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40화 (140/458)

< 제 140화. >

-글쎄요? 우선 금화는 확인하셨죠?

“그래, 확인했다. 많더구나.”

-예, 금화 무게가 약 3톤이 넘었던 것 같은데 순금이냐 아니냐에 따라 다르겠죠? 만약 골동품으로서 가치까지 가지고 있다면 더 비쌀 테고요.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고?”

-예, 아마 그 컨테이너들의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지구를 통틀어서 몇 없지 싶은데요, 솔직히 골동품, 미술품 등은 소더비에 올려보지 않는 이상 가치 측정이 애매하고요.

“거기에 금괴나 현금도 제법이고. 채권도 보이는구나.”

-금화까지 단순하게 순금이라 가정하고 미술품이나 골동품들을 빼고서는 약 6조원 정도가 되더라고요.

록펠러가 천혁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잔뜩 궁금한지 천혁수가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내린다.

“얼마래?”

“골동품, 미술품 빼고 6조가 넘는다는데?”

짧게나마 ‘오’하고 감탄한 천혁수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그놈들 아주 배알이 단단히 꼴리겠구만.”

“크크크, 그렇겠지.”

-그럼 할아버지들 그것들은 잘 보관해주세요? 나중에 요긴하게 쓰일지도 모르니까.

“오냐, 알았다. 바로 일본으로 간다고?”

-옙, 일본에서 처리하려던 일이 남아있어서요.

“알겠다. 뭐, 미국에서는 시간이 제법 걸릴 일이니까.”

-예, 그 전에 일본부터 빠르게 정리할까 싶습니다.

“오냐, 그럼 한국에서 보자꾸나, 나도 쑤와 며칠은 쉴 테니.”

***

윌리엄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바쁘게 움직였다. 전용기를 타고 보르도의 작은 공항에 착륙하자마자 가문의 별장을 향해 맹렬히 질주했다. 원래라면 포도나무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어야 할 별장이 눈에 훤히 보인다. 시꺼멓게 타 버린 포도밭, 매캐한 냄새가 콧속을 찌르는 이곳이 과연, 자신이 알던 별장 주변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별장에 다다랐을 때, 이미 로스차일드의 별장에 온 사람은 자신이 전부가 아니었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차량이 즐비했다. 모두가 성에 ‘로스차일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가주님 오셨습니까?”

공손하게 인사하는 사람들 사이로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 윌리엄은 뚜벅뚜벅 온통 검게 그을린 별장을 향해 진입하려 했다.

“안 됩니다. 붕괴 위험이 있어 아직 안 됩니다!”

소방관의 만류에 잔뜩 인상을 찌푸린 그가 뒤쪽에 따라온 자기 수행원들 뿐 아니라, 가문 사람들을 따라온 다른 수행원들까지 둘러보며 외쳤다.

“붕괴 될 위험 있는 부분 다 부숴버려! 빨리!”

““예!””

대부분 가문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윌리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으나, 몇몇 노쇠한 가문 사람들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세바스찬.”

“예, 가주님.”

“원로회의 준비해요, 장소는 이곳 최대한 빠르게.”

“예!”

윌리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당황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사이를 뚫고 가주에게 다가오는 노인들.

“가주, 잠시 저쪽으로 가시겠소?”

다가온 노인들 전부 원로들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인 윌리엄이 노인들을 데리고 별장 부지 한 켠의 연못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혹, 저장고에 문제가 생긴 것이오?”

불어로 물어온 질문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윌리엄.

“보고에 의하면··· 방화범들이 애초부터 저장고를 노리고 침입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아!”

“이런!”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가 섞인 욕설이 난무했다.

“이건 내부자의 소행일 수 있는 일 아닙니까?”

한 노인의 말에 윌리엄이 입술을 짓씹으며 답했다.

“원로들 빼고는 저장고의 진의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

윌리엄이 쏘아내는 의심의 눈초리에 노인들은 당당하게 윌리엄을 마주 보았다.

“우릴 의심하는 겝니까!”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윌리엄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분명 본인들 입으로 먼저 ‘내부자’가 연관되어 있다고 판단하지 않으셨소?”

“크음···”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최소한 정보 제공자가 우리들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단 얘기입니다! CIA도 프랑스 정보총국도! 영국의 MI6도! 전 세계 내로라하는 정보기관들도 결코 알 수 없는 정보였습니다!”

결국 노인들이 작게나마 고개를 주억거리며 윌리엄의 말에 동의를 표한다.

“후우··· 배신자 색출은 색출이고··· 정확한 피해 규모가 얼마나 됩니까? 우리 중 유일하게 가주만이 정확히 파악하고 계시잖습니까?”

