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51화. >
인천 SKY LINE 물류창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물류창고라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매달 인천에 내는 세금과 고용 창출로 인한 인건비가 어마어마한 곳이었다. SKY LINE의 물류창고가 문을 닫게 된다면 인천광역시가 휘청거릴 만큼 물류창고 인근에 대단한 경제효과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인천에서 SKY LINE의 임원들은 제법 대단한 힘을 휘두를 수 있었다.
물론, 우리 직원들이 함부로 갑질을 하고 다닐 사람들은 아니다. 일할 시간도 부족할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테니까.
“으아악! A004가 아니라 A040이라고 했잖아! 빨리 바꿔, 지게차! 지게차!”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물건들은 물론이고, 국내 각지로 움직여야 할 물류들. 그러므로 정말 바쁘고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대현의 정상영은 정말 이런 현장은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흡사 외국 대규모 건설 현장에 방문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일 테다. 정상영이 누군지, 심지어 SKY의 회장인 내가 누구인지 관심 따위 없는 완벽한 워커홀릭들.
나는 오히려 그들을 뿌듯하게 보며 말했다.
“보입니까? SKY의 힘이.”
정상영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부럽습니다 천회장··· 저런 직원들이라니 하··· 우리 대현의 노조들은 참.”
워낙 유명한 집단이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현의 노조는 훗날 ‘귀족 노조’라 불리며 국민들의 욕을 들어 먹는다.
“가시죠, 우린 저쪽입니다.”
“예.”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이 보이지 않는 곳, 어쩌면 이곳은 거의 버려진 것처럼 느껴지는 이상한 물류창고의 한 공간. 관계자 외 절대 출입금지 구역이었고, 해당 관계자는 오직 나와 내 지시를 받은 사람들이 출입증을 내밀어야만 입장이 가능했다.
난 얼굴이 출입증이니까 프리패스다.
“무장경비군요···”
“허가 받았습니다.”
기업에서는 보기 힘든 무장경비다.
난 당연히 국가의 허락을 받았다. 인천광역시에서 해병대를 주둔시켜주겠다고 하던걸 억지로 막아섰다. 우리 직원들이 더 뛰어나니까.
물류창고의 셔터가 자동으로 올라가고, 그 안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컨테이너 하나.
“저겁니다.”
정호석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니, 호석이 컨테이너로가 문을 열어주고 조명을 켜준다.
가지런히 정리된 현금들.
원화는 보이지 않고 달러, 파운드, 엔화등이 보였다. 그밖에 작은 규모지만 다른 나라의 화폐들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정상영이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얼맙니까?”
“2조쯤 됩니다.”
정상영이 고개를 돌려 날 물끄러미 바라본다.
“독이 든 성배군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원래 기회라는 것은 인생의 위기에 찾아오는 법이죠.”
“2조까지는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할 겁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SKY자동차가 더 잘 팔리기 시작할 테니까.”
정상영이 눈을 부릅뜨고 날 바라본다.
자존심이 몹시 상한 모양이다.
“대현이 라인을 세우고, 리콜을 하는 동안 SKY는 놀고 있겠습니까? 아마 대현은 영업이익의 감소 폭을 20~30퍼센트로 봤겠죠.”
정상역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닐겁니다. 최소한 50퍼센트는 봐야 됩니다. 대충 내가 계산해보니 대현에게 필요한 자금의 맥시멈은 1조8천억원, 그것도 1개월 내에 라인이 정상가동 한다는 가정하에.”
현 대한민국 최고의 글로벌 기업가의 말이었다.
“빨래를 해야 할테니, 최대 10퍼센트의 손실이 있겠죠? 그럼 계산상으로 필요한 금액은 딱 2조가 되겠네요. 물론 환율 변동에 따른 정확한 금액은 2조내외가 되겠지만.”
“이해했습니다. 천 회장.”
