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43화. >
일본의 총리 관저.
고키부리 총리가 신문을 자신의 비서관 유스케의 얼굴에 던졌다.
“왜 이 일이 또 언급 되는 것이야?”
유스케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한국의 복지부장관 천혁수가 언급했던 모양입니다.”
“망할 조센징이 언급했다고 우리 대일본제국의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나와!”
[ 고키부리 총리가 임명된 뒤, 일본에 알 수 없는 안 좋은일이 시작되었다? 대표적으로 야스쿠니 신사 화재사건! 정부는 아직도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 오사카 초교 난입 살인 사건 역시, 정부는···]
“제기랄, 미신에 환장하는 노인네들 술 안주에 오늘 기사가 언급될게 불 보듯 뻔해! 야스쿠니 신사 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전문가들과 함께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2년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던 고키부리가 물었다.
“천우진 그 조센징은 지금 뭐하고 있지?
“카페에서 부인과 여동생과 함께 수다를 떨고 있다고 보고 받았습니다.”
“뭐야? 진짜 관광이라도 왔다는거야?”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만··· 현재까지는 그렇게 파악되고 있습니다.”
“밀착 감시 시켜 밀착 감시! 음흉한 조센징들이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까! 지금 같이 신사 화재로 미신이 들끓을 때, 위안부 동상이라도 세워봐! 극우파의 그 미친놈들이 날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예, 총리님!”
***
거울 앞에 서 있단 호석이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와 놈의 목을 꺾는다.
빠각!
“오우야···”
나도 모르게 소리가 너무 리얼해 입밖으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호석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대로 기절한 놈을 안듯이 받아 바닥에 눕히고.
“제가 먼저 나가겠습니다.”
듬직한 호석의 뒤로 화장실을 벗어나니 젊은 여인 한 명이 전화를 하며 우릴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품에서 시가를 꺼내고 아무렇지 않게 비상구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젊은 여인도 계속 전화를 하며 비상구 안으로 들어오고, 그녀를 똑바로 마주하고 있는 날 보더니 덜컥 굳는다.
“하이.”
빠각.
여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깥으로 따라온 눈은 둘이였습니다.”
“곧 다른 놈들도 우리가 돌아오지 않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눈치는 채겠네요.”
“예, 그러나 그 사이 회장님이 어딜 다녀왔는지는 알기 어려울 겁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층계를 오르기 시작했다.
약속 장소는 17층이었지만, 굳이 3층까지 올라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잡으면 혹시나 내 이동경로를 놈들이 눈치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니 스텔라케미칼의 리셉션이 날 바라본다.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알지만, 굳이 영어를 사용했다.
“오늘 약속이 있는 SKY 천우진입니다.”
“아!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미 일행분들은 도착했습니다.”
일행은 찰리 박을 얘기하는 것일 터.
꽤 규모가 있는 회의실로 들어가니 찰리 박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그를 따라 스텔라케미칼의 인물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이라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스텔라케미칼의 사장 토리야마 세이토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스텔라케미칼의 상무 토리야마 아카리입니다.”
다섯의 인물이 있었지만, 그들의 인사를 중간에 잘랐다. 내게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최종 결정은 회장께서 진행할텐데, 참석하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말과 함께 나는 걸음을 옮겨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았다. 움찔 몸을 떠는 꼬라지를 보니 그다지 회사를 넘기고 싶은 마음은 없어보였다.
“앉아서들 얘기합시다.”
자연스럽게 회의실 안 분위기는 내가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어버버 하는 사이 나는 상석에서 세이토 사장에게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죠, 스텔라케미칼을 인수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우리 회사를 넘겨야 할 정도로 어렵지 않습니다.”
“천억엔. 토리야마 가문의 모든 지분을 우리 SKY인베스트 먼트가 사겠습니다.”
한화 1조 3천억원.
