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68화 (168/458)

< 제 168화. >

과연 할아버지가 걱정하시는게 무엇일까.

“지킬게 많은 사람, 잃을게 많은 사람은 나약해지기 십상이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과연.

맞는 말이었다.

분명 이번 삶의 시작은, 잃을게 없는 사람으로 시작했었다. 내가 가진것은 아랫도리에 달린 메추리알 두쪽이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세계를 호령하게 될 SKY이라는 거대한 공룡 기업도, 사랑하는 가족도.

내게는 더 없이 소중한 것이 되었다. 이제는 잃을게 제법 많아졌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내 핏줄, 내 피를 이은 2세는 커다란 약점이 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지금 그점을 말하고 계셨다.

날빤히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이 놈, 왜 웃느냐?”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나 보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무엇을?”

“자신있으니까요.”

“자신 있다?”

“감히,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커다란 제국을 만들테니까요, 우리를 건드릴 수 있었던 것은 이건과 로스차일드가 끝일겁니다.”

돈을 위해.

자리를 위해.

더러운 술수를 마다 하지 않던 로이드 로스차일드와 이건.

그 둘은 이제 세상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 제2의 이건, 제 2의 로이드가 없을까? 나는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경험을 얻었습니다. 깨지고 부딪히며 배우는 아이들처럼, 이제 적들에게 ‘내 약점’이 무엇인지 제가 인지하고 있다는게 중요합니다.”

“과연, 자신만만하구나.”

“예. 걱정하실 문제가 아닙니다.”

“오냐, 지켜보마.”

대충 얘기가 정리된 것 같았을까,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대비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주택공급 사업이야, 별 문제 없이 진행중이니 더 거론할 게 없고, 우진이 전화하는 것을 듣다보니··· 중국 얘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앞으로 중국의 성장세는 무서울테니까 당연한 얘기겠죠.”

대비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중국의 인구수는 무시할 게 아니지.”

“내수 시장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곳 아니겠습니까? 그 내수시장을 조금만 가져온다고 해도, 좋을테죠.”

“알겠지만 놈들은 민주주의가 아니야. 자본주의는 더더욱 아니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히 중국은 정부의 힘이 강력한 국가였다.

정확하게는 힘이 강력하다기 보다는 강제력이 있는 국가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대한민국이나 미국처럼 자유를 표방하지는 않는단 얘기.

“글쎄요, 전 세계에 자본주의 아닌 곳이 있을까 싶네요.”

내 말에 할아버지와 대비 할아버지 두분다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두분의 얼굴에서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이봐 쑤.”

“왜, 대비.”

“우리가 우진에게 뭔가 가르칠 게 없어 보이는데, 기분탓인가?”

“방금 막,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네.”

대비 할아버지가 쯧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가르칠 게 없으니, 재미가 없구만.”

“노인네들은 노인네들끼리 어울리자고.”

“자네 일보은 언제 가는가?”

“하루 이틀은 더 있다가도 되겠지, 급한 것도 아니잖은가? 당장 자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워낙 대단하신 손자 놈이 알아서 계획을 다 가지고 있으니, 노인네들이야 손만 거들면 될 게 아닌가?”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네.”

“앉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니 요즘것들은 영, 예의가 없어.”

“그러게 말이야··· 노인네들은 그냥 용돈만 받으면 헤벌쭉 할 거란 생각은 편견이지.”

‘암, 암’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할아버지.

어쩐지 두분이 날 바라보는 눈이 뜨겁다.

눈치껏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 효자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효자는 무슨.”

“누구 마음대로 효자야?”

충분히 즐기시고들 계시면서 엄살이 심하다.

대비 할아버지는 이죽거리는 로스차일드를 건드린다는 사실에 재미를 느끼고 있고, 할아버지는 정치꾼의 가면을 한 풀 벗어던지고 본래의 자신을 찾은 것 같아 재미를 느끼고 계실터.

뭐, 더는 나와 할 이야기가 없다고 하시니 두 분끼리 회포를 풀게 두고,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해야지 싶었다.

밤새 루시가 속삭이는 우리 아이의 미래를 듣느라 자지 못했으니까.

***

윌리엄 마이어 로스차일드가 평소와 다르게 품위를 잃은 모습에 세바스찬은 어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욕조에 몸을 담그고, 마사지를 받고 하루를 시작하는 윌리엄의 루틴.

그 루틴이 깨졌다.

세바스찬이 로스차일드 가문의 집사로 일하는 동안 단 한번도 목격한 적 없던 일이었다.

뭔가 알 수 없는 상황에 침을 꿀꺽 삼킨 세바스찬이 까치집을 짓고 있는 로스차일드에게 말했다.

“가주님. 크로치 인베스트먼트의 대표 사무엘 잭슨의 정보입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서류를 건네받은 윌리엄.

천천히 읽어내려가다 인상을 찌푸린다.

“더러운 돈을 빨래나 하던 놈이라···”

“혹, 마피아들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로스차일드는 고개를 저었다.

