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61화. >
이틀 뒤.
로스차일드 가문은 대대로 천주교 집안이었다.
으레 그렇듯, 로이드 로스차일드의 장례식에도 신부가 등장해 고인에 대한 애도를 표한다.
장례식장엔 많은 인파가 모였다.
미국 금융계의 거물의 아들이 죽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나와 루시, 대비 할아버지를 비롯한 체이스와 삭스, 그리고 부쉬까지 참석하게 되었다.
나는 굳이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
뭐 예쁜 놈 간다고 그 길에 애도를 표하겠는가, 죽고 죽이고 먹고 먹히는, 그런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우리 할아버지의 차가 방탄차량이 아니었다면. 지금 관속에 누워있는 사람은 로이드가 아닐지도 몰랐다.
윌리엄 로스차일드는 신부의 기도가 끝날때까지, 그리고 자신이 앞에 나서서 로이드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는 순간까지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반드시, 너를 이렇게 만든 놈을 잡아 복수하리라 맹세하마.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지켜보아라, 이 애비의 복수를.”
수많은 인파가 있음에도 ‘복수’를 언급하는 윌리엄 로스차일드의 눈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서릿발 날리는 눈빛에 차마 애도를 표하기 위해, 그리고 윌리엄에게 눈도장 찍기 위해 모였던 인파들이 그에게 접근하기 어려운지 엉거주춤한 모양새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모습에도 전혀 겁먹지 않고, 자신이 뜻한 바를 펼치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나와 대비 할아버지, 그리고 루시였다.
“고생많았소.”
대비 할아머지의 말에 어렵게 고개를 끄덕이는 윌리엄.
“범인은 밝혀졌소?”
민감한 질문이었지만, 거침없이 던지는 대비 할아버지의 질문에 윌리엄이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아직 별 소식이 없습니다.”
“그 복수, 성공하길 빌겠소.”
“감사합니다.”
대비 할아버지가 돌아서기에 나도 자리에서 돌아섰다. 굳이 그와 어떤 대화를 나눌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강을 건넜다.
로스차일드와 나는, 우리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고 확신한다.
“우진 천?”
뒤통수에 윌리엄의 목소리가 꽃혔다.
다시 뒤 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 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지?”
마치 아랫사람 대하듯 내게 편하게 말을 던져온다.
“우리가 서로 편하게 대화할만큼 친분이 두터웠던가?”
나 역시, 굳이 그에게 존장의 예우를 두지 않았다.
존댓말이라는 개념이 없는 미국이지만, 예의있는 단어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가 내게 그런 단어를 선택하지 않은 만큼, 나 역시 그에게 그런 단어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저 친구에게 건네는 말 처럼 편하게 말했다.
자연스럽게 윌리엄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노골적으로 분노를 표하고 있었다.
“확실히, 내 아들과는 친해질 수 없는 성격이군.”
“로이드가 누굴 닮았나 했더니, 아버지를 쏙 빼닮았군.”
눈썹을 부르르 떨며 낮게 읊조리는 윌리엄.
“테드 존스를 아나?”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글쎄.”
“그와 몇번 마주쳤을텐데?”
“나와 마주친 인물이 수십 수백이 넘는데 일일이 기억할 수 있나.”
“그렇군.”
윌리엄 로스차일드의 몸뚱이에서 붉은색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노골적인 적대.
내게서 어떤 혐의점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은 심증만 가지고 있는 것일 터.
“만약에··· 정말 만약에, 자네가 내 아들의 죽음과 어떤 연관이 되어 있다면··· 반드시, 배로 갚아주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나는 망설임 없이 돌아서서 장례식장을 벗어났다.
혀로만 하는 경고따위에 심장이 떨릴 만큼,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아무렇지 않았다.
“할아버지, 윌리엄씨가 너무 지나친것 같은데요?”
루시의 말에 대비 할아버지가 피식 웃는다.
“글쎄, 우진이 녀석이 너무한 것 같기도 하고?”
“네에? 여기서는 우진의 편을 들어줘야죠!”
