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71화 (171/458)

< 제 171화. >

잭슨이 웃으며 들고가는 가방 속 목걸이는 다름아닌 로스차일드의 지하 저장고에서 가져온 물건이었다. 전문가들의 눈으로 감정했을 때 역사적, 문화적가치를 더해 약 2000억원으로 평가했었다.

욕망을 배제한 철저하고 객관적인 평가라고 들었다.

아마 소더비에 올라간다면 더 받거나, 덜 받거나 할테다.

고작 2000억원을 벌자고 내가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내 목적은 로스차일드를 흔드는 것이니까.

로스차일드는 계속 흔들려야 했다. 그래야 대비 할아버지와 체이스, 삭스가 움직이기가 편할테다.

한국에서, 일본에서, 유럽에서.

로스차일드의 지하 저장고에 있던 보물들은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낼테고, 로스차일드는 정신없이 움직일 수 밖에 없을 터. 빈틈을 찌르고 벌려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그리고 그 사이, 얼마나 그 틈을 잘 파고 들어 가느냐는 대비 할아버지가 할 일.

***

한국으로 귀국해 가장 먼저 한 일은 SKY자동차의 차승호 사장을 만난 것이었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예, 보고 좀 들을까요?”

자신있는 얼굴의 차승호는 고개를 주억 거리며 직원에게 턱짓으로 PPT를 시작시킨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서류와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PPT거기에 더해 목소리가 제법 듣기 좋은 여직원의 멘트까지 더해지니 아주 훌륭한 PPT였다.

내용도 약 5분으로 짧았기에 흡족했다.

“회장님의 말씀처럼, 현재 SKY자동차의 이미지가 전세계적으로 좋아지고 있습니다. 정직, 신뢰, 품질. 이 세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았다며 칭찬이 자자합니다.”

제법 아부를 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싶어 차승호를 한 번 바라보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입에 발린 칭찬은 필요 없고, 결과물은요?”

차승호의 손짓에 스크린에 새로운 화면이 떠올랐다.

1,2,3분기 실적이 나와있고, 4분기 예상 실적이 크게 강조되어 있었다.

“2분기는 라인이 멈췄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1분기를 뛰어넘은 3분기, 그리고 4분기 예상 추이는 저렇습니다. 3분기의 40퍼센트 증가.”

과연 차승호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을만한 그래프였다.

“대현이 주춤하는 것도 도움이 되었겠죠?”

차승호는 직설적인 내 질문에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예, 전혀 없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어쨌든 대현은 이번 분기를 죽쓰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해외에서는 우리보다 대현을 더 쳐줬습니다. 그런데 그게 고작 한 분기 만에 역전되고 있습니다.”

다시 스크린의 화면이 바뀌고, 저번 분기와 이번 분기의 차량 판매대수가 선명하게 나온다.

확실히 가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호오.”

“회장님의 이미지 메이킹 전략이 완벽하게 성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차승호가 존경해 마지 않는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눈빛이 뜨거워서 더 못 앉아있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하고 계신것 같으니, 안심하고 일어납니다.”

“아, 회장님 벌써 가십니까? 단체 회식이라도 한 번 하시지요?”

“회식은 며칠 미룹시다. 곧 좋은날 잡아 연락 하겠습니다.”

“바쁘시다니··· 어쩔 수 없지요, 알겠습니다.”

***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인물을 꼽으라면, 대통령, 국방부장관, 외교부장관을 꼽을 수 있었다.

9.11테러라는 희대의 테러사건 덕분에 전 세계 정부관계자들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앞으로 미국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대응 방식을 달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또, 아직 공식적인 도움의 손길은 뻗어오지는 않았으나, 겉으로는 우방, 동맹따위로 포장되어 있는 대한민국은 더욱 예민하게 반응 할 수 밖에 없었다.

“쯧, 도대체 아는게 뭡니까? 죄다 예측, 예측, 예측. 어느 하나 확실한게 없다는게 말입니까?”

대통령의 핀잔에 국방부, 외교부, 국정원 관계자들이 인상을 찌푸릴뿐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확실한 게 겨우 이거 하나입니까? 미국은 전쟁까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장난합니까? 어린아이라도 알겠습니다. 미국이 맞고만 있을 놈들이 아니란건 다 안다고요!”

대통령은 정말 짜증이 났다.

SKY라는 희대의 공룡의 등장으로 입지가 흔들리는 것도 짜증인데, 뭔가 역사의 그림자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정치판은 천혁수가 다 해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아니었다. 정부로서, 국가로서 나서지 못하는 일을 천혁수는 훨훨 날아다니며 헤집고 다녔다.

당장 오늘 조간신문에서도 ‘천혁수 전 장관. 일본에서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라 외치다!’따위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여론 몰이를 제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장관 자리를 내놓으라더니 1년도 안 앉아 있을거면서 무슨.”

