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36화 (136/458)

< 제 136화. >

정호석은 분명 ‘막대한 양의 보물’이 있다고 가정하였을 때, 그것을 운송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었고, 나는 나름대로 그것에 대한 해법 2가지를 준비하려 했다.

그리고 그중 첫번째 해법은 언제든 내가 원한다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유럽의 SKY LINE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일본으로 떠난 찰리 박이 사전에 유럽에서 모든 준비를 끝낸 유통사업. 이제는 유럽의 소도시도 최대 3영업일 안에 배송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마을 단위로 작게 쪼갠다면 얘기는 조금 달라지지만, 어쨌든 유럽 내부에서는 가장 빠른 유통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튼, SKY LINE의 유통망 사용이 첫 번째였다.

전 세계 어느 국가든,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은 없다. 그것이 ‘통관’과 ‘세관’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그러니 포도밭에 묻혀있던 숨은 돈을 꺼내와도 얼마든 한국으로 옮길 수 있단 얘기였다.

그러나 역시 그 방법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어쨌든 SKY LINE이라는 SKY의 양지 사업이 얽혀있으니까,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두 번째 해법.

그것은 내게 약점이 잡힌 CIA 한국지부장을 이용하는 것.

“정보총국에 연줄이 없어도 좋습니다. 물건을 좀 옮겼으면 하는데, 아주 비밀리에 아무도 모르게, 내용물도 아무도 모르게.”

CIA 한국지부장 윌리가 잠시 고민하는 듯, 수화기 너머 작은 숨소리만 들릴 뿐 별다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후우··· 사람은 아니겠죠?

“물론.”

-부피와 무게는 얼마나 됩니까?

나도 모른다.

“부피와 무게에 따라 다른가?”

-무기는 불가합니다.

“무기는 아니다.”

내게 재물은 무기가 맞다.

그러나 윌리가 물어본 무기가 그것을 뜻하는 게 아니니 아니라고 대답했다.

-프랑스 정부는 물론, 다른 사람은 몰라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겠죠?

“당연한 애기를 하는군.”

-역시, 부피와 무게를 알아야겠습니다. 그래야 정확하게 확답을 줄 수 있고, 또 나도 방편을 마련하죠.

나는 잠시 짧게나마 고민에 빠졌다.

아직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문득, 과거의 삼현가의 비밀창고가 떠오른다.

가장 규모가 컸던 비밀창고가 컨테이너 1개 정도에 현금과 현물들을 가득 실을 수 있는 정도였다.

“컨테이너 5개.”

-무게는···

“가벼울 겁니다.”

-후우··· 만만치 않은 양이군요.

“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까?”

윌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무조건 가능해야 할 것 아닙니까?

씨익, 입꼬리가 올라간다.

“좋은 마인드야.”

-됐고, 준비 시간과 위치는?

“6일 뒤 프랑스 보르도.”

-미친.

갑작스런 욕설.

그만큼 윌리가 위치를 듣고 깜짝 놀란 모양.

“말은 좀 조심하지?”

-크음, 보르도라면 로스차일드의 포도밭이 아니요?

“맞아.”

-주류창고라도 털 생각입니까?

“그건 당신이 알 것 없고.”

-후아··· 뭣 같이 엮였군.”

“정확한 위치는 뭐 대충 알겠지?”

-로스차일드의··· 별장.

“그래.”

-컨테이너 5대 분량의 대규모 화물운송이라면··· 로스차일드에서 냄새를 맡을 수 있을텐데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쓋! 나도 프랑스로 가야겠군요.

“그러던가. 엠바고 확실하게 하자고 윌리, 살리고 싶다면.”

-명심하죠.

윌리가 먼저 전화를 끊고 나는 위성전화기를 다시 철웅에게 건넸다. 전화기를 받아 잘 갈무리하는 백철웅이 내게 물었다.

“믿을 수 있는 놈입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호석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묻는다.

“그럼 어째서 위험을 감수하십니까?”