현재 스텔라케미칼의 기업가치는 약 6천억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사장과 상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SKY와 함께 세계적인 기업으로 탈바꿈 시키리라 약속드리죠.”
세이토 사장이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어차피 회사를 넘긴다면 우리는 없지않습니까?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 한다 한들, 우리것이 아닌데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향후 5년간 구조조정은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아, 회장 자리는 당연히 사라지겠죠. 나머지 사장부터 임원들까지 5년 동안은 고용유지를 하겠습니다. 그 이후에는 성과에 따라 구조조정이 있을겁니다.”
내가 입 밖으로 뱉어낸 것이지만 확실히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그 말씀은 우리들이 성과로 증명하면, 계속해서 고용유지를 하며 회사 경영을 우리에게 일임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예, 5년이면 증명하기에는 충분한 시간 아닙니까? 글로벌 기업 SKY의 임원입니다. 지금의 스텔라케미칼의 중역의 자리보다는 훨씬 더 영향력있는 자리가 될겁니다.”
“으음···”
“SKY의 인사제도는 공평합니다. 성과를 증명한다면 지금 내가 앉은 이 회장이란 자리도 가능하죠, 아직까지 나보다 더 큰 성과를 낸 사람이 없기에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을 뿐입니다.”
옆에 앉아있던 찰리 박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천억엔, 작은 돈 아닙니다. 스텔라케미칼의 지분을 소유하고 내가 제시한 금액을 벌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누구도 예상 할 수 없습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토리야마 가의 사람들.
“죄송합니다 회장님, 아무래도 우리 회장님께서 승인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 회장께서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SKY가 어떤 제안을 하든 거절하라는 것을 지시 받았습니다.”
세이토라는 중년.
생각보다 직설적이고 솔직한 성격이었다. 일본인들에게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그런 류의 성격이다.
“이유는요?”
“··· 우리 아버지, 그러니까 회장님께서는 자민당원이십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민당.
세계 어느나라든 보통 2개의 당이 정치권을 양분하고 있다. 일본도 2개의 커다란 당이 있지만, 자민당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일본은 양당체재라기 보다는 단일당 체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자민당의 우위가 상당했다. 지금까지 40년간 자민당에서 총리를 배출했지만, 미래에서는 60년이 훌쩍 넘도록 자민당에서만 총리를 배출했으니까.
그러니까, 나라가 ‘우파’에 의해 굴러간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극우파 즉, 혐한을 조장하는 놈들의 입김이 제법 크다는 얘기고, 당연히 젊은 사람들 자민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클 수 있는 기회는 상대적으로 박탈당하는 그런 세상이었다.
고개를 돌려 찰리 박에게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물었다.
“회장의 지분이 얼마나 됩니까?”
“16.8퍼센트 최대주주입니다.”
미래에 전세계 불화수소 시장의 70퍼센트를 점유하는 기업이 스텔라케미칼이다. 결코 1조 3천억이라는 돈이 아깝지 않은 회사다.
“토리야마 가문의 총 지분은요?”
“68.3퍼센트입니다.”
“회장 지분 빼고, 나머지 지분 다 사들이고 다른 주주들에게 지분을 가져오면 회사는 인수 할 수 있겠군요?”
“예, 회장님.”
다시 고개를 돌려 세이토에게 말했다.
“토리야마 가문에 지분을 사겠다는 얘기를 전해 줄 수 있겠습니까?”
세이토가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 아버지와 싸우시겠단 말씀이십니까?”
“넘기지 않는다면 어쩔 수 있겠습니까?”
“쉽지 않으실겁니다.”
“2천억엔.”
“예?”
“2천억엔에 토리야마 회장의 지분을 제외한 모든 지분을 무차별적으로 매입하겠습니다. 토리야마 가문은,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이자 회장은 회사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입을 떡 벌리는 세이토.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빠르게 미국의 자본주의를 가져온 나라가 일본이다. 아직까지 ‘왕’이라는 놈이 저기 일왕국에 떡하니 버티고 있지만 그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다. 물론 자민당은 왕에게 충성하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어쨌든, 그래도 자본주의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세상의 제1 논리가 되어있었다.