“독이 들었든, 똥이 든 된장이든, 일단은 먹어야 할 겁니다. 대현을 살려주는 이유는 시장 독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싶지 않기 때문임을 명심해주세요.”
“크음···”
오는 길에 SKY LINE이 돌아가는 것을 봤다.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물류들이 바쁘게 움직였고, 그것은 대부분 SKY전자의 제품들이었고, SKY 식품의 제품들이었다. 말 그대로 돈을 갈퀴로 쓸어 담고 있는 중이었다.
절대로 대한민국 기업 중 그 어느 곳도, 현금력으로 SKY에게 덤빌 수 없다. 가장 놀라운 것은, SKY그룹의 대부분의 계열사는 ‘부채’가 거의 없다.
약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
“천 회장의 자비··· 잘 알겠소.”
직원 둘이 작은 테이블 가져오고, 난 자연스럽게 테이블 앞에 앉았다. 정호석이 눈치껏 서률 꺼내 정상영에게 건넨다.
“차용증입니다.”
회사 대 회사로 빌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정상영이 가지고 있는 대현 지분을 담보로 내주는 개인 대출이었다.
내가 건네준 만년필로 기깔나게 차용증에 사인을 한 정상영.
“이자는 없지만, 기한은 10년입니다.”
정상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말하지만, 우리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는 아시죠?”
정상영이 ‘크음’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덤을 파서라도 떼인 돈은 받습니다. 대현의 사돈에 팔촌, 안타깝게도 장례식 부조금도 자비 없이 가져옵니다.”
“압니다 천 회장··· 잘 알아요, 그런일 없을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좋습니다. 아신다니 더는 왈가왈부 하지 않겠습니다.”
테이블에서 일어나 정상영에게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세탁기는 잘 돌리셔야 할 겁니다. 중공업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국내에서 걸릴 거는 우리 SKY쪽에서도 힘 좀 써 드리죠.”
정상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묻는다.
“그래주시겠습니까?”
“예, 국.내.에서의 추적만 힘을 써드린단 얘기입니다. 해외 추적은 나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하, 우리도 그쪽은 제법 합니다.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CIA추적도 뿌리칠 수 있어요?”
순식간에 얼굴이 굳는 정상영.
“CIA요?”
“그정도 각오는 필요할 겁니다. 독이 든 성배니까.”
“크음··· 알겠소 어째서 1할을 포기하라고 했는지 완벽하게 이해했소.”
“그럼 됐습니다. 국내는 신경 쓰지 말고, 해외만 신경 써서 세탁기를 돌리세요, 세제도 좋은 것 좀 쓰시고 돈 아끼지 말고.”
“그래야겠군요.”
“한 달 동안 언제 어느 때건 이곳 A0구역을 출입할 수 있는 통행증을 발급해드릴 겁니다. 그럼 편하게 이용하십시오. 나는 이만 공사가 다망해서.”
***
커다란 식당.
정확히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식탁이 마련된 곳.
로이드와 윌리엄은 대화 한마디 없이 아주 작은 소리도 내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며 식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것이 귀족들이 가지고 있는 식사예절이었다. 물론 대화까지 하지 말란 것은 아니었지만, 불편한 부자사이에 대화는 불필요한 법이었다.
“아버지.”
윌리엄이 한쪽 눈썹을 잠시 치켜올렸다 내리며, 와인으로 씹고 있던 고기를 넘기고 답했다.
“왜.”
“다시 뉴욕에 가 있을까 합니다. 아무래도 모기지를 전화로 진행하려니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부분들이 있어서요.”
“흐음.”
“아시겠지만 제가 담당하는 게, 신용도가 불안한 사람들이 대다수인지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비슷한 컨펌요청이 오니 참···”
윌리엄이 고개를 돌리니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없던 세바스찬이 윌리엄에게 빠르게 다가온다.
“로이가 며칠이나 근신했지?”
