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70화. >
부쉬가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돕겠다는 얘기인지···”
“SKY그룹에는 PMC가 있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부쉬.
“아, 알고 있습니다. 유능한 인재들이 있는 곳이라고.”
“예, 고도의 훈련을 받은 인재들이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 대원들 말로는 미국의 특수부대에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하더군요.”
“흐음, 그렇습니까?”
믿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말로는 ‘오호.’하며 영혼없는 감탄을 내 뱉는다.
“정보에 의하면 테러의 주체는 오사마 빈 라덴.”
이어진 내 말에 부쉬가 관심을 보였다.
“음··· 확실히 정보력은 대단하군요.”
“뭐 굳이 미 정부의 의뢰가 없다 하더라도, 따로 보낼 예정이었습니다.”
부쉬의 눈썹이 꿈틀 거렸다.
일견 기분나빠 보이는 표정이었다.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미국처럼, 우리 SKY도 사람들이 테러의 위협에 시달리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뉴욕의 테러 이후, SKY SHOT과 SKY LINE의 매출이 급등 한 것으로 알고 있소만.”
테러가 우리의 사업에 도움이 되는게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일시적이겠죠, 얼마 지나면 다시 사람들은 밖으로 나올 것이고, 그럼 다시 매출은 낮아지겠죠.”
“경제부처에서는 앞으로 놀랍도록 성장할 사업이라고 하더이다. 독과점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아우성 칠 정도로.”
이건 경고였다.
독과점 법이라는 말에 대비 할아버지가 일순간 동요를 보일 정도로, 잘나가던 록펠러 가문을 한 순간에 자선사업과 은행이나 하는 가문으로 만들어 버렸던 그 것을 얘기하고 있었다.
“당장 경쟁업체인 아마조네스가 있습니다만 독과점이라니, 말씀이 지나치군요.”
“하하, 나도 그 점을 얘기했으니 크게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누가 정치인 아니랄까 봐 다시 약을 치고 있었다.
“미국이 정식으로 의뢰한 형식을 띄기는 어렵지만, 비공식 적으로 의뢰하는 형식을 띌수는 있는일 아니겠습니까?”
아마 지금 내가 한 말이 핵심일테다.
당한 미국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여러가지 이권도 이권이지만, 일단 프라이드가 중요하니까.
그 옛날,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때도, 단순한 ‘경고’를 위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군사비용을 지출했던 미국이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규모의 군사작전을 펼치고 미군이 한 일은 고작 나무를 베는 것이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북한이 고개를 숙이면서 일단락 되었지만. 베트남전으로 정치적으로 크게 규탄받던 당시의 미국으로서는 북한과의 전쟁이 부담스러웠을 터였다.
아마도, 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의 북한은 세상에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까, 미국은 프라이드를 위해서 천문학적인 액수를 쏟아붇더라도 ‘손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미국의 시민들 역시 고개를 주억거리며 ‘잘했다’칭찬 할 테다.
“크음. 그저 정보력만 빌려주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직 언론에 발표하지 않은 테러의 주체를 우리 내가 알고 있으니 정보력 만큼은 인정하는 모양이다.
“멀리서 보고 듣는 정보는 한계가 뚜렷하죠, 실제 그곳에서 숨쉬는 정보를 얻어야 합니다.”
“쯧, 결국은 현지를 가야겠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아마 지금 미국의 다양한 정보기관들도 현지로 나가 있을것이라 보는데요?”
틀린 말이 아니니 부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군이 먼저 놈들을 잡든, 우리 SKY가 먼저 놈들을 잡든, 발표는 미국의 공적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도움을 준 SKY에게 고맙다 정도의 표현이면 충분합니다.”
부쉬가 차를 마시는 척 조심스럽게 날 살폈다.
내 의중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기 위함으로 보였다.
나는 온 몸으로 진심이란 것을 어필했다.
“천 회장이 나를 이렇게 생각해주는 줄은 몰랐습니다. 고마운 일이군요.”
“어차피 대한민국과 미국은 동맹이 아닙니까?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이미지는, 미국의 시민들에게도 좋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수단과 방법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확실히.”
“아마 실무진끼리 회의에서 한국의 파병도 고려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부쉬가 또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SKY의 정보 예측력, 분석력이 대단하군요.”
“그곳에 투자하는 비용 일부를 우리에게 투자하면 될 일입니다. 의뢰비는 그정도면 충분할테니까요.”
절레절레 고개를 젓던 부쉬가 대비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미스터 록펠러.”
“예, 미스터 프레지던트.”
“정말 록펠러씨의 손녀 사위는 못 당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돈은 적당히 주고 다른 것을 내 놓으라 하지 않습니까?”