“알아서 잘 했잖으냐? 오히려 윌리엄 놈에게 한방 먹였는데, 내가 거들것이 있을까?”
“우씽, 허니! 기 죽지마! 윌리엄씨가 지금 슬픔 때문에 사리분별이 안되서 그래.”
푸핫.
웃음이 터져버렸다.
루시의 생각과는 달리, 나는 윌리엄 로스차일드가 아주 제대로 사리분별을 하고 있다고 봤다.
그리고 그것은 대비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인 모양.
‘윌리엄이 눈치를 챘는지도 모르겠구나.’
대비 할아버지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이 세상에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는 딱 한명 뿐이야.”
루시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대비 할아버지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루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묻는다.
“그 한 명이 누군데?”
나는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올리고 말했다.
“너.”
대비 할아버지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리고, 잠시 굳어있던 루시가 픽 웃으며 가슴팍을 때린다.
“아잉, 하여튼간 못말려.”
어우야, 복싱을 배웠나 가슴이 아릿하다.
내 귀에 가까이 다가온 루시가 작게 속삭였다.
“오늘, 배란일이래.”
흠칫.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역시 날 위협할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단 한명뿐이었다.
***
식탁위에 널브러진 위스키 병들과 어지럽혀져 있는 음식들. 망가진 모습의 윌리엄 로스차일드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크게 숨을 내뱉었다.
“후우.”
세바스찬은 그저 묵묵히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얼마나 이러고 있었지?”
윌리엄의 물음에 세바스찬이 즉시 대답했다.
“17시간입니다.”
“얼추 하루를 보냈군.”
“예.”
“애도는 여기까지만 하지.”
17시간을 과음으로 보냈지만 윌리엄 로스차일드의 정신은 말똥하기만 했다. 세바스찬은 존경스럽다는 눈으로 그를 우러러보았다.
“천우진.”
“예, SKY그룹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입니다.”
“그놈을 좀 파 봐.”
세바스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그를 의심하십니까?”
윌리엄이 어색하게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는 떨리는 자신의 손을 들어본다. 밝은 주광색 빛에 떨리는 양손을 비춰 보고는 낮게 말했다.
“살갗이 저릿저릿 할 정도로 야망이 큰 놈이었어··· 내 아들이 그런 놈을 건드렸다면··· 결국 잡아 먹히는 것은 내 아들이었겠지.”
그 자조섞인 얘기에 세바스찬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것이 윌리엄 로스차일드는 누군가를 칭찬하는 일이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 언제나 그는 스스로가 세상위에 올라 서 있다고 생각하는 프라이드를 지닌 사람이었다. 또한, 긴장이란 것을 모르는 인물이었다. 언제나 사람들을 아랫사람으로 바라보니 자연스럽게 긴장할 이유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손을 떨고 있었다.
세바스찬은 애써 과음때문이라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으려 하지만, 윌리엄의 눈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였다. 언제나 꼭대기에서 세상을 오시하던 윌리엄. 그런 그가 경계하는 인물인 천우진이란 놈을 세바스찬은 새삼스럽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조사하겠습니다.”
“조심해서 조사 해. 쉬운 놈 아닐테니까.”
“예, 가주.”
“원로회 소집 되었나?”
“예, 익일 오후 2시, 본가로 초대했습니다.”
“좋아, 그때까지는 좀 쉬도록 하지.”
“예.”
***
대한민국과 일본은 연일, 고키부리와 천혁수 때문에 시끄러웠다.
[고키부리 전 총리, 대한민국 국민들께 일본을 대표할 순 없지만, 죄송하다.]
[천혁수 전 복지부장관, 야인이 되어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일본은 독일을 본 받아야, 전범 국가 자신들의 잘못을 진심으로 늬우치길.]
[역사를 배우지 않으면 미래는 되풀이 될 뿐, 천혁수 전 복지부장관 진심으로 외치다.]
[일본도, 한국도. 역사의식이 바로서야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성장 할 수 있어.]
[독도는 한국땅! 고키부리 총리 칼을 빼들다!]
