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76화. >
너무 뜬금없는 말이었을까.
“와, 중학교 때 제 짝꿍이 우주정복이 꿈이라고 했었는데, 갑자기 그때가 생각나는군요.”
찰리 박의 말에 여기저기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미국도 하지 못한 일이니까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와 지금 막 소름 돋았습니다.”
강기태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는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올리고 말했다.
“어쩐지, 회장님은 진짜 하실 것 같아서요··· 여태까지 회장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 이뤄지지 않은게 없어서 이거 원, 가늠이 안 되네.”
“음···”
찰리 박이 생각에 잠기고, 나는 피식 웃으며 글라스 잔에 따라진 소주를 마셨다.
“확실히··· 세계 정복이 아니라, 세계 제패라니까 뭔가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렇군.”
찰리 박의 읊조림에 주변을 꽉 채우게 앉아 있던 대원들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자, 이쯤 마시고 일어 납시다.”
내 말에 강기태가 화들짝 놀라며 시계를 쳐다본다.
“아직 9시밖에 안 됐습니다 회장님!”
“하하 미안합니다. 강 본부장, 와이프한테 보고할 시간이라 일어나야 됩니다.”
찰리 박과 강기태가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아니··· 회장님도 그런 걸 하십니까?”
“벌써 사모님한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내 아이를 인질로 잡고 있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군요.”
“회장님이 애처가라니···”
“20대에 벌써부터···”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찰리도, 강 본부장도 빨리빨리 장가 가세요, 그럼 내 마음 이해할겁니다.”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는 둘.
그도 그럴것이 그들과 나는 최소 10살 이상 차이가 났다. 그들이 나보다 더 형들이라는 소리였다.
물론 실제로 인생을 살아온 시간은 내가 더 많지만 그들이 알지 못할테니까.
“그럼 유부남은 이만 들어갑니다~ 내일 중요한 스케쥴도 있어서.”
***
미국 워싱턴의 현지 시각으로 오전 10시.
대통령 부쉬의 발표가 진행되고 있고, 그것은 전 세계에 방송으로 생중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록펠러의 저택에서는 JB모간의 체이스, 골드만글러브의 삭스가 록펠러와 함께 시청하고 있었다.
“드디어 본격적인 시작이군요.”
체이스의 말에 록펠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제 우리 손녀사위가 윌리엄 그 친구에게 선전포고를 했다고 하더군요.”
삭스가 놀란 눈으로 말한다.
“음, 굳이 주머니 속 칼을 꺼내들 필요가 있었나 싶군요.”
“하루냐 이틀이냐, 차이는 없다고 보는게 맞겠죠?”
이어진 록펠러의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지금 부쉬의 발표로 공급주택 사업에 발을 담근 모든 자본가들의 이름과 세력의 이름은 드러나게 된다. 로스차일드만 배제되어 있을테니 그도 바보가 아니라면 깨닫게 될 뿐이었다.
삭스와 체이스는 천우진, 그리고 록펠러와 로스차일드가의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둘과 함께 싸운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으니, 이제 제대로 치고 받을 준비를 하면 될 뿐입니다.”
록펠러의 말에 삭스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말했다.
“휘유, 상원이고 하원이고 시끄럽게 전화질을 하겠구만.”
체이스도 고개를 주억거린다.
“어차피 각오한 일이 아니었나? 요즘 로스차일드 가문의 저택에 불이 꺼지는 날이 없다고 하니, 아마 윌리엄 그 친구도 몹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겠지.”
“크로치 인베스트가 로스차일드 뱅크에 거하게 한방 날렸다는 소문이 월가에 파다하지.”
“소문으로는 천억달러를 해 먹었다는데···”
삭스와 체이스의 눈이 록펠러의 입으로 향한다.
소문만 무성한 크로치 인베스트먼트의 수익률이 궁금한 그들이었다.
어깨를 으쓱이는 록펠러는 말했다.
“음, 그것까지는 물어보지 않았는데? 천억달러라니 그건 말도 안 되는 것 같고··· 반절은 되지 않을까 싶군요.”
“이야, 오백억 달러의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다?”
“벌써부터 고객들의 계좌이체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군.”
“상, 하원 의원들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은데?”
얼마가 되었든 로스차일드의 힘이 약해지는 것이니 그들 입장에서는 반겨야 할 따름이었다. 미래의 경쟁자가 하나 사라지는 것은, 그것도 최고라 불리는 로스차일드가 사라지는 것은, 누구나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연방은, 이 순간부터 세계평화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테러’단체와 협상은 없으며,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으음··· 결국은 전쟁이 일어나겠군.”
