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23화 (123/458)

< 제 123화 >

삼단봉을 아무리 휘둘러도 사내들은 조선족 깡패들을 어쩌지 못했다. 그렇다고 피가 낭자하다거나 사지중 어디 하나가 잘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위협만 했을 뿐이었다.

한 놈만 숨이 붙어있으면 된다 명했던 천혁수지만, 영찬이라 불린 사내는 세 명의 숨을 모두 붙여서 막 뜨거운 홍탕에서 양고기를 건져 올리는 천혁수의 앞에 무릎 꿀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양고기를 적당한 소스에 찍어 입에 넣고는 우물거리다 금문고량주로 입을 헹궈내고는 입을 여는 천혁수.

“뭐하는 놈들이냐?”

놈들이 대답하지 않으니 천혁수가 영찬이란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조선족 사내 몇이 그들의 품을 뒤져 지갑이나 신분증 등을 꺼내었다.

툭.

놀랍게도 그들 중 한명의 품에서 권총이 나왔다. 한국의 경찰들이 사용하는 리볼버와는 다른 글록 권총. 영찬이 그런 것들은 한데 모아 천혁수에게 건넸다.

“미국놈들이었군, 대사관?”

대충 신분증을 확인한 천혁수가 손을 뻗어 권총을 집어 들었다. 능숙하게 탄창을 뽑고 장전되어 있던 총알 한발까지 꺼내고는 물었다.

“어디서 온 놈들이냐?”

입술이 터져 피를 흘리던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미 정부 소속입니다. 풀어주시죠.”

“미 정부? 어디?”

“CIA소속입니다. 천우진 회장과 천혁수 장관님은 우리쪽에서도 주요인물로 상정하고 있기에 감시및 보호가 필요해서 따라다녔을 뿐입니다.”

천혁수가 다 식은 양고기를 접시에 놓고, 다시 젓가락을 뻗어 펄펄 끓고 있는 홍탕속 내용물은 잡히는대로 집더니 그대로 말을 뱉은 CIA요원의 얼굴에 던졌다.

“크학!”

고기나 버섯따위를 얼른 얼굴에서 털어내는 요원.

“헛소리를 재미있게도 하는구나, 내가 손녀딸을 찾기 전에, 날 미행하는 놈들은 없었어. 근데 이제와서 같잖은 핑계를 대?”

뻘건 기름을 얼굴에서 서둘러 닦아낸 요원이 씹듯이 말했다.

“우리도 상부의 명령이라 자세한 건 모릅니다. 그냥, 감시및 보호 임무를 받았을 뿐이에요.”

탁.

천혁수가 젓가락을 내려 놓고는 말했다.

“철웅아.”

“예, 백부님.”

“저놈 혓바닥이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드르륵, 철웅이 자리에서 일어나 펄펄 끓고 있던 냄비를 들며 말했다.

“왕 사장, 저놈 입 좀 벌리지.”

“예! 실장님.”

실장이란 직책에서 대표라는 직책으로 바뀌었지만 아직은 알지 못하는 왕영찬의 대답을 자리에서 누구하나 신경쓰는 이가 없었다.

사내 둘이 얼굴에 화상을 입은 사내의 머리를 고정하고 턱을 벌렸다. 백철웅이 그 사내에게 방금까지 불 위에 있던 냄비를 천천히 들고갔다.

사내가 미친듯이 몸부림처 보지만, 하나가 둘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지즈아 머라 지즈아! 지즈아!”

“쯧, 그만.”

철웅이 막 기울이던 냄비를 바로 하고, 다시 가스 불 위에 올려놓는다. 조선족 사내들도 놈의 몸에서 손을 떼었다.

“진짜 모른다라···”

홀로 읊조리던 천혁수가 왕영찬을 바라보았다.

“잠시 놈들 좀 맡고 있거라, 일이 급해 먼저 일어날테니.”

“예, 어르신.”

“우리는 일어나자 철웅아.”

“예! 백부님.”

차량에 오르자마자 철웅이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그래? 알았어, 애들 감시 잘하라고 하고, 그래.”

전화를 끊은 철웅의 표정이 밝게 상기되었다.

“백부님! 아가씨가 아직 회사에 재직중이라고 합니다.”

천혁수의 표정이 순간 밝아졌다.