“놈은 지금 양자택일해야 합니다. 내가 준 미션을 완수하고 제 부하들을 살리느냐, 아니면 부하들을 사사로이 사용하고 그 목숨을 잃게 만든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느냐.”

“놈이 로스차일드쪽에 붙을 수도 있잖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놈의 선택지 중 내가 제외한 한 가지.

‘로스차일드와 붙어먹는다.’

이러면 내가 곤란해진다. 하지만 난 놈이 그러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윗선에 줄을 대고 있는 로스차일드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것은 앞으로 자신의 운명을 로스차일드에게 맡기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었다.

윌리의 선택지 중 가장 베스트는 로스차일드와 붙어먹는 것이지만, 놈은 그렇지 못할 거란 확신이 내게는 있었다. 놈의 눈에는 야망이 가득했으니까, 자신의 윗줄을 재끼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기를 희망하는 놈이니까.

“그 선택지는 배제합니다. 놈이 그럴리가 없을 테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예!’하고 대답하는 둘.

어째서 놈의 선택지를 배제했는지 궁금할 법도 하지만, 나를 믿고 신뢰하니 굳이 묻지를 않는다.

나는 그런 믿음직스러운 사람들의 경호를 받으며 편안하게 기내 침실로 들어가 6일 뒤까지 어떤 관광을 해야 잘했다고 소문날까를 고민하며 단잠에 빠져들었다.

***

전화기를 내려쳐 당장이라도 부숴버리고 싶었지만, 아까운 보안회선 전화기는 제법 비싼 물건이니 가까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CIA 한국지부장 윌리.

“뭣같이 걸렸어··· 진짜 짜증나는군, 염병할 테드 존스.”

품에서 제법 독한 연초를 꺼내 문 윌리가 다시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어, 프랑스 보르도, 가장 빠른 경로 뽑아 와. 내가 직접 가지. 그리고 유럽을 들락거리는 선박 중, 우리 손길이 닿는 것들 무엇이 있나 보고서 올려, 1시간 주지.”

탁.

다시 수화기를 내려놓은 윌리가 담배 연기를 내뿜어내며 테이블을 왼손 검지를 이용해 ‘탁탁탁’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미친놈이 진짜 와인이라도 털려는 건가?”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컨테이너 5대 분량의 무엇을 옮기려고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직접 가 확인할 생각이었으니 빠르게 정리되지 않는 미련을 버리기로 다짐한 그.

“제길,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얼마 전부터 윗선에서 내려오는 압박이 누구의 소행인지 알지 못한 상태. 누가, 어떻게, 왜.

자신을 압박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해결책을 세울 수 있었다. 아무리 정보원들을 돌려도 알아낼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확실히 자신의 윗선이 자신보다는 더 능력이 좋을테니까.

일을 잘한다는 게 아니라 단순한 ‘능력’이 말이다.

윌리가 제 부하직원 셋을 어떻게든 빠르게 데려오려는 이유도 상부에서 들어오는 압박 때문이었다. 상부에 보고 없이 움직인 정보원들, 원래 정보국 일이라는 것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 하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상부에서 마음먹고 까대면 방어할 길이 막막했다.

그러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멀쩡한 모습으로 직원들을 복귀시켜야 했다. 약간의 부상은 감수할 수 있지만, 병원에 눕는 등의 중태는 그로서는 절대로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천우진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언제 끊길지 모르는 연줄을 억지로 억지로 부여잡는 정도의 성과만 달성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는 어떻게든 끊어지려는 연줄을 다시 견고하게 묶을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해결책도 그는 알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의 상부를 마음껏 주무르는 놈들 쪽에 붙는 것. 그렇게 된다면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무사히 CIA에서 은퇴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작 몇 푼 안 되는 연금에 만족하라고?”

온갖 더러운 꼴을 억지로 구경하고, 더러운 것들을 만지는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겨우 그 정도에 만족하려고 아득바득 기어 올라온 것이 아니었다. 상부를 마음껏 주무르는 놈들과 제법 비슷한 위치까지 올라간다면, 그들에게 제대로 스폰을 받을 수 있다면 지금껏 아득바득 기어 올라온 것에 대한 보상이 조금이나마 채워질 것 같았다.

