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46화. >
오전 10시부터 천혁수 복지부 장관의 기자회견 내용에 대한 공식적인 비판과 공격을 퍼부은 고키부리 총리.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점심을 먹고 있는 그에게는 좋지 못한 소식이 뉴스를 통해 일본 전역은 물론이고, 전 세계로 동시 송출되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은 조센징이 아닙니다! 우리 아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어째서 경시청은 내 아들 미야자키 준이치를 조센징으로 만드려는 것입니까!
오사카 경시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노파.
그는 오사카 초교 난입 사건의 범인 미야자키 준이치의 어머니였다.
바로 몇 시간전 공식적으로 오사카 경시청의 조사결과가 일본인 국적 한국인이라고 못 박았던 현 일본 내각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뉴스였다.
-놔라! 놔라 이놈들! 내게 무슨 잘못을 했어!
크게 노호성을 터뜨리는 노파.
그리고 어떻게든 그녀의 입을 막으려는 오사카 경찰들. 모든 장면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생중계 되었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호화롭게 장어덮밥을 씹고 있던 고키부리.
“총리님 큰일났습니다!”
유스케 보자관의 목소리에 고키부리가 젓가락을 던져버렸다.
“또, 뭐! 도대체 왜 이러는데!”
“그, 죄송합니다만 지금 바로 뉴스를 보셔야겠습니다.”
“뭐야, 뭐 데자뷰야?”
어쩐지 어제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입맛이 싹 가신 고키부리가 스윽 장어덮밥을 밀고는 유스케에게 고갯짓으로 TV를 켜라 명한다.
유스케는 재빨리 TV를 켜고, 해당 채널로 돌린다.
“푸우우우.”
물로 목을 축이던 고키부리가 사례가 들렸는지 기침을 하며 물컵을 TV로 던진다. 단단한 브라운관 TV는 유리컵을 무난하게 방어해냈다.
“이런 미친, 유스케! 분명 저 노인네 입막음 제대로 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 그것이 분명 경시청에서 사람을 보냈을때는 절대로 함구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근데 왜 저래? 왜 저려냐고!”
“그, 그것은 저도 잘···”
“네 놈이 하는게 도대체 뭐야! 이 쓰레기 같은 놈.”
“······”
“제기랄 얼굴을 들 수가 없군.”
“총리님··· 현재 이 뉴스는 전세계에서 송출되고 있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고키부리가 유스케의 뺨을 갈겼다.
“넌 뭐했어! 네가 중간에서 끊었어야지! 경찰들이 국민을 끌고가? 이런 머저리같은 것들.”
유스케는 뺨을 쓰다듬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우선 대처방안부터 만들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각부처 다 불러들여! 오사카 경시청장 들어오라그래.”
“예!”
***
루시, 우희와 함께 아사쿠사를 찾았다. 도쿄 최대의 신사 답게 관광객으로 꽉 찬 거리,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파는 거리, 길거리 음식.
점심의 활기, 초여름의 활기를 그대로 만끽할 수 있는 이 거리야 말로 제대로 된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외국이 주는 장점은 역시,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 저마다의 다른 국적으로 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나를 아는체 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일이었다.
“이 물은 뭐야?”
신사 앞, 졸졸졸 흐르는 물.
신사에 입장 전에 경건한 마음으로 손을 씻으라는 의미로 준비된 물이었다.
“손 씻고 들어가라고, 경건하게.”
“아아.”
“굳이 안에는 들어가지 말자. 종교적인 의미도 그렇고, 우리 정서랑은 좀 별로야.”
루시와 우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쪽에 타꼬야끼 맛집이 있는데, 타꼬야끼나 먹자.”
“응!”
“좋아!”
특제 반죽속에 큰 덩어리로 썰린 문어 한조각.
별거 아닌 시판 데리야끼 소스에 가쓰오부시 가루를 부려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거기에 거리에서 파는 생맥주 한잔.
“캬, 좋다.”
“진짜 여행하는 것 같아.”
루시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 온다.
우희는 못 본척 멀리 시선을 던져 신사의 전경을 구경한다.
“많이 봐 둬 루시, 그리고 우희야.”
루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야? 누가 들으면 아사쿠사 신사가 없어지기라도 할 것 같아.”
우희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으로는 볼 수 없을테니 많이 봐두라는 내 말의 뉘앙스가 그녀들에게 전달된 모양이다.
“응, 앞으로는 볼 수 없을거야.”
