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72화 (172/458)

< 제 172화. >

대통령이 전용기를 구매하는 것으로 친구비도 입금 해 주겠다. 헬기까지 타고오는 수고로움을 보이며 먼저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는데 끝까지 뻣뻣한 자세를 유지하기는 좀 그랬다.

대충 저 치들이 바라는게 무엇인지도 알고 있으니 난 넓은 마음으로 물었다.

“뭐가 궁금하셔서 여기까지 오셨을까요?”

대통령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천 회장께서 공사가 다망하시다 하니, 본론만 하겠습니다.”

“편하실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식사가 길어질 것 같으니.”

“고맙습니다. 아무래도 요즘 911테러사건 때문에 국제정세가 시끄럽지 않습니까?”

나는 짐짓 모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의 생각이 몹시도 궁금할 한국이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과 미국.

그 틈바구니에 껴 있는 대한민국은 언제나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니까 어쩔수 없다손 치더라도,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 어떻게 움직일지가 궁금하신 모양이네요.”

내 말에 대통령을 비롯해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청와대의 예측은 무엇입니까?”

모두의 고개가 국정원장에게 돌아간다.

“국정원장 방기훈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가 연기를 뱉었다.

“프라이드가 강한 미국은 당연히 보복을 준비 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우리 정보에 의하면 테러를 저지른 것은 이슬람 무장 단체로 보고 있습니다.”

정보를 숨기는 것인지 나를 떠보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추상적이고 곁가지만 핥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테러의 주체는 알카에다입니다.”

내 말에 국정원장이 잠시 움찔 놀란다.

어느정도 예측은 하고 있었겠지만 확신하지는 못하던 모양.

“크음, SKY의 정보력이 정말 놀랍군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부쉬에게 직접들었으니까요.”

나와 호석을 제외한 모두가 놀랐다. 심지어 SKY항공우주기술의 개발소장까지 놀란 모습을 보였다.

“부쉬와 만나셨습니까 천 회장?”

“예, 한국에 오기전에 같이 밥 한끼 했습니다.”

대통령이 작게 ‘크음’하고 불편한 마음을 드러낸다.

이곳에 앉아있는 그 누구도 ‘부쉬’를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 자리 내에서는 내가 가장 큰 인물이 되고 있었다.

“그렇군요···”

국정원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 정보에 의하면 록펠러가와 천우진 회장님의 가문이 부쉬 대통령의 제 1 후원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입니까?”

대놓고 물어보니 어처구니 없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들에게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나는 껄끄러워 보일테니까 내가 손해볼 게 없었다.

“그렇군요.”

다들 입을 조심하는 모양새다.

멀리서 나타난 대원을 보고는 호석이 내게 말했다.

“회장님,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아, 바로 가져오라고 하세요 여기서 먹죠.”

“예. 준비하겠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식사들 하시면서 합시다.”

완전하게 주도권은 내게 넘어온 상황이었다.

곧 들어오는 중국 음식들.

대충 동네 중국집에서 가져온 것이 아닌 모양, 딱 봐도 고급진 포장과 아직까지 선명하게 느껴지는 온기는 제법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었다.

대충 이삿날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 먹던 짜장면을 생각했던 내 생각과는 괴리가 있었지만, 한 눈에 보아도 맛 좋아 보이는 음식들에 불만은 없었다.

표고버섯 안에 갖가지 야채와 고기를 적절하게 믹스해 삶은 뒤, 다시 센 불에 볶아 향이 좋은 어향동고를 한입 베어문 뒤 물었다.

“자, 그래서 계속해보세요.”

내 말에 막 젓가락을 들어 올리던 국정원장이 다시 젓가락을 내려 놓는다.

“부쉬와 만남을 가지셨다니 편하게 묻겠습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가지 볶음을 먹었다.

“전쟁입니까?”

국정원장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막 입속에 중국 음식을 때려 넣던 외교부장관과 국방부장관이 ‘흡’하고 사례가 들린 모양. 대통령은 애초에 젓가락을 놀리지도 않고 있었다.

소란이 정리되고 모두가 내 입에 주목한다.

“이야, 이집 어향동고 죽이네요, 오늘 우리 항공우주기술 직원들 회식은 이집에서 하면 되겠습니다.”

