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75화 (175/458)

< 제 175화. >

아침부터 제법 언성을 높여서일까.

호석이 묘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스트레스를 푸신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피식 웃어버린 나는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늙은 토끼가 제법 짜증나게 하는군요.”

“원한은 잊지 않는다··· 저번 장례식때 윌리엄의 무례함이 떠오르는군요.”

고작 약올리려고 그랬을리 없다는 것을, 그도 나도 알지만 굳이 표현하지 않았다.

지금 윌리엄 마이어 로스차일드에게 가장필요한 것은 평정심일테다. 그러나 난 놈이 평정심을 가질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다.

“부쉬의 발표는 오늘 진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야겠군요.”

호석의 말에 웃으며 전화기를 집었다.

미국은 아마도 저녁식사가 한창일 시간일 터.

-허니~

“밥 먹고 있어?”

-응, 식사중이야 오늘은 이상하게 입맛이 도네.

“잘 됐네, 며칠 통 먹질 못하더니.”

미국의 식사예절에도 당연히, 식사중 통화같은 것은 하지 않는게 좋지만, 우리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즐겁게 먹고 마시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예절보다는 다른 것이 더 중요했다.

그 점을 아는지 루시의 부모님과 대비 할아버지도 별말 하지 않을테다. 시차라는 놈 덕분에, 부득이하게 이런 시간대밖에 선택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루시 잘 챙겨먹고.”

-응! 우리 봌텅이들 잘 먹이고 있을게.

태명을 복덩이들이라고 지은 할아버지 덕분에 루시가 어눌한 발음으로 봌텅이라고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어버린다.

“대비 할아버지 좀 바꿔줄래?”

-뭐야, 또 일이야?

루시가 보이지 않지만 도끼눈을 뜨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상상되니 나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렸다.

“푸핫, 미안해 루시. 여차저차해서 말이야, 그래도 루시한테 먼저 전화했잖아?”

-알겠어, 잠시만~

“응.”

달그락 거리는 포크와 나이프 소리가 들리고, 이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아침부터 일찍 일어났구나.

“아직 시차 적응이 덜 된거 같네요.”

-그럴 수 있지.

“다른게 아니라, 로스차일드의 그 늙은 토끼에게 저장고를 털었던 인물이 저란걸 밝혔습니다.”

-어이쿠, 그 좋은 구경을 못하다니 아쉽군.

대비 할아버지 역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이미 우리는 로스차일드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니 두려울게 없는 것이다.

애초에 전면전을 각오하고 일을 시작했다.

이제와 밝혀지는 것이 두렵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럼, 부쉬에게 움직여달라고 해야겠구나.

“예, 그거 말씀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오냐, 무슨 뜻인지 알았다.

“체이스와 삭스에게는 할아버지가 말씀해주세요.”

-걱정하지 말고, 한국에서 일 잘 보거라.

“예, 감사합니다.”

***

대충 대화는 끝난 것 같아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는 잭슨.

“그럼 뭐, 대충 끝난 것 같으니 일어나겠습니다. 대 로스차일드의 가주님.”

잭슨의 비꼼에도 뭐라 대답하기 힘든지 부들부들 떨고만 있는 윌리엄.

막 스처지나가려는 잭슨에게 말하는 그.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사냥꾼들의 식사가 될 뿐이지.”

“글쎄요? 내가 사냥개의 가치까지 있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나는 분수를 아는 사람이라.”

윌리엄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뒤통수에 얘기하는 잭슨에게 다시 말했다.

“사냥개를 비호해줄 사람이 있을까?”

일이 끝나고 팽 당할 잭슨을 가만 놔 두지 않겠다는 경고였다.

“내가 또 숨는 건 기가막히게 잘 해서, 뭣하면 이번엔 고객이 될 수도 있겠죠, SKY그룹의. 보다시피 여기 경호가 아주 훌륭한 수준이라.”

“어디 그 잘난 주둥이 얼마나 나불거릴 수 있는지 지켜보지.”