“서둘러 가자.”

“예!”

“배치된 아이들은 어떤 녀석들이냐?”

“PMC 최정예 서른 명입니다. 대통령 경호보다 더 탄탄할겁니다.”

“오랜만에 박 기사, 운전 솜씨나 좀 보지. 밟아 봐.”

운전기사가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예!’하고 대답하더니 천혁수가 탑승한 차량의 엔진이 ‘우우웅’하고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

찰리 박과의 통화는 짧았다.

단순하게 그에게 미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투자전문가를 소개받으면 될 일이었다. 물론 우리가 상대해야 할 놈들이 로스차일드기 때문에 보안 문제상 신뢰할 수 있는 놈을 골라야 했다.

찰리 박은 내가 신뢰를 하고 있으니, 그가 소개시켜준 사람을 한 번 써 볼까 싶어 물었을 뿐이다. 그가 마땅한 인물을 소개시켜주지 못한다면, 다른 인물들에게서 소개를 받으면 될 일이기에 통화를 길게 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일본에서 이루어지는 ‘반도체 소재’에 관한 기업인수건에 대한 보고가 있어, 조금 길어진 감도 없지않아 있었다.

잠시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먼저 전화를 할까? 아니면 더 기다릴까, 그런 짧은 고민이 스쳐갔다. 당장 미국에서 내가 진두지휘 할 일은 없다.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로스차일드와 전면전을 각오 했고, 서로를 상처입힐 전쟁을 시작하겠지만 다짜고짜 총탄을 퍼붓고 킬러를 고용해 암살 할 순 없다.

지이이잉, 지이이이잉.

열심히 몸을 떠는 휴대폰을 쳐다보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분명 내가 기다리던 전화이리라.

“여보세요.”

-찾았다.

역시 맞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할아버지의 전화였다.

CIA에 대한 문제가 문득 떠올랐지만, 그딴 것 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먼저 물었다.

“잘 살고 있던가요?”

-그래··· 때 묻지 않고, 예쁘게 자랐더구나.

“인사는 하셨어요?”

-아직··· 아직 못했다.

“같이 갈까요 우리?”

-그럴까? 우진이 네가 한국에 도착하기 전에, 걸림돌은 다 뽑아 놓으마.

할아버지의 말씀에 인상을 찌푸렸다.

“걸림돌이 있어요?”

-중소기업들이 없는 사람, 처지가 딱한 사람들을 이용해 먹는게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더냐.

까드득.

어금니를 짓 씹었다.

내 누이가 전 삶, 나보다 힘든 삶을 영위하고 있었으리란 생각에 절로 분노가 솟구쳤다.

전 삶의 나는 최소한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는 사람이었다. 대기업 임원급의 연봉과 삶의 질을 누리고 살았다. 그러나 누이는 어땠을까? 현재 중소기업에 재직중이라면, 그녀의 미래는 솔직히 뻔했다.

로또라는 행운의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냥 그저 그런 삶을 살았으리라. 여자 혼자, 부모도 가족도 없는 삶, 배경이 없는 여자가 제대로 며느리 대우는 받을 수 있었을까? 시집은 갔을까? 사랑은 할 수 있었을까? 갖가지 오만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들어찼다.

“예, 치워주세요, 밝게 웃고 있는 누이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할아버지.”

-오냐, 이 할애비가 그렇게 해주마, 편히 오거라.

“하루, 하루만 더 시간을 주세요.”

-좋아, 잘 하고있다 내새끼, 흔들리지 말고!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거라, 한국엔 이 할애비가 있다.

“예, 믿습니다.”

-오냐.”

든든했다.

절대 쓰러지거나 뽑히지 않을 거목이 단단히 내 등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에는 할아버지가 있다.’라는 말이 세상 그 무엇보다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그래, 한국에는 할아버지가 있다.

내 누이를 찾았다고 하니 안전은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호석에게 듣기론, 내 누이의 곁에 30명의 정예대원들이 포진해있다 들었다. 그들이 3교대로 총 90명의 대원이 움직이고 있었다. 속된 말로 대통령보다 더 촘촘한 경호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확언했으니, 믿어야 했다.

로스차일드가 무슨 개지랄을 떨어도 내 누이는 안전하다.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기쁜 소식을 나만 알고 있을 순 없었다.