김빠지는 대답이었을까 대통령을 비롯한 장관들이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전쟁이죠, 과거 우리 땅에서 전쟁이 일어났던 것 처럼.”

이어진 말에 입을 꽉 다무는 사람들.

“곧, 아프간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 겁니다. 미국이 열이 받았으니까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좋은 명분도 있잖습니까?”

국방부 장관이 진중한 모습으로 물었다.

“우리쪽에서도 파병해야겠지요?”

“요청하지 않겠습니까?”

“쯧, 그렇군요···”

“전쟁은 제법 길 겁니다. 그동안 미국은 정치적, 국제적인 이득들을 챙기겠죠.”

대통령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렇겠지요··· 우리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러는게 좋을 겁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이었나보다.

내가 전쟁이 일어날 거라 확신하니 모두가 복잡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놀리는 둥 마는 둥 한다.

오직 나와 호석만 편안한 얼굴로 끼니를 채우고 있었다.

***

같은시각.

영국의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경매기업 소더비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맙소사 이게 정말 마리앙투아네트가 가장 아꼈다는 그 태양의 눈물이야?”

“지금 전문가들이 빠르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전설속의 보물이 왜 갑자기 등장을 해?”

“우리 입장에서 좋은 것 아닙니까? 이걸 경매에 올릴 수만 있다면, 단숨에 크리스티 놈들을 이겨버릴겁니다!”

여자가 앙칼진 표정으로 말한다.

“이미 이겨 있거든?”

“크음, 어쨌든 이제 확실하게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는 것이죠.”

“의뢰인의 신변은 확실해? 장물 아니지?”

“투자사를 운영하는 대표가 내 놓았습니다. 장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역사적 가치를 빼 놓고 순수 보석의 가치만 따져도 3천만 달러랍니다.”

“지금 연대 측정 하고있고?”

“예, 고문서나 그림들까지 비교하고 있습니다. 정말 마리앙투아네트의 목걸이라면··· 어마어마한 가치의 보물이 탄생할겁니다.”

잠시 입술을 깨물던 여자가 말했다.

“이번 연말에 아주 빅 이벤트가 되겠어, 초대장 돌려 세계 부호들한테! 이미지 첨부하는 거 잊지 말고, 아주 가지고 싶어서 안달나게 만들란 말이야.”

“예.”

“그리고 의뢰인과 약속 잡아, 이 물건 반드시 우리가 맡아야 돼.”

“이미 맡기고 간 거 아닙니까?”

“멍청한! 이 소식을 크리스티가 들으면? 가만히 있겠어? 수수료를 안 받겠다고 하고 가져가면 네가 책임질래?”

“아아···”

***

꿀맛 같은 휴식을 취했던 천혁수는 다시 지긋지긋한 일본이 좀 짜증났다.

눈 앞에 우희와 루시가 아른 거렸고, 루시의 뱃 속에 있는 증손주들도 아른거렸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새끼들이 어찌나 궁금한지 빨리 열달, 이제 아홉달 남짓한 시간이 지나기를 바라는 그.

자연스럽게 좋지 않은 표정으로 고키부리를 마주한 천혁수.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칼날 같은 음성이 베이고 지나가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날카롭게 벼려진 음성에 고키부리가 잔뜩 긴장한 채 대답한다.

“현재 빠칭코장에 우리 금이 유통되고 있으며, 주조 회사에 넘겨 금괴로 제작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고 있습니다.”

“느리군.”

“죄송합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고키부리.

누가 보면 일본의 비선실세가 천혁수라고 오해를 불러와도 어색하지 않을 장면이었다.

“그래서 현재까지 세탁된 규모는?”

“약 사백억엔 정도의 금이 세탁되었습니다.”

“겨우?”

“아직은 정부의 루트를 다 뚫지 못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라···”

“흐음.”

천혁수는 계속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사바로알기 재단의 운동들은 이제 약효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이미 대한민국은 국뽕의 맛을 제대로 본 상태인지라, 더 자극적인 뉴스가 나오지 않는다면 별 감흥을 못느끼는 상태.