마피아 놈들이 멍청한 게 아니라면 자신을 건드릴 리 없었다. 그리고 그놈들에게 그럴 힘도 없었다. 피해가 예상되니 치워버리지 않을 뿐, 마피아는 미국에게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미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바로 윌리엄과 같은 기득권 들이었다.

“잡힐 것 같으면서 잡히지 않는구나.”

윌리엄이 평소와 다르게 포마드가 아닌 까치집을 짓고 있는 이유. 그것은 과연 누가 로스차일드를 공격하느냐였다. 내부의 인물은 아니란 확신은 생겼다.

CIA는 물론 MI6와 프랑스 정보총국까지 모두 같은 정보를 주었으니 신뢰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만약 내부에서 그들 모두를 속이며 현 로스차일드의 지배가문을 노렸다면 그 능력을 인정해주어야 함이 옳았다.

그러나 윌리엄이 아는 한, 지금의 로스차일드들은 그럴 힘이 없다. 윌리엄의 선조부터 계속해서 그들의 팔 다리를 하나씩 하나씩 잘라 왔기 때문이었다. 비로오 완벽한 로스차일드가 되었다며 허허롭게 웃으며 세상을 떠났던 자신의 아버지를 똑똑히 기억하는 윌리엄이었다.

“누구냐··· 누구···”

때로는 거친 사냥개처럼, 잔인한 살인마처럼.

자신의 핏줄을 무참히 도륙했다.

그리고 그것과는 상반되게 정말 치밀하게 짜여진 거미줄과 같은 계략으로 ‘공급주택’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로스차일드 뱅크를 흔들고 있었다.

머리와 몸.

이 두가지 전부가 완벽한 ‘적’이었다.

거기에 더해 로스차일드 못지 않은 ‘정보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부쉬의 움직임을 예측하기는 어려웠을테니까.

“부쉬? 대통령일까?”

그럴리가 없었다.

부쉬가 이번 공급주택 사업으로 얻는 이득이 크다면, 문제가 된다 당장 다음 정권은 다른 이에게 양보해야 했다. 미국의 대통령이란 자리가 그런 단기적인 이득을 보고 베팅했을리 없었다.

그렇게 멍청한 인물이었다면 자신이 밀었던 알 구어가 대통령이 되었어야 옳다. 실제로 만났던 부쉬는 보좌진의 앵무새가 아니었다. 자신만의 생각이 있고 신념이 있는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정치 명문가라 불리는 명맥을 이었을테니 교육도 달랐을테다. 그러니 이런 멍청한 짓을 벌였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부쉬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라면, CIA가 긴밀한 협조를 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어쨌든 그들은 국가를 수호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니까. 보기보다 고지식한 고위 공무원들은 많았다. 그들은 은퇴후 노후를 위해 로스차일드의 편의를 봐주는 것 뿐이다. 또한, 미국의 ‘부’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로스차일드를 위해 ‘대통령’과 대립할 놈들은 아니란 뜻이었다.

“후우.”

한 숨도 자지 않고 생각에만 잠겨 있다보니 조금은 멍한 것 같은 기분이 들던 윌리엄.

그런 윌리엄에게 조심스럽게 묻는 세바스찬.

“이번 일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자가, 적이 아니겠습니까 가주님.”

맞는 말이었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이득은 분명 크로치 인베스트먼트가 가져가고 있었다. 마피아나 사기꾼들의 뒤나 닦아주던 사무엘 잭슨이란 놈이 말이다.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자.”

윌리엄도 밤새, 정보통에서 얻어온 정보들을 토대로 그것을 중점적으로 살폈지만 보이지 않았다. 이득을 얻을 인물들이.

“아아.”

갑작스럽게 무엇인가를 깨닫기라도 한 양, 히죽 입꼬리를 들어올리는 로스차일드.

“곧 찾아주마.”

세바스찬이 자신이 알던 얼굴로 변한 윌리엄을 보며 안도의 표정으로 묻는다.

“적을 찾으셨습니까?”

“아직은, 곧 찾을 것 같군.”

“그렇습니까?”

“자네 말이 큰 힌트가 되었어.”

“다행입니다.”

피식 웃으며 여유롭게 시가를 물던 윌리엄.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자가 아직은 보이지 않지만, 적어도 피해를 입지 않은 인물들은 보이는 군.”

세바스찬이 ‘아아’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렇죠 가주님. 우리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적어도 적들은 피해입지 않았을테니까요.”

“그래, 그 점을 간과하고 있었어, 피해입지 않은 놈들을 찾았다면 더 쉬웠을 일이었을텐데··· 내 사고 회로가 문제였군, 이득을 얻지 못하는데 움직이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그 사고가 말이야.”

“얻을 것이 없어도 움직였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이는 군.”

세바스찬이 윌리엄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음, 혹 그자들이 누구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집사에게 숨길게 있겠는가? 록펠러, 골드만글러브, JB모간, 그 밖의 은행들.”