완전한 내 사람인 대비할아버지에게도, 사랑스러운 나의 와이프 루시에게도, 그리고 루시의 부모님 장인어른, 장모님에게도 이 소식을 전달해야 했다. 그들도 겉으론 밝게 웃지만 속으론 분명 내 걱정을 하고 있을테니까.

***

다음 날.

찰리 박이 소개해준 사람은 ‘흑인’이었다.

현 시국의 미국에서 굉장히 특이한 일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과연, 찰리 박도 미국에서는 ‘유색’인종으로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받았을 테니, 자연스럽게 흑인과 친해졌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동병상련이라는 것은 언제 어느때에도 서로를 순식간에 친해지게 만드는 마력이 있으니까.

“반갑습니다. SKY의 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사무엘 잭슨입니다. 회장님의 얘기는 찰리에게 들었습니다.”

“그럼 대충 계획에 대해서도 들으셨겠군요?”

“예, 자신있습니다. 전문분야이기도 하고요.”

허연이를 드러내며 밝게 웃는 그에게 물었다.

“재력가들의 자금세탁을 담당하셨다고요?”

“예, 그러니 추적불가능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드는 건 기본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중을 위해 뒤처리도 깔끔합니다. 가령 SKY인베스트먼트가 페이퍼 컴퍼니를 인수한다고 해도 법적인 하자가 전혀 없이 진행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신감에 절여진 대답에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의 두 눈에는 확신이 있었다. 이 세상 누구도 자신을 범죄자로 만들 수 없다는. 그만큼 자신의 일에 있어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일테니 믿을만하다 느껴졌다. 역시 찰리 박이 아무나 추천하진 않았구나 싶었다.

“좋습니다. 아마 내일이면 SKY인베스트먼트에서 총괄본부장이 올 겁니다. 그와 협의하면서 진행 하시죠, 우리쪽에서도 페이퍼 컴퍼니를 하나 준비 할 겁니다.”

“회장님이 원하시는 것은 SKY인베스트먼트가 가려지는 것이겠죠? 실 소유주는 SKY인베스트먼트이지만, 저는 앞에 서는 ‘바지사장’같은 느낌이요.”

“맞습니다.”

“수당은 어떻게 됩니까?”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이상이 될 겁니다.”

사무엘이 만족스럽다는 듯, 다시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좋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능력보다는 ‘보안’입니다.”

“예, 이해했습니다. SKY가 드러나면 안된다는 말씀이죠?”

“그렇습니다. 그 부분을 명심했으면 좋겠네요.”

“이해했습니다. 총괄본부장이란 분과 계약서를 만들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 반드시 명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불가피하게 당신에게 경호및 감시의 임무를 맡을 경호원들이 배치될겁니다.”

“감수하겠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 그정도 불편함 쯤이야.”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게 시간을 쓸 필요도 없었다. 단지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모든 조건을 수용적으로 받아들이니 편했다. 아마 사전에 찰리 박이 어떤 언질을 주었을테다. 어쩌면 현재 찰리 박이 우리 SKY에서 받는 대우를 보고 확신했는지도 모르겠다.

식당을 벗어나 바깥으로 나가니 루시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여기야~ 벌써 끝났어?”

“응, 얘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 금방 끝났네.”

“잘 됐다. 덕분에 더 빨리 갈 수 있겠네?”

“그러게.”

나도 모르게 단답형으로 대답했기 때문일까? 루시가 베시시 웃으며 묻는다.

“긴장했어?”

“내가?”

“응, 그래 보여.”

“음··· 그런가.”

“나도 긴장 돼, 우진의 여자 형제라니 어떻게 생겼을까?”

“루시, 잘해 줘···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모르지만··· 같은 여자라면 더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테니까.”

“걱정하지 마, 당신 와이프는 믿어도 돼.”

“하하, 그래. 빨리가자 한국으로.”

“응.”

굳이 미국에 있어도 될 루시와 함께가는 이유.

나는 내 누이에게 내 와이프를 소개시켜주고 싶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부분들을 같은 또래의 여자라면 이해해주고 배려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기도 했다.

물론, 루시도 궁금해 했다.

어쨌든 그녀에게도 내 누이는 가족이 될 사람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설렘과 긴장을 가지고 한국으로 출발 했다.

< 제 123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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