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48화 (148/458)

< 제 148화. >

2시가 안 된 시각.

“으따 회장님 저 왔습니다~!”

“아, 김사장님 고생하셨어요.”

“흐흐, 아닙니다. 이야 여기 룸 죽이네요잉.”

“여기가 장어가 기가 막힌다고 해서 와봤습니다.”

“예, 확실히 프라이빗룸이 고급지고 좋아 보입니다.”

우희가 정겨운 김장원의 사투리에 ‘풉’하고는 입을 가리고 웃는다.

“아따, 아가씨까정 저를 기다려주시고요, 몸 둘 바를 모르겄네요 먼저 식사들 자고 계시지 그라셨습니까?”

“오래 먹을건데 천천히 먹으면 되죠~”

“캬, 마음씨도 곱습니다 아가씨.”

“호호, 얼른 앉으세요.”

“예~”

인당 70만원짜리 고급 코스요리를 주문하고 한바탕 낮술 판이 벌어졌다. 아직 루시는 김장원의 긴 한국말 사투리를 알아듣기 힘드니 나는 옆에서 주야장천 동시통역을 해주었다.

모두가 김장원의 현란한 입담에 빠져있을 때.

“회장님 2시가 조금 지났습니다.”

“아, 그래요? 자자, 잠깐 조용! 우리 바퀴벌레 총리 놈이 뭐라고 떠드나 잠깐만 시청합시다.”

“예, 회장님.”

“알겠어 오빠.”

커다란 브라운관 TV가 켜지고, 고키부리 총리가 그사이 몇 살은 더 늙어 보이는 쇠약한 얼굴을 하고는 꾸벅 고개를 숙여 카메라에 인사한다.

-국민 여러분, 현 내각이 국민 여러분께 신뢰를 잃어버릴 발언이 되어 우선 사죄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더욱 신뢰할 수 있는 내각을 만들어가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또한, 어제의 아사쿠사 신사의 화재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 절차가 진행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잠시 카메라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잇는다.

-일명 ‘총리 거짓말 사건’이 되어버린 어제의 일은 모두 한국의 일방적인 주장임을 말씀드립니다. 오사카 경시청에서 1인 시위하던 여성은 현재 조사 중에 있으나, 그분의 주장처럼 오사카 초교 난입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이 아니라는 주장에는 신빙성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현재 오사카 경시청은 범인이 ‘한국인’이라고 자백했던 부분을 다시 조사 중에 있습니다.

김장원이 피식 웃는다.

“아따, 똑같은 말 도돌이 표네요잉. 얼굴도 앵간이 두꺼버야지 저것은 철갑탄도 못 뚫겄습니다. 장갑차 저리가라 해부네요잉.”

프라이빗룸 내의 모든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지금 총리의 주장은 억지였다.

-또한,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하나의 국가가 한 명의 기업인을 상대로 공권력을 동원해 감시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임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 일본은 굳이 SKY의 경영자에게 공권력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약하지 않······

리모콘을 들고 있는 호석을 쳐다보며 말했다.

“더 볼 것도 없네요. 시간 낭비입니다. 그냥 뻔뻔하게 나가기로 한 것 같으니, 우리도 준비된 결정타 터트리면 그만입니다.”

“예, 회장님.”

정호석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아마도 전화로 지시하기 위함일 테다.

“잉, 제가 어디까지 야그 했었죠 아가씨?”

“일본에 처음 오셨을 때요! 공항에 막 도착했다고 하셨어요.”

“아따 우리 아가씨는 기억력도 좋네요, 여튼 그랴서 공항에 딱 도착을 해부렀는디 워메워메···”

***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동영상 플랫폼은 누가 뭐라 해도 SKY SOFT에서 서비스하는 마이튜브였다. 마이튜브는 특이하게 국가별 서버가 있었고, 글로벌 서버라고 해서 세계 각국의 이용자가 들락거리기 편한 서버가 또 따로 있었다.

정보화 시대라는 말에 걸맞게 일일 이용자 수가 상상을 초월하는 그곳은 이제는 10대부터 30대까지 골수 이용자를 양산하는 중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려는 40대들도 요즘은 부쩍 자주 마이튜브를 이용하고는 했다.

아사이찌방 방송국에서 일하는 야마다도 그런 40대였다.

“보자, 뭐 볼 거 없나?”

그의 쉬는 시간을 달래주는 새로운 컨텐츠는 뭐가 있을까 마이튜브 재팬을 훑어보다 볼 게 없는지 마이튜브 글로벌에 접속하는 그.

“음?”

가파르게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동영상.

그런데 동영상 메인화면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현재 일본 내 논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인물, 바로 SKY그룹의 경영자 천우진 회장이었다.

카페로 보이는 곳에서 앉아있는 일본인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능숙한 영어로 말하는 천우진 회장.

-눈깔 봐라 어떻게? 뽑아줄까?