역시 대통령 자리를 고스톱으로 딴 것이 아닌가보다. 대비 할아버지와 농담을 주고 받으며 분위기를 환기시킨 대통령이 물었다.
“그래서 무엇을 원합니까?”
“군사용 GPS기술.”
부쉬가 피식 웃는다.
마치 못당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정말 딱, 한계치에 걸쳐 있는 요구사항이군요.”
“가능 하시리라 믿습니다.”
“하하, 우진이 그렇게까지 얘기한다면 이거 원, 힘 좀 써 봐야 겠습니다.”
어느새 대통령의 얼굴은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내가 크게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 어떻게 되든 미국에게 유리한 조건들 뿐이었다.
사업적인 이득은 굳이 부쉬의 도움이 없어도 나 혼자 알아서 할 수 있었다. 군사적인 부분은 솔직히 대통령의 입김이 좀 작용해야 했다.
아직 SKY항공우주기술의 기술력은 미미하니까.
많은 것을 미국에서 훔쳐와야 했다.
원래의 한국이 개발하던 현무 미사일 시리즈의 개발 시간을 더욱 단축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리고 그 미사일을 개발하는 곳은 대한민국 정부소속의 군사연구기관이 아니라, SKY항공우주기술이 될 것이다.
그래야 미사일을 좀 팔아서 ‘돈’을 벌지 않겠는가?
“우진이 이렇게 까지 말하는데 거절할수 있겠습니까? SKY PMC에 정식으로 의뢰서 넣으라 하겠습니다.”
“예, 대통령.”
***
적막강산이 흐르던 로스차일드 뱅크 본사 대회의실.
잭슨은 아무렇지 않게 꼬냑에 시가를 즐기며 로스차일드의 직원들이 서류를 검토하길 기다렸다.
윌리엄 마이어 로스차일드도 아무런 말 없이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세바스찬이 윌리엄에게 다가와 잘 정리된 얇은 서류철을 건낸다.
“끝났나?”
“예, 크로치 인베스트먼트가 제출한 서류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철을 연 윌리엄.
그의 눈썹과 눈썹 사이, 주름이 제법 깊게 패인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지만, 아무래도 액수의 규모가, 규모인 만큼 치솟는 짜증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427억 달러라··· 쯧.”
427억달러가 넘어가는 금액.
포드자동차의 분기 매출액을 훌쩍 뒤어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지만 겨우 혀를 한번 차는 것으로 아쉬움을 표현한 윌리엄.
그가 손을 내밀자 세바스찬이 품에서 고급 만년필을 꺼내 건넨다.
윌리엄은 멋들어지게 만년필을 움직여 사인을 했고, 세바스찬은 그것을 그대로 옮겨 잭슨 앞에 두었다.
서류를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잭슨은 망설임 없이 사인을 하고는 남은 꼬냑을 그대로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돈은 좋은데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윌리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잘 들고 계시게, 곧 찾아갈 테니.”
“재주껏.”
윌리엄은 눈 밑 살이 떨리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의 포커페이스가 풀려지는 순간이었다.
탁.
차량 문이 닫히자마자 잭슨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휘유, 오우야 그 영감탱이 눈빛 봤어? 얼굴이 뚫려버리는 줄 알았다고 캉!”
“잘했어, 제법 멋있었다고 잭슨.”
“후우, 영감탱이 무서워서 이 나라에 발이나 붙이고 살 수 있을까 몰라, 당분간 어디 적당한 나라로 피신이나 가 있어야겠어.”
“그것도 나쁘지 않지.”
“추천해 줄 나라 있어?”
잠시 고민하던 강기태가 말했다.
“한국 어때?”
“음? 캉의 나라?”
“그래, 총기 허용이 안되니까, 경호원 둘 셋만 고용해도 어지간한 위험은 조기에 방비할 수 있을걸? 넌 지금 그게 가장 무서운 것 아니야?”
“오오, 혹시 캉의 회사 경호원들을 고용할 수도 있는건가?”
강기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있던 세상인가?”
“크큭, 그렇지,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지.”
“그나저나, 한달만에 네배가 넘는 수익이라니··· 캉의 보스라는 사람 정말 대단하잖아?”
“대단하지, 그분은.”
“정말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는 말, 다시 깨닫는다고, 앞으로 어린아이라도 함부로 대하면 안 되겠어, 많은 걸 배웠다고.”
촐싹 맞은 잭슨이 과연 그럴까 싶지만 강기태는 그냥 고개를 주억거릴 뿐 별말 하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미국에서의 한달 넘던 스케쥴이 마무리 되는 날이었으니까.
“바로 워싱턴으로 가서 보고하고, 한국으로 가자고.”
