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49화 (149/458)

< 제 149화. >

나리타 공항으로 향하는 길은 제법 험난했다. 아니 모험이었다고 봐야 옳을까? 잠도 자지 않고 술을 마신 우희와 루시도 제법 취기가 올랐는지 취재진을 피해 요리조리 움직이는 우리들의 모습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잔뜩 상기된 얼굴로 차량에 오른다.

“와! 막 우리 007된 기분이었어요 언니!”

“마자마자, 나 완전 쒼나써!”

피식 웃은 나는 루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공항까지 40분 정도 걸리니까, 한숨 자고 있어.”

“웅, 우진. 안 그래도 잠이 쏟아져.”

찰리 박과 김장원 사장은 아직 일본에 남아 할 일이 있었다. 굳이 공항까지 배웅을 나오겠다고 하는 것을 술이 떡이 된 김장원 사장을 철웅이 침대에 엎어치기 하는 것으로 만류하고 나오던 참이었다.

물론, 김장원 사장이 순식간에 제압당해 엎어치기 당하는 것을 목격한 찰리 박은 ‘배웅의 배자’도 꺼내지 않았다.

5분도 되지 않아 잠이든 루시와 우희.

잠시 그녀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정호석을 바라보았다.

“고키부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정호석이 히죽 웃으며 품에서 폴라로이드 사진 몇 장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어우, 이게 뭐야.”

“현재 병원에 이송된 상태입니다.”

“확실히 상태는 안 좋아 보이네요, 바닥에 이건 뭐죠? 구토인가요?”

“예, 썩은 계란 냄새가 지독했던 모양입니다.”

사진을 넘기니 흉측한 몰골의 고키부리 총리의 얼굴이 찍혀있었다.

“계란에 맞아서 얼굴이 이렇게 됐어요? 수천 개는 맞았나?”

“푸핫, 크음. 죄송합니다. 계란이 아니라 극우파 시민단체의 돌팔매질을 당했습니다.”

“경호원들은 뭘 하고요?”

“이미 그들도 고키부리에게 돌아선 모양입니다. 그가 기절하고, 기자들이 만류하고 나서야 돌팔매질이 멈추었다고 합니다.”

“이야, 하여간 일본인들 그 특유의 이중성은 대단하네요, 잔인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네.”

“아마 고키부리는 할복하거나, 이 나라를 뜨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지 싶습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각보다 일본의 보수적인 사람들은 일본의 명예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오랜 시간 동안 극우파의 사랑을 받아온 자민당은 더욱더 그랬다.

보나 마나 언론에 나와 도게자를 하며 잘못을 시인할 테지만, 고작 그 정도로 성난 민심이 잠재워지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할아버지와 대한민국 외교부는 지금도 칼을 갈고 있을테니까, 아마 내일 날이 밝는 순간, 성명문이라는 비난의 미사일을 쏘아 올릴 터였다.

“총리는 끝난 것 같으니까, 그쪽에 마킹 나가 있던 대원들 철수시키세요.”

“예, 그렇지 않아도, 김장원 사장과 찰리 박 대표 쪽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잘하셨네요, 우리도 눈 좀 붙이죠.”

“예, 회장님.”

***

한국 공항에 도착하니 오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손녀들이 몹시도 보고 싶었는지 두 할아버지가 잠도 없이 공항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두 손녀가 각국의 언어로 자신들의 할아버지에게 안긴다. 우희와 루시의 외모가 출중해서일까? 마치 그 장면이 영화처럼 느껴졌다. 아름다은 OST와 함께 감동적인 장면처럼 말이다.

“다녀왔습니다.”

“썩을 놈.”

“치사하구나.”

손녀들을 대할 때와는 천지 차이의 반응에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러려니 하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커다란 벤에 오르자마자 아직 취기가 남아있는 두 손녀는 뻗어버리고, 나도 얼른 눈을 감았다.

“이 놈이 자는 척은.”

역시 눈치가 귀신인 우리 할아버지가 날 깨우신다.

“크음, 저도 피곤합니다.”