“아아, 이번 모기지 대출 옵션상품을 아예 발행하지 않은 은행들이군요.”

“맞아. 적은 그놈들 중에 있을거야, 아니면 모두거나.”

윌리엄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놈들의 지난 3개월간의 행적을 싹 쓸어와, 특히 록펠러 그 영감탱이의 정보는 빼먹지 말고.”

“예.”

***

벤츠의 미니버스가 몇 대가 바쁘게 미국의 도로를 질주했다. 루시와 함께 병원을 가기 위해서였다.

정확한 검사가 진행되어야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왜 이렇게 차가 많냐면, 뉴욕에서 발생한 테러사건 덕분이었다. 할아버지들은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었으니까, 확실히 오랫동안 가진것이 많았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제법 유난스러웠다.

“그러니까, 제가 루시랑 따로 다녀온다니까요.”

대비 할아버지와 우리 할아버지가 동시에 대답한다.

“안 돼.”

“그건 안 돼.”

“왜요.”

다시 한 번 동시에 대답한다.

“빨리 듣고 싶으니까.”

“빨리 결과를 알아야지.”

록산나 장모님과 우희는 루시를 위해서 따라오겠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 나는 스륵 시선을 옮겨 장인어른을 바라보았다.

“크음, 나도 딸 아이의 아비일세.”

“예, 그러시겠죠.”

결국 온가족이 출동해 산부인과로 향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덕분에 록펠러 가문의 ‘경호원’들 뿐 아니라 할아버지의 경호원, 내 경호원, 우희의 경호원들까지 정말 어마어마한 인력이 동원되는 길이었다.

“누가 보면 대통령 의전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루시의 뱃속의 아이가 대통령보다 더 귀하지.”

“대비, 말 한번 잘했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아버지, 그리고 어르신 맞습니다!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데요!”

남자 셋이 짝짜꿍이 잘 맞는다.

억지로 억지로 이 차에 루시를 태우지 않을 것을 잘한 것 같았다. 내가 루시와 함께 차를 타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장모님의 권유를 듣길 잘한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도착해 록산나, 우희와 함께 진료를 받으러 떠난 루시.

팔불출 할아버지들과 장인어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녀와 함께하지 못했다. 루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할아버지들 챙기고 있어 우진.’이라고 얘기한 것이 귓속에 생생하다.

덕분에 기분이 좋지 않은 나는 할아버지들과 장인어른을 째려볼 수 밖에 없었다.

“크흠.”

“흠흠.”

“커험.”

세 명의 사내는 내 눈치를 살핀다.

“에휴···”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대비 할아버지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우진, 중국에서는 무슨 사업을 생각 하고 있더냐?”

적절한 화제 돌리기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속아주기로 했다. 어쨌든 어른이 아닌가.

“제 스타일 모르세요?”

“우진의 스타일?”

대비 할아버지의 고개가 우리 할아버지에게 향했다.

“끌끌, 저놈은 잡식성이지 대비.”

대비 할아버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날 바라보신다.

“수의 맞이 맞아?”

“예, 대비 할아버지도 장인어른도, 우리 할아버지도 잡식성이잖아요?”

내 말에 두 할아버지가 껄껄 거리며 크게 웃는다.

자본주의에 절여진 미국답게 프라이빗한 공간이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어울리지 못하고 웃지 못하던 장인어른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 무슨 뜻인지 설명좀 해주겠나?”

우리 할아버지가 ‘아~’하며 말씀하신다.

“이런 자네를 깜빡했구만, 그럴 수 있지. 내가 설명해주겠네.”

“예, 어르신.”

“뭐 간단하네.”

“그렇습니까?”

대비 할아버지와 할아버지, 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말 그대로 간단하다.

“먹을 수 있는건 다 먹겠단 뜻이니까.”

“호오.”

장인어른이 감탄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과연.”

“중국은 노다지죠, 아직 외국 자본을 꺼려하고 있으니까, 가능한 많은 것을 가져올 생각입니다.”

“쉽지 않은 길일걸세.”

“당분간 미국은 시끄러울테니까요, 대비 할아버지가 알아서 잘 해주시겠지만.”

“걱정하지 마, 로스차일드가 떨궈지면 일은 쉬워지니까.”

“옙!”

때마침 뒤쪽에서 루시가 밝게 상기된 얼굴로 달려온다.

“뛰지마 루시, 천천히, 천천히.”

내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 달려온 루시가 내게 덥석 안기며 말했다.

“허니! 쌍둥이래 쌍둥이!”

그 기쁜 소식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뒤쪽에서 또렷하게 들리는 우리 할아버지의 목소리.

“저 보시게, 욕심이 많잖은가? 잡식성이라, 남들은 하나씩 낳는 자식 둘씩이나 갖지 않았던가?”

대비 할아버지의 껄껄 거리는 웃음소리가 프라이빗한 대기실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 제 168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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