“대 로스차일드가 어떻게 미국에서 무너지는지 구경이나 실컷 해보겠습니다. 목걸이나 사러 오세요? 아, 로스차일드에 지금 돈이 없나?”

까드득.

이를 짓 씹으며 분노를 다스리는 윌리엄을 뒤로 하고, 잭슨은 당당히 걸음을 옮겨 자신의 방에 들어왔다.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윌리엄을 잔뜩 약올린 잭슨.

그는 방에 도착하자 마자 소파에 거의 주저 앉듯 앉았다.

“그, 팀장님?”

잭슨의 경호를 담당하는 팀장을 부른 그.

“예, 잭슨.”

“저 영감탱이가 아무래도 날 죽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착각입니까?”

“오늘만 봐서는 거의 확실하지 싶군요.”

잭슨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말했다.

“너무 팩트만 얘기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 부랄이 잔뜩 쪼그라들었는데, 위로라도 해주시죠?”

“제 업무가 아닌 것 같군요.”

마치 기계와 같은 대답에 잭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SKY 시큐리티? 고용하는데 얼마나 비용이 소모됩니까?”

“어느 단계를 고용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단계요?”

“3등급부터 특등급까지 존재합니다.”

“팀장님은 어느 등급입니까?”

“1등급입니다.”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잭슨.

그도 그럴것이 지금 자신을 경호하는 경호팀이 얼마나 스페셜리스트들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호는 아니었지만 잭슨 본인은 제법 부호들의 경호원들을 구경하던 순간들이 많았다.

또, 멕시코의 유명 마피아들의 자금 세탁도 도맡아 하던 그였기에, 과연 훈련받은 인간들이 얼마나 무서운 인간들인지도 잘 알고 있던 그였다.

그 어떤 부호의 경호원들과 마피아 보스의 최측근 보다 지금 잭슨의 경호원들이 훨씬더 날카로운 기세와 기계와 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자신을 경호해주는 인물들이 특등급이라고 생각했던 찰나였다.

“와··· 도대체 특등급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잭슨의 이어진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경호팀장.

“그럼 1등급 경호원들을 고용하려면 얼마가 필요합니까?”

“자세한건 회사와 상의하시죠, 클라이언트와의 협상은 우리의 업무가 아닙니다.”

SKY인베스트먼트의 투자총괄 강기태와 꽤 길게 어울렸던 잭슨은 한국의 문화에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딱 잘라 업무분담을 얘기하는 눈 앞의 경호 팀장에게는 어쩐지 자신이 알던 한국의 문화와는 좀 차별화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음··· 보스께 연락 할 수 있습니까?”

“확인하고 말씀드리죠.”

바로 전화기를 들어올리는 경호팀장.

***

아산댁에게 아침 메뉴를 묻고 요가매트 위에서 몸을 풀고 있는 중에 호석이 다시 다가온다.

“또 왜요.”

막 땀이 나려던 찰나였기에 방해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잭슨이 회장님과 대화를 요청합니다.”

“쯧, 주세요.”

스트레칭을 하던 자세였기에 호석은 친절히 귓가에 전화기를 데어주었다.

‘스피커폰 기능, 빨리 만들어야겠어.’

-보스!

“왜 전화 했습니까.”

-윌리엄 그 영감탱이가 날 죽일 것 같습니다.

“안 죽어요, 우리 경호원들 호락호락한 사람들 아닙니다. 특수부대 2개 중대는 파견해야 할걸요?”

-알고있습니다만, 언젠가 이런 경호도 끝이 날 거 아닙니까!

문득 잭슨과의 첫 만남이 떠오른다.

“분명 첫 만남때 돈을 위해서는 목숨도 도외시한다 하지 않았던가?”

-하핫, 보스가 준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건 억울합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제법 간덩이가 부은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소더비에 보낼게 많으니까, 한 1~2년 정도는 죽을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정말입니까?

“의심하지 마세요.”

-예, 예.

“그리고 1년 안에.”

이어지는 말에 전화기 너머, 잭슨이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로스차일드는 지워질겁니다.”

