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59화 (159/458)

< 제 159화. >

빠르게 저택 내부를 정리하는 대원들을 바라보다 호석의 사인에 맞춰 나와 호석은 먼저 저택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미국에서 군사작전이 쉬웠던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리라.

“미국의 경계가 높아질 겁니다.”

호석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한다.

“그때 말씀하셨던 그 일 때문입니까?”

“예, 곧 일어날 일 때문이죠.”

전례가 없을 정도의 엄청난 테러.

그거 한 번으로 미국의 출입국 절차는 까다로워 지고, 있는 자들의 경호인력과 PMC등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한다.

이유는 테러단체들이 ‘있는 놈’도 미국처럼 증오하기 시작하면서라고 얘기 할 수 있었다.

호석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드디어 우리 회사도 돈 먹는 회사가 아니라 돈 버는 회사가 될 수 있겠습니다.”

어쩐지 뿌듯해 보이는 모습.

그의 말은 이제 SKY 시큐리티&PMC가 흑자전환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는 것에 좋다는 뜻이었다.

“글쎄요 아직 그건 확실하지 않고요, 한국은 상대적으로 테러의 위협에서 벗어난 국가니까.”

“흐음, 그럼 우리 회사의 활로는 외국에 있겠군요.”

“예, 특히 미국이나 유럽같은.”

“이해했습니다.”

“전 대원. 사막 적응 훈련 시작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다시 우리 저택으로 돌아와 준비된 차량들을 살폈다.

“오늘 바로 뉴욕의 중심가 호텔로 이동합니다. 대원들 모두 한국으로 귀국절차 밟으세요.”

“예, 회장님.”

소리를 질러도, 작은 총소리가 울려도 주변의 저택들은 들은척도 하지 않을 곳이 이곳, 부촌이었다.

경찰들이 출동해 수사한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 증언을 듣기 쉽지는 않을 터.

그래도 혹시 모를 이야기가 있을 수 있으니, 우리는 이 저택을 다시 비워 놓을 생각이었다.

쓸데없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어젯밤, 저택의 모든 고용인들을 휴가 보냈다. 그들에게 친절하게 전용기까지 내주면서 말이다. 단 한명의 고용인도 거부하지 않았다. 기회가 왔을때 잡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또, 저택을 기웃거리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뭔가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준비는 완벽했다.

지금 로이드의 저택은 대원들이 깔끔하게 정리중일 것이다. 경찰이든 FBI든, 누가 와서 조사를 해도 그들이 들을 수 있는것은 ‘정체 불명의 무장 단체’쯤으로 될 것이었다.

“자, 갑시다.”

그러니 난 편안하게 뉴욕의 중심으로 향했다.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기대자 마자 스르륵 잠이 쏟아진다. 긴장이 풀려서라기 보다는 심력 소모가 컸던 모양이다.

누군가의 피가 손에 묻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인물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천혁수와 고키부리.

전셰계 언론은 그들의 움직임이 제법 이슈가 되니 쫒는 것이고, 일본과 한국의 언론은 그야말로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으니 쫓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의 주목을 받는 두 인물은 오늘 오사카에 도착해 있었다.

구름같이 몰려온 기자들에 둘러싸여 목 놓아 외치는 고키부리.

“오사카 경시청은 진실을 규명해라! 오사카 초교 난입 사건의 진범은 한국인이 아니다! 거짓된 보고서는 누구의 지시였는가!”

고키부리가 이렇게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것은 오사카 경시청에 자신이 지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민당 몇 의원들의 입김과 함께 당연히 ‘총리’의 의견이라며 전달되었을 터지만, 아니라고 발뺌하면 그만인 것이다. 실제로 직접적으로 자신이 언급한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고키부리는 고키부리대로 일본의 언론들과 바쁘게 인터뷰를 나누고, 천혁수는 천혁수대로 자신에게 질문하는 언론들과 각자 다른 언어로 대화를 나누기 일 수.

오사카 경시청 일대가 마비될 정도로 많은 인파 때문에 결국 경찰들이 출동할 수 밖에 없는 상황.

한때.

대한민국에는 정치깡패라는 놈들이 등장했던 시기가 있었다. 또, 건설용역이라는 깡패들이 횡횡해던 시기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것들을 천혁수는 실제 경험하며 살았기 때문에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진을 치고 있을때, 오사카 경시청에 강하게 항의하고 있는 일본인들을 방어하고자 밀치고 있을 때.

정부와 경찰들을 곤란하게 만들 방법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백철웅이 조용하게 한국말로 읊조렸다.

