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30화 (130/458)

< 제 130화. >

삼현을 그대로 흡수해 발전시키고 있는 SKY는 당연히 백화점 브랜드도 가지고 있었다. 본래의 새세상 백화점의 상호명을 SKY SHOT으로 바꾸었다. 백화점스럽지 않은 이름이라는 평도 많았지만, 이내 1층에 입점한 명품 매장들을 보고 사람들은 입을 떡 벌렸다.

백화점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다른 백화점들과 다르게 대우받는 느낌을 준다. 보통 다른 백화점들이 명품 샾을 프라이빗하게 만들어 놓는 전략과는 달리, 1층 입구에서부터 명품정이 딱 보이는 구조.

당연히 천우진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그 백화점에서도 상당히 비싼축에 속하는 헤르메스 매장에 루시와 우희가 들어섰다. 루시와 우희 그리고 그녀들의 경호원들이 입장하자, 직원들이 매장의 입구를 막고는 셔터를 내렸다.

오롯이 루시와 우희만이 매장안에서 쇼핑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주는 것. 이것이 헤르메스 매장의 특이점이었다. 그리고 루시는 당연히 이것을 좋아했다. 프라이빗한 공간을 부호들은 사랑하니까.

“어, 언니 여기 너무 비싼데···”

우희의 콩글리시에 루시가 눈을 크게 뜨며 말한다.

“무슨 소리야 아가쉬! 여기가 비싸다니, 여길 통째로 사도 우진은 아무런 얘기도 안 할걸?”

루시의 말에도 우희는 고개를 젓는다.

“그래도 이건 좀··· 오빠 카드로 사기는 그래요.”

루시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가쉬, 아가쉬는이제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전 세계에 혁신을 외치는 글로벌 기업 SKY의 오너의 여동생이자, 대한종합금융그룹의 전 오너였던 대한민국 복지부장관 천혁수의 손녀딸이라고, 그런 아가쉬는 품격을 보여줘야 해.”

“명품이 품격인가요?”

“꼭 그렇지는 않지만, 자리에 따라 다르게 입을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야. 한국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미국의 상류사회는, 입은 옷을 보고 판단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누군가 아가쉬가 입은 옷을 보고 무시했다고 가정했을때, 쑤 할아버지와 우진이 가만히 있을까?”

천우희가 고개를 저었다.

“당장 불같이 화를내며 응징할거야, 그게 상류사회야 무시를 계속 당하다보면 그들의 사회에서 배척을 받게 돼, 무슨 뜻인지 알겠어?”

“조금은···”

“늘, 이런 고가의 브랜드 옷을 입으란 얘기가 아니야, 솔직히 우진에게 이 옷이 ‘고가’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적어도 내일. 그러니까 아가쉬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순간, 아가쉬가 평상시처럼 이름없는 옷을 입고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우진에게 손가락질 할지도 몰라, ‘돈 벌어서 어디다 쓰냐, 여동생은 왜 싸구려 옷만 입었냐.’하고.”

“아!”

“부호들이 비싼 옷을 입고, 비싼 차를타고, 비싼집에 사는 이유, 그건 단순히 비싼것이 좋기 때문이 아니야, 그 어떤 사회단체보다 약육강식이 살아 숨쉬는 세상이 상류사회야,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무시당하기 싫은거야, 약자로 낙인 찍히면 잡아먹히기 때문에. 단순히 자신들의 부를 자랑하며 어깨를 키우는게 아니란 얘기야. 너무 어려운 얘기일까 아가쉬?”

“네···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다행이네, 그럼 쇼핑을 시작해 볼까?”

천우희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아가쉬가 먼저 직접 골라볼래?”

짧은 고민을 하던 천우희가 의기소침하던 표정을 버리고 제법 도도한 얼굴을 하고는 매장의 매니저로 보이는 여인에게 손짓한다.

“네, 고객님 찾으셨습니까?”

