같는 ‘이익’은 다른 법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다르다는 얘기입니까?”

나는 쓱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거 뭐, 청문회입니까? 내가 뭘로 이득을 볼지 A부터 Z까지 설명해야 됩니까? 어디까지나 여기에 나는 경제 자문으로 불려온 것으로 압니다만?”

나는 지금 경고를 하고 있었다.

빡치게 하면 난 그냥 가버리겠다는 그런 얘기였다.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을 작게 타이르고는 내게 말했다.

“아, 우리 김 장관이 SKY PMC가 만전을 기하는 것 같으니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우리 국군도 만전을 기해야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라고 봅니다.”

뭔소리인지는 모르겠는데 국방부 장관은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통령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종교인들의 미친 짓거리나 막으십시오, 대한민국이 할 일은 그런 거니까.”

이어진 내 말에 그게 무슨말이냐는 듯 외교부 장관이 날 빤히 바라본다.

“전도에 미친 사람들이 사고를 칠거란 얘기입니다. 특종에 미친 기자들도 마찬가지고.”

“으음.”

단 한순간도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를 꺼내니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 실제로 전 삶에서 아프간, 이라크 전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짓거리를 했더랬다.

평화에 찌든 사람들이기에 할 수 있는 판단이라는게 정설이었다.

“흐음··· 외교부에서 철저하게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프가니스탄으로의 여행은 막아야겠죠.”

“항공편도 막는 것이 좋을겁니다. 원래도 직항선은 없었겠지만.”

“예, 조언 감사드립니다.”

국방부 장관이 분위기가 다시 개선된 것 같았는지 내게 질문을 해 온다.

“음··· 부끄러운 얘기지만, 우리 군 정보부보다 SKY의 정보력이 우수하다고 들었습니다.”

“운이 좋았죠.”

“SKY PMC의 훈련과정이 독특하다 들었는데, 혹 파병을 나가게 될 우리 국군도 함께 참여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우리 부대로 자문을 와 주실 수 있습니까?”

이건 생각 해 봐야 할 문제였다.

단순히 파병갈 군인들을 생각해서 하는 질문인지, 아니면 PMC의 기술과 기밀을 빼돌리고 싶어 하는 것인지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대가는요?”

예상과는 다르게 인상을 찌푸릴 줄 알았건만, 예상했다는 듯 빙그레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말하는 그.

“자주포 기술 어떻습니까? 미사일 기술에 이어서 ‘포’의 기술까지, 우리 대한민국의 ‘포’기술은 뛰어난 편이라 자부합니다.”

순순히 내주겠다고 하니 어색했다. 국방부 장관이 원래 저런 캐릭터였나 싶었다.

“포 기술은 필요 없고, 돈으로 받죠.”

“돈이라면 얼마를 말입니까?”

“우리 PMC에 정식으로 의뢰서를 넣어주세요, 금액은 추후에 협상하는 것으로 하시지요. 참고로 이번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되는 PMC의 말단 대원 개인의 훈련비용으로 우리 SKY가 투자한 금액이 23억원이라는 걸 명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결코 저렴한 비용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내 말에 놀란 얼굴들을 하는 청와대 관계자들.

“아니, SKY PMC의 직원수가 약 300명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맞습니다.”

입을 떡 벌리는 사람들.

대통령이 넌지시 묻는다.

“도대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아끼는 모습.

아마 대통령은 SKY PMC가 무엇을 하려고 그러냐는 물음이었을테다.

“파병 나갈 군인들이 우리 SKY의 제품들을 써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 페이스대로 내가 얻어올 것들을 얘기하고 있었다.

국방부 장관은 내 물음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당연합니다.”

이번엔 대통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 SKY항공우주기술이 여객기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대통령님.”

“크음···”

“파병 나갈 군인들이 대한민국 국적기, 그것도 자체 개발에 성공한 항공기를 타고 가는 모습은 많은 국민들에게 귀감이 되지 않겠습니까?”

“크흠, 그것은 항공사와 따로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빙그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SKY가 운수업에 뛰어들어볼까 싶습니다. SKY LINE때문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유통에 쏟고 있으니까요, 자체적인 운수업체를 보유한다면 아무래도 조금 더 아낄 수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대통령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여객 사업까지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예, 당연히 화물 운송도 해야겠지요.”

“SKY에서 자체 생산한 항공기로요?”

“예, SKY 자동차에서 만든 화물차들도 함께 움직이겠죠?”

“하, 이제 선박까지 만드시면 모든 시스템이 자급자족 되겠습니다.”

“이미 선박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타타다우와 삼현이 SKY의 품속에 있다는 걸 잊으셨습니까?”

“크음··· 미국의 공급주택 사업에도 SKY 건설이 10대 건설사로 포함되셨다지요?”

“운이 좋았습니다. 10개 건설사중 4개 건설사를 해외 건설사들에게 양보했으니까요, 그 중 하나가 우리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와 대통령의 대화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청와대 관계자들은 체감하지 못하던 SKY라는 공룡의 덩치가 실감되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조아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대통령은 결국 포기 했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천회장님 뜻 대로 될겁니다. 물심양면으로 우리 나라를 위해 애써주세요.”

“그럼요, SKY의 뿌리는 대한민국 아니겠습니까?”

“크음···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날 바라보는 대통령의 눈은 내게 묻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뿌리가 SKY가 아니고요?’라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 제 177화.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