대통령의 혼잣말에 외교부 장관이 ‘예?’하고 묻는다.

“후우, 아니오.”

“예···”

“SKY그룹 천우진 회장이 귀국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국정원장의 말에 고심을 하던 대통령이 ‘쯧’하고 혀를차더니 이내 전화를 들어 올렸다. 국정원도 대통령도 바보는 아니니 천우진이 현재 미국 대통령과 친분이 두텁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장 그의 미국 결혼식에도 참석했던 부쉬가 아닌가.

“연결하시오.”

국정원장이 어디론가 손짓 하니 전화기를 가져오는 직원 한 명.

대통령은 전화를 귀에 가져갔다.

-전화받았습니다.

당당한 목소리.

천우진 답다 생각하던 대통령은 허허롭게 웃으며 말했다.

“천 회장, 오랜만에 전화를 합니다.”

-아, 대통령님이시군요.

“허허, 목소리를 기억해주신다니 영광이군요.”

-대한민국에 대통령님 목소리 모르는 사람 누가 있을까요?

대통령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내 목소리가 특이하긴 하지요?”

-개성이지요, 개성.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천 회장.”

-네, 말씀하세요.

“이거 민망한 얘기입니다만··· 시간을 좀 내주시겠소?”

-오늘 일정은 꽉 찼습니다만.

단칼에 튀어나오는 거절.

대통령은 이게 싫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기업가가 정부의 꼭대기에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대현의 정상영도, 삼현의 이건도 이렇게 모가지가 뻣뻣하던 인물은 없었다.

유일하게 SKY만 모가지가 뻣뻣하다.

정부를 두렵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대통령의 얼굴에는 노골적으로 불편함이 드러났다. 자연스럽게 주변의 장관들과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통령의 눈치를 살핀다.

“천 회장이 바쁠 거란 것을 모르고 부탁했겠습니까?”

약간의 경고를 담아 한 말이지만 천우진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시면서 굳이 그러셨습니까?

“허허, 일정이 끝나면 몇시입니까?”

-6시에는 퇴근해야죠.

“퇴근후에는 어떻습니까? 우리 자주 마시던 막걸리 집은요?”

-오늘 귀국해서 쉬고 싶군요.

정말 쉽지 않은 인물이라고 생각한 대통령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천 회장, 정을 생각해서 사정 좀 봐주시오.”

결국 대통령의 입에서 항복선언이 떨어진다.

-흠, 오후 2시에 SKY항공우주기술에서 회의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이 손목을 들어올려 시계를 확인한다.

오전 11시. 이곳에서 SKY항공우주기술까지는 약 1시간.

“헬기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러시죠, 나는 지금 SKY항공우주기술에 와 있으니.

콱.

전화를 제법 세게 내려놓은 대통령이 말했다.

“장관들, 국정원장 까지만, 헬기로 이동합시다.”

***

전화를 끊은 나는 다시 SKY 항공우주기술이 개발해낸 나만의 전용기에 집중했다.

과연, 내 취향에 맞춰 엔틱하게 꾸며진 실내 인테리어는 절로 흡족함이 느껴지게 만들었다.

또, 가장 기술적이라는 SKY의 기술력을 갈아 넣기라도 한 듯, 아주 현대적인 기술들, 미래지향적인 기술들까지 박수가 절로 나온다.

“하하하, 좋네요.”

결국 웃음이 터져나왔다.

호석도 만족스러운지 부드럽게 웃으며 이곳 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안전성도 아주 훌륭합니다. ‘경호’를 하기에 아주 적합한 좌석 배치에요.”

“그렇습니까?”

“예, 회장님.”

뚜벅뚜벅 비행기 내부에 마련된 회의실에 들어갔다.

최대인원 12명을 수용할 수 있는 회의실.

12명이 수용가능하다 했지만, 그것은 여유있게 앉았을때를 의미했다. 이정도 규모라면 20명도 거뜬하지 싶었다.

“오늘 점심은 여기 회의실에서 배달이나 시켜 먹읍시다.”

내 말에 호석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요리도 좀 시키시고, 나는 삼선 간짜장으로요.”

“예, 회장님.”

“대통령과 그 일행들이 날아오겠다 하니, 대충 인원수에 맞춰 시키면 되겠습니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회의실 가장 상석에 앉았다. 내 몸을 편안하게 받아주는 의자부터 신경을 정말 많이 썼다는게 느껴졌다.

회전 형태의 의자지만 바닥에 고정되어 있어 혹시모를 난기류에 이탈할 위험은 없었다. 앞 뒤로는 레버를 움직이면 움직일 수 있는 그런 형태였다.

이런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에 박수가 절로 튀어나온다. 정말 연구소에서 영혼을 갈아넣었나 싶었다.