잭슨의 말에 피식 웃은 강기태가 말했다.
“그러지.”
***
워싱턴에 도착했다는 강기태의 소식에 루시의 서운한 눈초리를 뒤로 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아직은 로스차일드의 눈이 붙어 있을 수 있으니 굳이 바깥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잭슨과 강기태가 굳이 록펠러 저택을 드나든다면, 놈들에게 경계심을 심어 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제와 경계를 품어도 상관없지만, 모르고 맞으면 더 아픈법 아니겠는가.
호텔의 로비에 잠시 앉아 커피를 홀짝이는 사이, 호석이 내게 다가왔다.
“회장님.”
“네.”
“감시의 눈은 없습니다.”
“그래요?”
“예.”
그럴리가 없다 싶지만, 호석을 신뢰하지 못하는게 더 우스운 일이었다. 이런 쪽 일에는 스페셜리스트니까 난 그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펜트하우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강기태가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예.”
“헬로, 빅 보스.”
제법 건방진 인사지만 미국놈이니 그러려니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강기태가 내민 서류를 천천히 살폈다.
확실히 시간이 더 있었다면 더 큰돈을 벌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지금 당장은 로스차일드의 자금력을 흔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일시에 427억달러라는 거금을 움직여야 했던 로스차일드는 아마 부담스러울테다.
“로스차일드 자금이동 어떻게 되고 있죠?”
“프랑스와 독일에서 각각 100억 달러씩 움직였습니다.”
알 만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가주라는 것을 이용해서 돈을 융통한 모양이다. 공짜로 뜯어 왔을리는 없고, 무엇인가 내줬을게 분명하다.
아니면 고리를 쓴 것이거나.
“대출 형식으로 받아왔겠군요.”
“형식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진짜일지도 모르고요.”
“예, 회장님.”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었기에 잭슨은 멀뚱멀뚱 웃고 있을 뿐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나쁘지 않은 수익이네요.”
“쩝, 10배, 20배도 노려볼만 했는데···”
강기태의 말에 피식 웃었다.
확실히 시간만 더 있다면 그렇게 될지도 몰랐다.
“적정선이라는게 있습니다.”
“예.”
“부쉬의 얼굴에 똥칠을 하면 좋아하지 않을겁니다.”
“이해했습니다.”
“그래요.”
나는 고개를 돌려 멀뚱히 있던 잭슨에게 물었다.
“어떻게 일은 재미있었습니까?”
“와우, 그걸 말이라고요 빅보스? 보스가 로스차일드 그 영감탱이 표정을 봤어야 하는데, 똥이라도 씹은 줄 알았습니다.”
“그랬습니까? 일이 만족스러웠다니 다행이군요.”
“크하하, 이런 재미있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나는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잭슨이 좋아 할만한 일이 또 있는데 어떻습니까? 해보겠습니까?”
잭슨이 희번덕 거리는 눈깔을 하고는 말했다.
“페이만 맞는다면야.”
피식 웃었다.
이번 로스차일드의 일로 잭슨이 가져간 돈은 천만 달러다.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겠지만 잭슨의 입장에서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이렇게 돈 욕심이 많은 인물이 다루기 편했다.
대충 그 사람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기가 쉬우니까.
“이번엔 두배를 지급하죠.”
“오우, 역시 빅보스 통이 큽니다. 콜~”
“무슨 의뢰인지 말 안 했습니다만?”
“스펙타클하고 익사이팅한 일이겠죠.”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쩌면 스릴러가 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나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건 지금처럼 경호 받고, 지금처럼 이런 펜트하우스를 얼마든 이용할 수 있겠죠?”
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도의 편의쯤이야 얼마든 봐 줄 수 있었다.
“이 상류층의 삶이라는게,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하네요··· 결코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
그의 사정따위야 관심이 없고, 나는 뒤쪽으로 손짓했다. 그러자 직원 하나가 007서류가방 하나를 가져왔다.
타닥, 타닥.
가방을 열어 잭슨에게 보여주었다.
“와우, 엄청 비싸보이는 목걸이네요.”
“예, 로스차일드가 본다면 환장할.”
“이걸 처리하는 임무인가요?”
“소더비에 내놓으세요.”
“아아, 소더비···”
“크로치 인베스트먼트의 이름으로.”
“예, 알겠습니다.”
아마 뚜껑 열린 윌리엄 로스차일드 그 놈이, 잭슨에게 킬러를 붙일지도 몰랐다.
나는 호석에게 부드럽게 웃으며 한국말로 말했다.
“저 놈 경호 좀 늘려야 할 겁니다.”
“예, 회장님.”
< 제 17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