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55화 (155/458)

< 제 155화. >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정호석에게 물었다.

“그 표정은 뭐죠?”

“예?”

“이번엔 어떤 멋들어진 작전명을 내놓을까 하는 그런 표정인 것 같은데요?”

“제가요? 전혀 아닙니다만.”

“아니라고요?”

“예, 그 반대였습니다.”

“예?”

“예?”

정호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 대원들끼리 약간의 내기가 있었습니다.”

“내기요?”

“예, 이번 작전명은 멋있다. 아니다. 둘중 택 일이었습니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그래서 대표님은 어느쪽입니까?”

“하하, 비밀로 하겠습니다.”

“크음···”

“그래서 작전명은 정하셨습니까?”

“흠, 잠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8월 17일 전에는 하달 해 주십시오.”

“예.”

어째서 별것도 아닌 일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욕심이 생긴다.

이번엔 반드시 멋들어진 작전명을 내놓겠다고 말이다. 예를 들자면 아덴만 여명작전.

얼마나 멋있는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가?

일단은 호석과의 자리를 벗어나 할아버지와 우희가 포옹하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남자는 뭐라고 했지?”

“나쁜 놈!”

우희와 할아버지의 대화에 피식 웃어버리고.

“자, 가자.”

우희의 등을 두들겨 먼저 게이트 안으로 밀어 넣은 뒤.

“할아버지 일본 마무리 부탁드려요?”

우희가 완전히 사라진것을 확인한 할아버지가 인자하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비릿하게 웃으며 혀를 날름거리고는 말했다.

“네 앞가림이나 잘하거라.”

퉁명스러운 대답이지만 그렇기에 더 신뢰가 가는 말이었다.

“예압!”

“로스차일드인지 지랄인지, 제대로 털어먹고 오너라.”

“그럼요, 당연하죠 쫄딱 망할 겁니다 그놈들.”

“끌끌, 그러면 더 좋고.”

여유롭게 웃으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니 기다리고 있던 루시가 얼른 내 팔을 감아온다.

“가자 우진! SKY 베이비!”

“으, 응?”

“비행시간 안에 확실히!”

“어, 어.”

어째서인지 무척 피곤한 비행이 될 것 같았다.

***

천우진이 한창 비행기 안에서 뜨거운 하루를 보내는 사이, 일본의 고키부리는 다른 의미로 뜨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촤라라락, 촤라라락.

셔터가 이렇게 눌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플래시가 흡사 번개처럼 쏟아지는 곳에서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타난 고키부리.

얼굴 곳곳에 아직도 지난날의 돌팔매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멍자국이 가득한 그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도게자.

기자들은 예상하고 있었는지 싸늘한 시선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고, 외신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커다란 표정변화 없이 묵묵히 고키부리의 입에 집중했다.

그리고 제법 거리가 있는 곳에서 고키부리를 바라보고 있던 김장원이 감탄하며 말했다.

“워따, 확실히 정치하는 넘이라 그란지 연기가 달라버린다잉.”

그의 옆에 서 있던 이재형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도게자도 대본에 있던 내용입니까?”

“잉, 인자 저그서 비장한 표정으로 소도를 뽑을 거시다.”

김장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챙!

당장 할복이라도 할 것 처럼 두눈 가득 독기를 품은 고키부리가 날이 잘 벼려진 소도를 꺼내자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자민당의 중진들과 자민당의 원로인 고키부리의 장인은 아주 흡족한 모습으로 고키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군에 맞서서 흔들리지 않겠다는 장부의 눈을 한 고키부리가 자신의 특면 땅에 칼을 내려찍으며 외쳤다.

“국민여러분 사죄드립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총리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거짓말을 일삼아 국격을 실추 시켰으니, 어찌 제가 곱게 보이시겠습니까? 욕하고, 돌을 던지고, 썩은 계란을 던진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 모든 분들께 처벌이란 없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일본의 언론인들.

“여태껏 자민당은! 거짓으로 점철된 정치를 해 왔습니다. 오래되고 노회한 정치 괴물들은 총리인 저를 컨트롤 하려 했고, 거짓된 정보들로 제 눈을 현혹시킨 바, 제가 했던 모든 발언들은 당의 뜻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뢰했던 사람들의 배신에 저 역시···”

이어지는 고키부리의 말에 터질듯 크게 뜨여진 자민당 중진들의 눈.

“저, 저런 미친!”

“저 미친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중지시켜! 중지시켜!”

