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73화. >
금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대통령 일행.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평범한 금이 아니고, 역사적인 가치까지 가지고 있는 골동품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할 것 같군요.”
“으음···”
대통령이 일행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얼마나 됩니까?”
“한화로 한 6조 정도?”
입을 떡 벌리는 사람들.
“지금 6조원 정도의 금이··· 있다는 얘기입니까?”
“아주 오래된 것들이라 신고가 안 됐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기에는 그 덩어리가 크다 생각했을까? 대통령 일행의 동요가 눈에 띄게 보였다.
“천가의 것입니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원래 누구의 것이었냐가 중한게 아니라, 지금은 천가의 것이라는게 중요하겠죠?”
국방부 장관이 눈치 없이 말했다.
“크흠, 그 정도 금이라면 지난 금모으기 운동때 동원되었어도···”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외환위기를 누구 때문에 넘겼는지 잘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국방부 장관님.”
“큼큼, 물론 SKY그룹이 크게 기여 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시뻘게진 얼굴로 국방부 장관을 나무랐다.
“김장관, 말씀이 지나칩니다. 외환위기 당시 SKY그룹이 국내에 투자한 금액이 얼마인지는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잘 모릅니다만··· 그래도 현 시세로 6조가 넘는 금이라면··· 분명 외환위기 당시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리란 것은 알겠습니다.”
“쯧, 당시 SKY그룹이 국내에 투자한 달러를 원화로 환산하면 약 200조에요.”
입을 떡 벌리는 국방부 장관.
국정원장을 제외한 모두가 놀란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SKY그룹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은 아직도 IMF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가려하세요.”
“예, 대통령님···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국방부 장관이 한 실언.
오히려 그게 난 지금 테이블에서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애초부터 내게 정보를 얻고자 온 이들이다. 그런 인물들 중 한명이 내 심기를 어지럽힌다? 이건 뭐, 협상 테이블에서 아주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그럼 뭐, 신고 한걸로 생각하고 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대로 내려져 오던 재산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다음 재산세 납부에는 올려주기를 부탁합니다.”
“그러죠.”
용정차라는 것으로 입가심을 하고는 다른 사람들도 식사가 끝난 것 같아 말했다.
“아마 미국 쪽에서는 파병 요청을 하겠죠.”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부대 편성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내 질문에 답변하는 것은 국방부 장관이었다.
“어떤 종류의 파병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위험지역으로 분류될테니, 특수부대 위주의 파병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운송부와 통신부, 공병은 필수적으로 파병해야겠지요.”
“그렇군요, 혹 우리 SKY PMC를 아십니까?”
국정원장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퇴역한 스페셜리스트들이 주를 이룬다고 알고 있습니다.”
역시 국정원인가 싶었다.
국방부장관은 잘 모르는 눈치였다.
“우리 PMC도 이번에 아프간에 가게 될 겁니다.”
국방부장관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민간인이 온단 말입니까?”
“정확히는 민간용병단체라고 하는것이 옳겠군요.”
“아무리 용병이라지만··· 위험한텐데.”
자꾸만 마음에 안 드는 말을 내뱉는 국방부 장관.
눈썹을 꿈틀 거리는 호석의 분노가 내게 느껴졌다.
“정대표님이 설명하시겠습니까?”
내 질문에 호석이 입가의 호선을 그리며 국방부 장관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육사 40기 정호석입니다. 선배님.”
정호석의 말에 눈을 빛내는 국방부 장관.
“아 그러신가? 나는 21기일세.”
“예 알고 있습니다. 선배님. 우리 SKY PMC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 같아 입을 열었습니다. 혹 실례라고 생각된다면, 따로 연락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아닐세, 계속 해보시게.”
“현재 우리 대원들은 각 군의 특수부대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위급 작전 수행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총 인원 223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개인 무장을 갖춘다면 12시간 이내에 서울을 함락시킬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
장내에 침묵이 자리잡았다.
12시간 서울 함락.
그것이 주는 무게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음, 자만이 과하네.”
국방부 장관의 호석이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707을 거쳐 정보사를 끝으로 전역했습니다. 선배님.”
국정원장이 호석의 말을 거든다.
“당시 정호석 대표의 코드네임은 도살자였습니다.”
국방부장관이 흠칫 몸을 떨었다가 빠르게 갈무리한다.
“12시간이라··· 우리 군이 군사작전을 제대로 못했을때로 가정하는 것인가?”
“완벽한 방비 태세를 기준으로 계산했습니다.”
쾅!
테이블을 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국방부 장관.
“자네 말이 지나쳐!”
“사실입니다.”
얼굴이 시뻘게진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통령님, 이건 국가안보의 중요한 일입니다! 저자가 말한 것의 10분의 1의 가능성만 있다고 해도, 충분히 위협되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들어올려 진정 시키려는 제스쳐로 말했다.
“워워, 진정하시고요 장관님, 그리고 대표님. SKY의 뿌리는 대한민국에 있으니 걱정하실 게 없다는 걸 먼저 말씀드리고요, 지금 정대표님의 말은 국방부 장관께서 우리 PMC를 무시하는 것 같으니 하는 말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이 무겁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막말로 무슨 죄를 씌우던 나를 체포한다고 했을때, 벌어질 문제들은 곳곳에 산적해 있었다. 또, 나의 유죄를 밝히기 어렵다는 것 역시 알고있을테다.
대통령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김장관, 자중하세요.”
단호하게 말하고는 어물쩍 앉는 국방부 장관을 지긋이 바라보던 대통령이 내가 시선을 옮겨 묻는다.
“해서, 천 회장께서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파병 가니까, 보급좀 해달라는 얘기였습니다. 국방부 장관님도 화늘 낼 필요가 없는 것이, 위험한 작전에는 우리 PMC가 먼저 투입될테니 손해보는 것은 없을 겁니다. 물론 보급 수준은 최상이어야겠죠.”
