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44화 (144/458)

< 제 144화. >

일본 총리 관저.

총리실 문 앞에 비서관 유스케가 다리를 떨며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다.

“제기랄···”

분명 보고를 해야 할 사항이지만 보고 뒤 몰아닥칠 후폭풍이 걱정되는 그였다.

철컥.

문 앞을 서성이던 유스케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자리에 굳었다.

“음? 유스케군, 보고할 게 있었나?”

“아, 예.”

슬쩍 시계를 보는 고키부리.

“벌써 3시 30분이 지났어, 이제 와서 보고하면 어떻게?”

“아, 그것이···”

“쯧, 퇴근 시간 1시간 전에는 업무 중지하라니까 알아서 처리해야 할 거 아냐? 그따위로밖에 못해?”

“죄, 죄송합니다. 이것이 꼭 보고드려야 할 내용인지라.”

“에잇! 약속 시간에 늦겠군, 쯧.”

애초부터 약속 시간을 퇴근 시간 이후로 잡았으면 될 일이었다. 총리의 업무종료 시각은 공식적으로는 오후 4시 30분이었으니까.

“들어와.”

결국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총리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은 고키부리.

“시간 없으니까 빨리하자고.”

유스케는 가뜩이나 총리가 싫어할 보고를 싫어하는 상황 속에 해야 한다니 앞이 깜깜한 기분이었다.

“그, 천우진 회장과 정보부 요원이 접촉했습니다.”

눈을 번뜩이는 고키부리.

잔뜩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묻는다.

“그래, 그놈은 뭘 하고 있지? 앞으로 계획은?”

“그것이··· 정보부의 감시를 들켰다는 보고입니다.”

이어진 보고에 고키부리의 눈에 걸려있던 기대는 사라지고 일순간 분노로 뒤덮인 도끼눈을 하고는 유스케에게 말한다.

“정보부가 일반인한테 감시를 걸려?”

“······”

“그래서 천우진이 뭐라고 했는데?”

“쇼핑과 관광을 하고 조용히 돌아갈 생각이니 귀찮게 하지 말라고···”

쾅!

고키부리가 던진 재떨이가 유스케의 뺨을 스치며 출입구에 부딪혔다.

“그 놈들이 대일본제국의 정보부 요원들이 맞아? 어떻게 그렇게 허술할 수 있어!”

“보고에는, 천우진 회장이 두명의 요원을 제압했다고 전해왔습니다.”

“미친!”

“정확히는 천우진 회장의 경호원이 제압했습니다.”

“그거나 그거나! 제기랄 제대로 망신살 뻗쳤군··· 한국 언론은 아직 이 부분은 모르고?”

“그렇습니다.”

고키부리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한국 언론에서 이 내용 터트리면 바로 외교부에서 반격하라고 준비해, 정보부 활동은 외교적으로 아주 민감한 사항인 거 몰라? 제기랄 끝까지 잡아뗐어야지!”

“대답도 듣지 않고 천우진 회장이 자리를 벗어났다고···”

“그래서 나머지 요원들은 어떻게 했어?”

“일단은 물러나라고 얘기했습니다. 눈치챈 이상, 뭔가 시도 할리도 없을 테니까요.”

“그건 잘했군··· 그나저나 천우진의 특별한 움직임은 확실히 없었나?”

“예, 카페에 갔다가 식당으로 향하는 것을 끝으로 더는 요원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고키부리가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 홀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은 빼, 요원들 더 접근시키지 마, 괜히 언론 시끄럽게 만들어서 좋을 거 없으니까··· 우리 내각이 현재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걸 명심하라고. 유스케군도 각별히 행동에 주의하고!”

“하이!”

“나가 봐! 제기랄 오늘은 끝까지 달려야겠군.”

유스케는 종종걸음으로 총리실을 벗어나며 생각했다. 저 망할 총리 놈은 제 놈이나 행동에 조심하지, 오늘도 기분이 나쁘다는 핑계로 유흥가를 기웃거리겠구나 하며,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

오사카 외곽의 작은 마을.

김장원이 커다란 벤에서 내리며 허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스트레칭을 했다.

“아따 되다잉. 여가 맞냐?”

“예, 백 대표님이 알려주신 주소는 여기가 맞습니다.”

“서류 좀 보자잉.”

김장원이 대원이 건네준 서류를 천천히 읽었다.

“어디보자 잉, 저짝인갑다.”

오래된 가옥 하나를 가리키는 그. 대원도 고개를 주억거린다.

“예, 확실히 주소지가 맞네요.”

“자~ 드가자.”

김장원과 대원이 천천히 그곳으로 가 초인종을 눌렀다. 곧 문이 열리고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노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묻는다.

“누구세요?”

김장원은 의외로 능숙한 일본어로 말했다.

“처음뵙겠습니다. 우리는 다름이 아니라 진실을 알리는 사람들이라는 작은 단체에서 왔습니다.”

“진실을 알리는 사람들?”