결국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끈 윌리는 수화기를 들어 올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미스터 로스차일드.”

***

5일 뒤.

즐겁게 관광하고 있을 루시와 우희는 파리에 두고, 나는 호석과 함께 보르도로 향했다.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한 철웅이었지만 내게는 루시와 우희가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이기에 믿을 수 있는 철웅을 그녀들 곁에 붙였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할아버지도 자신의 곁에서 철웅을 보내주었던 것이리라 확신한다. 아마도 우희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길 바랄 것이다.

포도밭이 광활하게 펼쳐진 보르도는 특유의 정취가 있었다. 너무나도 평화롭고 한가로워 보이는 모습들, 꼭 은퇴 후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로망과도 같이 비치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곳에 이질적인 것이 있다면 다름 아닌 나와 호석이 탑승한 차량일 테다. 나의 안전을 극도로 조심하고 싶었는지 굳이 방탄차를 가져온 호석, 그의 마음을 알기에, 또 앞으로 벌어질 일이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군말 없이 해당 차를 타고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작은 울타리의 어수룩한 나무 문이 열리고 나와 호석이 탑승한 차량이 자연스럽게 울타리를 지나 마구간 비슷한 곳에 들어갔다.

탁.

““오셨습니까 빅보스!””

빅보스는 네 코드네임이었다. 바깥에서는 정보 때문에 직함을 부르지 않았다. 각자 자신들의 코드네임이 다 정해져 있었다. 특이하게도 우리 대원들의 코드네임은 작전이 개시되면 일 단위로 랜덤하게 배정된다. 물론 일 단위로 바뀌는 코드네임이 어려울 순 없다. 그저 넘버 1, 2, 3식의 숫자로 이루어진 코드네임이다.

절대 변하지 않는 코드네임이 있는데 그것은 지휘권을 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작전시가 아닐 땐 고정 코드네임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숫자로 사람을 부를 순 없으니까.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차량 트렁크로 이동해 친히 트렁크를 열었다. 세단이 아닌 커다란 SUV차량의 트렁크에는 소총과 소총탄, 수류탄 계열의 무기들이 실려 있었다.

“연장 챙겨.”

호석의 작은 명령에 대원들은 조용하고 신속하게 각자 자신의 포지션에 맞는 무기들을 수령하기 시작했다.

“무장 확인하면서 듣는다. 작전명 불빠따, 작전 시각은 익일 23시, 소음 발생을 최소로 하며, 민간인의 피해도 최소로···”

정호석이 대원들에게 브리핑하는 동안, 나는 보안이 확실한 전화를 꺼내 윌리 놈이 알려온 프랑스 회선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 받았소.

“준비는 끝났나?”

-아, 미스터 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현지 시각, 익일 24시까지 도착하길 바라지.”

-문제 없습니다.

제법 자신 있게 대답하는 윌리 놈.

“자신 있나 보군, 운송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보르도는 유명한 포도주 생산지죠, 그러니 자연스럽게 물류 이동이 많습니다. 당연히 물류 트럭으로 옮길 생각입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디까지?”

-차량 이동은 얼마 안 됩니다. 어차피 로스차일드의 포도밭은 포이약과 메독에 있으니 근처 메독의 항구에서 바로 선적할 생각입니다. 대서양을 지나 제법 먼 거리를 움직여야겠죠.

“항로는?”

-우선 바로 모로코까지, 모로코만 해도 항공기 이동이 가능할 겁니다.

“좋군.”

확실히 그럴듯한 계획이었다.

-우리 직원들은 언제 볼 수 있습니까?

“모로코에서 내가 물건을 확인한다면, 바로.”

-믿겠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알겠습니다.

완전한 저자세.

그러나 난 윌리에게 ‘여유’를 읽을 수 있었다. 이미 그 교활한 늙은 여우의 뇌로 제법 세심한 꾀를 짜 놓았구나 하고,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 제 136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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