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66화 (166/458)

< 제 166화. >

고키부리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한다.

“맞습니다. 오카네죠, 툭 터놓고 말해서 자민당이 장기집권 하면서 기업가들이 자민당의 눈치를 보지 우리의 눈치를 봅니까?”

맞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들.

고키부리가 품에서 금화 몇개를 꺼내 탁! 하고는 테이블 위에 내려 놓았다.

“자토이치 대표, 내가 금을 좀 가지고 있습니다.”

당대표들이 금화를 하나씩 가져가 살펴본다.

“음, 유럽양식이군요.”

“맞습니다. 오래 된 금화일 확률이 높죠.”

“문화적인 가치도 있을텐데?”

“자민당의 아가리속에 세금을 쑤셔 넣고 싶습니까?”

“그럴리가.”

“빠칭코 장에 유통되는 금, 그 쪽에 잘 섞어서 유통시키면 자금을 좀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소만.”

스기하라, 자토이치, 이치로의 눈이 반짝인다.

단밖에 고키부리가 무슨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한 모양이다.

“어떻습니까? 덩어리가 큰 만큼 우리가 가져갈 것도 많습니다.”

이치로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혹, 고키부리 동지의 자금이오?”

“나도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수수료를 받기로 했지요.”

스기하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고작 수수료를 받는다 말씀이시오?”

“수수료 20퍼센트를 약속 받았소.”

“쯧, 그게 얼마나 된다고.”

피식 한쪽 입꼬리를 들어올린 고키부리가 말했다.

“이천억엔.”

스기하라가 눈썹을 꿈틀 거리며 물었다.

“뭐요?”

“수수료가 2천억엔이란 얘기요.”

방 안의 모두가 입을 떡 벌렸다.

그들은 귀를 의심했다. 20퍼센트의 수수료를 얘기했는데, 고작 20퍼센트가 2천억엔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라고 하니, 당연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마음들이 동합니까?”

“그 2천억엔을 우리 넷이 나누는 것이오?”

자토이치의 질문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고키부리.

“압도적인 자민당에게 대항하려면 어쩔 수 없이 우리 넷이 합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동인도회사의 후신들을 좀 움직여볼까 싶은데··· 자토이치 대표의 장인께서 맡고 계시지요?”

“그렇습니다. 어쨌든, 자민당의 눈치를 보고 있지만.”

“우리 넷이 그 부분만 해결한다면 장인께서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고키부리가 고개를 돌려 스기하라를 바라보았다.

“여기 스기하라 대표께서는 역시 빠칭코장 쪽을 좀 움직여주시고.”

“그 부분은 문제 없소.”

“이치로 대표께서는 급진적인 단체들과 조선학교 학생들을 좀 움직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문제없지요, 요즘 고키부리 전 총리의 행보에 그렇지 않아도 조선 학생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까.”

고키부리가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다음 총선에서는 자민당을 끌어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방안의 모두가 히죽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정말 가능 할 것 같았다.

‘돈’이라는 것으로 나머지 소수당들이 뭉친다.

현 여당을 끌어내린다.

“가능하다면 총리 자리 역시, 자민당이 아닌 다른곳에서 나오는 것도 좋겠지요.”

***

윌리엄 마이어 로스차일드가 약속장소를 말했지만 잭슨과 강기태는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

그들은 반대로 윌리엄을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불렀다.

-그놈 뜻에 따라 움직이지 마세요, 주도권은 잡고 흔드는 것이지 흔들려주는 것이 아니니까.

천우진의 지시에 따른 일이었다.

덕분에 윌리엄 로스차일드는 불쾌함을 은연중에 내비치며 잭슨과 강기태가 머무는 펜트하우스에 도착했다.

강기태는 잭슨의 비서인 척, 잭슨이 앉아있는 상석 뒤에 살짝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고, 윌리엄은 자연스럽게 잭슨의 맞은편에 앉게 되었다.

“반갑습니다. 사무엘 잭슨, 크로치 인베스트먼트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윌리엄 마이어 로스차일드요.”

뻣뻣한 모가지.

“옵션 행사를 자꾸 거절 하고 계신다고?”

잭슨이 툭 뱉은 공격적인 말에 윌리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스닥이 멈출정도로 테러의 여파가 크지 않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루가 다르게 집 값이 떨어지고 있는데, 돈이 없는 것은 아니고요?”

“세상에 로스차일드가 돈이 없다니, 차라리 세상이 망했다고 믿는게 빠르겠지.”

“우리는 정석대로, 매일같이 옵션 행사를 요청할 생각입니다.”