그에게 욕을 들은 사내와 여인의 당황한 표정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너무 노골적으로 감시하지 마라, 프라이버시는 존중해 줘야지, 안 그래? 다음엔 기절 정도로 안 끝나 명심해.

여자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크게 외친다.

-하, 하잇!

사내가 놀란 표정으로 여인을 말린다.

-아키라!

그제야 여자가 당황한 듯 입을 가린다.

-아앗!

천우진은 피식 웃으며 말을 잇는다.

-고키부리한테 전해, 그냥 쇼핑이나 좀 하고 관광이나 하다가 떠날 거니까 오버하지 말라고.

그렇게 천우진이 카페를 벗어나고, 화면이 바뀌며 조금 전 천우진과 다툼이 있던 남녀가 한 건물로 들어간다. 그곳은 다름 아닌 일본의 내각정보조사실 건물이었다.

“맙소사!”

동영상을 보던 야마다가 매우 놀랐다.

언론사 짬밥을 하루이틀 먹은게 아닌 그는, 남녀가 들어간 곳이 내각정보조사실이란 걸 단숨에 알아챌 수 있었다.

이로써 몇 시간 전, 한국의 공격에 반박하던 고키부리 총리가 또다시 거짓말을 했음이 만천하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재빨리 메모장을 열고 해당 동영상의 링크를 복사해 인쇄하고는 보도국 국장실로 전력 질주해 달려갔다.

쾅!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을 읽고 있던 보도국장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외쳤다.

“뭐야? 야마다, 미쳤어?”

“국장님 특종! 특종입니다!”

“무슨 특종?”

“고키부리 총리가 또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자민당이 미쳤단 말입니다!”

부장이 후다닥 읽고 있던 책을 내팽개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게 사실이야?”

“컴퓨터, 빨리 컴퓨터요!”

“그, 그래.”

야마다는 엉덩이로 국장을 밀치고, 국장의 자리에 앉아 구골에서 서비스하는 인터넷 브라우저를 실행하고는 뽑아온 서류에 적힌 주소를 입력한다.

동영상이 뜨고, 바로 재생을 누르는 그.

“맙소사! 이 건물!”

국장과 눈을 마주친 야마다.

“어쩐지 어제부터 내각에서 우리 입을 막으려고 난리더라니··· 어떻게 합니까 국장님, 이거 오늘 저녁 뉴스에 보도해요? 말아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무는 보도국장.

“그거 줘봐.”

얼른 국장에게 주소를 적어온 종이를 건넨다.

“후아··· 사장님 보고 올테니까 일단 스탠바이 시켜.”

“하잇!”

“자민당이 강을 건넌 거야.”

“예! 신뢰를 잃은 정치인은 끝입니다. 벌써 두 번이나 거짓말을 한 게 밝혀진다면··· 아마 다음 총리 자리에는 장기 집권했던 자민당의 인물은 없을 겁니다.”

국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바삐 사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

다들 술이 아쉬웠는지 펜트하우스에 도착해서도 술판이 거나하게 벌어졌다. 김장원이 바라는 술자리는 이런 게 아니었을 테지만, 우희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니 신나서 떠들어 재낀다.

철웅에게 루시에게 통역해주기를 부탁하고 잠시 호석과 함께 발코니로 나갔다.

“읏차, 제법 취하는데요?”

“하하, 저도 그렇습니다.”

“김장원 사장은 말 술이죠?”

“예.”

“하여간 캐릭터 참 독특해요.”

“그래도 그 덕분에 분위기가 즐겁지 않습니까? 찰리 박 대표도 곧잘 웃고 있고요.”

“그건 그렇죠.”

아주 짧은 30분 짜리 미니시가를 입에 물고는 물었다.

“동영상은 풀렸나요?”

“예, 화질 좋게 나왔으니 회장님께서 의도하신 바는 충분할 겁니다.”

“그럼 됐습니다. 괜히 논란의 중심에 서기전에, 새벽 비행기로 출국하죠.”

“이미 심사는 끝났습니다. 오전 4시 비행기입니다.”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오후 8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점심부터 시작된 술자리가 저녁을 먹고 나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우희와 루시는 가볍게 츄하이 서너 잔을 마셨을 뿐이고 호석과 철웅도 알아서 자제했다.

김장원 사장과 찰리 박은 제법 일정이 고됐는지 과음하고 있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진동에 전화를 받으니 할아버지였다.

-푸하하하, 바퀴벌레 같은 총리 놈 낯짝이 어떨까 궁금하구나.

“아, 뉴스에 풀렸나 보네요?”

-그래, 아사쿠사가 불탄 것과 감히 내 손주에게 감시를 붙인 것까지, 그놈이 하는 얘기 전부가 거짓이 되었으니 죽은 것과 다름없다 할 수 있겠지.

“그래서 그렇게 기분이 좋으세요?”