내 대답에 대비 할아버지가 물었다.

“창고에 있던 장물은 어찌할 생각이지?”

“적당히 팔아야죠.”

“규모가 상당한데 가능하겠더냐? 단숨에 로스차일드의 추적에 걸릴 것이다.”

“금괴나 금화는 처리하기가 조금 그렇고, 현금은 처리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

“예, 마침 돈이 간절하게 필요한 인물이 있을 테니까요.”

대비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를 바라본다.

“쑤, 자네 돈이 필요한가?”

“밑을 닦아도 될 정도로 많네만?”

“나도 그런데?”

“이 손자가, 이 손녀사위가 다 생각이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답답한지 인상을 팍 찡그리며 묻는다.

“그러니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라 이 얘기 아니더냐.”

대비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할아버지 의견에 동조한다.

“예술품들도 적당히 쓸 때가 있을 겁니다.”

대비 할아버지가 흥미를 보인다.

“호오, 로스차일드가 바로 눈치챌 게다.”

“꼭 팔 필요가 있나요? 다른 방식의 이득을 취하는 방법도 있지요.”

우리 할아버지도, 그리고 대비 할아버지도 입꼬리를 스륵 들어 올린다. 눈치가 빠른 노장답게 내 의중을 깨달은 것이다.

“이놈, 뇌물이구나.”

“로비라··· 괜찮군.”

이내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두 분.

“예술품은 그렇다 치고.”

“현금은?”

두 분이 죽이 척척 맞는다. 며칠 사이 더욱 돈독해지신 모양.

“힌트 드려요?”

“그냥 얘기하지 무슨 또 힌트냐?”

“한번을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군, 이래서 우리 손녀사위가 재미있지.”

어서 힌트를 말해보라는 눈으로 날 뚫어지게 쳐다보는 두 분.

“자동차.”

“자동차?”

“SKY자동차 말이냐?”

“지금 SKY자동차의 생산라인은 며칠 전이 되어서야 겨우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얼마 전까지는 대체품을 찾기 위해 라인이 멈추어 있지 않았더냐? 여기저기 리콜도 쇄도할 테고, 아마 출장 리콜? 그것도 진행하고 있을테고.”

“그렇다면 돈이 많이 필요하겠군, 그렇지만 그 현금들을 사용하면 로스차일드의 추적에 걸릴 가능성이 큰데?”

이번에는 정답이 어려울까? 두 분이 모두 헤매고 계셨다.

“대한민국에 자동차 생산하는 기업이 어디 SKY하나 뿐입니까?”

“하!”

“허허!”

두 분이 눈을 마주치더니 소리죽여 웃는다.

곤히 자는 손녀들을 위한 배려였다.

“허허, 이놈 아주 고약하구나.”

“정말 피도 눈물도 없구나.”

“장사치가 다 그렇죠 뭐.”

우리 할아버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정상영이가 꽤 피곤하겠어.”

“아아, 대현자동차의 오너 이름인가보군 쑤?”

“그렇지, 그놈도 말년에 팔자가 사나울 모양이구만.”

나는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다음 대선에 정씨 일가에서 출마할 거란 소문이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뭐라? 금시초문이다만?”

“다, 제가 알고 있는 정보통이 있습니다.”

전 삶의 과거, 현 삶의 미래.

확실히 대현은 ‘정권’을 노린 시기가 있었다. 허나, 대한민국의 그 어떤 재벌들도 차마 정권에까지 손을 뻗치지는 못했다. 전 삶에서는 삼현이 그나마 꼭두각시 대통령을 세웠었지만, 그마저도 3년을 버티기 힘들었었다.

“할아버지 라이벌도 제거하고, 장물도 처리하고, 빚도 지워놓고, 로스차일드의 경계심도 회피하고 얼마나 대단한 계획입니까?”

“쯧쯧, 내 라이벌이 대한민국에 감히 누가 있더냐? 맨 앞엣것은 원래 없던 것이나 다름없다.”

호오.

