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37화. >
총탄이 난무하고, 비명이 난무할 줄 알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작전에 돌입한 대원들은 소총보다는 소음기가 달린 권총이나 군용대검을 주로 사용했다. 작전명 ‘불빠따’가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조용했다.
정호석이 말한 최소한의 소음, 그리고 최소한의 민간인 피해.
그것을 철칙이라도 되는양 성실히 지켜가며 작전을 진행했다. 로스차일드의 별장은 그들이 생산하는 와인 중, 가장비싼 와인창고와 같은 곳에 있었다.
은은한 포도향이 퍼지고 밤하늘의 별이 쏟아지는 그런 운치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포도주인지 아니면 혈흔인지 모를 끈적이는 것들과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정호석과 대원 셋이 내 곁을 철통같이 지켰다.
나는 방탄 SUV에 올라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조용하네요.”
“생각보다 경비들이 수월한 모양입니다.”
수월하면 우리로서는 좋은 일이니 기분 나빠할 일이 아니니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표정은 밝았다. 벌써 우리 대원들이 별장에 진입한지도 10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치익, 4조 클리어.
-치익, 5조 클리어.
-치익, 2조 클리어.
간간히 문제 없이 서로 맡은 바 포지션에서 임무 완수 사인을 알리는 무전 빼고는 고요하기 그지 없었다. 섬광탄과 수류탄은 터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곳곳의 작은 창에서 나오는 어두운 연기는 최루탄으로 보였다.
총성 한 번들리지 않고, 소총으로 무장한 경비원들을 그야말로 압살하고 있는 모습.
올해가 가기전에, 최소한 미군보다는 먼저, 터번을 둘러쓰고 다니는 중동의 그 놈을 잡아올 것 같아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군사작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그런 작전이기에, 평소 즐겨 착용하는 시계가 아닌 다소 가벼운 전자시계의 액정을 확인했다.
23시 14분.
-치익, 올 클리어.
기다리던 신호가 무전을 통해 들려오고.
“갑시다.”
대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로스차일드가의 별장으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별장 거실로 향하니 양 손이 속박되고 두 눈을 가리고 있는 서양인들이 줄지어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의 행동을 직접 보거나 예측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인 듯 싶었다.
일반인들 뿐 아니라 방탄조끼를 착용하고 있는 경비들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니 최대한 ‘살생’을 자제한 것 같았다.
정호석이 수신호로 말했다.
‘부상자는?’
온통 검은색 일색인 대원 하나가 고개를 젓는다.
정호석의 질문은 당연히 우리 대원들의 부상여부를 묻는 질문이었다. 굳이 성대와 목을 놔두고 수신호로 대화를 나누는 이유는 생존자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정호석이 뒤쪽에 수신호를 보내자, 내 곁에서 날 경호하던 대원이 빠르게 달려가 조끼 등짐을 내려 놓는다. 그 곳에는 이상하게 생긴 기계가 달려있었는데, 행여나 있을지 모를 도청장치의 주파수를 교란시키는 장치였다.
모든 생존자가 이동하고, 별장의 넓은 거실에는 우리 대원들만이 존재했다.
“의심되는 곳이 어디라고요?”
“지하 와인 저장고에 있습니다.”
정호석을 쳐다보니 고개를 끄덕인 그가 작게 말했다.
“1조, 나와 간다. 나머지는 철저하게 경계해.”
대답대신 전투화를 툭 부딪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대원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이내 조끼 왼쪽에 달린 무전기에도 명령을 내리는 호석.
“지원조, 폭발물 설치해.”
-치익, 확인.
내게 살짝 고개를 숙여보이며 이동을 알리는 호석, 나는 마주 고개를 끄덕여주며 대답했고, 호석은 1조 대원들 중 셋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고개를 끄덕인 대원들이 빠르게 산소 절단기 등과 같은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지하를 내려가니 습도와 온도가 딱 와인을 저장하기 좋은 느낌이었다. 과거에 지어진 곳 답게 자연친화적인 인테리어가 특히 눈에 띄었다.
왼쪽, 오른쪽.
앞쪽, 뒤쪽.
심지어 위쪽까지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의심스럽다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여기입니다. 빅보스. 설계도면상 어색한 부분도 있었고, 아까전 클리어하던 도중 발견한 곳입니다.”
1조장이 가리킨 곳을 집중해서 살피는데, 확실히 다른곳과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동굴같은 석벽이 늘어선 곳이었는데 대원이 가리킨 곳은 유독 석벽이 맨질맨질 하게 빛났다. 꼭 누군가의 손이 자주 그곳에 닿았던 것 처럼.
“이곳이 입구라고 가정하고, 여는 방법부터 찾아볼까요?”