“그러시게, 나는 그냥 궁금해서 온 것일 뿐이야.”

잭슨이 고개를 갸웃 거렸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곧 돈이 준비된다 따위의 대답을 들을 줄 알았건만, 윌리엄의 말은 전혀 예상밖이었다.

“뭐가 궁금합니까?”

“도대체 당신들은 어떤 정보를 가지고 이런 말도 안되는 옵션을 개설했나, 궁금했거든.”

“글쎄요, 세상을 보는 눈이 뛰어났다?”

‘풋’ 하고 웃은 로스차일드가 잭슨을 빤히 바라보다 물었다.

“뒷배가 누구냐? 어떤 놈이 감히··· 우리 로스차일드를 건드려?”

잭슨이 움찔 거렸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로스차일드, 그러나 이내 잭슨은 부드럽게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한 껏 여유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딴게 중요한게 아니고, 돈이나 가져오시죠, 대 로스차일드 가문의 윌리엄 마이어 로스차일드님.”

눈썹을 꿈틀 거리며 말 하는 윌리엄.

“천박한 노예 놈이···”

“언제적 시절을 얘기하시나, 노예제도가 살아진지가 언제인데,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돈과 숫자로 얘기하는거 아닌가?”

“과연, 네 놈을 지켜줄 수 있는 뒷배인지 아닌지 어디 한번 보지.”

“편하실대로, 돈은 준비하세요?”

“글쎄, 네 놈이 과연 찾으러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윌리엄은 제 할말이 끝났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모습에서 대단한 프라이드가 느껴졌다. 건방진 느낌이라기 보다는 ‘지는 방법을 모르는’사람처럼 보였다.

저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펜트하우스에서 당당히 걸어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기태가 피식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긴장했어? 잭슨?”

“워우, 노인네 눈깔이 무슨.”

“푸핫, 쫄기는. 할렘가에서 총을 디밀어도 웃을 놈이.”

“저 노인네 눈깔 못 봤어 캉? 나를 산채로 갈아마실 분위기였다고!”

“쯧, 걱정하지 마. 그럴일 없으니까.”

“후우, 부디 그래야 할 거야. 으, 씻어야겠어.”

“왜?”

“살짝 지린 것 같아.”

“푸핫.”

강기태가 웃으며 손짓으로 가보라는 듯 제스쳐를 취하고는 휴대폰을 들어올려 천우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본부장.

“윌리엄 로스차일드가 다녀갔습니다.”

-아, 벌써 뉴욕으로 날아간 모양이네요.

“협박을 하고 가더군요.”

-호오, 돈이 없으니 강짜를 부리겠다?

“뒷배가 누구냐 물었습니다.”

-그래서요?

“잭슨이 돈이나 준비하라고 대답했습니다.”

-하하, 잘 했네요.

“윌리엄은 뒷배가 있다고 확신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렇겠죠, 그쪽도 정보부쪽 사람들을 돌려 잭슨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했을테니까.

“예.”

-안전에 유의 하시고, 대원들 근접 경호가 거슬려도 참으세요, 며칠은.

“명심하겠습니다.”

강기태가 잭슨이 사라진 욕실쪽을 바라보다 말했다.

“잭슨은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윌리엄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그럴 수 있죠, 감시를 좀 올려야겠네요.

“예, 회장님.”

-하던대로 하세요,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번 일 끝나고 휴가좀 다녀오시고요.

“예.”

***

저녁시간.

긴 출장을 떠나 있던 루시의 부모님이 저택에 돌아왔기 때문에 왁자지껄 저택이 시끄러웠다.

“뉴욕 일 때문에 돌아온거야?”

루시의 질문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장모님, 장인어른.

“그것도 있고, 우리 딸 보고 싶어서도 있고~ 우리 멋진 사위 보고 싶어서도 있지~”

장모님 록산나 여사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려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다정한 포옹.

“우진, 우리 왈가닥 루시 때문에 고생이 많지?”

“하하, 아니요 항상 비타민 같은데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장인께 먼저 손을 내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장인어른.”

“아니야, 자네가 고생이 많지.”

“아프리카는 좋으셨습니까?”

“참, 세상엔 어려운 아이들이 많아 아직도 굶어 죽는 아이들이 있다는건 너무나 슬픈 일이지.”

“그렇습니까.”

“자세한 얘기는 이따가 한 잔 걸치면서 하자고?”

“예.”

어느새 루시는 우희를 장모 록산나 여사께 소개하고 있었다.

“엄마, 여기는 우리 아가쉬!”

“아가쉬? 아가쉬가 뭐니?”

“아아, 우진의 쌍둥이 여동생!”