할아버지의 자신감이 부쩍 상승해 있었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할아버지의 지지율을 이길 수 있는 인물은 현 대한민국에 ‘나’ 하나 뿐이었으니까.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정치인은 몹시도 피곤한 자리니까.

“예술품 중, 적당히 가치가 떨어지는 것들은 미국으로 보낼까 합니다.”

대비 할아버지가 눈을 반짝인다.

“나 보고 로비스트 노릇을 해라?”

“혹시 모르니 가져가시라는 얘기입니다. 아직 로스차일드와 우리 연합의 힘은 비등하니까요.”

“쯧, 사실이라 만용을 부리기 어렵군.”

“놈들의 무기 하나를 가져왔으니, 이제는 우리가 우위에 있다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그 무기를 우리가 어떻게 쓰느냐가 되겠구나.”

“예, 운이 좋았습니다.”

대비 할아버지가 얼굴 가득 궁금함을 품고는 묻는다.

“그나저나 로스차일드의 비밀창고는 어찌 알게 되었더냐? 나는 전혀 모르던 정보인데?”

하긴, 정상적인 경로라면 결코 닿기 어려운 경로였다. 나와 할아버지가 걷는 길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그런 정보였다.

“뭐, 다, 수가 있습니다.”

“대비, 굳이 지하세계까지 알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아아, 대충 이해했네 쑤··· 흐음, 하긴 세상을 집어삼키겠다는 포부에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팀 정도는 있어야겠지.”

아마도 대충 짐작으로 눈치챘겠지만, 굳이 날 나무라지는 않는 대비 할아버지. 슬쩍 손녀들의 눈치를 살피고는 내게 말한다.

“제2의 히틀러가 되지는 말거라.”

깜짝 놀란 나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많이 가셨어요 할아버지.”

“그럼 다행이고.”

할아버지가 대비 할아버지에게 부드럽게 말한다.

“걱정하지 마시게, 이놈이 욕심에 눈이 먼 것 처럼 보여도, 제 사람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놈이니, 힘없는 사람들까지 막 대하지는 않는다네, 다 그럴 놈들만 건드리는 것이지. 또 내가 그렇게 가르쳤고, 그리고 대비 자네가 또 알려주면 될 일 아니겠는가?”

“하하, 그래 가르칠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힘써 보겠네.”

***

기지개를 켜며 발코니로 나가니 어느새 해가 한참이나 기울어 있었다. 슬쩍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피로가 쌓이긴 쌓였던 모양.

고개를 좌우로 꺾고 허리를 돌리며 정원을 내려다보니 정원의 벤치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할아버지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시가를 태우고 있는 정호석과 백철웅이 보였다.

“호석 삼촌!”

제법 큰 소리로 그를 부르니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고는 집 안으로 들어오는 호석 삼촌.

“찾으셨습니까?”

그를 호출한 이유가 ‘일’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존대로 물어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좀 쉬셨어요?”

“예, 백 대표와 교대로 3시간씩 쉬었습니다.”

“쯧, 죄송해요 피곤하실텐데.”

“하루 이틀쯤은 너끈합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다름 아니라 언론사 몇 곳에 보도자료 좀 뿌려주실래요?”

“보도자료의 내용은 어떻게 할까요?”

“SKY자동차는 생산 중지, 전량 리콜! 대현 자동차는 아무렇지 않게 생산 및 영업? 쯤의 헤드라인이면 적당할 것 같은데요?”

정호석이 단박에 내 말을 이해한 듯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우희 아가씨 일의 여파군요.”

“그렇죠? 그때 드러난 썩은 회사들이 제법 됐습니다. 대현도 분명 그들의 부품을 납품받을 테니, 당연히 문제가 있을 겁니다.”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보도자료 만들고, 금일 9시 뉴스에는 보도될 수 있게 만들겠습니다.”

“좋네요, 진행해 주세요.”

“예, 회장님.”

눈치껏 품에서 시가를 꺼내주는 호석.

“오늘은 피곤하니까 쉬겠습니다. 내일 오전에 SKY자동차 전체 회의 소집해주세요.”