발악을 해보지만 이미 이제와서 총리를 끌어내릴 순 없었다. 그랬다가는 지금 고키부리가 하는 발언이 사실처럼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고키부리의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원래부터, 그러니까 당의 시작부터 거짓이었다는 것을 저는 며칠동안 잠을 도외시 하고 공부한 결과 알 수 있었습니다. 조금만 당의 불리한 일이 생긴다면, 또 표심이 엇갈리는 순간이 온다면 언제나 그렇듯 혐한으로 밀고 나가며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언론을 탄압해 국민들께 조작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으며! 어제까지!”

버럭 소리를 지르는 고키부리.

그 기세가 시퍼렇게 빛나는 그의 두 눈과 몹시 잘 어울렸다. 흡사 일본인들이 숭상하는 사무라이와 같은 느낌.

“워따, 연기 죽여분다.”

“제법이네요, 확실히.”

김장원은 만족스럽다는 듯 히죽 입꼬리를 들어올리고, 고키부리의 발언은 계속 되었다.

“제 병실에 찾아와 자민당을 위해 할복하라 이 검을 주고 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검을 할복하는데 쓸 것이 아니라, 썩어빠진 우리 일본의 정치를 개혁하고!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한 진실이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명명백백하게 알리는데 남은 생 모든것을 쏟아내리라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기자들은 당황했고, 외신들은 미친듯 셔터를 눌렀다.

“여태껏 일본의 정권을 거머쥔 자민당은! 거짓된 정보와, 거짓된 역사를 국민들께 주입시키며 자신들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져왔으며, 극우파라는 급진적인 단체에게 이면에서 후원하며 그들의 세력을 불려왔음을 말씀드립니다!”

한 기자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거짓된 정보와 거짓된 역사란 무엇입니까?”

“우리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식민지배를 하던 한국인들을 강제로 데려와 노동력을 착취했으며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살인멸구를 자행했음을 국민들께서는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멀리서도 자민당 중진들의 고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막아! 저 미친새끼 주둥이 막아!”

그러나 기자들도, 고키부리도 그들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또한, 우리 일본군은 실제로 전장에서 사로잡거나, 한국에서 납치하듯 데려온 여인들을 부대내에 강제로 귀속시켜 성폭력을 ‘성노예’화 시켰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해당 여인들은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 각지의 여인, 혹은 소녀들이었음을 우리 국민들은 아셔야 합니다.”

“위,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시는 겁니까?”

“총리로서 진심을 다해, 피해자분들, 혹은 피해자의 유가족 분들께 사죄드립니다.”

쿵! 쿵! 쿵!

고키부리가 바닥에 머리를 세 번 찧었다.

어찌나 세게 찧었는지 그의 이마에 피가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이미! 총리의 자격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인 저는, 이제는 거짓으로 점철된 자민당에 틀을 벗어나 새롭게 태어나려 합니다 국민 여러분! 앞으로 제 남은 일생을! 일본의 왕가가! 그리고 자민당의 늙은 정치 괴물들이! 진심을 다해 국민들께 사과하고, 전 세계에 ‘전범 국가’로써! 잘못을 고백하고 사죄하도록 만드는 것에 모든것을 쏟아부을 생각입니다.”

다시 한번 칼을 바닥에 찍은 고키부리.

“그때! 모든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국민들이 알게되었을 때. 그때 다시 ‘할복’으로 국민들께 이 고키부리의 진정성을 호도할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짝짝짝짝.

홀로 멀리서 박수를 치던 김장원.

“아따, 영화배우를 했어도 헐리우드도 씹어 먹었겄다잉.”

이재형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일본인들은 영어발음이 구려서, 불가능하지 싶군요.”

“크음··· 하여간 너도 애지간히 한국인이다.”

“예?”

“쪽빠리 쉐키덜 싫어하는 마음은 매 한가지라고 이 자석아.”

“아, 뭐.”

김장원이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잉, 가자 어르신 오실때 되었다.”

“회장님 할아버지요?”

“그려, 단단히 긴장 허자 쉽게 가시는 분 아니다잉.”

“예.”

“서툰 거짓은 애초에 꺼내지를 말어, 혓바닥이 잘릴 것잉게.”

“예.”

***

록펠러 저택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들이 환하게 웃으며 우릴 맞이했다. 집 주인이 도착했는데, 손님들이 마중을 나온 이상한 상황.

“호오, 체이스와 삭스가 먼저 도착했군요?”

대비 할아버지의 말에 부드럽게 웃은 삭스가 능글맞게 말했다.

“할 일 없는 노인네들이 부지런했습니다.”

체이스는 록펠러와 악수하며 말했다.

“여행은 즐거우셨습니까? 나도 언제 한 번 한국을 제대로 즐겨봐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제대로 즐기지요.”