“어머, 그러고 보니 우진과 판박이네! 그런데 어쩜 이렇게 예쁠 수 있지?”

“안녕하세요, 천우희라고 합니다.”

“그래요, 정말 미인이시네요.”

“아니에요, 록산나씨야 말로 미인이신걸요? 언니라고 해도 믿겠어요!”

“오호호호, 말하는 것도 우진과 닮았네 어쩜 이렇게 예쁘게 말할까?”

루시가 신난 얼굴로 우희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엄마 우리 아가쉬도 엄마랑 아빠처럼 ‘재단’일을 할 거야, SKY가 설립한 재단이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보육사업 하고 있는거 알지?”

“그래, 그런 기업들이 잘 없는데 대단한 일이지.”

“이제 우희가 그 재단을 맡아서 운영하게 될거야.”

록산나가 눈을 크게 뜨며 묻는다.

“어머, 정말인가요?”

“네··· 아직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오빠가 록산나씨에게···”

“그냥 편하게 엄마라고 불러요 우희.”

“네?”

“해봐, 엄마.”

“어, 엄마.”

“그래, 우리 딸.”

갑작스런 신파에 루시가 감동스럽단 표정을 짓지만, 나와 장인어른은 멀리서 고개를 저었다.

“여자들은 참 예민해.”

“그렇죠···”

어디선가 나타난 대비 할아버지가 눈물 바다가 되어 있는 록산나, 루시, 우희를 바라보다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슨일이야?”

나와 장인어른은 고개를 흔들었다.

잘 모르겠으니까.

잠시 짧은 고민을 하던 대비 할아버지가 우희 곁으로 걸어가 우희의 어깨를 토닥이며 묻는다.

“무슨 일이니?”

“아니에요, 할아버지··· 그냥 좋아서 그래요.”

이어서 록산나가 차분히 설명하고, 어느새 대비 할아버지의 눈도 촉촉하게 젖어 들어간다.

나와 장인어른은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뒤를 돌아보는 대비 할아버지의 눈이 말하길.

‘몰상식한 놈들, 이런 감동스러운 순간에.’

하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장인어른을 쳐다보았고 장인어른도 날 바라보신다.

‘이해 되십니까?’

‘아니, 전혀.’

우리 감성이 매마른게 아닌 것 같은데 참.

다시 고개를 돌리는데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네 명의 울보가 보였다.

‘네들은 뭔데 안 울어?’하는 얼굴들이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장모님께 말했다.

“감사합니다 장모님, 우리 우희 예쁘게 봐 주셔서.”

“이렇게 예쁜데 어떻게 예쁘게 안 보겠어.”

어느새 우희와 꽤 다정스럽게 보이는 록산나.

난 최대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도 꽤 뿌듯하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홀로 남은 장인어른이 때 늦은 연기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크윽, 우진의 쌍둥이 여동생이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크흑흑.”

나를 포함한 모두가 자리에 덜컥 굳었다.

당황한 장인어른은 어째서 이런 분위기가 되었는지 파악하기 힘든 모양.

루시가 팔장을 끼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빠, 눈에서 피 나.”

“으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장인어른 눈을 너무 세게 찌르신 모양입니다.”

대비 할아버지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칠칠맞은 놈.”

록산나 여사가 우희를 돌려 세우며 말했다.

“저런거 보지 마렴, 쯧, 자~ 우리 밥먹으러 갈까요?”

모두가 록산나의 리드에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

여자들의 수다는 언제 들어도.

적응이 안된다.

식탁위에 앉아서도 벌써 20분째 수다가 이어지고 있었다. 남자들은 입에 꿀이라도 발랐는지 조용히 식전주만 홀짝이고 있었다.

장인어른은 창피한지 계속 먼곳만 보실 뿐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에피타이저가 나오고, 나와 대비할아버지 그리고 장인어른은 얼른 포크를 들어 올렸다.

“에피타이저는 루시 아가씨의 요청으로 자연산 연어를 준비했습니다. 루시 아가씨가 가장 사랑하는 요리죠.”

한 눈에 보아도 연어 토마토 카르파초.

딱 봐도 맛있어 보이는 그것. 그리고 루시가 평소 사랑하던 음식.

우희에게 음식에 대하여 장황하게 설명해준 루시가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포크를 들어올려 토마토와 연어, 샐러드까지 한번에 찍어 올려 입으로 가져간다.

“우욱.”

식탁위에 정적이 찾아왔다.

“아, 죄송합니다.”

루시의 사과.

“우욱, 웩.”

멈추지 않는 헛구역질.

식탁 위 모든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설마?”

< 제 166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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