“34, 24, 32. 내 쓰리사이즈에요, 색깔별로 지금 계절에 어울리는 옷들 전부 가져오시고, 발은 235, 옷과 어울릴 신발들과 가방 전부 가져오세요.”

루시가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천우희는 완벽하게 자신의 남편 천우진의 여동생이라고. 매장에 들어서서 했던 고민따위를 날려버리자 불도저같은 자신의 남편과 똑같은 성격이 고스란히 나타났다고.

그녀는 틀림없는 천가의 핏줄이라고.

루시는 그렇게 확신했다.

***

테드라는 놈은 스스로를 과신하는 경향이 있는 놈이었다. 제 놈의 입이 무겁다느니 어떻다느니 떠들어 놓고는 시멘트를 삼키고 있는 히스패닉계 용병들의 꼬라지를 보더니 꼬랑지를 말았다.

“무엇이든 말씀드리겠습니다!”

희번득하게 빛나는 두 눈동자는 누가 보아도 진실을 뱉어낼 눈이다. 물론, 내 눈에만 보이는 녹색 연기는 놈이 완전히 굴복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A부터 Z까지, 말해 봐. 네가 가지고 있는 로스차일드의 약점이 무엇인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바쁘게 혀를 굴리는 테드 존스. 중간중간 시멘트를 삼키느라 헛구역질을 하는 용병놈들의 소음 빼고는 조용한 창고안에 테드의 목소리만 시끄럽게 울려퍼졌다.

“영양가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구나.”

할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동의를 표했다.

“그러게요.”

“쯧쯧, 돈 놀이 하는 놈들이 깨끗할리가 없고, 저 놈이 하는 얘기는 다 그런 얘기들뿐이구나, 증거는 없고 심증만 있는 그런일들, 미국놈들이 아무리 해태눈깔이라도 그걸 모를까?”

재차 고개를 주억거렸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니까.

누구보다 돈 놀이 하는 놈들이 깨끗하지 않다는 걸 우리 할아버지는 잘 알고 계신다. 본인이 직접 돈 놀이를 하셨으니 당연한 일.

로이드 로스차일드의 오른팔이라던 테드 존스.

그런 망나니의 오른팔이었던 놈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양질의 것이리라 생각한 순간은 당연히 없었다. 나 역시 전 삶, 이재현의 오른팔이었지만 이건 가문의 비밀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얘기하긴 어려우니까, 당장 나의 여동생 우희에 관해서도 전혀 모르지 않았던가?

“실망이야 테드, 네 놈이 씨부린 내용중에 전혀 영양가 있는 내용이 없어.”

격하게 고개를 도리질 치는 테드.

“아, 아닙니다! 이제부터 본론입니다 본론! 여태까지는 로스차일드가 얼마나 더러운 놈들인지를 말씀드렸다면 지금부터 말씀드리는게 핵심입니다!”

필사의 발악.

더 들을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밤은 기니까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호석을 쳐다보았다.

눈치껏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온 호석, 나는 그곳에 앉았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신다.

“볼일은 대충 본 것 같으니, 나는 어여쁜 손녀딸이나 보러 가야겠다. 마무리는 알아서 하거라.”

손에 묻은 피를 흰색 타올로 슥슥 닦고는 그대로 뒤돌아 창고를 벗어나는 할아버지.

어쩐지 할아버지 선택이 더 이로운 것 같다는 느낌은 착각일까? 하늘하늘 바닥에 떨어지는 타올을 바라보던 테드가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쉼 없이 혓바닥을 놀리기 시작했다.

“프랑스 보르도 북서쪽에 있는 로스차일드의 포도농장을 아십니까?”

“대충.”

“메독과 포이약에서 14세기부터 포도주를 생산하던 그곳이 로스차일드의 기반을 닦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죠.”

“그래서.”