“그렇습니다. 현 고키부리 내각에서 아드님의 초교 난입 사건을 은폐하려는 기미가 보여서요.”

노파가 팍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들이라니? 나는 아들이 없어!”

막 문을 닫으려는 노파에게 김장원이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린 채 말했다.

“미야자키 준이치로, 32세. 당신 아들이 아닙니까?”

“글쎄, 난 자식이 없대도!”

“정부에서 무엇을 약속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와 함께 인터뷰 및 기자회견, 그리고 아드님의 공판에 참석해주신다면 1억엔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노파가 흠칫 몸을 떨었다.

“1, 1억엔?”

“예, 정부가 도대체 당신에게 약속한 것이 무엇입니까? 함구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며 윽박이나 질렀겠죠, 그게 현 고키부리 내각이고, 자민당입니다. 나라가 도대체 당신께, 그리고 당신의 아들에게 무엇을 해주었습니까?”

“으음···”

“당신의 아들도 나라가 제대로 국정 수행을 하지 못하니 스트레스가 과해서 그런게 아닙니까?”

“마, 맞지.”

“1억엔 적은 돈 아닙니다. 당신의 아들과 당신을 유명하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부도 당신들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저, 정말이요?”

“우리는 진실을 알리는 사람들.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단체입니다.”

김장원이 멀리 벤이 있는 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검은 양복을 입은 대원 넷이 우르르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핀다.

“보이십니까? 저런 경호원들이 당신을 항상 지켜줄 겁니다.”

“정말··· 1억엔을 주는 겁니까?”

김장원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이미 노파는 1억엔이라는 돈에 눈이 멀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

촤라락, 촤라락.

셔터 세례를 받으며 천혁수 복지부 장관이 뚜벅뚜벅 기자회견장에 입장했다.

“오늘은 우리나라의 장관이 아닌, 역사 바로 알기 재단의 명예 회원으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니 복지부 관련된 질문을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발언에 모든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복지부 관련된 질문은 크게 이슈를 끌지 못했다. 워낙 천혁수 복지부 장관이 일처리가 깔끔하기로 소문이 나있기 때문이다.

어화둥둥 천혁수 잘한다! 따위의 기사를 작성하고 싶은 기자들은 없었다. 그들은 항상 특종에 목마르기 때문이었다.

단상 위에 준비되어 있던 책 하나를 들어 올리는 천혁수.

“이 책에는 일본이 주장하는 허무맹랑한 역사에 대한 반박이 담겨 있습니다. 역사 바로 알기 재단에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책이므로 많은 국민께서 읽어보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가 이 책을 발간한 이유는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 가짜 역사가 진짜인 것처럼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지리 교과서에는 독도가 ‘다케시마’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거짓된 역사를 울부짖는 일본에게 반박할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은 제대로 알아야 나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침을 한번 삼키고 계속 말을 잇는 그.

“또한, 일본은 아직도 오사카 초등학교 난입 사건의 범인이 재일교포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오사카 경시청에 아무리 진상조사를 철저하게 해달라 요청해도 그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천혁수의 등 뒤로 하나의 동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사카 초등학교 난입 사건의 범인 미야자키 준이치로가 자신은 재일교포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장면이 담겨 있는 동영상이었다.

“해당 동영상 역시, 일본 마이튜브에도 업로드되어 있으나 일본 정부는 언론을 통제해 이 사실을 일본 전역에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외교적으로도 결례이며 저들은 우리 대한민국의 국격을 떨어뜨리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언제까지! 우리 대한민국이 저열한 일본 정부에 천대받아야 합니까 여러분!”

기자들이 하나같이 천혁수의 말에 고양감을 느끼는지 붉어진 얼굴로 연신 셔터를 누르고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들기며 그에게 집중한다.

“또한, 현재 일본에 비즈니스 및 교육, 그리고 역사 바로 알기 재단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알리기 동상 설립 문제로 도쿄에 가 있는 SKY그룹의 천우진, 제 손자에게 정보부의 밀착 감시가 붙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일본은 지금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독도, 우리나라의 역사를 만천하에 알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국민께서 우리에게 힘을 보태주시기를 진심으로 간청하는 바입니다.”

천혁수는 마지막으로 카메라 앞에 허리 깊이 인사를 하고는 단상을 내려왔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서 목을 좌우로 꺾는 천혁수.

그의 보좌관이자 천가교육원 출신의 젊은 인재가 그에게 얼른 전화기를 건넨다.

“여보세요.”

-오, 할아버지 기자회견 잘 봤습니다.

“이놈아, 죽겠다.”

-연기도 많이 느셨는데요?

“연기라니? 진심으로 분노했다.”

-저한테요?

“옳거니, 정답을 맞추는구나.”

-하하하, 고생하셨어요. 아마 여론이 제법 불타오를 겁니다.

“그렇겠지, 그러려고 시나리오를 보낸 게 아니더냐? 그래서 다음 시나리오는 준비되었더냐?”