고개를 주억거린 대원들이 사방으로 퍼져 수색을 시작했다.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정해진 동선으로 한치의 사각지대도 없이 천천히 정밀하게 수색을 시작한 대원들. 그러나 그렇게 넓지 않은 저장고에서 입구를 여는 비밀을 풀 순 없었다.
시계를 보니, 창고에 진입하고 어느새 5분이 지나있었다. 시간이 생명인 만큼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안전확보 됐으니까, 다 움직여요.”
내 곁을 지키던 대원들도 흩어지고, 호석만 굳건하게 내 곁을 지켰다. 나는 그런 호석에게도 찾으라 하고 싶었지만 그의 눈에서 절대 그럴리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홀로 바삐 눈을 움직이며 비밀을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어느새 10여분이 더 흐르고.
이제 곧, 윌리놈이 약속한 차량을 가지고 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흐음.”
절로 시가가 생각났다. 이곳에도 폭발물을 따로 설치해야 하나 싶어 고민하던 찰나, 나도 모르게 와인 병에 손이 닿았다. 순간, 머릿속에 파바박, 스파크가 튀며 번뜩 떠오르는 생각.
휙 고개를 돌려 정호석에게 말했다.
“대원들한테 가장 오래된 와인병을 찾아보라고 하세요.”
“예, 회장님.”
가까운 거리에 대원들이 있기에 조금만 크게 얘기해도 들리겠지만, 정호석은 무전으로 조용조용하게 얘기했다.
곧바로.
“찾았습니다.”
지하실로 내려오자마자 바로 왼편 벽에 진열되어 있는 와인, 한 눈에 보아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느낌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와인병의 라벨을 확인했다.
“샤토 무통 로스차일드.”
나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들어올렸다.
꿈쩍 하지 않으니 이번엔 좌우로 움직여보았다.
마지막으로 오히려 안쪽으로 밀어보았다.
철컥.
어딘과 어긋나있던 것이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대원이 의심스럽다는 부분의 벽이 살짝 갈라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소름돋도록 딱 아귀가 맞던 벽. 갈라져 있을 것이라 상상도 하지 않았던 그 벽이 갈라지고, 벽 앞에 서 있던 대원이 힘차게 벽을 잡아당긴다.
“진입. 속보.”
호석도 내 뜻을 알고 있는지 속보를 명령했다. 가장 앞에 두명의 대원이 빠르게 시야를 확보하며 앞장서고 우리도 그들을 따라 최대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두명의 성인남자가 서면 약간 비좁게 느껴질 통로를 따라 들어가길 2분여, 우리는 거대한 철제 금고를 마주할 수 있었다.
테드 존스가 얘기했던 그 가설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다이얼을 돌리는 전형적인 옛날 금고였지만 그 크기부터가 남달랐기에 우리는 챙겨왔던 산소절단기를 꺼내들었다.
“예상 소요 시간은?”
정호석의 질문에 대검 밑둥으로 퉁퉁 금고문을 두들겨보는 대원.
“두께가 상당해보입니다. 최소 20분 이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진행해.”
“예.”
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23시 40분.
곧 윌리 놈이 도착할 시간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놈도 양반은 못 되는지 내게 전화를 걸어 왔다.
-주변에 대기 중입니다.
“직접 왔나?”
-예, 모로코까지 직접 움직일 예정입니다.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도대체 뭘 가져가려고 하는지 몹시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 무거운 엉덩이를 여기까지 가져온 것을 보면.
직접 온다고 말했던 윌리지만, 나는 프랑스까지만 온다는 얘기로 이해했었다. 그런데 실제 작전지역까지 오다니, 놈은 이번일에 사활을 걸었나 보다.
“로스차일드의 별장까지 몇 분 거리지?”
-약 5분 거리에서 대기중입니다.
“좋아, 곧 연락하지.”
꾸우우우웅.
둔중한 소리와 함께 열린 금고 문.
“아!”
가장 앞에 서 산소절단기를 사용하던 대원의 탄성과 함께, 모두가 놀란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 그 만큼 금고 내부의 비주얼은 충격적이었다.
과거의 유산을 찾으러다니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어떤 보물창고 처럼.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현물이 우리의 눈을 어지럽혔다.
“뭐해! 빨리 옮겨!”
정호석의 단호한 명령에 정신을 차린 대원들이 빠르게 창고 내부로 진입해 각종 현물들을 분류하기 시작하고.
“지원팀, 저장고로 박스 옮겨.”
-치익, 확인.
“2조, 4조 빼고 나머지 저장고로 와, 무장은 가볍게. 최대한 빠르게 움직인다.”
-치익, 확인.
-치익, 확인.
***
윌리 놈이 역겨운 얼굴로 내게 손을 내민다. 제법 물류배송을 하는 기사다운 몰골이었다.
“제법 어울리는 군.”
“하하, 그렇습니까?”
슬쩍 내 등뒤에 있는 상자들을 살핀다.