“그런 만큼 로스차일드가에는 한 가지 전설 같은 것이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설마 포도밭 지하에 거대한 창고가 있고, 그곳에 세상의 모든 부가 있다 따위는 아니길 바라지.”

내 말에 덜컥 굳은 테드 존스.

너무 뻔한 클리셰 같은 것이라 제발 아니길 바랐는데, 아마도 그게 맞는 모양.

한숨과 함께 놈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비밀 창고는 네가 직접 봤고?”

“아무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로스차일드의 가주들은 대대로 1년에 2번씩 보르도 지방을 방문합니다! 오랜 전통과도 같은 것으로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방문하죠! 보르도에 있는 로스차일드의 저택에 분명 비밀통로가 있을겁니다!”

“그냥 포도주 농장에 별장같은 느낌이 아닐까?”

“아닙니다! 확실합니다! 그곳에 다녀오면 언제나 로스차일드의 자본은 증가했습니다. 로스차일드의 회계를 담당하던 제가 산 증인입니다!”

놈의 몸뚱이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녹색 연기는 결코 거짓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여태껏 들었던 정보중에 가장 솔깃한 정보지만, 아무리 현물을 잔뜩 쟁여 놓고 있어도 그 규모과 과연 얼마나 될까? 내가 감탄이라도 토할 정도의 현물이 그곳에 있을가 싶었다.

“14세기부터 보르도지방을 다스리다시피 한 로스차일드입니다! 혁명전, 귀족놈들이 얼마나 사치스러웠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분명 어마어마한 부를 쌓았을 겁니다.”

더 들을 필요가 없다.

얼마를 쟁여 놓았는지는 직접 확인하면 될 일이고, 지금부터 놈이 하는 얘기는 진실이라하여도 음모론과 같은 얘기니까, 확인되지 않은 정보란 뜻.

나는 플라스틱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말했다.

“대충, 용병들이랑 같이 처리하세요.”

대원 둘이 ‘예!’하고 크게 대답한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억 크악!”

대원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놈을 잠시 쳐다보다 뒤돌아 창고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호석이 건네는 시가를 입에 물고는 물었다.

“보르도 쪽에 대원들 도착해 있다고 했죠?”

“예, 그렇습니다.”

“로스차일드의 저택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있다면 내부설계도 같은 것좀 가져와 보세요, 진짜 비밀통로가 있나 확인은 해 봐야죠.”

“예, 그렇게 지시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보부 돌려서 로스차일드 놈들이 진짜 매년 보르도를 방문했는지, 방문했다면 얼마나 머물렀는지, 주기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확인하세요.”

“예, 바로 보고서 올리겠습니다.”

푼돈인지, 아니면 테드 존스가 얘기했던 것 처럼 어마어마한 부를 쌓아 놓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로스차일드의 총알을 줄여 놓을 필요는 있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강기태 본부장이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 부동산 폭락 옵션에서 로스차일드가 파산하기를 바라니까.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 처럼.

놈들이 망하고도 편하게 살지 않기를 바라니까.

놈들이 망하고 비호해줄 권세가 없다면 손 쉽게 숨을 거둘 수 있을 테니까, 놈들이 우리에게 총구를 겨누었으니 우리는 놈들에게 절망을 보내는 것이 옳다. 1센트짜리 동전도 빠짐없이 가져와 저승길 노잣돈을 쓸 수도 없게, 억울한 망자가 되어 영원한 안식따위는 꿈 꿀수 없게.

앞으로 나를, 내 가족을 적대하는 놈들이 맞게 될 최후는 그런 것이 돼야 한다.

“로이드 그 망나니놈은 뭐하고 있습니까?”

“집에서 외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특이점은 미용사가 저택으로 출입했다는 소식입니다.”

“미용사?”

“예,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몸에 있는 모든 털을 관리하는, 그런 미용사였습니다.”

“아아.”

대충, 로이드그 천둥벌거숭이같은 놈이 왜 미용사를 불렀는지 알 것 같았다. 테드란 놈이 씨부리던 말 중에는 분명 마약과 관련된 얘기도 있었으니까.