“다음 미팅에서는 원만한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군요, 2천억엔이면 스텔라케미칼의 모든 경쟁업체를 살 수 있는 돈입니다. 그 이후에, 스텔라케미칼은 과연 살아 남을 수 있습니까?”
세이토가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반드시, 아버지··· 우리 회장님을 설득해보겠습니다.”
의외로 쉽게 굴복을 뱉는다. 물론 다음 미팅이 되어봐야 최종적으로 결과가 나오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세이토 사장은 굴복을 표현했다.
“좋은 결과 기다리겠습니다.”
“예.”
나는 가장 먼저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다.
복도에 앉아 있던 정호석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기 시작했고, 찰리 박은 다음 미팅날짜를 조율하고 있을터다.
“15분 정도 걸리셨습니다.”
“그렇게 오래 걸렸어요?”
정호석이 피식 웃는다.
“회사를 사고 파는데는 짧게 걸리신 것 같습니다만.”
“쇼핑 오래 할 필요 있나요? 그정도로 중요도 있는 회사도 아니고.”
“그렇습니까?”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리타화학.
2천억엔이면 그 회사도 충분히 사고 남았다.
일본이 미래에 갑질한 반도체 소재분야를 미리 다 부숴 놓을 의도이기에 굳이 2조가 훌쩍 넘어가는 돈을 쓰는 것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물어 뜯으려는 그들, 정확히는 자민당의 속성을 난 알고 있으니까. SKY가 성장할수록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또, 아쉽지만 일본에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고키부리 놈이 내게 집중하고 있으니 이런저런 회사를 쇼핑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려 들 테다.
그것을 제외하고도 9월 전에 로스차일드에게 죽방 한 방 날려주어야 하니 시간이 없다.
어차피 로스차일드의 오래된 금고에서 제법 꽁돈을 들고 왔으니 이 기회에 플렉스나 제대로 해보자 싶었다.
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카페로 돌아갔다.
“아가씨들, 재미있게 떠들고 있었어?”
“웅, 우진! 나 이제 한쿡말 차연스럽취?”
“오~ 잘한다.”
“오빠, 나도 영어 레벨 좀 오르지 않았어?”
“오오, 우희도 잘한다.”
뿌듯해 하는 둘.
둘의 머리를 차례차례 쓰다듬어 주고는 말했다.
“이제 밥먹으러 가볼까? 배고픈데.”
“그래!”
“고고!”
카페를 벗어나는데 뒷목을 움켜쥐고 있는 사내와 여인이 보였다. 화장실과 비상구에서 호석에게 목이 꺾였던 둘이었다.
그들의 눈이 날카롭게 날 쏘아본다.
철웅에게 우희와 루시를 부탁하고 나는 호석과 함께 그 둘에게 다가갔다.
“눈깔 봐라 어떻게? 뽑아줄까?”
사내와 여인이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정보부 요원들이라더니 제법 영어를 알아듣는다.
“너무 노골적으로 감시하지 마라, 프라이버시는 존중해줘야지 안 그래? 다음엔 기절 정도로 안 끝나. 명심해라.”
서슬퍼런 경고에 놀랐을까? 젊은 여인이 저도 모르게 제법 크게 대답했다.
“하, 하잇!”
“아키라!”
“아앗!”
“고키부리한테 전해, 그냥 쇼핑이나 좀 하고, 관광이나 하다가 떠날 거니까 오바하지 말라고.”
“······”
물론 쇼핑이 그들이 생각하는 쇼핑이 아니지만.
어쨌든 난 사실만 전달했다. 관광과 쇼핑이 우리의 목적이었던 것은 분명하니까.
참고로 난, 절대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알려주지 않을 뿐이다.
< 제 14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