대통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SKY 항공우주기술이 보급을 책임질게 아닙니까?”
역시 눈치 빠른 대통령.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렇겠지만, 어쨌든 무기 물자의 관리는 국가가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 묻는다.
“진짜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누가 대통령 아니랄까봐 역시라고 해도 될 만큼 유능했다. 겨우 개인 무기 몇 점이나 얻어낼려고 그런 얘기를 했느냐는 질문. 설마 그럴리가 있겠냐는 생각.
국정원장도, 국방부장관도, 외교부장관도 모두 내 입에 주목했다.
***
로스차일드의 저택.
윌리엄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서류더미에 파묻혀 생활하고 있었다. 한순간에 많은 양의 현금이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은 조금씩 조금씩 소문이 퍼져나가는 단계였지만, 이 소문이 ‘공식화’되는 순간이 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기별 자금 이동에 관한 것, 매출 등을 금융감독원에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투명한 ‘금융’을 만들기 위해서 나라가 걸어 놓은 최소한의 장치였다.
만약 이번 분기의 매출추이, 영업이익, 자금 이동에 관한 투명성이 의심된다면 바로 조사를 나올 놈들이었다. 로스차일드라는 힘으로 막을 수 있지만 잡음은 당연히 사람들의 신뢰를 잃게 만들기 충분했다.
“후우.”
단 1센트의 돈이라도 더 보유해야 하고, 1센트의 이익에라도 집착해야 할 상황이었다. 거지같은 모기지론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원금을 홀라당 날려먹은 것을 넘어 대출까지 받아와서 매꾼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고객들까지 대거 유출 된다면 정말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크로치··· 까드득.”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봐야 하지만 일단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훗날을 기약하고 있는 윌리엄이었다.
“가주님.”
세바스찬이 자신을 부르자, 절로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윌리엄.
“왜.”
“소더비에서 초대장이 왔습니다.”
“내가 그딴 사치품 경매에까지 관심을 가질 상황으로 보이나?”
“그것이··· 이번 경매의 메인 물품이 조금 특이하기에.”
“흐음, 자네가 그리 말할 정도야?”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윌리엄은 만년필을 내려 놓고 손을 뻗어 초대장을 읽었다. 여러장의 사진을 넘기다 덜컥 손이 멈춘다.
“이건?”
“그것이 메인 물품입니다.”
아직은 조사중이라는 짤막한 설명에 쓰여져 있는 ‘마리앙투아네트가 사랑한 목걸이’라는 대목. 그리고 이미지.
“이런 개새끼들이!”
윌리엄은 이 목걸이가 로스차일드 가문의 보르도 지하에서 도난당한 물품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의뢰인이 어떤 새끼야!”
“함구하고 있습니다.”
까드득 어금니를 깨문 윌리엄이 말했다.
“참가의사 밝혀.”
“예.”
“원로회에도 사실을 알리고.”
“예, 아마 몇몇 원로들은 이미 알고 있을겁니다.”
“그렇겠지, 그들도 눈깔이 있다면.”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윌리엄.
“이 새끼들이··· 정녕 우리 로스차일드를 우습게 보는 모양이야.”
“······”
“감히, 공개 경매? 소더비? 하! 놈들은 지금 우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모양이군.”
세바스찬은 무어라 거들 말이 없었다.
그만큼 윌리엄의 표정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찢어죽여주마.”
***
우리 PMC가 한국군을 대신해 위험한 임무와 전선의 선봉에 설려는 이유.
그것은 당연히 ‘명성’ 때문도 있지만 익히 알려진것과 같이 나는 ‘실리’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에게 내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하나 있다.
“지난번 전투기 수입때 SKY 항공우주기술은 많은 부분에서 국가의 양보를 받았습니다.”
대통령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러나 몇가지 보안은 아직도 락이 걸려있죠.”
국방부 장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국가 안보의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SKY항공우주기술의 뿌리도 대한민국에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SKY항공우주기술은 이제 고잉사의 전투기 기술을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다양한 첨단 기술까지 흡수하는 중이지요.”
조용히 듣고있는 대통령과 그 일행.
“이번 파병으로 우리 SKY는 정확히 SKY항공우주기술은 미군의 GPS기술을 받아 낼 겁니다.”
“사실입니까?”
크게 놀라는 국방부 장관.
“이미 부쉬와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허어.”
국정원장도 대통령도, 외교부장관까지 모두가 놀랐다.
“저번 미국과의 회담에서 대한민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어느정도 완화 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때도 천 회장의 도움이 컸지요··· 어쨌든 그 덕에 미사일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그러니까요, 그 미사일 기술 개발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기술이 GPS기술 아니겠습니까? 전투기 기술을 가져오면서 이미 레이더 기술은 어느정도 완성했다고 보고 있습니다만.”
대통령이 입을 벌리며 말했다.
“설마, 우리군의 미사일 기술을 내 놓으란 얘기입니까?”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오는게 있으면 가는게 있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닙니까?”
국방부 장관은 이번만큼은 나서지 않았다.
그는 지금 현재 대한민국 군이 가지고 있는 미사일 기술의 가치와, 미군의 GPS기술의 가치를 저울질 하고 있을게 분명했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정밀타격’면에서 떨어지고 있는게 사실이었다. 미군의 첨단기술을 가지지 못했기에 어쩌면 당연한 얘기, ‘위성’조차도 빌려 쓰거나 미군의 감시를 당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얘기였다.
대통령이 대놓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 천 회장을 괜히 만나러 왔나 싶습니다.”
그것은 승낙의 표시였다.
< 제 17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