록펠러의 읊조림에 체이스와 삭스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듣기로는 아프간 쪽으로 갈 것 같다고 하던데 록펠러씨는 정보가 좀 있습니까?”
체이스의 물음에 록펠러는 친절하게 대답했다.
“우진에게 듣기로는 확실히 아프간 탈레반 정권에서 알카에다를 비호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럼 의외로 쉽게 끝날 일 아닙니까? 탈레반이 멍청이가 아니라면 알카에다를 내 놓겠죠.”
“우진의 예상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이다. 기나긴 전쟁이 될거라고 하더군요.”
체이스와 삭스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지금 연방이 동맹들을 싸그리 모아서 공격하겠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오래 걸린다고요?”
어깨를 으쓱이는 록펠러.
그도 알 수 없었다. 자세한 얘기는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진의 말로는 아프간은 아주아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 섥힌 나라라고 하더군요, 1차 2차 세계대전도 아니고 비인도적인 방식을 사용할 수 없는 부쉬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을 길게 끌어갈 수 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흐음···”
고개를 갸웃거리는 체이스.
삭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돈 안 되는 전쟁을 일으킬 연방이 아니겠죠, 중동 아랍쪽 지하자원도 탐이 나는데 그 주변의 지하자원도 탐이날 만 합니다. 파키스탄과 제법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있으니 그쪽을 창구로 해서 송유관이나 가스관같은 걸 뚫으려는 속셈이겠군요.”
“아하! 그래서 이번 테러가 자작극이라는 미친 음모론이 나오는 것이군.”
체이스가 삭스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나저나, 자네 제법 그쪽을 잘 알고 있는데?”
“이란과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와 인접해 있으니 제법 공부를 했지, 돈 냄새가 났거든.”
“흐음, 나도 직원들좀 돌려야겠군.”
어깨를 으쓱이는 삭스가 말했다.
“파견은 지양하게, 애꿎은 직원 목숨 날려버리고 싶지 않다면.”
“오우, 무서운 말을 하는군.”
“수니파, 극단적수니파 놈들은 아주 위험하거든. 이번에 테러를 일으킨 저기 저, 빈 라덴이라는 놈도 아주 극단적인 수니파의 일종이니까.”
“명심하지.”
모두는 다시 TV속 부쉬의 입에 집중했다.
-계속되는 주거난을 해결하고자 정부는 공급주택안을 확립했으며 정부 예산 3000억 달러와, 민간 예산 3000억 달러를 투입해 총 400만호 이상의 주택을 공급할 예정이며···
이번에도 삭스가 ‘휘유~’하며 휘파람 소리를 내며 말했다.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액수야.”
셋 중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이가 주는 자본력이란 저런 것이었다. 하나의 거대한 공룡기업을 순식간에 집어 삼킬수 있는 그런 자본력.
그렇기에 미국 대통령의 힘은 어마어마 한 것이었다.
물론 일시에 부쉬가 말한 자본이 투입되는 일은 없었다.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하는 계획일 뿐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저 발표로 인해 가파르게 상승하던 미국내 부동산 시장에는 침체기가 올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때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것은 이 자리에 있는 셋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공급주택에 투자해서 얻는 ‘임대료’뿐 아니라 하락한 부동산을 미리 사두는 투자까지 진행할 예정이었다.
“자, 우리는 약속대로 300억 달러씩 준비하면 됩니다.”
록펠러의 말에 삭스와 체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우진, 그대들까지 총 1200억달러는 우리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건설사들과 다른 금융사가 나설겁니다.”
“예, 계획대로군요.”
“그렇군요.”
록펠러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기존에 우리가 약속했던 것은 300억 달러이나, 그 이상의 투자는 자유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그럼요.”
“또한 5년 뒤에 다시 모기지는 시작됩니다.”
“그 좋은 아이템을 썩힐 순 없지요.”
록펠러는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렇죠, 아마 5년뒤에 로스차일드는 없겠지만.”
***
오후 2시.
부쉬 대통령의 발표로 언론은 자칭, 타칭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앞으로’를 예측하느라 바쁜 시각.
나는 파주 SKY 양성소를 찾았다.
현재 일이 맡은 바 임무가 있는 대원들을 제외한 모든 대원들이 양성소 대연회장에 모여 있었다.