“어째서?”
우희의 질문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본에 망조가 들었거든.”
루시도 우희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때마침 내가 기다리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이지 않던 호석이 어느샌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회장님.”
“네.”
“미야자키 준이치로의 모친이 뉴스에 등장했습니다.”
“해외 언론은요?”
“약간의 딜레이는 있었지만, 거의 동시 송출이었습니다.”
처음 우리에게 돈을 먹은 언론이 돈맛과 함께 시청률 맛을 짭짤하게 봤는지 제법 일 처리가 마음에 들었다.
“할아버지께 잽은 쳤으니, 스트레이트 부탁드린다고 전해주세요.”
“예.”
그 사이 루시가 도끼눈을 뜨고 날 바라본다.
“또 일하는거야 우진?”
“아냐, 잠깐 대화하고 끝났잖아? 오늘은 일 안 하고 루시랑 우희랑 시간 보낼거라니까?”
“약속한거다?”
“그럼, 누구랑 한 약속인데 지켜야지. 대신, 루시도 약속지켜? 9월은 나와 함께 한다고.”
“알겠다니까, 한달 정도 쉬는거야 뭐··· 잠을 줄이면 커버할 수 있을거야.”
루시가 재학중인 학교는 아쉽게도 뉴욕에 있었다.
곧 그곳에 커더란 재앙이 들이닥칠테니, 나는 적당한 핑계로 그녀를 그곳에서 데려와야 했다.
학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루시. 그러니 그런 그녀를 꼬셔오기 위해서는 제법 공을 들여야 했다. 이 세상 누군들, 내가 경고한다고 쉽게 믿지 못할테니까.
물론 루시에게 진심을 다해 걱정하는 마음을 보여준다면 믿어줄지 모른다. 아니, 확실하게 날 믿어줄테다. 나의 반려니까.
허나, 그럴 순 없었다. 내게서 어떤 괴리감을 느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 굳이 어려운 방법으로 그녀를 설득하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그녀와 함께하고 싶은 내 진심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 그녀는 한 달의 학업을 미룰 정도로 날 사랑해주니까.
“자~ 다음은 젊음의 거리 시부야로 가볼까?”
“콜!”
“좋아!”
“가즈앗!”
“가즈앗!”
“고고씽!”
***
천혁수 복지부 장관이 북한산 유명 한식당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 제법 지났기 때문인지 식당의 주차장은 한산했다. 주차되어 있는 다른 차의 번호판을 확인하고는 보좌관에게 묻는 그.
“외교부장관은 먼저 도착했나보군.”
“예, 장관님 도착했다는 언질을 3분전에 받았습니다.”
슬쩍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천혁수.
약속시간은 오후 3시였으나, 현재 시각은 오후 2시 40분. 약속보다 일찍 도착하기를 좋아하는 천혁수지만, 외교부장관은 그보다 더 일찍 도착해 있었다.
단적으로 현재 외교부장관 위에 천혁수가 올라 서 있다는 뜻과 다름 없었다.
한 부처의 장관이란 자리가 한가할리 없었다. 모두가 바쁜 스케쥴로 움직이고 ‘시간’에 대해서 칼같이 분배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약 30분 먼저 도착했다는 것은 ‘예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확실히 외교부장관이라는 부처의 어울리게, 시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천혁수는 발걸음을 옮겼다.
한 식당의 프라이빗 룸에 들어가니 자리에 앉아있던 외교부장관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환하게 웃는다.
“아이고~ 장관님, 바쁘신데 이런 자리를 다 만들어주시고 하하하.”
“아닙니다. 일본이 정식으로 항의 했으니 우리도 받아쳐야 함이 옳지 않습니까?”
외교부장관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천혁수를 따라 맞은편에 앉는다.
“오시는길에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예, 미야자키 준이치로가 재일교포가 아니라는 소식 말씀하시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일본이 비열한 술수를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의 국격을 무너뜨리고 있어요, 이런 시국에 우리가 별다른 반격 없이 가만히 있다면, 무시를 당하는 꼴입니다.”
“통감하고 있습니다.”
“장관님과 내가 힘을 합치는 것이 어떻습니까? 적극적으로 외교부의 뜻에 동참하겠습니다. 지금 다른 의원들이나 장관들도 같은 생각일겁니다. 일본과의 외교분쟁은 분명 우리나라에 좋은일은 아닐테지만, 이렇게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훨씬 더 악영향을 끼칠텝니다. 앞으로도 우리 한국을 무시할테니까요.”