“김 사장, 실행합시다.”

“잉, 어른신헌티 신호가 왔습니까?”

“예.”

“워따, 눈빛만 보고도 척인갑네요잉.”

“확실하게 부탁합니다.”

“흐흐, 알겄습니다.”

김장원이 인파들 사이로 사라지고, 백철웅은 멀리 천혁수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것을 확인한 천혁수는 얼굴을 씨벌겋게 만들며 외쳤다.

“오사카 경시청은 진실을 밝혀라!”

대원들 몇과 천혁수를 보기 위해 한국에서 찾아온 한국인들, 그리고 오사카에 살고 있는 교민들이 천혁수의 말을 따라하며 경찰들에게 몸을 부딪히기 시작했다.

고키부리 역시 목놓아 외쳤다.

“오사카 경시청은 진실을 밝혀라!”

일본인들 역시 고키부리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그의 말을 따라하며 경찰들에게 몸을 부딪히기 시작한다.

어느새 뚜벅뚜벅 걸어간 천혁수가 고키부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어깨동무를 한다.

같은 말이지만 다른 언어로 외치기 시작했다.

“오사카 경시청은 진실을 밝혀라!”

경찰들과 몸을 부딪힌다 해서 폭력적인 시위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약간씩 밀려서 툭툭 부딪히는 것이지 경찰들을 넘어지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기자들은 그런 평화시위의 현장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방패를 들고, 검은색 일색의 복장을 입은 경찰들.

얼굴까지 헬멧과 복면으로 가리고 있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든 상황.

한 경찰이 일본어로 외쳤다.

“조센징 시위대가 칼을 들었다! 끄아아악!”

방패를 놓치며 팔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그 경찰의 말에 당황한 것은 양측 모두 같았다. 그렇게 몇몇 경찰이 앞으로 튀어나가며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동료를 죽이려했다!”

경찰들의 곤봉에 힘 없는 시위대 몇이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때 천혁수가 고키부리를 뿌리치고 어느새 난동을 부리는 몇명의 경찰들 앞에 도착했다.

“이놈들!”

그 노구를 이끌고 경찰 둘을 바닥에 눕힌 천혁수.

순식간에 상황은 아비규환이 되었고, 성난 시위대가 진심으로 경찰들을 향해 몸으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우리의 입을 막기 위해 더러운 술수를 쓰고 있는 경찰 놈들을 용서하지 말자!”

특히 고키부리가 시위대의 선동에 앞장서고 있었다.

얌전하게 입으로만 외치던 시위가 어느새 폭력시위로 변질될 것 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시위대의 흉흉한 눈빛에 경찰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했다.

천혁수가 경찰 들에게 맞았는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경찰을 등지고는 목청 높여 외쳤다.

“여러분! 우리가 진실을 밝히고 싶은 이 숭고한 마음을 저들의 간악한 술수로 ‘폭력시위대’가 되어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비록 피를 흘릴지라도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저 목청 놓아 외칩시다! 진실을 밝혀라!”

바쁘게 천혁수의 한국말을 통역하는 고키부리.

일본인들도 한국인들도 모두가 감동한 표정으로 피흘리며 목청 놓아 외치는 천혁수를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이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처음 피를 흘렸던 경찰도.

천혁수에게 밀쳐져 바닥에 엎어졌던 경찰도.

어느새 자취를 감춘 상태였으나, 그 누구도 그런것을 따지지 않았다.

***

윌리엄 로스차일드가 비틀 거리며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무, 무슨.”

세바스찬이 땀을 뻘뻘 흘리며 어렵사리 입을 뗐다.

“현재 저택에는 FBI가 출동한 상태로···”

“비행기, 비행기 준비해!”

“예!”

윌리엄이 손을 벌벌 떨다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으아아아아악!”

분노가 가득한 그의 외침이 로스차일드 저택 전체에 울려퍼졌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서글픈 외침에 저택 내부의 사람들은 숨죽여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주의 외출이 확실하게 되었으니 빠르게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세바스찬!”

“예, 가주!”

“내 아들, 그 누구도 건드리지 말라고 그래.”

“예! 현장보존 시키겠습니다.”

그대로 품에서 전화기를 꺼낸 윌리엄.

“나요.”

-아, 소식은 들었습니다··· 미스터 로스차일드.”

“찾아주시오.”

-후우··· 노력하겠습니다.

“보르도에서도 아직 찾지 못했다 들었습니다.”

-크음··· 백방으로 찾고 있습니다.

“과연, 정보부의 자리에 국장이 어울리는 인물인가 싶군요.”