상자의 위 아래 뿐 아니라 여러곳에 봉인지를 붙여 놓았다. 누구든 저 봉인지가 떨어지면 한 눈에 누군가 이 박스를 개봉했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게.
또르르 눈알을 굴려 다시 날 바라보는 윌리.
“그럼 빨리 움직이지.”
“아, 그러죠. 모로코로 바로 이동하실겁니까?”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류 컨테이너에 우리 대원들이 동행한다.”
“예, 그 정도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컨테이너 5대는 필요 없겠습니다?”
확실히 그랬다.
혹시나 싶어 얘기했지만, 컨테이너 5대 분량은 커녕 3대만 있어도 충분한 양이었다. 원래부터 물류 이송을 하던 곳 답게 준비된 설비가 충분했다. 때문에 매우 빠르게 트럭에 모든 상자를 실을 수 있었다.
“모로코에서 보지, 도착 예정 시간은?”
“모로코 현지시각 오후 3시입니다.”
“거기서 보지.”
윌리 놈이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커다란 대형트럭의 운전석에 오른다.
대형트럭이 떠나가는 것을 계속 바라보며 호석에게 말했다.
“타이머 맞추세요, 진짜 불빠따 시작해야죠.”
“예.”
나도 방탄차량에 오르고, 윌리와 함께 이동하지 않은 대원들도 빠르게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윌리와 그의 수하로 보이는 몇 인물들을 따라간 16명의 대원들의 걱정은 되지 않았다. 아직은 윌리놈이 본색을 드러낼 시간이 아니니까.
부르릉.
내가 탑승한 차량이 부드럽게 출발하고, 저 멀리서부터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야심한 새벽의 보르도에는 태양이라도 떠오른 것 처럼 환한 불빛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당분간 와인시장에 대혼란이 오겠네요.”
내 농담에 피식 웃는 정호석.
농담이 웃겨서일까, 아니면 로스차일드 놈들의 비자금을 훔쳐서 일까? 차량 내부의 모두가 밝은 표정으로 빠르게 뜨거워지는 보르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
취이이익.
대형트럭은 주기적으로 가스를 배출해야 했다. 그리고 방금 가스를 배출시킨 윌리가 슬쩍 조수석을 쳐다보았다.
“이봐, 눈 좀 붙이지 그래?”
“닥치고, 운전이나 해.”
조수석에 앉은 사내의 손에는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이 들려 있었다. 언제든 방아쇠만 당겨도 총알이 발사 될 수 있도록, 안전장치도 해제되어 있는 상태였다.
“쯧, 이제와서 내가 헛짓거리 하겠어? 좀 믿어 달라고.”
“정보국 놈들을 믿느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지.”
싸늘한 대답에 씁쓸하게 웃은 윌리가 대충 고개를 주억거렸다.
“쯧, 뭐 당신의 보스가 시켰다니 알아서 하라고··· 그나저나 저 뒤에 실린건 뭐야? 진짜 포도주라도 훔친건가?”
“알 필요 없다. 운전에 집중해.”
“이 새벽에 도로는 한산하다고, 그러지 말고 얘기좀 해봐, 졸린 것도 같으니까.”
“허벅지에 한 발 박아줄까? 그러면 잠이 좀 깰텐데?”
“워워, 이 친구 터프하군.”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네 임무에 집중해.”
“쯧, 알았어, 알겠다고. 담배는 괜찮지?”
고개를 끄덕여 주는 사내.
“후우.”
희뿌연 담배연기를 내뿜은 윌리는 답답함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당장이라도 적재함에 실린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거대 유대인게 자본과 척을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등에 올라타는 것이 더 좋다 생각했다. SKY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그래봤자 대한민국이란 작은 나라의 기업에 불과하니까.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그 동안 로스차일드가 놀고먹고 있지는 않을테니까.
또, 누군가 상부에서 자신에게 압박을 준 것 처럼, 자신이 그 ‘상부’의 위치에 자리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니까. 로이드 로스차일드라는 애송이와 전화했을 때, 역시 그 놈들은 자신을 체스 말 정도로만 생각한다고 느껴졌었다.
그러니 적재함에 실린 ‘물건’으로 거래를 해야했다.
거래를 위해서는 품목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아야했다. 그래야 대충 와꾸가 나오지 않겠는가.
그런데 철저한 천우진은 윌리에게 쉽게 기회를 주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윌리는 답답한 마음에 줄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커다란 기계장비로 컨테이너 3개를 화물선에 무사히 실고, 송장을 받은 윌리가 자신의 곁에 무표정으로 서 있는 사내에게 물었다.
“우리는 여객선으로 가자고?”
“그러지.”
뒤돌아 앞장서 걷는 윌리.
그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비릿하고 올라갔다.
그리고 그의 등뒤에서 조용히 그를 따라 걷는 사내.
사내는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어디론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 제 13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