“오늘로서 10일을 채우셨습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민망했는지 로이드가 얼른 자신의 아비에게 말한다.
“아버지는 저장고의 일로 매우 바쁘시잖습니까? 이럴 때 저라도 모기지 쪽에 힘을 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기지에서 벌어드리는 돈이 제법 되니··· 혹시 모를 대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윌리엄의 눈썹이 또다시 꿈틑거렸다.
“혹시 모를 대책? 너는 지금 감히, 이 애비가 저장고를 턴 놈들을 못찾는다 생각하는 것이야?”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 시간을 돈으로 사는 사람들이고요.”
제법 마음에 드는 말이었을까? 윌리엄이 호오 하며 들고 있던 나이프를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기대며 와인을 홀짝인다.
“좋은 말이구나, 시간을 돈으로 사는 사람이라.”
“그러니 시간을 아껴 돈을 불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윌리엄은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우리는 개처럼 벌지 않는다. 우아하고 여유롭게 벌어야 한다. 직원을 개처럼 쓸 줄 알아야 해. 너는 아직 그것이 부족하구나.”
로이드가 어쩐일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직 부족하죠. 그렇기에 전면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저도 아버지 나이가 되었을 때, 귀족답게 품위있는 모습으로 사람을 쓰겠죠.”
피식 웃은 윌리엄이 말했다.
“오늘따라 혓바닥에 버터를 잔뜩 바르고 왔나보구나, 썩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하고.”
“비록 짧은 10일이었지만, 어떤 것이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인가를 고민했습니다.”
“됐다. 보이는 거짓말은 필요 없어.”
로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가문의 노인네들이 절 안 좋게 볼거 아닙니까? 그치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 정도 벌어다 주는 사람이야, 아직도 내가 우습나? 하고요.”
윌리엄이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그래야지, 로스차일드 가의 가주 가문이라면 그래야지!”
“저장고 일로 우리 가문에 트집을 잡고 싶은 모양인데, 어림도 없습니다. 모기지로 당겨온 자금으로 쉽게 요리할 수 있을 겁니다. 계획도 있습니다. 더 폭발적으로 늘릴 계획.”
“호오, 그래?”
로이드가 핑거 스냅을 튕기니 로이드의 비서 안톤이 빠르게 윌리엄에게 서류를 건넨다.
“10일동안 집에서 작성한 포트폴리오입니다.”
샤략샤략, 서류를 한장한장 넘기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이내 서류를 덥고는 세바스찬에게 그것을 건네는 윌리엄.
“검토하라 그래.”
“예, 가주님.”
다시 시선을 로이드에게 옮기고.
“제법 준비한 것 같으니, 오냐 뜻대로 해 보거라.”
“감사합니다. 아버지.”
“신용이 불안한 놈들에게까지 대출을 내주는데 이렇게까지 수익성이 좋다니.”
“오히려 그런 놈들에게 대출을 내주기 때문에 수익성이 좋습니다. 집값은 계속 상승하니까요. 게다가 어째서인지 미국의 거대자본들은 안전한 곳에만 대출을 내주고 있습니다. 골드만글러브, JB모간, 록펠러가 까지요.”
“그래, 서류에서 봤다. 어쩌면 그들도 차명으로 돌리고 있을지 모른다.”
“예, 모든 것을 고려한 최소치의 포트폴리오였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윌리엄.
자신이 계획했고, 전문가들이 분석했지만 정말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이었다. 과연 몇 배나 투자금을 불려 올 수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땅값이, 집값이 폭락하지 않는 이상, 이 사업은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로이드의 말에 윌리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괜한 걱정이다. 절대 그럴일은 없을거니까, 적어도 5년은 말이야.”
“예.”
“그래, 뉴욕으로는 언제 갈 생각이지?”
“내일 오전에 출발할 예정입니다.”
“쯧쯧, 너무 문란하게 놀지 말거라, 아직은 가문의 원로들의 시선이 네게 향해있으니.”