-예, 김장원 사장한테 문제없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래, 김장원이가 처리했다면야 문제는 없을 게다. 사람 구워 삶는데 제법, 재주가 좋은 놈이니까··· 그나저나 불빠따인지 불빠따 할애비인지는 언제 하느냐?”

-세상은 천벌을 좋아하죠.

천혁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또, 또. 헛소리를 하는구나.”

-그렇잖아요? 적당히 천벌 받기 딱 좋은 타이밍. 그럴 때 적절하게 터지는 천벌, 열광하고 여론이 더 불타오르지 않겠어요? ‘그럼에도 반성하지 않는 고키부리! 그를 향해 맹공격하는 천혁수 복지부장관!’ 기사 헤드라인으로 아주 기가 막히는데요?

“이참에 아주 이 할애비를 확실하게 대선주자로 만들 셈이로구나.”

-겸사겸사죠, 겸사겸사.

“쯧, 네놈이 아니어도 이 나라 대통령은 내가 될게다. 벌써 지지율이 어마어마하니까.”

-국민들 지지도는 몰라도, 당내 경선은 또 다르죠.

“여차하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될 일이다.”

-오, 좋습니다. 그런 자신감!

“됐고, 우희나 바꾸거라 걸걸한 사내놈 목소리 듣다 보니 귀가 썩는 것 같으니.”

-어쩌죠? 우희 지금 놀러 갔습니다.

천혁수가 잔뜩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끊자.”

-거짓말인데.

“이놈이!”

-우희야~ 할아버지가 찾으셔~

피식, 손주 놈의 재롱에 천혁수가 차량에 올라타며 웃어버렸다.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은 소소한 행복이었다.

-할아버지~

“오냐~ 내 새끼, 일본 음식은 입에 맞고?”

-네~ 오빠가 맛있는 것만 사줘서 잘 먹고 있어요, 할아버지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쉬워요.

“하하, 바빠서 어쩔 수가 없구나··· 조만간 좋은 때가 올 게다. 그때 같이 해외여행을 다녀보자구나.”

-네~ 기대하고 있을게요.

천혁수의 얼굴은 더없이 밝게 변해있었다.

손녀 바보, 딸 바보는.

대한민국 남자들의 숙명인가보다.

***

도쿄의 고급 풍속 주점.

주 고객층이 정치인, 기업가들인 곳답게, 제법 전통과 역사가 오래된 곳이었다. 출입구를 지나 잘 정돈된 정원을 걷다 보면 연못이 3개나 나왔다. 그 정도로 넓은 부지가 있는 그런 곳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아무나 드나들 수 없다고 느껴질 만큼 고급스러운 그런 풍속주점. 그리고 그곳의 VVIP들만 머물 수 있는 가장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공간.

오후 6시. 아직은 해도 떨어지지 않은 시각 그곳에서는 커다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크하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가 식탁 위에 누워있고, 그녀의 몸 위에 스시, 사시미, 튀김 등 각종 음식이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여인을 중심으로 사내들이 각각 양옆에 아리따운 젊은 여인을 끼고는 ‘하하, 호호’ 웃으며 술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총리님이 오늘은 아주 고프신 모양입니다?”

“음? 어째서?”

고키부리에게 농을 건넨 사내가 눈으로 고키부리의 낭심을 힐끗 쳐다본다. 어느새 그의 바짓자락이 볼록 솟아올라 있었다.

“큼큼, 이거 들켰구만.”

“아직도 청춘이십니다 그려.”

“파하하, 내가 이러려고 총리 된게 아니겠나?”

“역시, 정력가는 달라도 다르군요?”

고키부리가 이상하고 음흉한 표정으로 제 옆에서 옆구리가 다 뜯어진 기모노를 입은 여인에게 손을 뻗는 찰나.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며 다급히 총리를 부르는 사내.

“초, 총리님.”

“뭐야? 한창 좋을 때.”

“바로, TV를 확인하셔야겠습니다.”

“왜?”

사내는 고개를 연신 꾸벅꾸벅 숙이며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제법 커다란 TV의 전원을 켜고는 채널을 돌렸다.

“이런 미친!”

-한국의 기업가에게 우리 일본이 정보부 요원을 배치했다니, 이게 사실일까요?

-정부에 계속 문의를 넣었지만, 이미 퇴근한 사람들이 많아 아직까지 사실확인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르면 내일 오전, 고키부리 총리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흠, 만약 한국의 천혁수 장관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국제적인 망신이 아니겠습니까?

-그렇······

“이게 지금 대 일본제국의 뉴스가 맞아?”

“그, 그렇습니다. 총리님.”

고키부리가 자신의 앞 술상을 그대로 엎어버렸다.

곳곳에서 젊은 여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고키부리와 거리를 벌린다.

“당장 비상대책팀 꾸려! 제기랄 유스케 이 새끼는 일을 하는 거야 마는 거야!”

< 제 144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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