외교부 장관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고키부리 총리가 왜 그렇게 멍청한 짓거리를 저질렀는지··· 쯧.”
“이미 우리 손주놈에게 사람까지 붙이는 놈입니다. 갈데까지 갔다고 봐야합니다. 제정신이 아니에요.”
“쯧쯧, 일본은 최악의 총리를 맞이했습니다.”
“맞습니다.”
식전차로 나온 메밀차를 한모금씩 마시고, 외교부장관은 말을 이었다.
“내년 대선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후보자들이 많이 출마했으면 좋겠습니다.”
천혁수가 잠시 외교부 장관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야지요, 이제 우리나라도 단임제가 아닌 중임제가 되었잖습니까?”
“하하, 맞습니다. 앞으로 수년을 책임질 나라의 기둥을 뽑을 자리니 좋은 분들이 많이 나오셔야지요, 제 앞에 천혁수 장관님 같은 분들이 말입니다.”
벌써부터 줄을 타고 있는 외교부장관.
천혁수는 눈 앞에 외교부장관이 아직 정치계에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 국민들의 표심을 돌려야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외교부 입장표명은 가능한 빠르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들의 분노는 끝을 모르고 상승할텝니다.”
“그렇지요··· 이 자리가 끝나면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천혁수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출입문 쪽으로 제법 크게 소리쳤다.
“그거 가져와!”
드르륵, 문이 열리고 보좌관이 갈색 서류봉투를 외교부 장관에게 전달한다.
“혹, 공무가 바빠 준비가 덜 되었을 것 같아, 우리 쪽에 유능한 인재들이 먼저 준비하였습니다.”
외교부장관은 서류봉투를 개봉하고는 서류의 내용을 천천히 읽어갔다. 서류는 다름아닌 입장표명문이었다.
“하하, 복지부에 좋은 인재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마치 미야자키인가 하는 일본인의 어미가 이런일을 벌일 것이라 미리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일처리가 아주 빠르군요.”
천혁수가 피식 웃었다.
A부터 Z까지 모두 천혁수와 천우진의 손에 일본도 한국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눈치 챌 사람은 있을까 싶기 때문이었다.
“어제 기자회견 이후부터 준비했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같은 시간을 준비했다면 외교부에서도 일처리가 깔끔했겠지요.”
외교부 장관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서류를 잘 갈무리했다.
“오늘 퇴근전에 기자들 모아야겠습니다. 4시 30분정도면 적당할 것 같군요.”
“좋습니다. 마침 식사가 들어오니 시장하실텐데 얼른 드시죠.”
“예, 장관님.”
***
엎친데 덮.
한국에는 그런 말이 있다.
그리고 지금 그 상황에 딱 어울리는 인물은 일본의 고키부리 총리였다.
미야자키 준이치로의 어미가 경찰들에게 끌려가는 영상을 이후로, 연신 해외 언론은 물론이고 일본 자국의 언론도 바쁘게 내각을 조명했다.
그런 와중, 대한민국 외교부의 입장표명 발표.
-일본은 지금 대한민국을 명백하게 무시하는 처사이면 국제적인 비난의 화살을 우리나라로 돌리며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발언에 신중함, 그리고 나라의 신뢰를 대변할 총리라는 자리에서 가히 믿을 수 없는 행위를 했음을 인정하고, SKY그룹 천우진 회장에게 일본의 감시의 눈이 붙었다는 소문 역시 명명백백하게 해명 할 것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이미! 일본은 신뢰를 잃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을 우리 대한민국은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을 각력하게 주장하는 바입니다.
여태껏 상대적 약자의 위치에서 항상 일본에게 설설 기던 대한민국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강경한 발언에 다시 한 번 해외 언론들은 불타 올랐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이 어쩌려고 그러나 싶었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대한민국의 입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오후 6시가 넘은 시각.
“아직 별 말이 없죠?”
잠시 시가를 태우기위해 바깥으로 나온 나의 질문에 호석이 라이터를 꺼내며 말했다.
“예, 회장님. 아직 일본 내각에서는 별다른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오늘 밤이 좋겠네요.”
“예, 이재형에게 작전 하달하겠습니다.”
“매캐한 연기가 총리실 까지 닿게 하라고 전하세요, 연기를 마시고 바퀴벌레 놈 고통속에 죽어가라고.”
< 제 14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