-그 두꺼운 낯짝이 썩어들어 갔을 것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는구나. 그나저나, 새벽에 들어온다고?

“예, 오전 4시 비행이에요.”

-서두르는구나.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붙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흠, 벌써 네 놈이 머무르는 호텔에 인산인해를 쳤을텐데?

“그러니 되도록 빨리 움직여야죠. 한국은 어때요? 할아버지 지지도 많이 올랐겠는데요? 일본 총리한테 한 방 먹인 정치인이잖습니까?”

-크흠, 뭐 그렇지.

이상하게 칭찬도 아니었는데 부끄러워하신다.

-요즘 점점, 내게 줄을 대는 놈들이 늘어나는구나. 확실히 차기 대권은 내 자리가 맞는 것 같아.

“당연하죠, 그러려고 헌법도 바꿨는데.”

-쯧, 말년에 팔자가 사납구나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 자리가 아니더냐?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대단한 대통령이 되실 겁니다. 걱정하지마세요.”

-돈이나 푸고 가는 호구 같은 대통령이 되겠지.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절대 할아버지가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아, 대비가 네놈도, 루시도, 그리고 우리 우희도 보고 싶다고 성화구나, 얼른 오거라. 벌써 며칠째 한국에 와서도 재미가 없다고 난리야.

“하하, 예 알겠습니다.”

***

TV를 보던 고키부리가 리모컨을 던졌다.

브라운관 TV 정중앙에 리모컨이 닿았지만, 튼튼한 놈은 깨지지도 않고, 계속 고키부리가 듣기 싫은 방송을 송출한다. 전원을 껐어야 하는데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분노가 올라왔다.

-그러니까 고키부리 총리의 지난 발언과 이번 발언까지 모두 거짓이라는 얘기죠?

-예, 동영상에 나왔던 건물은 실제 내각정보조사실 건물이 맞고, 동영상에 등장했던 여성을 취재진이 추적한 끝에 알아낸 바로는 주변에서 그녀의 직업이 ‘공무원’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아아,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일본의 망신이에요!

“유스케! 유스케!”

비명을 지르듯 소리를 쳤지만, 바깥에서 그 누구도 응답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고키부리는 결국 골프채를 꺼내 브라운관 TV의 중앙을 세게 후려쳤다.

퍽! 퍽!

TV를 부숴버리고 씩씩거리던 그는, TV파편에 맞아 피가 흐르는 손목과 손등을 대충 휴지로 닦아내고는 총리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아무리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8시라 해도, 그가 퇴근하지 않은 이상 그를 수행할 인원은 존재해야 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걸 잃은 그의 곁을 지켜줄 존재는 일본 내에는 없었다.

“어떻게 올라온 자린데···”

힐끗 창밖을 내려다보니 취재진으로 인산인해였다. 차마 총리관저를 벗어날 수 없었던 그는 비척비척 걸음을 옮겨 찬장에서 위스키와 크리스탈 잔을 꺼내 다시 총리실로 돌아왔다.

쪼르르륵.

크리스탈 잔 가득 위스키를 따라 꿀꺽꿀꺽 비워낸 그가 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뚜~ 뚜~

종료 버튼을 누르고, 통화버튼을 누르기를 수차례.

그의 전화를 받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소파 상석에서 자리를 옮겨 창밖이 보이는 자리에 앉은 그가 홀로 읊조렸다.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같던 놈들이··· 존나게 고독하구만.”

연거푸 술잔을 비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비틀 거리는 꼬라지가 누가 보아도 만취한 취객이었다.

계단을 내려가고, 끝내 관저를 벗어나는 그.

“고키부리 총리다!”

“이번에도 혐일 감정을 부추기려는 한국의 계략입니까?”

“이번에도 사실무근의 뉴스입니까?”

“한 말씀 해주십시오!”

고키부리는 몸으로 부딪혀오는 취재진을 밀치며 성을 냈다.

“비켜라! 나는 대일본제국의 총리이니라!”

그의 외침에 취재진이 경악의 표정을 짓는다.

퍽, 퍽.

어디선가 날아온 달걀이 총리의 얼굴과 몸뚱이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썩은 달걀인지 고약한 냄새에 취재진이 총리와 거리를 벌린다.

“우웨에엑.”

술 때문인지 냄새 때문인지 총리가 바닥에 주저앉아 속을 게워냈다.

“너 같은 놈 때문에 우리 대일본제국이 망신당했다! 죽어라! 할복해! 할복!”

““할복! 할복! 할복!””

그의 편이었던 극우파 단체.

그들은 어느새 고키부리에게 싸늘하게 돌아서 있었다.

“이 천한 놈들이! 내가 누군 줄 알고!”

“죽어! 죽어!”

어디선가 날아온 돌멩이를 시작으로, 총리에게 무차별적인 돌팔매질이 시작되었으나, 총리관저의 경비들 그 누구도 섣불리 성난 군중을 말릴 순 없었다.

< 제 148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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