“예.”
“마저 먹지, 다 식었군.”
***
홀로 테이블에서 고민에 잠긴 정상영을 뒤로 하고, 나는 바로 갈 길을 재촉했다.
차량에 오르니 정호석이 묻는다.
“정상영 회장이 로스차일드의 눈을 피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좀 보죠. 놈들이 얼마나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나.”
“흐음···”
“대현이 열심히 세탁기를 돌렸는데도 놈들이 찾아낸다. 그럼 난 오히려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품에서 시가를 꺼내니 창문이 스륵 조금 열린다.
“현금은 놈들도 세탁기를 돌려놨을 겁니다.”
“예, 그렇겠죠.”
“그걸 몇 번 더 돌릴 겁니다. 대현은. 그런데도 찾는다? 그럼 놈들한테 아주아주 귀중하다는 뜻이겠죠?”
“아아!”
정호석이 이해한 듯싶었다.
“큰 무기를 잃었으니 힘이 빠졌을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마 내가 아는 로스차일드 가문이라면, 저장고 따위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적어도 전 삶 소문의 로스차일드라면 말이다.
가진바 자산이 6경7000조라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미친 자산은··· 음모론이길 바랄 뿐이다.
뭐 만수르의 추정자산 가치가 1경을 넘는다는 기사도 봤던 것 같으니 영 근거 없는 헛소리는 아닐테지만, 어쨌든 아직은 2021년과는 차이가 나는 2001년 아니던가.
복리의 마법에서 5년 10년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니까. 아직은 놈들도 약하겠지 싶었다. 솔직히 놈들의 거대 가문이 결속력이 대단하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돈으로 묶여있으니까.”
“예?”
“아닙니다.”
돈으로 묶여있는 사이는 필연적으로 틀어지기 마련이다. 빈부의 격차가 항상 일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만 로스차일드일 뿐이지 벌써 수백년을 내려온 가문이다. 그런데 결속력이 대단하다? 퍽 웃기는 말이다.
우리나라 집성촌만 가도 빈부의 격차가 크니까, 그리고 그만큼 그들은 갈등을 앓고 있으니까. 금발의 푸른 눈을 가졌어도 같은 사람 아니겠는가? 게다가 대한민국만큼 혈족을 가깝게 여기는 국가는 흔치않다. 그런 대한민국도 돈 때문에 혈연을 끊고, 돈 때문에 혈연사이에 혈투가 난무하는데, 서양놈들이라고 다르겠는가.
“로이드 그 새끼, 뭐하고 있습니까?”
“요즘 바깥으로 외출을 잘 하지 않습니다. 일적인 것 외에 거의 저택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놈이 그럴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재벌가 망나니와 같은 놈.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성질을 부리는 장면이 곳곳에서 포착되는 만큼 아마도 집안에 의해 억제를 당하는 모습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아아, 뭘 잘못해서 아빠한테 혼났나 보군요.”
표현이 적절했는지 정호석이 입술을 꽉 깨물며 웃음을 참는다.
“감시는 계속 철저하게 유지해주세요, 그 새끼 살려둘 생각 없으니까.”
“예, 회장님.”
“9월이 오기전에 모가지 딸겁니다.”
정호석이 슬쩍 자신의 시계에 적힌 날짜를 확인한다. 어느새 8월 중순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건 빼올때 움직였던 대원들은 한국에 남습니다. 혹시라도 모를 추적을 피해야죠.”
“예, 회장님.”
“나머지 대원들 세탁기 돌린 여권으로 미국으로 보내세요 최정예 40명쯤으로 갑시다.”
“예.”
“집결 날짜는 8월 17일. 충분하죠?”
“예, 충분합니다.”
“집결지는 뉴욕으로 하죠, 로이드 그 놈도 그곳으로 올 수 밖에 없을테니까.”
“예.”
< 제 151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