-예?

“당신을 위협하는 윌리엄이 세상에서 사라질거라고.”

-아···

“맡은 일이나 최선을 다하시길.”

-예, 보스.

나는 변형된 고양이 자세로 등근육과 허리를 풀며 호석에게 말했다.

“그놈 주변 살피고 있죠?”

“예, 완벽하게 마킹하고 있습니다.”

“간덩이가 작은 놈이니까 잘 마킹해주세요.”

“예, 회장님.”

***

부쉬는 발표문을 천천히 정독하고 있었다.

대도시 인근의 공급주택 사업.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선포.

테러 때문에 미연방 시민들의 흉흉한 분노를 달래고, 환호를 이끌어내기 충분한 발표들이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 보좌진들.

여야가 갈려 항상 물어뜯어야 할 정치 노괴들마저 이번 만큼은 부쉬의 손을 들어주었다.

“순서가 이게 좋은건가?”

부쉬의 물음에 매력적인 외모의 수행비서가 말한다.

“적에게 선전포고 하는 모습으로 강한 미국을 먼저 보여주고, 우리 연방의 시민들에게는 자애로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베스트라는 의견입니다.”

설득력 있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부쉬.

“모기지 대출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될 뻔 했다고?”

“예··· 망할 금융업계가 나라를 삼키려 했습니다.”

새삼스럽게 천우진이라는 인물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 부쉬.

어째서 미국의 경제위기를 야기 할 수 있는 일을 사전에 막아 준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피어오른다.

“이대로 5년이 지났다면, 금융업계의 수익은 투자대비 17배를 달성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건드리기 힘들었겠군.”

“예, 그들의 힘이 더 막강해졌을겁니다.”

발표문을 흔들며 묻는 부쉬.

“이거는, 공급주택 사업.”

“연방과 금융업계가 ‘부’를 분배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기존의 모기지는 금융업계만 배부르는데 반해 확실히 좋은 사업안입니다.”

“나라도 같이 살찐다?”

“예.”

고개를 주억거리던 부쉬가 발표까지는 시간이 남았기 때문인지 또 질문을 던진다.

“이 부촌건설 말이야, 꼭 해야 하나? 빈익빈 부익부를 더 부추기는 건 아니냐는 말이야.”

“공급주택에 머무는 사람들이 빈민층만 존재한다면 국가가 나서서 할렘가를 만드는 꼴이 될겁니다. 누가 이런 사업 계획을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그래?”

“예, 인간의 근원적인 물질적 욕망을 투영시킨 사업계획서는 정말이지 찬사가 튀어나옵니다. 물론, 그 계획서대로 성공했을때 가능한 일이겠지만···”

부쉬가 고개를 저었다.

A부터 Z까지 천우진이 깔아놓은 판때기였다.

체이스, 삭스, 록펠러, 그리고 자신까지.

천우진이 깔아놓은 판때기 위에 춤을 추는 장기말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체스판에 킹과 퀸은 아마도 자신과 록펠러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무슨말이냐면.

“아마 실패하지 않을거야.”

자세한 내막까지 알지 못하는 수행비서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째서 부쉬가 확신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삭스와 체이스, 그리고 록펠러까지.

이 어마어마한 공급주택 사업에 그들이 투자하는 금액은 정말 놀라울 정도의 규모였다. 다시금 ‘임대료’라는 형태로 돌아갈 돈이지만 그들이 최소 17배라는 모기지 수익을 포기하고 시작하는 사업.

그러니 절대 실패란 존재하지 않을거란 말이었다.

“돈 귀신들은 실수라는 걸 모르는 족속들이니까.”

“예?”

과연 그 돈귀신들을 컨트롤 하고 있는 컨트롤 타워 천우진이란 인물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일지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다시금 떠오른다.

실패를 모르는 돈귀신들이, 이익을 위해서만 협력한다는 그 돈귀신들이, 남의 것을 빼앗고 짓밟아도 자신들의 부를 쌓는것에 집중하는 돈귀신들이 서민을 돕겠다며 공급주택 사업을 시작했다.