“예, 회장님.”

“보고서 예쁘게 작성해서 올리라고 해 주시고요.”

“예.”

***

같은 시각 대현자동차 본사 사옥의 회장실.

“후우··· SKY자동차 라인이 돌아가기 시작했다고?”

“예, 완전한 대체품을 개발한 모양입니다.”

“쯧··· 대부분 플라스틱 제품이었으니 어렵진 않았겠지, 개발 완료 된 금형만 있었어도 가능한 일 아닌가?”

“그렇습니다.”

“우리쪽은?”

“SKY쪽과 같은 대처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후우··· 미친 짓이야 미친 짓, 도대체 천 회장은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하는지 모르겠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정상영이 재무이사에게 물었다.

“그래서 사내 유보금은 충분하고?”

“라인을 세우지 않는 가정 하에는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라인을 세우는 것보다 출장 리콜인지 뭔지 하는 게 더 이득이다?”

“비용면에서는 그렇습니다.”

“신뢰 면에서는 다르고?”

“예···”

“이미지냐 돈이냐?”

“죄송합니다. 회장님.”

“쯧쯧, 그러니까 적당히들 해 먹었어야지, 재무이사 너는 거기 연관되지 않았겠지?”

재무이사가 크게 도리질 치며 말했다.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회장님.”

“오냐, 그 말이 진실이어야 할 거야, 네놈 급이 연루되어 있으면 진짜 우리 이미지 똥칠하는 거니까.”

“예!”

“그나저나 일본의 이미지가 실추 돼서 해외 시장 쪽 반응이 좋을 거라는 전망이 있어?”

전략기획실장이 스윽, 서류를 디밀며 말한다.

“예, 회장님, 이 보고서는 국가적 이미지와 기업의 매출에 대한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이미지가 나쁜 국가의 제품은 적게 팔린다.”

“예, 그렇습니다.”

“이거··· 천혁수 장관과 천우진 회장 작품이겠지?”

“기획실 분석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미친··· 일본의 총리를 보내버렸다? 대한민국의 기업이?”

정상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라인 세우지.”

재무이사가 정상영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예? 하지만 그렇게 되면 손해가···”

“쯧쯧, 천 회장 그가 한국에 돌아왔다며? 그럼 금방이야, 천우진 그 아이의 속도를 우리가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아무리 그래도 라인이 멈추면 당장 투입해야 할 자금이 만만치 않습니다.”

“마른걸레를 쥐어짜더라도 그렇게 해야 해, 고키부리인지 지랄인지 하는 총리 놈을 보더라도 그래, 이러다가 대현이라는 이미지가 바닥까지 추락하면, 그때는 우리도 제 2의 고키부리가 되는 거야.”

“크음···”

“일본의 총리도 떨어뜨리는 가문이야 지금의 천가는, 알아서 몸을 사리자고, 우리가 독재 시절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명심해.”

회장실 내 모두가 ‘예!’하고는 대답했다.

똑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들어온 인물을 확인한 전략기획실장이 물었다.

“김 부장, 왜?”

“급히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정상영이 그에게 말한다.

“말해.”

부장이란 인물이 정상영에게 서류를 건네며 말한다.

“금일 9시 뉴스에 나올 기사입니다.”

샤락샤락 서류를 넘기던 정상영이 팍 인상을 찌푸리며, 해당 서류를 전략기획실장에게 건넨다.

“이봐, 우리는 천우진 그의 젊음을 따라갈 수가 없다니까?”

전략기획실장이 ‘후우’하고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쯧, 라인 세우겠습니다.”

“그래, 은행장들과 약속 잡아. 기획실은 바로 대처팀 꾸리고.”

“예, 회장님.”

전략기획실장이 두고 간 서류를 슬쩍 가져와 읽어보는 재무이사.

“하!”

그는 존경스럽다는 표정으로 정상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독재도 버텨냈던 대현이다. 이정도에 흔들릴쏘냐.”

정상영은 홀로 읊조릴 뿐이었다.

< 제 14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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