-··· 충분히 분노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미스터 로스차일드, 말씀이 지나치시오.

“아들을 잃었습니다.”

-······

“나는 이번일과 그때 보르도에서 일이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이 드는데, 당신은 어떻습니까?”

-크음, 신빙성 있는 얘깁니다.

로스차일들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외쳤다.

“그러니까 결과를 가져와!”

예의는 없었다. 이제는 아랫사람 다루듯 고함을 치고 있었다.

-후우, 움직이고 있소.

“네 놈의 그 무거운 엉덩이가 떨어져 있기는 한 건가?”

-말씀이 지나치시오!

“3일, 3일안에 뭔가를 가져오지 않으면, 네놈의 그 무거운 엉덩이가 다시 그 국장의 의자에 앉을 일은 없을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지.”

-지, 진정하시오!

“닥쳐! 무능한 놈들.”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집어 던진 윌리엄.

“가주님, 비행기 준비되었습니다. 헬기도 도착했습니다.”

“바로가지.”

“예!”

***

뉴욕에서 강기태와 남은 일을 처리하고 바로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당장 대비 할아버지의 저택으로 달려가 루시를 품에 안고 싶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약속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워싱턴 외곽의 고급 레스토랑.

한 눈에 봐도 고가의 차들만이 즐비한 그곳의 프라이빗 룸으로 들어가니,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하하, 우리 손녀사위 왔구만.”

대비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품에 안고는 손으로 부쉬 대통령을 가리키며 말한다.

“여기 대통령님이 먼저 와 계셨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부쉬와 악수를 나누었다.

“다시 뵙습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언제봐도 멋있습니다. 미스터 천.”

골드만글러브의 삭스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이봐 천! 대통령님 계신다고 우리는 이제 보이지도 않는거야?”

나는 피식 웃으며 삭스의 양 어깨를 살짝 주무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서운하게 하세요? 그럴리가?”

“그렇지? 체이스 저 친구가 말이 없어서 그렇지, 눈은 벌써 삐쳤다고.”

와인을 들어 체이스의 잔에 와인을 따라주며 말했다.

“에이, 왜 이러실까.”

“파하하, 삭스같은 좀팽이들이나 삐치지 난 아닐세.”

삭스의 농담 한 마디로 분위기는 밝게 흘러갔다.

그들보다 늦게 도착했지만 전혀 이질감 없이 자리에 합류할 수 있었다. 아직 에피타이져만 써빙 된 상태.

비행기에서 내려 바로 이곳으로 향했으니 제법 허기진 상황이기도 했다.

“메인메뉴 아주 큰놈으로 부탁합니다.”

웨이트리스에게 주문을 하고는 다시 웃는 낯으로 고개를 돌려 룸 내부의 사람들과 건배를 하고는 와인을 몇 모금 마셨다.

“아 참, 그 얘기는 들으셨습니까?”

부쉬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아, 아직 공개 되지는 않았으니 모를 수도 있겠군요.”

삭스가 잔뜩 궁금하다는 얼굴로 묻는다.

“하하, 대통령님 이 노인네 궁금하게 만드시는 재주가 있으십니다.”

체이스도 살을 더한다.

“대통령님만 아는 정보라니, 벌써부터 돈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피식 웃고, 모두가 피식 웃었다.

이내 대통령만 안다는 그 정보가 궁금하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인 모양, 웃음이 끝나고 대통령의 입에 집중한다.

“사람 한 명이 죽었습니다.”

이어진 부쉬의 말에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로이드 로스차일들의 얘기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벌써 이틀이 지났으니, 아마도 수사기관이 막 발견한 시점일테다.

로이드 로스차일드도 나름 미국에서 중요인물로 분류될테니 대통령에게 보고가 올라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쩐지 왼쪽 볼이 따갑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대비 할아버지가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마치 ‘네가 한 일이야?’하고 묻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짐짓 모르는 척 아무렇지 않게 에피타이져를 포크로 찍어 입에 넣으며 대통령에게 집중 했다.

“로이드 로스차일드, 로스차일드의 후계자가 죽었습니다.”

삭스와 체이스가 놀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했다.

“맙소사!”

“아이고, 젊은이가 먼저 갔구만.”

나도 눈치껏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비 할아버지는 눈을 질끈 감고 ‘으음’하는 침음을 흘렸다.

부쉬가 날 바라보며 묻는다.

“아! 마침 미스터 천이 뉴욕에서 오는길 아니었습니까?”

나는 부쉬를 빤히 바라보았다.

뭘 알고 묻는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 제 15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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