대비 할아버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짧은 가족소개가 이어지고, 나와 대비할아버지, 그리고 체이스와 삭스는 자연스럽게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거, 비행이 피곤했을텐데 우리가 너무 일찍 왔나 싶습니다.”

삭스의 말에 나와 대비할아버지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창 바쁠시기니 그럴 수 있죠.”

내말에 체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진의 말대로, 우리는 B등급 이상에만 모기지를 내 줬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것도 슬슬 멈추고 있고요.”

국가가 흔들려도 개인은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등급. 그게 B등급 신용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 위로는 굳이 대출을 받을 필요는 없으나, 그들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것은 저렴한 가격일 때 사기 위한 일종의 투자라고 보면 되었다.

돈 있는 사람들일수록 빚 내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었다.

빚도 있는 놈들이나 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나는 체이스와 삭스가 잘 볼 수 있도록 강기태 투자총괄이 보내온 서류를 내밀었다.

“금일부터는 BB등급에도 옵션을 만들겁니다.”

체이스와 삭스가 염려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크음.”

삭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BB등급부터는 수익률이 많이 떨어질텐데?”

맞는 말이기 때문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수익률은 떨어지지만 마이너스의 수익률은 아닐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여기까지를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알겠습니다. 우진의 자본이 30퍼센트를 육박하는데 왈가왈부 할 일이 아니겠지요.”

“사실 우리가 투자한 방식이 원래의 모기지를 유지하는 것 보다 더 큰 이익을 취할 수 있으리란 확신은 없습니다.”

삭스, 체이스, 대비할아버지까지 알고 있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받아 들였다.

“미스터 천, 그 부분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당장의 이득보다는 경쟁자 하나가 영원히 사라지는 일이기 때문에 동참하는 것이니까.”

“나도 체이스와 같지, 나는 동양의 젊은천재라는 새로운 경쟁자를 받아들였을 뿐이오.”

“하하, 이보게 삭스. 새로운 경쟁자라니? 애초에 우리 손녀사위는 나와 한 몸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그저 우리가 파트너가 되었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어떻겠나?”

대비 할아버지의 말에 삭스가 웃으며 말했다.

“파하하, 그래도 장기적으로는 로스차일드가 옆에 있는 것보다 수익이 크겠죠, 최소한 10퍼센트 이상은.”

짝짝.

나는 박수를 쳐 주목하게 만든 뒤 말했다.

“약속드립니다. 적어도 미국내 금융시장에서 우리는 항상 4등분을 하리라고. 아, 물론 같은 투자금 대비입니다.”

“미스터 천을 신뢰합니다.”

“동양의 천재가 양보를 해준다면 기꺼이.”

대비 할아버지가 시가 연기를 내뿜고는 말했다.

“그래서, D-DAY는 언제로 할 생각이지?”

“뉴욕시를 기준, 9월 9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그로부터 며칠 뒤, 세계 금융시장에 셧다운이 올테니까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세 사람.

“세계 금융시장에 셧다운이 온다라···”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믿기 힘든 일인데···”

시가연기를 연거푸 내뱉던 대비 할아버지가 말했다.

“좋아, 부쉬 대통령에게 연락하지, 디데이를 결정 했다고.”

“예, 최대한 강하고 부정적으로 얘기해달라 말씀해주세요.”

“무슨뜻인지 알겠다.”

“아마, 부쉬도 다시 이쪽을 챙길 여력이 없을 겁니다.”

체이스가 내게 물었다.

“그럼 옵션 행사는 언제 할 생각입니까?”

“모든 옵션 행사일은 9월 11일입니다. 하루 지급이 미뤄질 때 마다 수수료는 악랄하겠죠?”

“9월 11일이라···”

“그 날은 두 분 다, 이곳 워싱턴으로 오세요, 며칠전에 오셔도 좋고요, 이왕이면 로스차일드의 눈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게 좋겠죠?”

삭스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흠, 축배를 들기도 그게 좋겠습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마 똥줄이 탄 로스차일드가 두분께 돈을 빌려달라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파하하, 그 잘난 놈이 내게 돈을 빌리다니 생각만해도 설레는군요.”

“캬, 뭐라고 하고 거절해야할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모양입니다.”

즐겁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세 사람.

나는 슬쩍 고개를 숙여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쉽게도, 오늘은 이만 먼저 일어나야겠습니다. 다음 비행스케쥴이 있어서요.”

“아아, 뉴욕에 가셔야 한다고요?”

삭스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체이스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표정이 딱딱한데, 무슨 일 때문입니까?”

“별 거 아닙니다. 이미 떨어진 모가지 하나 주워오는 일이라.”

“예?”

“그럼, 편하게 즐기다가 가시길.”

나는 그대로 뒤돌아 호석이 기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 제 155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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