바로 천우진이라는 인물 때문에.

그러니 자연스럽게 천우진이라는 인물이 두려워지는 대통령이었다.

“아니야, 발표 시작하지.”

“예, 나의 대통령님.”

피식 웃은 부쉬가 발표장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발표장 앞, 사회자의 호명을 기다리는 시간.

“이봐 캐서린.”

“예, 대통령님.”

“정보국장, 호출 해, 군 정보사령부도.”

“예.”

부쉬는 대비하고 싶었다.

혹시모를 천우진이라는 인물을.

지금은 곁에 함께 하고 있지만, 세상 일이라는 것이 영원한 동맹은 없는 법이니까.

한 명의 개인이 ‘무력’까지 가지고 있을때 과연 어떤일이 벌어질까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

연탄불 위에 구워지고 있는 뒷고기.

나는 친절이 같은 테이블에 앉은 호석과 찰리 박, 강기태를 위해 집게를 들어올렸다.

“어휴, 회장님 제가 굽겠습니다.”

찰리 박의 말에 그의 손을 탁 쳐서 치우고는 말했다.

“고기는 잘 굽는 사람이 굽는 겁니다.”

피식 웃은 찰리 박이 말했다.

“얹힐까 봐 그렇습니다.”

“글쎄요, 맛 보면 그럴리가 없을텐데?”

강기태가 ‘그럼, 그럼’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호석은 익숙한지 팔짱을 끼고 빙그레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짜리, 일본은 어땠어?”

강기태의 물음에 찰리 박이 말했다.

“미국 보단 별로지.”

“어휴, 난 일본이 더 음식이 훌륭할 것 같은데?”

“음식이야 돈 만 있으면 어디든.”

문득 두 사람의 눈이 뒷고기에 닿는다.

1인분 200g에 2000원.

숯불도 아닌 연탄불.

“지금 회식 메뉴 마음에 안 든다고 야지 주는 겁니까?”

“푸핫, 티 났습니까?”

“이 사람들이, 여기 뒷고기가 얼마나 맛있는데요? 가성비의 끝판왕이다 이말입니다.”

즐거운 분위기에 술이 몇 순배 돌고.

어느새 모두의 얼굴에 붉으스레하게 물들 때.

매캐한 연탄 연기와 함께 식당 대부분의 사람들의 입에 담배와, 시가 따위가 물려 있었다.

식당 내부에는 SKY 사람들이 전세를 냈으니 누구하나 손가락질 할 인물들은 없었다. 이때만 해도 식당에서 담배 피우는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딸꾹질을 하던 강기태가 묻는다.

“흣, 회장님.”

“예, 본부장.”

“짜리가 그러던데, 이제 중국까지 가신다고.”

“뭐, 그렇죠.”

“이러다 러시아, 인도까지 가시겠습니다.”

“하하하, 유럽을 먼저 가야겠죠?”

“그 귀족놈들은 워낙 까탈스러워서.”

피식 웃은 나는 시가연기를 내뿜고는 말했다.

“그놈들이 제일 쉬운 놈들입니다. 과거부터 자본주의에 찌들어 있는 놈들이니까.”

설득력 있는 말이었을까 고개를 주억거리는 강기태.

찰리 박과 호석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궁금한게 있습니다. 회장님.”

“말 하세요, 본부장.”

자신의 앞에 따라져 있던 소주를 비운 강기태가 비장한 얼굴로 묻는다.

“회장님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와 루시, 호석삼촌과 철웅삼촌은 대충 알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모르는구나 싶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앞으로 기울여 네 사람만 들리게 작게 말했다.

“세계 제패.”

찰리 박과 강기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예?”

“제패요?”

피식 웃은 나는 말을 이었다.

“세상을 발 아래 두는 것.”

호석은 흐뭇한 얼굴로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올리고, 강기태와 찰리 박은 입을 떡 벌리며 진심이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철혈의 제국을 세우고, 황제가 될 겁니다.”

< 제 175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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