“자투리를 빼고, 300억 달러가 넘습니다.”

원로회가 입을 떡 벌렸다. 어쩐지 원로회에서 지원을 요청할 때마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돈이 들어온다 했더니 그 이유가 있었구나 싶어 하는 얼굴들. 놀람도 잠시, 이내 다시 입을 닫으며 얼굴 한가득 인상을 찌푸렸다.

“제기랄, 탐낼만하군.”

“미친··· 하긴, 매년 수익의 10퍼센트를 저장고로 보냈으니··· 가능한 액수이긴 합니다.”

윌리엄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1850년대부터 전통처럼 지켜지던 일이었습니다. 매년 수익의 10퍼센트를 저장고로 보내는 일은··· 전 가문의 일원들이 모두 하나같이 보태니 자연스럽게 많은 재물이 쌓였지요, 게다가 로스차일드답게 대부분 평범한 현물이 아니라 미래가치가 기대되는 골동품, 미술품, 예술품들이 많았습니다. 채권이나 보석은 그것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입니다.”

“훔쳐 간 놈이 그것들을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소더비 급의 경매가 아니라면··· 불가능할 텐데요? 만약 해당 물품들이 경매에 나오면 추적하기 쉽지 않겠소?”

강하게 고개를 젓는 윌리엄.

절대 그럴리 없다는 확고한 부정.

“멍청한 놈이 아니고서야 그럴리가 없습니다. 개인과 개인으로 거래할 테고요. 혹, 어느 박물관이나 정부와 비밀리에 거래할지도 모르죠, 사실 우리로선 그것이 우리 저장고에 있던 물품인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당장 루브르에 걸려있는 모나리자 역시 가품이 아닙니까?”

“으음···”

“반값에 팔아치워도 무시하지 못할 액수가 됩니다. 그 정도 현금이라면 당장 우리 가문의 사업 어느 곳이든 비벼보려 할 테고요, 어쩌면 가주의 자리가 탐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년 10퍼센트의 수익금을 ‘가주’가 갖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건 억측이오, 우리 원로회는 이미 그 돈의 쓰임새를 알고 있지 않소?”

“원로회가 아니라, 원로회에게 정보를 주워들은 가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당장 목격자들을 해치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굳이 그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차마 가문의 일원을 죽이지 못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몇몇 노인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일리 있습니다.”

“그럴듯하군요. 하긴, 만약 원로회가 저지른 일이라면 역시, 차기 가주를 노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직 가주의 가문만이 10퍼센트의 공납금에서 제외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공납금의 자유로운 사용이 가능하고요.”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에 윌리엄이 노인을 한번 쏘아보고는 다시 화제를 돌렸다.

“크음, 어쨌든! 우리는 서둘러 저장고의 피해 규모를 파악해야 합니다. 앞으로 원로님들의 사업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금을 유통하던 방식에 문제가 생겼으니 말입니다.”

그제야 원로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모양.

“일단 저장고 확인이 먼저겠군요.”

“그렇습니다.”

노인들이 헐레벌떡 별장 건물로 걸어가 붕괴 위험이 있는 부분을 처리하고 있는 수행원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어서어서 움직여! 한시가 바빠 한시가!”

***

반도체 산업.

메모리는 단연 SKY가 세계 제일의 선두를 달리고 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시스템은 디자인과 파운드리에서 미국이 압도적이다. 미국 같은 경우 조금씩 조금씩 잠식해 나가고 있으니 잠시 뒤로 미루어 놓기로 하고, 곧 한국의 성장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가질 일본을 먼저 공략해야 했다.

모든 일에는 시기가 중요하고, 나는 지금 시기가 일본의 반도체 소재 공략에 딱 적기라고 보았다. SKY의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커지지 않은 지금, 일본의 두 눈이 나에게 잘 닿지 않을 지금이 딱 좋았다.

전용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니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보인다.

“으따 회장님 강녕하셨습니까?”

“하하, 나보다는 김 사장님이 더 강녕하셔야죠?”

“저는 꺽정을 하지 마십쇼, 아직도 호랑이도 씹어먹어 불라니까.”

피식 웃으며 찰리 박과 악수를 나눴다.

“김장원 사장이 기세가 등등한 것을 보니, 제법 성과가 좋았던 모양이네요.”

찰리 박이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플루오린폴리이미드. 회장님이 적어주신 두 개의 기업을 모두 인수했습니다.”

“예, 보고서로 확인했습니다.”