내가 입장하자 그들은 절도 있는 자세로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올린다. 나 또한 절도 있는 자세로 그들의 경례를 받아들였다.
“별다른 임무가 없어서 그동안 좀이 많이 쑤셨죠?”
내 농담에 여기저기 피식 웃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며칠 뒤부터 그때가 천국이었다면서 미친듯이 날 욕하게 될겁니다.”
이어진 농담에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려왔다.
“절대 그럴릴 없습니다아아아아악.”
고마운 대답에 여기저기 폭소가 흘러나왔다.
절도 있는 경례를 올릴때와는 영 딴판이지만, 이렇게 순박하고 즐길줄 아는 사람들이 무장을 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여러분은 우리 PMC의 최정예들입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의 얼굴에서 강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러분이 앞으로 활동할 곳은 아프간.”
내 뒤쪽 스크린에 아프간의 지도가 떠오르고 여러 사진들이 떠오른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잔인한 사진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끈임없는 내전과 투쟁이 숨쉬는 곳이죠. 단순히 누군가의 경호를 맡기자고 여러분들이 그 지옥같은 훈련을 견뎌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전사입니다. 옆에 앉은 전우를 위해, 여러분의 가족을 위해, 그리고 우리 SKY를 위해 싸워줄 전사들.”
연설이 진행될수록 대원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졌다.
“여기 아프간에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알 카에다’라는 테러 조직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전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든 극악무도한 놈들이죠.”
놈들이 저질렀던 테러의 참상들이 계속 스크린에 흘러나왔다. 뉴욕 뿐 아니라 여러곳에서 일어났던 폭탄테러들. 그것들을 적나라하게 보고 있던 대원들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떠올랐지만 대부분의 대원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이 극단적인 무장단체는 극도로 위험한 테러리스트입니다. 아주 극단적인 종교적 이념에서 시작한 놈들은 어떻게든 ‘적’을 만들고 그 ‘적’을 죽이려고 제 한 몸 희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놈들이죠, 심지어 자신의 어린 자식에게도 폭탄조끼를 입히는 극악무도한 놈들입니다.”
대원들의 얼굴 곳곳에 ‘에이 설마’하는 표정들이 보였다. 나도 소문으로 듣기만 했고, 자료만 살펴보았다. 아프간의 실상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대원 한명, 한명에게 투자된 돈은 ‘억’소리를 넘어 ‘헉’소리가 나는 지경이다. 대인전의 스페셜리스트인 대원들을 잃는 것은 마음아픈 일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라는 뜻이었다.
“오늘부터 한달간, 여러분들은 실전대비 훈련에 돌입합니다.”
곳곳에서 야유가 쏟아진다.
“한 달이 지나고 나면 여러분은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보다 더욱 잔인한 인간이 되어 있을 겁니다. 주된 훈련 내용은 이 극단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갖가지 공격방식에 대한 ‘대비, 경계, 대응’이 주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맞닥드리게 될 것이고 어쩌면 심각한 부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야유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더니 제법 심각한 얼굴들이 되는 대원들.
“그리고 한 달 뒤, 여러분은 아프간에 투입됩니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전 대원이 투입됩니다.”
한 명의 대원이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질문 있습니까?”
“예, 빅보스.”
회장이란 호칭이 아니라 코드네임을 불렀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빅보스’라는 코드네임이 더 익숙할테니까.
“말 하세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간을 공격할 것이 당연한 상황인데, 한달 뒤면 전쟁은 끝나있지 않겠습니까?”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어째서입니까?”
“미국과 여러 동맹국들은 분명 승리 할겁니다. 그러나 알카에다와 아프간의 탈레반 정부를 뿌리 뽑지는 못할 겁니다.”
“······”
“앞으로 한달간 매일같이 아프간에 대한 ‘이해’도 교육할 예정이니 그때 궁금증이 해결되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은 대인전의 엘리트들입니다. 단순이 총을 잘쏘고 칼을 잘 써서 뽑힌 사람들이 아닙니다. 적어도 군사작전에 있어서는 어떤 천재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사람들이란 얘기입니다.”
모두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도 그럴게 정말 사선을 넘는 훈련을 받은 인재들이기 때문이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빠르게 답안지를 제출하고 실행해야 하는 상황이 익숙한 괴물들이었다. 그러니 자부심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달동안의 지옥과도 같은 훈련을 이겨내리라 봅니다.”
제법 긴 연설이 끝나는 순간.
타다다당!
대연회장에 총성이 울려퍼졌다.
< 제 17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