이렇게 예쁜짓을 하는데, 회장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소장님.”

“예, 회장님.”

“금일봉 지급하세요.”

“예?”

“오늘 내가 아주 기분이 좋으니, 우리 SKY항공우주기술 전 직원에게 금일봉 100퍼센트 지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내 방송으로 알리시고요.”

“예, 회장님.”

나는 품에서 시가를 꺼내 입에 물었다.

소장이 얼른 내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여기 테이블의 이 부분 보이십니까?”

“예, 보이네요.”

테이블의 한 곳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니 딸깍이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이 열리고 그곳에서 라이터와 시가 커팅기, 그리고 재떨이가 튀어나온다.

정말 디테일의 끝판왕이다. 공간활용도 아주 제대로 했다.

“소장님은 특별히 200퍼센트.”

“하핫, 감사합니다.”

내가 시가를 입에 물자 소장히 히죽 웃으며 한쪽 벽으로 다가간다. 또 어딘가의 버튼을 누르더니 한쪽 벽면이 스르륵 열리는데, 그곳엔 냉장고가 숨어 있었다.

내 취향에 맞춘 온더락 잔에 꼬냑을 따라오는 소장.

“안 되겠다. 우리 소장님.”

“예?”

“아주 혼내드려야겠어, 돈으로.”

“하하하, 만족스러우십니까?”

“최곱니다. 소장님은 300퍼센트.”

“하하하, 사실 죄송스럽습니다. 아직 기술력이 낮아, 점보 비행기는 어려웠으니까요, 하지만 덩치가 작은 만큼 알뜰하게 공간활용을 하기 위해 애를 써 봤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직은 고잉사에서 많은 기술을 훔쳐오지 못한 상태였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항공기’를 직접 만드는 회사가 우리 SKY항공우주기술이다.

“언젠가는 꼭, 세상에서 가장 큰 전용기를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소장의 두 눈에 열정이 활활 타오른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꼬냑을 한 모금, 그리고 시가를 한 모금 태웠다.

“이 정도 퀄리티의 전용기라면, 해외에서도 제법 인기가 있을 것 같군요.”

“예, 회장님이 컨펌 해주신다면, 주문 제작으로 진행할까 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진행하세요, 우리도 수익모델 있어야지.”

“하하, 예.”

“물론 퀄리티는 내거 보다 떨어져야죠?”

“어우, 그럼요 당연합니다.”

소장과 즐겁게 대화하는 사이, 호석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한다.

“대통령님 오셨습니다.”

“아, 모시세요.”

자연스럽게 소장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바깥으로 나가려한다.

“아 소장님은 계세요.”

“예?”

“이거 옵션 사용법 아는 사람이 없잖아요?”

“아아, 예 알겠습니다.”

곧 밝은 얼굴로 모습을 드러낸 대통령.

나는 시가를 입에 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에게 악수를 건냈다.

대통령은 전혀 불쾌해 하지 않으며 내 악수를 받는다. 그를 뒤에서 보좌하는 인물들은 그렇지 않은 듯, 제법 불쾌한 표정들이다.

그런 걸 신경쓸 내가 아니니 대통령과 악수를 끝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편하게들 앉으세요.”

대통령은 익숙한 듯 편안하게 적응하지만, 다른 인물들은 불쾌함을 숨기지 못했다. 두 눈으로 ‘너는 우리 윗사람이 아니다’라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대통령님?”

“바쁘게 날아오느라 못했습니다.”

시계를 들어 확인하니 오전 11시 30분.

전화를 끝내고 빠르게 움직인 모양이다.

“그럴 줄 알고, 중국음식을 배달시켰습니다.”

“오, 오랜만에 기름칠을 좀 하겠습니다.”

“비행기 좋아 보이지 않습니까?”

히죽 웃으며 한 질문에 대통령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대통령 전용기보다 좋습니다. 천 회장의 전용기가 될 물건인가요?”

“예, 앞으로 주문제작 형식으로도 항공기를 개발해 팔까 싶습니다.”

“SKY의 기술력이 벌써 이렇게 올라왔다니,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뿌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참에 대통령님도 외국 물건 쓰지 마시고, 국산품으로 갈아 타시죠?”

대통령의 눈썹이 꿈틀 거렸다.

오자마자 삥을 뜯기게 생겼으니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허허, 그렇지요··· 대한민국 청와대의 전용기니까··· 국산품을 써야지요.”

“하하, 청와대 관계자에게 우리 직원 보내겠습니다.”

“크음, 그렇게 하시지요 천회장.”

소장이 멀리서 엄지를 척 들어올려 내게 내민다.

벌써 호구 하나 잡았으니까.

‘바가지 듬뿍 먹이세요, 눈먼 나랏돈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 제 171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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