나와 찰리 박이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김장원 특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사모님··· 잉? 이분이 아가씨인갑네요, 회장님 여동상, 워따 회장님을 빼다 박아 부렀네잉.”

김장원의 정겨운 사투리에 우희가 베시시 웃으며 그가 내민 손을 맞잡는다.

“잉? 오메, 우리 아가씨 고생 쪼까 했는갑소··· 회장님이랑 쌍둥일텐디··· 손이 거칠어부네요.”

“아···”

우희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듯, 주변을 살폈다. 자신의 거친 손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혹, 그녀의 손이 거친 이유 때문에 내가 죄스러운 마음으로 기분 상해 할까 싶은 모양.

나는 웃으며 우희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말했다.

“이제 좋아질거니까, 김 사장님이 우리 우희 맛집, 좋은 곳 많이 데려가 주세요.”

김장원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한다.

“흐흐, 지가 여그 일본은 꽉 잡고 있다 이 말이죠, 꺽정을 마십쇼잉, 화끈하게 안내해 불라니까.”

“좋습니다. 그럼 이동하시죠? 자세한 보고는 이동하면서 듣기로 하고.”

“예, 회장님.”

일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차를 나누어 이동하기로 했다. 루시와 우희 철웅이 함께 이동하고, 나와 찰리 박, 김장원, 정호석이 한 차에 올랐다.

“적어드린 기업들은 모두 확인하셨겠죠?”

“예, 회장님.”

“서류 좀 볼까요?”

준비성이 철저하고 언제나 빈틈없는 모습을 보이는 찰리 박답게, 그는 서류 가방에서 일목요연하게 핵심만 요약된 기업분석 자료를 건넨다.

“인수했다는 회사가 가네카, 다이 킨이죠?”

“예, 그렇습니다.”

“플루오린폴리이미드는 됐고, 포토레지스트랑 불화수소를 만져야겠군요.”

“예.”

서류를 덮고 찰리 박을 바라보았다.

“저번에 전화로, 김장원 사장의 힘을 쓰고 싶다 했었죠?”

찰리 박이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답했다.

“예··· 회장님과 일하면서 ‘속도전’ 취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회장님의 힘이 마치 제힘인 것처럼 취해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원래의 제가 회장님의 마음에 들어 절 선택해 주셨을 테니, 원래의 제 원칙대로 일을 진행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깨달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찰리 박이 슬쩍 김장원을 쳐다보다 다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쉬운 방법이지만, 위험한 방법이기도 하다는 걸 망각했습니다. 회장님 곁에서는 어떤 위험도 느끼지 못했기에 착각했나 싶습니다.”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앞으로도 내 사람들은 어떤 위험에도 안전할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아요. 단, 리스크를 감수할 만큼 빠르게 가는 것이 큰 이득인가를 살펴볼 필요는 있습니다.”

“예, 효율을 극대화 시키라는 말씀, 잘 이해했습니다.”

척하면 척이다.

이러니 이 사람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김장원이 사람 좋은 얼굴로 끼어들었다.

“흐음, 그라믄 쪼까 껄쩍지근한 모리타는 나중에 치고, 다른 넘들부터 조지는 겁니까?”

정호석이 힐끗 김장원에게 눈치를 준다.

나는 웃으며 정호석을 만류했다.

“괜찮아요 대표님, 나는 김장원 사장의 저 쌈마이한 말투가 정겹게 느껴지니까, 우리끼리인데 어떻습니까? 대신 김장원 사장도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조금 격식 있게 얘기해주세요.”

“으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사과 듣자고 한 얘기 아니에요.”

찰리 박이 내가 들고 있는 서류와 같은 것을 들어 올리며 손가락으로 한 회사를 가리킨다.

“포토레지스트 스미토모화학. 현재 부채 상황이 위험할 정도로 상승한 상태입니다. 이 회사를 노린다면 쉽게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씩 조금씩 스며들어야 할 일이지만, 분명 속도도 필요한 일이다. 언제까지고 일본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순 없었다.

곧 다가올 빅 이벤트도 있지만, 로스차일드에게 제대로 된 빅엿을 주려면 시간이 촉박하니까.

김장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가리부터 조지죠.”

김장원이 히죽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 정호석 역시 ‘그럼, 그럼.’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찰리 박은 ‘역시’ 하며 나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모리타 화학.”

“모리타 화학 말씀이시군요.”

“예, 원래 싸움은 제일 까다로운 놈부터 조지는 겁니다. 한새끼만 조져 놓으면 다른 새끼들은 기를 못 펴고 겁을 집어 먹을 테니까요.”

< 제 140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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