그걸 대변하기라도 하듯, 대한민국에서 천혁수의 위상은 거의 독립투사급이었다. 누구라도 천혁수를 욕하려고 한다면 몰매를 다짐해야 할 정도로 천혁수는 대한민국을 위해 한 몸 내던지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장관의 자리도, 국회의원의 자리도 마다하고 대한민국 역사를 전 세계에 바로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연일 언론에 의해 보여졌으니 당연히 ‘청렴’하다는 이미지는 덤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일단 나가 봐.”

씁쓸한 표정의 고키부리가 고개를 숙이고는 종종 걸음으로 바깥으로 나갔다. 자연히 그의 표정이 좋을리 없었지만, 천혁수는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이미 고키부리는 잡힌 고기고, 잡힌 고기는 좋은 미끼로 유혹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쯧,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겠어.”

철웅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회장님께 연락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백부님.”

“에잉, 쯧···”

철웅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지만, 영 껄끄러운 천혁수였다. 벌서 뒷방 늙은이 처럼 손자놈에게 의지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쯧, 결국은 기업을 건실하게 운영해야 한다니까? 이 썩어빠진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말이야.”

그러나 이내 자존심을 포기했다.

“하하, 백부님 이제는 즐길 시간이 더 중요한 때가 아니겠습니다.”

철웅은 눈치껏 그런 천혁수를 응원했다.

자존심 때문에 굳이 공을 들이지 말고,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천혁수가 원하는 대로 다시 미국으로 가거나 한국으로 가, 그가 행복해하는 시간을 보내라는 조언이었다.

“이제 일본인들도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제법 정확한 지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키부리가 이제와서 다시 스탠스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일테니, 약간의 돈만 쥐어주어도 열심히 역사바로알기 재단을 홍보할텝니다.”

“그렇지?”

간지러운곳을 살살 긁어주니 천혁수의 얼굴은 자연히 편안하게 변했다.

결심이 섰는지 천혁수가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아, 할아버지.

“오냐, 밥은 먹었더냐?”

-지금 먹고 있습니다.

“음, 식사중이라니 짧게 얘기하마.”

-옙.

“금 말이다.”

-예.

“일본에서 다 소화시키려면 시간이 제법 걸리겠어.”

수화기 너머 잠시 천우진이 생각에 잠긴듯,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마침 좋은 생각이 있으니,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반절 정도는 네가 처리하거라, 나머지 반절은 이 할애비가 처리할테니.”

-예.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으로 나머지 반절은 가져온 천혁수. 약 오백억엔의 가치를 가진 금을 처리하는데 대략 한달 가량이 걸린 상황.

그 열배에 달하는 금을 처리하기 위해서 앞으로 얼마가 걸릴지 미지수지만, 일본에서의 이미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천혁수는 결국 칼을 빼 들었다.

“김장원이 돌려야겠구나, 고키부리 라인 말고, 김장원이 통해서 야쿠자들좀 모이라고 해.”

“예, 백부님.”

***

대충 배를 채운 나는 다시 시가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시가 좀 태우겠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매너가 아니니 굳이 물었다.

“편하게 하시지요, 천 회장의 비행기 아닙니까.”

대통령의 허락에 살짝 목례로 감사를 표하고는 다시 불을 붙인 시가.

“자, 그럼 이제 정보비를 입금 하셔야죠?”

대통령이 피식 웃더니 못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비행기 팔았으면 됐지, 또 필요합니까?”

역시 나를 제법 아는 대통령은 이제 완전히 편안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에이, 그건 대통령님이 사고 싶어서 사시는거고.”

“아닙니다만.”

“그런걸로 하시죠.”

“못당하겠군요 정말.”

대통령과 내가 농담 따먹기를 하는 분위기니 자연스럽게 장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래서, 천 회장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정보비로.”

“앞으로도 미군의 움직임에 대해서 조금씩 힌트를 드릴테니 세금 좀 깎읍시다.”

대통령이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크음, SKY가 내는 세금이 많긴 하지요, 하지만 그 부분은 속단 내릴 수 없군요.”

명백한 거절의 의사였다.

나는 히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에이, 그 부분은 우리도 그대로 내겠습니다. 다른 세금이 좀 있어요.”

“무엇입니까?”

“내가 어디서 주워온 금이 좀 있습니다만.”

“예? 금이요?”

< 제 172화.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