***

쫘아아악!

살에 달라 붙어 있던 왁스를 떼어내는 일은 고통을 동반한다.

“쉣! 이건 할 때마다 뭣같아.”

“조금만 참으세요 도련님.”

“닥치고 빨리 해!”

“네.”

천 따위는 몸에 두르지 않은 로이드 로스차일드, 기름진 금발의 머리카락은 어디가고 지금은 민둥민둥 허연 피부를 드러내고 있는 그의 머리통.

팔이며 다리며, 사타구니까지.

몸에 있는 털이란 털은 모조라 뽑아내고 있는 로이드 로스차일드.

쫘아아악!

“개 같은! 병신같은 테드 존스! 아직 그 새끼는 연락이 안 돼?”

“예, 도련님.”

“그 새끼 모가지 따 와, 내 앞에 가져오라고! 그 미친놈이 천우진에게 뭐라 씨부릴지 모르지만··· 후우, 조심해서 나쁠건 없겠지?”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제기랄, 모발 검사에 안 걸리는 약은 없나?”

“······”

쫘아아악!

“이런 시발! 너 전문가 맞아? 일부로 아프게 떼는거 아냐?”

“피부가 약한 부분이라, 고통이 동반됩니다··· 도련님이 워낙 숱이 많으셔서···”

“안 아프게, 최대한 안 아프게!”

“예, 예.”

자신의 사타구니에 열심히 왁스를 바르고 떼기를 반복하는 여인에게서 시선을 옮겨 다시 40대쯤으로 보이는 사내를 바라보는 로이드.

“아버지는?”

“가주께서는 현재 대출 기준에 대한 회의를 진행중이십니다.”

“페이퍼 컴퍼니 몇개 돌려서 신용평가사, 자본평가사 만들어 놔, 금융알선 업도 괜찮겠네 월가의 양아치들을 고용하던가, 무조건적인 대출이 가능한 세상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예, 도련님.”

“너는 테드처럼 날 실망시키지 말라고, 돈만 봐 돈만, 필요도 없는 자존심 따위 챙기려고 하지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트리플 D까지 대출을 내줘, 내 사비로 돌려서 무슨 뜻인지 알아?”

사내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트리플 D라면, 원금 상환이 힘들수도 있습니다.”

“모기지 잖아, 모기지! 어차피 집을 담보로 받는다고.”

“그렇지만 트리플D는, 일용직 노동자보다 수입이 적은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닥치고 진행 해, 부동산만 보유하면 되는거야, 어차피 그걸 되팔면 수익이 발생한다고, 이자는 이자대로 수입이고 이해가 안돼?”

“···알겠습니다.”

“돈만 봐, 돈.”

“예.”

***

사람들이 바삐 출근할 시각.

우리집은 다른집과 다르게 훈내나는 아침식사가 끝이났다. 거실에 나와 티타임을 즐기며 시계를 올려다보니 어느새 오전 9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은 이 할애비가 먼저 나가는구나, 오빠랑 회사에 잘 다녀오고.”

“네~ 할아버지 오늘도 파이팅!”

우희가 할아버지 품에서 애교를 부린다.

애교를 부릴 나이가 지났을지도 모르지만 할아버지 품에 안겨 볼을 부비는 우희를 보자니 나도 모르게 뿌듯한 웃음을 짓게 된다. 여태껏 부리지 못했던 애교나 아양을 마음껏 펼치는 우희. 확실히 이제는 완벽하게 우리 가족이 되었다.

며칠새 전혀 다른 캐릭터가 되어있었다. 원래가 밝고 쾌활했던 모양. 어려운 상황에도 모나지 않게 자라주어 내가 다 고맙다.

“우희도 이제 준비하자, 슬슬 움직여야지. 네가 다니던 그 대양실업으로.”

< 제 130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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