자극적인 기사의 헤드라인만 봐도, 현재 둘에게 얼마나 많은 이몫이 쏠려있는지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기사가 쏟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기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였다.
대한민국에서는 연일 천혁수를 부르짖는 칭송에 끝을 모르고 그의 지지율은 상승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혁수와 고키부리의 관심사는 온통 ‘금’이었다.
“설명해 봐.”
천혁수의 질문에, 그의 앞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고키부리가 ‘하잇!’하고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한다.
“동인도회사를 아십니까?”
“알지, 그 망할 놈들.”
“크음, 어쨌든 그때부터 일본은 암암리에 금을 유통해 왔습니다.”
천혁수는 계속 해보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우리 일본에 하루에 유통되는 금의 양은 막대합니다.”
“그래?”
“예, 당장 빠칭코 장에서도 경품으로 현금이 아닌 금을 지급하기 때문입니다.”
“아아.”
“그리고 그 중에는 가짜 금이 섞여 있습니다.”
“가짜?”
“어차피 빠칭코장에 찾아오는 도박꾼들은 금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 금을 환전해주는 환전소에서 준 현금이 목적이죠.”
“이해했어, 가짜 금이어도 밝혀질 일이 없다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에도 수백키로그람씩 애먼 금이 사라집니다.”
천혁수는 짧은 대화를 통해 완벽하게 이해했다.
“도박장을 돌려서 금을 세탁하겠다는 얘기군.”
“맞습니다. 정부의 허락을 받아 유통해야 하지만, 그 부분은 아직 제 힘이 닿습니다.”
“좋아, 믿어보지.”
“하잇! 맡겨만 주십시오, 완벽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천억엔의 가치에 금을 세탁하는데 얼마나 걸리겠어?”
고키부리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한다.
“한 달.”
그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과 달리 천혁수는 매우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래걸리는 군.”
천혁수의 표정에 당황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는 고키부리.
“덩어리가 워낙 크다 보니···”
“동인도회사까지 거론하기에 제법 덩치 크게 돌리는 줄 알았더니···”
“크음··· 현재 일본 내에서 제 입지가 흔들리고 있기에 그쪽 라인을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과거, 동인도회사가 사용하던 방법을 차용해 왔을 뿐입니다.”
천혁수가 입꼬리를 올리며 묻는다.
“네놈의 일본 내 입지를 다시 다지면, 동인도회사라는 그 망할놈들의 후인들에게 영향력을 떨칠 수 있다?”
“하잇! 이번에 세탁한 천억엔으로 반드시! 입지를 다지겠습니다!”
“좋아, 진행해 봐.”
“예! 감사합니다.”
***
9월 9일 오후 2시.
전 세계가 백악관의 발표에 주목했다.
세계 경제의 기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백악관의 발표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전세계에 생중계 되고 있는 그 화면속, 부쉬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현재 시민들의 가계부채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상황, 그 이유는 시민들의 보금자리 집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우리 정부는 민간과 정부가 합작으로 새로운 사업을 실시할 계획입니다. 사업의 이름은 ‘희망주택’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업에 기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 화면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고 있었다.
-도심지 외곽의 토지를 개발해, 대량의 거주지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보급할 예정이며, 이 사업으로 인해······
쾅!
“이게 무슨 개같은 소리야!”
윌리엄 로스차일드의 벼락같은 외침에 움찔 몸을 떠는 세바스찬.
“상원의원 연결 해!”
“예!”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윌리엄.
-모기지 대출은 장기적으로 가계부채에 부담만 안기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극대화 시킬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
“제기랄 도대체 부쉬가 왜! 금융시장 동향보고 당장 올리라고 그래!”
“예, 가주!”
“제기랄! 제기랄!”
엎친데 덮친격.
보르도의 저장고 이후부터, 점점 로스차일드가에 안 좋은 일만 생기는 지금, 윌리엄은 정말 미칠 것 같은 스트레스에 화를 주채하지 못했다.
책상위의 모든 집기들을 좌우로 쓸어 다 부숴버리고서도 분이 풀리지 않은 그는 결국 집기 하나를 TV에 던져 버린다.
< 제 161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